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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어린 양
2024.03.03 / 출애굽기 12장 5~11절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야훼의 유월절이니라”(출애굽기 12장 5~11절)

출애굽기 12장 5절로 11절의 말씀을 가지고 “유월절 어린양”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절을 기점으로 해서 전 7주간 40일인데, 주일을 빼고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해서 40일 동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세속적인 오락을 끊고 기도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기간이 바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을 맞이해서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이 죄와 절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염려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군 사망한 숫자가 4만 5천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4만 5천 명의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군도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것입니다. 또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무고한 사람이 계속 희생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쟁, 기근, 재난. 미국에서 일어난 산불이 지금 서울의 4배, 5배만큼 되는 지역을 다 태우고, 말할 수 없는 어둠과 고통의 소식이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죄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에게 사망과 저주가 다가왔습니다. 분쟁과 다툼이 다가왔습니다. 기후 환경을 우리 인간이 파괴하니까 지구 환경을 무너져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서 우리가 자유함을 받을 길은 오직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의 희망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종교가,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떤 권력이라도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노력은 우리를 더욱 깊은 절망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구약에서 우리에게 가장 예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고 거기서 놓임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통하여서 온 애굽을 심판하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모든 첫 번째 태생이 사람은 남자가, 짐승은 수컷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죽음의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이 대신 죽어 피를 흘려서 그 피를 좌우 기둥과 문 앞 옆 기둥과 인방에 바름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 흠 없는 어린 양


먼저 흠 없는 어린 양을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출애굽기 12장 5절에 성경을 말씀합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가족 수에 맞게 흠 없는 수컷 어린 양을 준비했습니다. 왜 수컷을 준비했는가 기록을 찾아보니까 유대 랍비들의 정통적인 해석은 수컷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한 가족을 말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서 가장으로 그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수컷을 택한 것은 대표성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견고성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암컷보다 수컷이 강하기 때문에 견고함이 있어서 그 견고함으로 대표성을 나타내는 수컷이 가족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 죽은 것입니다.

유월절 그 밤에 죽은, 수많은 어린 양의 그 죽음은 장차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할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께서 나오심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흠 없는 어린 양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것처럼 죄 없고 흠 없으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희생이 되어 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예수님이, 허물이 없고 순수하시고 정결하시고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온전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흠 없는 어린 양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서 죽임을 당한 것처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스스로 힘으로는 죄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 눌려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였는데,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서 놓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그 순간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우리 입술에서는 넘치는 감사의 고백이 드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린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자다 깨어서도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어린 양의 피


근데 이 흠 없는 어린 양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렸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흘려져 그 피가 그 집 문에 발라졌습니다.

출애굽기 12장 7절입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인방과 문 좌우 옆의 기둥에 피를 발랐습니다. 이 피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는 모든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입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의 죄를 깨닫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보여주신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 앞에서 죄 없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입히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 죄 때문에 그 앞에서 죄 없는 짐승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를 대신해서 죄 없는 짐승이 피를 흘려 죽어야만 했습니다. 구약 4000년 역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이 유월절 사건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죽음의 사자가 와서 첫 번째 태생을 다 죽일 때 피로 말미암아 그들이 죽음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유월절이라는 것은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이 피를 보고 넘어간 것입니다. 패스 오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모든 첫 태생은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모든 집의 가축의 첫 번째 태생 수컷은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29~30절입니다. 
밤중에 야훼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그날 밤 애굽 왕 바로의 첫 번째 아들부터 시작해서 온 애굽 사람들의 첫 번째 아들이 다 죽임을 당했고, 온 가축의 첫 번째 태생 수컷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중한 자식, 소중한 가축을 잃은 애굽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그 밤에 온 애굽을 뒤덮었습니다.

사랑하는 첫아들을 잃은 바로 왕도, 바로 왕의 아내도 아들의 죽음 앞에 통곡했고, 신하들도 감옥에 갇힌 사람까지도 하여간 첫아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집 문기둥과 인방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단 한 마리의 가축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주셔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순복음에서 보혈 찬송을 많이 부르는데, 이 보혈 찬송은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는 찬송이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부르면 찬송가 부를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 고침 받고 죄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가난과 저주가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제사였습니다. 죄를 지으면 또 짐승이 죽고 또 짐승이 죽고 또 짐승이 죽고 또 짐승이 죽었습니다. 그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기 짐승의 어린 양들이 염소들이 또 그 가족들이 자기 죄 때문에 죽어가는 모습을 주인은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설명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렇게 구약의 모든 제사는 그때마다 또 죽고 또 죽고 또 죽었는데,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예요. 계속 반복되는 제사였지만 예수님의 제사는 단번에 영원히 드린 완전한 제사였던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 어려운 삶 가운데 모든 죄의 세력을 물리치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내 마음속에 불안과 염려를 가져다주는 잘못된 모든 어두운 생각은 떠나갈지어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될지어다! 

여러분, 마음이 어두운 데서 자유함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에서 자유함 받게 되길 바랍니다. 가난과 저주에서 자유함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혈의 공로를 찬양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깊이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 19절 말씀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의 보혈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죄 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병 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모두 흑암의 권세에서 자유케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불안과 염려와 근심, 걱정 다가올 때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쫓아내시기를 바랍니다.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 삶 가운데 충만하게 되도록 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어린 양의 고기


피를 바르고, 그리고 그날 밤에 그 죽은 어린 양의 고기를 구워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8~9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저들이 떠날 준비를 다 한 다음 그 죽은 어린 양을 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전진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고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사람의 음성을 듣고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내고 모든 문제와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능력이요 치료요 용서요 회복이요 기적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은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여 줍니다.

세상의 음성은 우리에게 어둠을 가져다주지만,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고, 기쁨을 가져다주고, 은혜와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고 한 말씀에서 불은 성령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삶 가운데 문제가 많습니까? 옛날같이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우리 입에서 원망 불평 나올 그런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입만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교회학교에 와서 교실이 없어서 계단에서, 주차장에서 분반공부하면서도 그냥 기쁘고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지금 아무리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좋게 만들어주고 또 만들어주고 만들어줘도 ‘이것이 부족합니다. 저것이 부족합니다.’ 끝없이 부족하다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옛날처럼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사님! 시대가 바뀌었어요.” 여러분, 물론 삶이 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마는 성령의 능력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쁨이 임합니다. 감사가 임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길 바랍니다. 

근데 불에 구워 먹을 때 그냥 불에 구워만 구워 먹는 것이 아니라 누룩 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 누룩 없는 무교병은 우리 삶 가운데 세상에 물들지 않고 죄의 모습을 제거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여러분, 인생 살아갈 때 여러분 삶 가운데는 이 죄의 모습들을 제거해야 됩니다.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어떡하든지 우리를 타락하고 넘어뜨려서 죄 가운데에 빠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입니다.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죄의 결박을 벗어버리고,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했습니다. 쓴 나물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30년 고난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쓴 나물을 먹어야 되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신앙 생활할 때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입니다. 나를 다듬어서 연단시켜서 더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그 고난이라고 하는 풀무 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됩니다.

시편 146편 1~2절은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야훼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야훼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여러분,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나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 주는 사람을 다 용서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가 손양원 목사님 따님의 그 간증을 듣고 또 읽었습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수 순천 국방 경비대 14연대 좌익계 장교들이 좌익계 남로당을 모집해서 군대를 조직해서 좌익계 시민들과 반란을 일으켜서 일주일 동안 3500명을 학살하고 500명이 행방불명이 된 실종된 그 사건이 바로 여수 순천 반란 사건입니다.

이 반란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손양원 목사님 아들 동인이 25살, 동신이 19살이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이 큰아들 동인이를 잡은 사람은 아들의 같은 반 동료였습니다.

동료 중 공산주의 생각에 물든 좌익 청년이 그를 붙잡아 가서 “너 미국 제국주의 앞잡이지?” 이 큰아들이 기독교 학생회 회장이었는데 그를 붙잡아, 형과 동생을 붙잡아서 얼마나 때렸는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게 두들겨 맞고 순천경찰서 뒤로 끌고 가서 총살해 죽였습니다. 죽은 그를 또 와서 확인 사살까지 했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외칩니다.

이제 나는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마는 너희들은 그 죗값을 또 어떻게 치르려 하느냐. 지금이라도 예수 믿고 회개하도록 해라.

같은 반의 친구였는데 이렇게 좌익사상 공산주의에 물드니깐 예수 믿는다고 끌어내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게 하고, 형을 쏴 죽이고 동생도 쏴 죽였습니다.

그때 여동생 동희는 16살이였는데 너무나 오빠들을 사랑했습니다. 오빠 둘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여수에서 순천까지 36km 거리인데 모든 교통편이 다 멈춰져 있어서 그 36km 되는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그가 여수에서 순천까지 내려가 보니 이미 오빠들이 죽었는데, 손양원 목사님을 아는 분이 이 시체를 뒷 산모퉁이 논 구덩이에 옮겨놓았는데 가마니를 덮어 놓았습니다.

가보니 온몸은 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고, 총을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이마와 가슴에 총알 자국이 수없이 나 있었습니다. 오빠 둘의 시신을 보면서 몸부림치며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하신 일이 고작 이런 것들인가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울부짖으며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두 오빠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순천에서 여수 애양원으로 옵니다. 이 애양원에는 당시 한센병 환자들이 약 1000명 정도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큰아들, 둘째 아들이 죽은 시신 앞에서 “동인아! 동신아!” 부르다가 몇 번이고 기절하셨습니다.

한센병 환자인 1000여 명의 애양원 식구들이 나와서 모두 다 통곡을 합니다. 장례식 행렬이 나가는데 온 애양원 식구들이 울며 그 상여를 뒤따라갑니다.

그때까지 눈물을 참고 계시던 그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도 “동인아, 동신아! 동인아, 동신아!”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들 이름을 부르시다가 또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찬송을 부르시고 그렇게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장례식이 일주일 지났을 때 두 오빠를 죽인 범인이 잡혀서 사형집행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 사진은 손양원 목사님이 그 오빠를 죽인 범인을 양자로 받아들인 다음 1948년 순교하셨는데, 그때 아버지 장례식 때 오빠를 죽인 원수가 상주로 서 있는 모습입니다.

‘오빠를 죽인 원수를 내가 꼭 죽여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잡혔다는 얘기를 듣고 ‘야, 잘됐다! 오빠를 죽인 범인이 총살당하는 걸 내가 가서 봐야 되겠다.’ 그런데 아버지가 동희를 부릅니다. 

“동희야, 동희야. 너희 오빠들은 이미 천국에 갔지. 너희 오빠를 죽인 그 청년은 지금 죽으면 지옥 간단다. 네 오빠를 죽인 그 청년을 용서해야 된다.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니? 내가 그 청년을 용서하고 큰아들 동인이를 대신해서 내가 양자로 삼으련다.”

동희가 놀라 아버지한테 바락바락 소리 지르면서 대들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하면 용서했지. 아들로 삼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나에게는 오빠가 되는 것인데, 내 오빠를 죽인 원수가 어떻게 오빠가 되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예수를 못 믿는 것입니까?

막 아빠한테 소리 지르고 펄펄 들고 대들었는데, 아버지는 절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시고 “동희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 달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도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펄펄 뛰고 아버지한테 대들었는데, 더 힘든 것은 아버지가 부흥회에 가 있을 때 사형집행이 되는데 아버지가 사람을 보내서 사형집행에 들어가는 그 사람을 놔주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요청을 들은 사람은 “이 사람아! 사형수를 갖다 놔주라고 하면 당신도 빨갱이요!”라고 손양원 목사님이 보낸 사람을 밀쳐냈습니다. 그러니까 딸을 보낸 거예요. 딸 동희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곳에 가서 사형 집행하는 대령에게 말합니다.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고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구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했기 때문이래요.”

손양원 목사님 딸이 와서 그 말을 전하니까 갑자기 그 방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대령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령이 말했습니다. “참 위대하시다. 네 아버지는 대단하시다.” 거기 모든 있는 사람들이, 사형집행을 받을 좌익 청년들도 울고 우익 단체 청년들도 울고 군인도 울고 다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기 오빠 둘을 죽인 안재선이 풀려났습니다. 그를 집에 양자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동희는 오랫동안 자기 오빠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사랑하는 오빠를 죽인 저분을 내가 오빠라고 그럴 수 있느냐.’ 늘 마음속에 자기 오빠의 원수라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안재선은 그렇게 자기가 죽음에서 놓여남을 받고 나서 그 마음에 죄책감 때문에, ‘내가 이런 분의 아들을 죽였구나.’ 죄책감 때문에 늘 눌려 살다가 죽기 얼마 전에 바싹 말라서 편도선암으로 죽어가는 상태에서 동희를 찾아왔습니다.

동희를 붙잡고 통곡하면서,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 죽어서 천당에 가면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 그리고 두 주 만에 조용히 이분은 천국에 가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든 원한을 다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섭섭하게 하고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분들을 품고 살아서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여러분 속에 다 원수들이 있을 줄 압니다.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배신한 사람들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에 원한을 품고 살면, 우리 주님 앞에 갈 때 부끄러운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며 살아가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내면서 부른 찬송을 함께 부르기를 원합니다.

<찬송가 610장 (통 289):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1절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후렴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조금도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거 다 그대로 돌려주려 하고 평생 아픈 마음 품고 살아왔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양한 손양원 목사의 위대한 사랑을 우리가 배울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또 그렇게 실천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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