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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역사
2024.02.25 / 열왕기하 5장 1~3절, 14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야훼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열왕기하 5장 1~3절, 14절)

열왕기하 5장의 말씀을 가지고 ‘믿음의 역사’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의 일생은 믿음의 일생입니다. 믿음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 그 안에 독이 들어있지 않고 내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들어있는 것을 알고 안심하고 믿고 음식을 먹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도 이 비행기가 나를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 줄 것을 믿기에 안심하고 비행기를 탑니다. 요즘 전공의들 파업 때문에 문제가 많지만, 병원에 가서 내 몸을 맡기는 것도 의사가 내 병을 고쳐 준다고 하는 믿음이 있기에 병원에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다음,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갖고 있는 이런 일반적인 믿음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영적인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은 말씀에 근거하여 기적을 창조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믿음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고 믿음의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모두가 절대긍정의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절망에 처한 인간


오늘 말씀 가운데 절망에 처한 한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열왕기하 5장 1절에 이와 같이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야훼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성경은 나아만을 소개하면서 그가 군대 장관이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자이지만 나병, 한센병 환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는 기원전 9세기 약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람 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엘리사 선지자가 북왕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 나아만이라고 하는 군대 장관, 요즘으로 말하면 육군 참모총장쯤 되는 이 사람이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그는 나병,  한센병 환자였습니다.
 
이 한센병이라고 하는 것은 전염성이 있는 병균이 세포에 침투해서 세포를 죽여 피부가 썩어져 들어가고 심해지면 눈이 멀게 되는 그런 질병입니다. 1873년에 노르웨이의 한센 박사가 이 나병균을 발견해서 그때부터 이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살펴보니깐 이 나병이 전염병인데 한센균이, 한센씨병이라고도 부르는 이 병의 균이 들어와서 잠복하는 기간이 9개월에서 20년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내가 전염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20년쯤 지나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피부가 갈라지고 피고름이 나고 감각이 사라지고 그래서 급기야 눈도 멀게 됩니다.

전 세계에 이 한센병 환자들이 많은데 24개국을 제외한 약 170개국에서 만 명에 한 명 정도가 이 병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은 약이 개발돼서 5년에서 한 20년 동안 약을 복용하면 병이 완치 될 수 있습니다.

약이 개발된 것은 지금부터 한 150년도 안 되기 때문에 약 3000년 전에 그 병은 걸리면 반드시 죽는 병이었습니다. 몸의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피고름이 나고 그러다가 손과 발, 코가 문드러지고 눈이 멀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나아만 장군은 전쟁에 나선 위대한 용사이고 큰 공을 세워 그가 들어올 때는 온 국민의 환호 속에 있었지만, 갑옷 안의 몸은 나병, 한센병으로 썩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자기 몸을 바라보면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절망과 고통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번의 사고로 평생 불구의 몸으로 지내는 분들, 이 장애라고 하는 것이 사람에게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중병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은 하루하루가 절망입니다. 혼수상태에 빠져서 언제 깨어날지 모르고 그저 코마 상태로 누워 있는 분은, 바라보는 가족이나 본인이나 절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과거의 실패, 과거의 상처에 그 절망에 사로잡혀서 그 절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늘 절망 가운데서 탄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저들이 절망의 몸속에서 탄식하며 외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나아만 장군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왕이 신임하는 장군이었고 온 백성의 칭찬을 받는, 칭송받는 장군이었지만 자기 몸에 다가온 이 나병, 한센병이라고 하는 죽음의 병에 갇혀서 절망 가운데에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2. 희망의 메시지


그런데 그 절망 중에 살아가고 있던 그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집안에 이스라엘에서 포로 잡혀 온 한 어린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는 그 장군의 부인의 몸종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 2~3절입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계집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이스라엘 나라에 선지자가 있는데 그에게 가면 병을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나아만의 부인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당장 남편에게 가서 “여보, 여보.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그 어린 소녀가 나한테 얘기를 하는데, 이스라엘에 가면 그 병을 고치는 선지자가 있다고 합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됩니다. 희망의 메시지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문제를 이겨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아만 장군이 그 말 듣고 너무 흥분하고 기뻐서 왕에게 달려가서 말합니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저희 집에 이스라엘에서 잡아 온 어린아이가 내 집사람을 몸종으로 섬기고 있는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왕이 그 말 듣고 “그러면 빨리 가서 이스라엘에 가서 병 고침 받고 와라.” 

열왕기하 5장 4~5절 말씀입니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나아만 장군은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제 고침받을 수 있겠다.’ 그래서 고침 받고 난 다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례를 하려고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10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향해 떠납니다. 

여러분, 믿음은 들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믿음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고 믿음이 생겨나면 그 믿음으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의 말씀을 날마다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믿어야 됩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삶 속에 절망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얘기, 절망적인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것에 신경도 쓰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악한 사람들이 하는 악한 말들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백해무익합니다. 

우리는 긍정의 메시지,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고 용서하고 회복시키는 축복의 메시지를 듣고,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그 말씀 붙잡고 나가야지, 세상에 가져다주는 온갖 쓰레기 같은 얘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리고 상처받는 일이 한 사람도 없게 되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3.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


말씀 붙잡고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만 장군은 어린 소녀의 말을 듣고 믿고 믿음을 가지고, 그 병을 고친 다음에 줄 선물까지 잔뜩 가지고 갑니다. 자기가 병을 고침 받을 것을 믿었기에 많은 선물을 준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참 재밌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방 사람인 나아만 장군은 믿음을 갖고 이스라엘로 가는데, 정작 이스라엘 왕은 믿음이 없었어요.

기 나라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하나님의 사람들이 병을 고칠 것을 믿어야 되는데 오히려 이스라엘 왕은 ‘이거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우리를 치러, 전쟁하러 온 것이다.’ 혼자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 보니까 옷을 찢고 난리가 났습니다. 

열왕기하 5장 6절, 7절입니다.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하나님이 병 고치시는 분인 거는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병 고치는 하나님이냐?” 옷을 찢어가면서 “이건 나한테 시비 걸고 나랑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다.” 왕이 신하들에게 그런 말을 하니깐 이 소문이 엘리사 선지자에게까지 들려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 사람을 내게로 보내소서.”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집에 나아만 장군이 도착을 하니깐 엘리사 선지자가 하인을 보내서 말을 전합니다. 

열왕기하 5장 10절에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집에 도착하면 이제 엘리사 선지자가 “장군님이 오셨습니까?” 하면서 자기를 맞아들이고 “여기 이 침대에 누우세요.” 그리고 거룩하게 자신의 환부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얼굴을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하인을 보내서 “저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세요.” 말하자 나아만 장군이 격분했습니다. 

열왕기하 5장 11절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같이 이렇게 큰 나라에 군대 장관, 이 높은 사람이 왔으면 나와서 장군님이 오셨습니까? 절을 하고 온갖 격식과 예식을 차려서 병을 고쳐주는 게 당연한데.’ 얼굴도 비치지 않고 웬 녀석이 나와서 ‘일곱 번 씻으세요.’ 그러니까 격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왕기하 5장 12절에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을 가로막는 것이 이 알량한 자존심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데. 여러분 우리의 일생의 적이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누군데 날 무시해?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해? 내가 누군데 날 이렇게 할 수가 있어?” 그것이 스스로를 문제 속에 가둬 놓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존심이 강해서 이 강한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교회 와서 시험에 드는 사람들은 100% ‘내가’가 앞선 사람들입니다. “내가 이 교회를 세울 때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고,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해서 데려왔는데 나를 무시해?. 나를 함부로 대해?.” 이렇게 되니까 스스로 시험에 들고 스스로 문제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 일하시지, 절대 교만한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바로 교만입니다. 내 자신입니다. 내 속에 ‘나만’이라고 하는 교만이 들어와, “내가! 내가! 내가!” 하니까 모든 문제가 내 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무시당했다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성질내고 속상해하지 말고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겸손히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이 훌륭한 부하들을 두었어요. 보통 그 정도 되면 아첨꾼들이 “장군이시어! 우리가 들어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버리이까?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대국의 군대 장관이 가는데 얼굴도 안 비치고… 붙잡아서 두들겨 팰까요?” 속 시원하게 그렇게 옆에서 더 충동했을 것입니다.

요즘 보면 권력자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권력자를 더 화나게 만듭니다. “때려잡읍시다!” 아니, 때려잡아서 문제가 해결될 때가 아니잖아요. 본인이 지금 나병, 한센병에 걸려서 병 고침을 받으러 찾아왔는데 격분해서 화를 내서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참 충성된 신하입니다. “장군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시면 되겠습니까? 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물에 가서 한번 씻으십시오.” 

열왕기하 5장 13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종들의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그 자존심을 내려놓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습니다. 

열왕기하 5장 14절에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할렐루야! 여기 마지막 고비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요단강에 가서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서 7번 들어갔다 나와야 되는데, 옷을 벗으면 그 갈라지고 피고름이 나고 썩어진 그 몸을 자기 부하들 앞에 다 보여줘야 됩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서 죽음을 앞둔 환자로서, 오직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의 모습으로서 물속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올 때 그가 병에서 놓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한 번 들어갔다 나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두 번 들어갔다 나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종들이 다 보고 있는데, 갈라지고 피고름이 나고 완전히 썩어가는 그 몸을 여섯 번이나 보여야 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들어갔다 나오니까 완전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일곱 번 죽어야 사람이 됩니다. 살아 있으니까 시험 들고, 섭섭하다 하고, 상처받았다 하고. 죽은 사람은 섭섭할 것도 없고, 상처받을 것도 없고, 시험에 들것도 없습니다.

 살아있으니까 섭섭하고, 살아있으니까 상처받고, 살아있으니까 분노하고, 살아있으니까 미워하고, 살아있으니까 다투고, 살아있으니까 그 삶 속에 문제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있으면 여러분은 한센병 환자들입니다. 영적인 한센병 환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피고름이 나오도록 썩어가는 그런 영혼을 갖고 있어요.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영적 한센병이 여러분의 영혼을 지금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그 병에서 자유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와서 평생 한센병 환자를 섬기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귀한 삶을 감당한 두 간호사님이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불쌍한 저들을 섬겨라.” 1966년부터 2005년까지 39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도왔던 간호사 폴란드인 마가렛과 독일인 마리안느의 이야기입니다.

마가렛 피사렉은 1935년 폴란드에서 기독교 가정, 신앙이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폴란드에 큰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가족들은 오스트리아로 이주를 합니다. 그녀는 ‘내 일생 바쳐 불쌍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을 위하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라고 결심합니다.

마리안느 슈퇴거는 1934년 오스트리아에서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이 가족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을 피해서 마을을 떠나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1947년 한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결심했습니다. ‘내가 이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

두 사람이 언제 만났느냐 하면 마가렛 아버지 병원에서 마가렛이 임시 직원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었을 때 마리안느가 간호사 일을 보조하기 위해 와서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서로 신앙심이 깊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던 그 모습이 둘의 공통점이었고, 저들은 한마음으로 주의 사랑을 실천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1952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에 같이 들어가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동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것도 몰랐는데, 저 지구 저쪽 편에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중에서 고통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자원하여 한국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당시 경상북도 왜관에 있는 한 선교사님이 편지를 보내서 간호사들의 지원을 요청했는데, 두 사람이 그 요청에 한국을 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지원했는데 마리안느는 체력에 좀 문제가 있어서 허락을 받지 못하고, 마가렛이 먼저 들어와서 1959년부터 경상북도 왜관과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에서 환자들을 돌봅니다.

마리안느는 그 후에 다시 소록도의 한센인 정착촌으로 자원해 들어와서 1962년 한국 땅을 밟습니다. 1966년부터 국립소록도병원의 간호사로 이 두 분이 같이 거기서 일하게 됐는데, 평생 자기가 알지도 못했던 아시아의 한 작은 나라, 한국에 있는 그 소록도라는 섬에 와서 평생 저들을 섬기다가 그들이 사명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6.25 후에 한국의 상황은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6.25 후에 우리나라 1인 국민 소득이 57달러예요. 지금은 3만 5천 불이니까, 얼마나 지금 우리가 복 받고 잘 사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제대로 병에 걸려도 약도 없고 의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 끝이라고 하는 한국 땅에 마가렛과 마리안느가 온 것입니다. 마가렛과 마리안느가 그곳에 온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왔을 때 대한민국은 정말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더욱이 한센병 환자들을 사람들이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지나가면 침을 벗고 돌을 던지고, 저들은 숨어 지내야 했고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문둥이라고 하면서 저들을 저주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정부에서 마련한 소록도로 하나둘 건너가서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소록도에 1962년도에 한센병 환자들이 약 6000명이 모여서 살게 됐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이곳에 와서 한센병 환자들 돌보면서,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면서 틈틈이 오스트리아에 의약품을 부탁해서 의약품이 오게 해서 그 의약품으로 저들을 치료하고 또 가족들에게 연락을 해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옷이나 담요 이런 것을 보내달라고 그래서 저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이들이 맨손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피고름을 짜내고 약을 발라주고 처참한 상태의 몸을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 한국 사람도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 저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찾아온 것입니다.

늘 한국 사람들조차 자기들을 보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혐오하고 돌을 던지고 가고 그래서 공포에 살던 저들이였는데, 이 두 간호사들의 사랑의 손길에 녹아들었습니다.

‘저들은 누구길래 우리 한국 사람들조차 고개를 돌리고 버린, 버림받은 우리를 와서 돌보고 있는가?’ 이 두 간호사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병원에 갔고, 밤 9시나 10시까지, 하루 16시간, 17시간을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가 되니까 이제는 본인들이 기력이 쇠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굉장히 어려움이 생겼어요. 둘이 의논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있다가는 오히려 한센병 환자들이 우리를 걱정하고 돌봐줘야 하니까, 우리가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2005년도에 이제 저들의 사명을 마치고 갑니다. 편지 한 장을 써놓고 조용히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 환자들을 돌보느라 노후 준비조차 하지 못한 그들은 오스트리아 정부 연금으로 생활하면서 틈틈이 주변 노인들을 돌보았고, 지난 2023년 9월 29일, 작년입니다. 마가렛 피사렉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는 죽으면서 자기 시신조차도 오스트리아 의과대학에 기부해서, 마지막까지 자기의 모든 걸 다 내놓고 헌신했습니다. 시체를 해부해서 의학 발전에 도움을 얻으라고 시신을 기증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건복지부와 대한간호협회에서 감사패를, 국민훈장, 모란장, 국민포장 등을 수여했는데, 이들은 이 상 받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실천한 것인데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특별한 게 없었고, 일하는 동안 기쁘게 우리는 감사를 다 받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봉사의 삶을 산 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은 처음의 마음 그대로 평생을 살아온 게 우리의 기쁨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은 섬김입니다. 여러분, 이 두 간호사의 아름다운 섬김이 소록도를 지상의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두 분을 통해서 소록도에 있는 한센병 환자가 모두가 다 예수를 믿게 되었고, 지금도 찬송을 부르면서 이 두 간호사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들은 눈물 없이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얘기를 합니다.

 한국 사람조차 고개 돌리고 버린 저들을 이역만리 먼 곳에서 와서 평생 사랑으로 섬겼던 저들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요, 그것이 바로 섬김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 가는데 어떤 삶을 사실 것입니까? 어떤 흔적을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실 것입니까? 우리 주님 앞에 부름 받을 그때에 주님 앞에서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 539장을 부르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찬송가 539장 (통 483):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1절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후렴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2절  주 예수의 은혜를 입어 네 슬픔이 없어지리
네 이웃을 늘 사랑하여 너 받은 것 거저주라

3절  주 예수를 친구로 삼아 늘 네 옆에 모시어라
그 영원한 생명 샘물에 네 마른 목 축이어라

4절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이 앞에 참 밝은 빛 비추어라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짧은 인생길 지나갈 때 절망에 갇혀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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