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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2021.12.19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이사야 11장 1~5절)

귀한 찬양 감사드립니다. 헨델의 메시아 중에서 “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우리 함께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TV 생중계를 통하여서 전국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또 위성 중계를 통해서 650여 교회와 136개 기도처와 13개 지성전과 또 부속 성전에서 OTT로 인터넷으로 유튜브로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설교말씀>

오늘 이사야 11장 1절로 5절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큰 기적이고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예수님 탄생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께서 다윗의 반열을 통해서 오실 것을 예언합니다. 오늘 이사야 11장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다윗 왕의 아버지인 이새를 언급하면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결실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어떤 분으로 오셨습니까?


1.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분

이사야는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분으로 오셨다고 설명합니다. 11장 2절입니다.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은 다윗 왕의 계보에서 오셨지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어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은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기독교 신앙의 신비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남자로 잉태되어 여자의 몸을 빌려 태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뱀에게 들어가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꼬여 선악과를 먹게 하고 타락시켰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벌을 내리시는데 뱀에게 벌을 내리시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보니까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밟을 것이다.”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밟을 것을 예언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성령님과 함께하신 일생입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고 침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시고 공생애 사역 내내 성령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또 광야에 나가 시험을 받으십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3년 반 공생애 사역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십자가에 달리신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하는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성령께서 저희들에게 오셔서 주님의 일을 계승할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5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우리 예수님 믿고 나서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자꾸 넘어지고 상처받고 실수하고 문제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은 성령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우리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중구 회현동에 성도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교회는 성도 4분의 1이 다 대학생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대학부가 부흥하는가?” 그래서 제가 여의도교회 대학생 회장이었기 때문에 그 교회의 부흥이, 대학생회가 부흥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알아보러 갔습니다. 몇 주 가서 거기 있는 여러 분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그 대학부를 지도하는 목사님이 이름이 좀 독특하시더라고요. ‘옥한흠’이라는 목사님이신데 나중에 사랑의교회 창립하시고 큰 사역을 하시고 천국 가셨는데 옥한흠 목사님이 대학부 지도 교사로 있으니까 그 가르침 때문에 대학생들이 몰려왔습니다.

근데 대학부 회장을 지나고 청년부 회장을 하고 있는 박성수라고 하는 분을 제가 가서 만났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합니다. “이 회장님, 제가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제자훈련을 하고 성경 공부를 많이 하는데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회복되는 데에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근데 순복음교회 청년들을 보니까 넘어지면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을 받느냐 못 받느냐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분이 나중에 미국 갔다오니까 이랜드그룹 회장이 되셨더라고요. 성령충만받아야 됩니다. 어떤 문제에도 우리가 넉넉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도 성령충만, 둘째도 성령충만, 마지막도 성령충만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함 받으신 분이었고 둘째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셨습니다. 성경 이사야 11장 4절, 5절은 말씀합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공의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은 인간이 불공평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모두가 동등하게 존중함을 받는 것입니다. 뭐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어떤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그래서 신분에 따라서 사람이 차별당하거나 불의를 당하는 것 그런 것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알게 모르게 가진 사람들은 교만해서 없는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공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공의는 공평과 정의가 합쳐진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정의가 실행되는 것이 바로 공의인 것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의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소외되고 병들고 헐벗고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깨질 대로 깨어져서 마음이 낮아진 사람들 그 사람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품으시고 당시 권력자들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주의를 갖고 사람들을 무시하고 교만해서 아무에게나 함부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오래전에 시골에서 개척교회를 가셨던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본인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내려가 조그마한 교회를 개척했는데 사람도 모이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매달 서울에 있는 큰 교회에서 생활지원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서 그 큰 교회에 가서 교회에서 주는 지원비를 받아오는데 어느 날 연락이 오기를 “마지막 주일날 오후에 좀 들르라”고 해서 갔더니 주일 저녁 예배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 참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오는데 그 재정 장로님이 재정 맡은 장로님이 문 앞에서 성도들을 막 반갑게 인사하면서 맞이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막 정중하게 90도 절하면서 오셨냐고 인사하고 맞이하는 데 본인이 그분에게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하니까 이렇게 쳐다보더니 “왔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시골에 개척교회 전도사고 보잘것없고 초라하지만 저분의 앞에 비친 나의 모습은 ‘너 또 돈 얻으러 왔어?’ 구걸하는 사람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그날 이후로 그 교회에 발을 끊고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주님만 바라보았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부흥을 허락해주셨다고 하는 간증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힘없는 사람 개척교회 하는 교역자님들 우리 교회에서 가장 힘들게 사는 분들을 그분들 또 잘 섬겨야되겠다.” 결심에 결심에 결심을 했습니다.

요번에 코로나 19가 2년째 계속되어서 더군다나 뭐 오미크론인지 뭔지 듣도 보지도 못한게 나와가지고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너무 고통당한 분이 많아서 제가 당회 장로님들과 의논을 해서 우리 교회에서 통 큰 결단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고통을 받는 영세 소상인들에게 다 100만 원씩 지원을 하고 그 다음에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는 50만 원씩 지원을 하고 아이를 둘 낳는 가정은 50만 원, 셋 낳은 가정은 무조건 100만 원, 묻지 말고 다 주자.

내일 서울역 쪽방촌에 가는데 쪽방촌에 한 평 반짜리 단칸방에 사는 참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들이 약 800세대가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말고 모든 한 가정당 한 세대당 50만 원씩. 그래서 지원하자. 그래서 100억을 내놓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섬겨야됩니다. 사랑으로 섬겨야됩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공의라는 건 뭐냐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예우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이 그것이 공의입니다. 이 공의는 사랑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4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심판의 때에 고난당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로 36절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40절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가 귀한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공의가 임할 때 이 땅이 평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32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3.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성경은 셋째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실 나라에 대해서 그 성경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11장 6절로 8절에.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것이 주님이 다스리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아간 우리의 인생의 역사는 분쟁 다툼 끝없이 죽이고 죽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탐욕이 이렇게 인류 역사를 죄와 절망, 전쟁과 피해 고통의 사회로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말하기를.

“인류는 역사의 93% 전쟁을 해 왔고 7% 기간만이 평화였다. 그런데 그 평화의 기간도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윌리암 듀란트, 미국의 역사학자가 말합니다.

“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88년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전쟁이 계속되고 또 계속되고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전쟁을 종식 시키고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하늘에서 찬송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우리 모두가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손에 손에 든 미움과 분노 비판의 돌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우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서로 물고 뜯고 끌어내리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평화의 손에 손을 잡고 우리가 사랑의 발걸음을 옮겨 나갈 때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이 세상에 모든 절망이 사라지고 기쁨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용서와 사랑 평화의 물결이 차고 넘쳐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유명한 노벨상 문학작가요 퓰리처상을 받은 펄 벅 여사가 있습니다. 펄 벅 여사가 쓴 “대지”는 누구나 다 자라고 있는 유명한 소설입니다. 근데 이분은 보니까 어릴 때 중국에서 자랐습니다. 아버님이 중국에서 선교를 했기 때문에 선교사의 자녀로 중국에서 자랐고 그래서 아시아에 대한 굉장한 관심이 있었고 또 고아를 입양하는 데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해서 자기 딸로 키웠습니다. 그 딸이 요번에 책이 6월 달에 나왔는데 『개천에 핀 장미』라고 하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줄리 헤닝입니다.

6.25 전쟁 당시에 미군 장교와 엄마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전쟁 끝나니까 미군 장교가 어머니와 자기를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고 난 후에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나는데 이름이 그냥 순이입니다. 순이. 성도 없고 그냥 “순이야. 순이야.” 이렇게 불렀는데 애가 학교를 가야하니까 어머니가 그 동네 성당에 구씨 성을 가진 사제에게 부탁해서 이름만 올려서 학교라도 다니게 해달라고 그래서 구씨 성을 가진 신부님이 이름을 빌려줘서 구순이가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학교를 다녔는데 그 어머니가 쪽방촌에 살면서 너무너무 힘들어가지고 이 아이를 펄 벅 재단에 고아원에 맡겨놓고 본인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펄 벅 여사가 순이를 양녀로 삼아 두 번째 어머니가 되어 미국으로 데려가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펄 벅 여사가 폐암으로 죽게 되니까 이 딸을 다시 프라이스 부부에게 입양을 합니다. 세 번째 부모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프라이스 부부를 통해서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와서 희생하셨는가? 나같이 보잘것없고 버림받은 인생을 위해서 왜 이런 희생을 하셨나?’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보는 순간 마음에 큰 감동이 왔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거기서 그녀가 고꾸라졌습니다.

나와 같이 아무 쓸모없는 혼혈의 아메라시안,

그 아시아계 미국인을 말하는데,

아메라시안을 위한 구세주가 있을 수 있을까?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남은 여생 내가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고백하고 그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돼가지고 25년 동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가운데 학교에서 좋은 동료 교사를 만나서 같이 결혼을 했습니다.

근데 그 결혼한 남편이 나중에 목사가 되었어요. 더그 헤닝. 이분과 함께 지금까지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혼혈아라고 사생아라고 조롱했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보호하셔서 이 줄리 헤닝처럼 상처 입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다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귀한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문화 가정의 삶과 인권에 대해서 1981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와 사회기관, 대학에서 연설하고 워싱턴 D.C. 의회에 나가 청문회에서 또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뉴욕 카네기 홀에서도 연설했던 그 큰 주님의 일꾼이요 주님의 종으로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도 하나님은 나를 향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셨다. 그분은 내가 새롭게 만들어진 그리고 남들에게 핍박받을 인종으로 태어나는 걸 허용하셨다. 수많은 혼혈 아메라시안들이 낙태를 당할 때 그분은 나를 보호해주셨다. 조롱의 대상이던 그 많은 세월을 통하여 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하던 애정 어린 엄마를 그분은 예비해 두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각각의 고귀한 생명을 최고 걸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할렐루야! 그녀는 미군 장교에게서 버려진 혼혈아요 사생아요 그로인해 고아원에 버려진 고아였지만 예수님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녀를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로 바꿔놓으시고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여러분의 운명이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 성령의 사람으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일꾼으로 평화의 사도로 쓰임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왕으로 오시기만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한평생 여러분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의 왕으로 오시옵소서. 찬송가 38장 함께 찬양하면서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찬송가 38장(새38) : 예수 우리 왕이여>

1절)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왕께 드리는 영광을 받아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백성 주님은 우리 왕이라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2절) 예수 우리 주시여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주께 드리는 찬양을 받아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종들 주님은 우리 주시라

주 되신 예수님 오셔서 이 찬양을 받아주소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한평생 주님 안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보잘것없고 쓸모없고 비참한 모습의 과거를 가진 모습이었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붙잡히기만 하면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 받도록 주님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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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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