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2023.12.24 / 빌립보서 2장 5~8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5~8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 말씀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가 매년 12월 말이 되면 25일에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성탄절을 그저 연례행사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셔드리고, 우리 마음에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복된 성탄절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진정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1. 겸손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

2000년 전 이 세상에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은 겸손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낮아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7절은 설명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고 초라한 마구간에 태어나셔서 말구유 위에 누이셨습니다. 스스로 낮고 천한 자리에 임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은 말씀합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처럼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또 찬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그런 아기를 위한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시고 마구간에서 바람이 싱싱 새어 들어오고 냄새가 나는 그 누추한 곳에 주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낮아지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짐, 섬김, 희생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온 백성의 환호성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예수님 오시기 전 500년 전에 활동하던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것 같이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들처럼 앞뒤로 호위 군사를 세우고 말을 타고 그렇게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7절에 보니까.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겸손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잠언 18장 12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2.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겸손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한 평생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빌립보서 2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몸을 입고 한평생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 사람이 돌보지 않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된 자들, 병들고 상처 입은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침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인 것을 제자들에게 물어보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와 같이 답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5절에.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인생들을 사랑하고 섬기셨습니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한센병, 나병 환자들에게 사랑의 손을 펴셨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한센병 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맨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가르침은 섬김을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과 6절은 설명합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그리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 15절.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스승으로 만왕의 왕으로 존경받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메시아로 오셨는데, 마지막 가르침은 당시 하인들이 하는, 하인들이 주인이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발에 묻은 먼지를 대야를 가져다 발을 씻어드리는 것으로 주인을 맞이하는데, 그 모습으로 제자들을 섬기시고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지도자가 되려면 섬김의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면 그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오래전에 제가 제주도에서 행사가 있어 내려갔는데 김포공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 꼭 신분증하고 탑승권을 조사하게 되어 있는데 국회의원 배지를 단 분이 수행원하고 섰다가 “신분증 주세요.” 하니깐, “너 나 누군지 몰라? 이 배지 안 보여?” 그러니깐 그 보안요원이 “그래도 신분증을 보여주셔야 탑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 이름 뭐야.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소리를 막 지릅니다.

 근데 여기 보안요원은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으시면 비행기 탈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안 태워주니까 지갑 꺼내서 “봤지?” 하고. 보안요원은 “아닙니다. 신분증 꺼내주세요.” 하니까 국회의원은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라고 하고. 옆에 수행원이 “아 의원님, 그냥 빨리 보여주세요.” 그러자 그제서야 보여주고 비행기를 탈 때, 모든 승객은 뒤에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나. 내가 이름은 안 밝히겠습니다.

저는 그때 놀랬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보안요원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이 배지 안 보여? 너 내가 누군지 몰라?” 그러나 보안요원이 “그래도 비행기를 타시려면 신분증을 보여주셔야 됩니다.” 하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면서 두고 보자고 이름 적어놓으라고. 참 어떻게 저런 분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됐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국회의원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알게 모르게 그런 모습이 있지 않는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힘없는 종업원을 야단친 적이 없습니까? 그걸 세상 말로 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상. 

추운 겨울에 무거운 상자를 옮기며 힘들게 일하는 택배기사를 야단친 적이 없습니까? 환경미화원, 아파트 경비원, 내 회사 직원들을 종 부리듯이 부리면서 함부로 대한 적이 없습니까? 혹시 교회 오면서 교회 경비원들에게, 안내하는 집사님들에게, 교회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함부로 대한 적은 없습니까?

 만에 하나 이와 같은 모습이 있었다면 우리 자신을 철저히 반성해야 됩니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섬김의 본을 보여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고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2장 8절 보니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 고난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은 마지막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 39절입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히브리서는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통곡과 눈물의 기도였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 9절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고집이 세고 교만해서 내 뜻과 다르면 하나님 뜻도 무시하고 요나처럼 자기 길을 갑니다. 여러분, 순종이 축복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깨어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한국 교회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큰 감동을 전해준 한 분의 장로님과 목사님을 소개하기 원합니다.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이십니다.

전라도 지역에서 선교하던 최의덕 선교사님이 김제 지역의 거부 조덕삼을 만나 전도를 했습니다. 이분이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열심히 한국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 믿게 되었고 자기 집에서 머슴살이하던 이자익을 전도해서 “너도 같이 예수 믿자.” 그래서 함께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자익은 본래 경남 남해 섬에서 고아로 생활하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육지로 나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배 선장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를 제발 육지까지 좀 태워주셔서 육지에 가서 먹을 것을 얻어먹고 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배의 선장이 그를 태워서 육지로 내려주니깐 계속 길을 걸어가면서 주막에 다다르면 그곳의 잔심부름 하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걸어서 전라북도 남원까지 왔고 여러 집을 돌다가 전주를 지나서 김제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라도는 인심이 아주 좋아서 나그네들을 잘 받아주었습니다. 그래서 밥 먹여줄 곳을 찾다가, 1897년 17살 나이로 이 조덕삼 집에 와서 “선생님, 저 밥 좀 먹여주세요.”라고 하자, 조덕삼이 “그래, 우리 집에서 머슴일을 하면서 나를 좀 도와라.”라고 해서 이 조덕삼의 머슴이 됩니다. 

이 조덕삼, 이분은 마음이 아주 좋은 분이었는데 머슴살이하던 이자익을 잘 돌봐주고 좋은 처녀를 연결해 주어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신앙생활도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이 조덕삼, 이자익 두 사람이 1905년 함께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님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영수가 됩니다. 영수는 지금은 우리나라 장로교에 없는 제도인데 그냥 요즘 안수집사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년 후에 교회 장로를 뽑게 됐습니다. 조덕삼은 당시 그의 주인이고 41살이었으며, 그 집 머슴 이자익은 26살로 15살 연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교회에 두 분 다 장로 후보로 나가게 됐습니다.

 조덕삼은 김제 최고의 갑부였고 교회를 지을 땅을 다 헌물해서 교회를 짓는데 크게 공헌했고 교회 재정 대부분을 다 담당하고 있었고, 더욱이 이 조덕삼은 그 근처에 사는 많은 사람을 다 소작농으로 두고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급여를 줬기 때문에 당연히 이 조덕삼이 장로님이 될 줄 알았습니다. 15살 더 많았고 이자익은 경상도 섬 출신의 외지인이였습니다. 

근데 투표 결과가 의외였습니다. 아마 이자익이 머슴으로 교회에서 열심히 일을 했던 모양이에요. 표가 더 많이 나왔어요. 장로가 된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신분을 뛰어넘고 지역 차별을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당황해서 술렁거렸습니다.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때 조덕삼 영수가 일어나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우리 금산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닙니다. 진짜로 이 조덕삼 이 주인은 죽을 때까지 자기 집에 있던 머슴을 교회에서 장로로 잘 섬겼습니다. 조덕삼은 예수님을 닮은 정말 겸손의 종이었습니다.

당시 신분 차별이 있었습니다. 양반 상놈 차이가 있었고, 주인 머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머슴은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그냥 소모품과 같은 존재였는데 주인이 머슴을 섬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2년 후에 이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됩니다. 그런데 이자익 장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양신학교에 공부하러 가니깐 그가 신학교에 갔을 때 모든 학비, 생활비를 다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자익 목사님이 평양신학교 8회 졸업생으로 졸업을 하는데요. 저희 외할아버님도 평양신학교 8회 졸업생이신데 동창생이시더라고요. 보니까.

그리고 조덕삼 장로는 그 이자익 목사님을 본인이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다시 청빙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이자익 목사님을 평생 장로로서 목사님을 잘 섬겼어요. 대단한 분이에요. 

이자익 목사님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는 교회사의 입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고, 조덕삼 장로님의 가정은 지금도 3대째 금산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모든 자손들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조덕삼 장로의 손자가 3선 국회의원이고 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장로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저는 이 예화를 준비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섬김의 모습으로 산다면 얼마나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여러분 모두가 이 귀한 섬김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 섬김의 삶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주님 앞에서 내가 내 뜻대로 살았던 나의 고집, 교만, 불순종을 회개합니다. 내가 좀 가졌다고 갖지 못한 자들을 무시하던 것 회개합니다. 내가 좀 배웠다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 것 회개합니다.

 내가 직장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고 아랫사람들 무시한 것 회개합니다. 교회에서 내가 오래되고 직분자가 되었다고 처음 믿은 사람 무시했던 것 회개합니다. 교회 섬기는 분들을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직원 부리듯이 야단친 것 회개합니다.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한평생 그렇게 사셨는데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섬기는 분들을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가 받들어 줘야되는 것입니다. 눈 오고 비 오는데 남여선교회가 그저 새벽부터 나와서 하루 종일 봉사하는데 집에 들어갈 때는 여기저기서 야단을 맞아가지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기운이 다 빠져 돌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교회 봉사자들이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가 한마음 되어야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이 강물처럼 흘러 넘쳐나게 될 때 은혜가 풍성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 겸손, 섬김, 낮아짐을 본받아서 한국교회 역사에 길이 남는 조덕삼 장로님같이 존경받고 칭찬받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278장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278장 (통 336):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1절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주 은혜를 잊었네

후렴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함께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2절  죄악에 죽을 인생을 심히 불쌍히 여기사
저 하늘의 영광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네

3절  홍포를 입은 구주는 가시 면류관 쓰시고
저 십자가 높이 달리사 그 아픔을 참았네 

4절  미련한 우리 인생은 주의 공로를 모르고
그 쓸쓸한 사막 가운데 늘 헤매고 다녔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임하셔서 모든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희생하셨는데 우리는 늘 대접받으려고만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고 높은 자리에 가려고만 했던 우리들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본받아 앞으로 우리의 남은 삶이 진정으로 섬김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