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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사람
2021.05.02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8장 1절~6절)


주님을 바라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행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우린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영상을 통해서 함께 예배드리는 곳을 잠시 소개합니다. 부속 성전과 영광대학, 강남, 강동, 강서, 경인, 광명, 남구로, 남대문, 동대문, 동작, 새성북, 서대문, 양서, 여의도 직할, 용산, 은평, 기도원, 지성전 및 독립 지교회 강릉, 검단, 광주, 광탄, 금산, 금옥, 대구중앙, 동탄, 마석, 목포, 부산, 사랑과 은혜, 새평양, 서귀포, 솔향, 스마트 시화, 신안산, 용인, 이천, 청주, 춘천, 큰기적, 평안, 포항, 화성, 샘물, 횡성, 독립 지교회와 소화교회, 각 해외 선교지 교회, 각 기도처, cts, cbs, goodtv 생중계를 통해 예배드리는 분들, c채널, cgn, cbs 라디오방송, 극동방송, ott 그 밖의 인터넷과 모바일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말씀>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서 마태복음 18장 1절로 6절 말씀을 가지고 “천국에서 큰 사람”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한 번 제목을 따라 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 “천국에서 큰 사람” “천국에서 큰 사람” “천국에서 큰 사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은 단순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되는 것. 그래서 언제나 그 삶의 중심에 내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내가 하는 일이 잘 되고 또 내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무리하게 노력하다 보니까 나 때문에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2000년 전에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어땠을까?

1. 제자들의 관심

오늘 말씀을 통해서 먼저 제자들의 관심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관심이 우리와 관심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통해서 그렇게 말씀을 듣고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까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그 옆에 높은 자리에 앉느냐 우리 조선시대로 말하면 우의정, 좌의정 자리에 누가 앉느냐 이런 관심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 세상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목표로 두고 살아가다 보니까 많은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목표가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를 못합니다. 실망과 좌절을 가져올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한국의 역사만 봐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분들이 다 그 마무리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픈 현실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한 더 거룩하고 높은 목표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순서가 바로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는데, 순서가 바뀌어서 세상 것을 따라가다 보면 이 세상 것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얻었다 하여도 금방 잃어버리고 더 큰 실패와 절망과 좌절에 빠지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다가 없어질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우리에게 예비된 상급을 바라보고 위의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목표를 두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목표는 자꾸 바뀝니다. 자꾸 바뀌어요. 그러니까 바뀌는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는 지위가 높아지고 또 대접을 받고 칭찬받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리는 자신이 낮아지는 자리이고, 자신이 나타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감추어지고, 섬기고, 희생하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사는 그러한 자리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결국, 그걸 통해서 우리 주님이 나타나는 자리가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리입니다. 먼저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리는 바뀝니다. 영원한 자리가 없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년 가는 권세가 없다 그랬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원한 데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데 목표를 두고 살면 우리 삶이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의 흔적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흔적들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 것에 목표를 두지 말고, 하늘나라에 목표를 두고 하나님 영광 위해서 힘써 살아감으로 이 땅에 선한 영향력을 널리 펼치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절, 3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느냐 그걸 가지고 서로 다투고 갑론을박하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교훈하시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그들 앞에 세우셨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우리 옛날 한국 사회와 똑같이 어린아이와 여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여김을 받는 그런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내가 자라면서,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서 가장 우리에게 많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죄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죄. 하루를 더 살면 그만큼 죄를 더 짓게 된다. 그런 말입니다. 어린아이는 그만큼 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습니다. 높은 지위나 권력을 탐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 높은 지위를 탐하는 그러한 제자들 앞에 어린 아이를 세우시고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돌이킨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삶이 변합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입니다. 회개는 뉘우침과 다릅니다. 뉘우침은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또 잘못을 하고, 또 잘못을 하고, 또 잘못을 하는 것이 뉘우침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활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돌이켜야 합니다. 죄의 길로 가던 그 발걸음을 돌이켜, 예수 믿고 영접하여 새 삶의 삶을 살고 새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려면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사람들이 어릴 때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순수함을 상실해버립니다. 서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시기, 질투하고, 남을 모함해서 막 끌어내리고, 서로 짓밟고, 다투기도 합니다. 요즘 SNS가 얼마나 그러한 인간의 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지, 그냥 아니면 말고 막 흠집 내서 사람을 막 끌어내립니다.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보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인간 중심의 삶은 결국 파멸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 이 정치 지도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과 온유로 옷 입은 분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뭐 여당, 야당에서 대표를 뽑느라고 하면서 하는 일을 볼 때, 자꾸 상대편에 흠집 내는 것을 통해서, 그것으로 본인이 뭔가 득을 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남을 흠집 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패입니다. 잠깐 잘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사람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겸손히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처음 예수님 믿었을 때 은혜 받을 때 막 눈물 콧물 흘리면서 그냥 찬양을 불러도 기쁘고 설교 들을 때 너무 감격하고 기도할 때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근데 알게 모르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 마음에 감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쁨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2주 후에 창립 63주년을 맞이하는데, 불광동 서대문 시절 때 교회를 다닌 분들 많이 지금 안 계시지만, 그분들은 다 압니다. 얼마나 모든 예배 시간이 감격이었고 감동이었고 눈물이었고 한 예배도 그냥 건너뛴 적이 없습니다. 큰 감동 속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삶 속에 살면서 등 따습고 배불러지니까 감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순수한 열정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헌신의 모습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섬기는 자의 직분의 자리를 두고 서로 자리다툼하고, 시기하고, 화를 내고, 모함하고, 소리를 지르고, 그렇게 아픈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니까 쉽게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스스로 의로워져서 남의 잘못만 들추어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그러한 모습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됩니다. 주님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서 처음 예수님 믿었을 때, 은혜 받았을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모든 잘못된 것을 다 청산해야 됩니다. 탐욕과 교만과 이기주의와 모든 죄의 모습을 다 내던져버리고,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고, 주의 말씀으로 재무장해서, 변화되어서, 새로워진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을 어린 아이같이 변화시켜 주셔서 순수한 마음 되게 하여 주옵시고, 겸손하게 되게 하여 주옵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져서 그러한 신앙의 열정을 갖고 주님을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천국에서 큰 사람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천국에서 큰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4절입니다. 이 18장 4절을 우리 다 같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할렐루야!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이, 겸손한 사람들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35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큰 자가 되려면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27절에 같은 내용의 말씀을 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섬기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히 섬기며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게 되고 사람들이 존경하게 됩니다.

요즘 많은 지도자가 있는데, 존경받는 지도자를 찾기 힘들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나라 한국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을 때는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존경받는 지도자가 많았는데, 그런 기독교인들이 많았는데, 요즘 참 찾기가 힘든 사회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가장 큰 자셨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근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가장 낮아지신 것입니다. 낮아지실 뿐 아니라, 가장 멸시 천대를 받는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신 채, 벌거벗긴 채, 돌아가셨습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주님이 섬기시고 희생하실 때,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앞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면 주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높아진다고 몸부림치면, 오히려 우리에게는 실패와 좌절이 다가올 것이고, 우리가 낮아져서 섬기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뿌리가 교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 본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교만해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우리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철저히 이 교만과 싸워야 됩니다. 이 나는 교만 덩어리입니다. 교만 덩어리에요. 내 자신이 교만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 교만을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져서 겸손함으로 서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교만하니까 함부로 말하고, 교만하니까 함부로 죄짓고, 교만하니까 방자히 행동을 하고, 교만하니까 문제를 일으키고, 교만하니까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을 상처를 준 적이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남에게 기쁨을 주고, 평안을 주고, 사랑을 주고, 위로를 주고, 용서를 주고,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하는 그런 은혜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그 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무시하고, 짓밟고, 함부로 대하고, 그래서 이 사회에 교만한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많고, 교회에 문제가 생겨나는 모든 원인은 교만한 사람들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낮아져야 합니다. 먼저 믿은 사람부터, 직분 가진 사람부터, 여기 서서 말씀을 전하는 저부터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삶에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주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내가 낮아지면 주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다. 나를 대우해라.” 그러면 오히려 많은 갈등과 문제만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모세가 원래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내가”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했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왕자의 신분으로써 내가 이렇게 많은 교육도 받고 내가 이와 같은 왕위 계승자로써 고난을 받고 있으니, 내 힘으로 구원해보겠다. 그래서 저가 나가서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핍박하니까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살인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교만해서 자기가 애굽 사람 하나를 죽여도 누구 하나 나에게 말 못 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그는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어서 아무도 거하지 않는 광야에서 외롭게 40년 동안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깨어진 것입니다.

80세가 되어서 모든 인생의 꿈과 소망이 다 사라지고, 머리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나는 못 합니다. 그때 주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우리를 부르십니까? “나는 못 합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깨어지고 낮아진 모세를 80세에 부르셔서 120세가 되도록 그에게 건강을 주시고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끌어서 가나안 입구까지 다다르게 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택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겸손과 온유를 옷 입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 자랑하고, 높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통하여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화시키고, 감동시키고, 주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9년 3월 10일 인천 수정교회에서 김안식, 장말희 선교사님이 은퇴하는 은퇴 예배를 드립니다. 이분들은 2012년 스크랜턴 선교대상을 받은 선교사님들인데, 19년 동안 네팔의 가장 오지인 도티라는 곳에서 의료선교를 펼친 의사 부부, 선교사 부부입니다. 그런데 2012년도에 스크랜턴 선교대상을 받았는데, 너무나 이분들의 얘기가 감동적이어서 “KBS 한민족리포트”에도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의과대학 동창생인, 동기생인 이 선교사 부부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 때 약속을 합니다. ‘우리 처음 25년은 우리 가정과 환자를 위해서 살고, 나머지 25년은 우리 주위에 소외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살자’ 그래서 본인들이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이제 결혼하고 병원을 열었는데, 25년 후에는 한국의 무의촌, 의사들이 없는 곳에 가서 저들을 섬기겠다고 생각을 하고 주말에 병원 5층에 가정사역원과 의료센터를 마련해서 불우한 이웃과 외국인노동자를 돌봅니다.

근데 그의 삶에 터닝 포인트, 전환점이 다가온 것은 1997년에 네팔 외국인 노동자가 와서 치료를 받으면서 ‘네팔에 가면 너무나 불쌍한 우리 고향 친구들 사람들이 많은데, 가서 좀 저들을 돌봐달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그 기간을 이용해서 3년 동안 네팔 선교를 다녀오는데, 정말 얼마나 네팔이 힘들고 연약한 환경으로 살아가는지.

현재, 제가 어제 자료를 찾아보니까요. 네팔의 GNP가 1,085불이에요. 1,085불. 그러니까 우리가 31,000불이니까 얼마나 못 사는지 알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6.25 직후의 GNP가 57달러였는데, 이 나라는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 1964년에도 46달러였어요. 1년 동안 GNP가 46불이니까 얼마나 못 사는 나라입니까. 그런데 인구가 그 당시 2400만, 지금 2800만인데, 모두가 다 이 가난 속에서 굶주림 속에서 질병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50세가 되던 해에 개인병원을 다 접고, 부부가 네팔로 가는데, “도티”라고 하는 곳으로 갑니다. 도티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900km나 떨어진 곳인데, 버스로 30시간 가야 돼요. 30시간. 그리고 분지이면서 오지 중에 오지인데 매일 평균 기온이 45℃입니다. 45℃. 우리가 30℃가 넘어도 덥다고 헉헉거리는데, 매일 45℃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근데 그 지역에 의사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들이 가니까 그들이 유일한 의사 부부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과 싸우느라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어서 이빨이 다 빠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병원을 세우고 인근 지역 5군데에 보건소를 세워서 순회하면서 밀려 들어오는 환자를 치료합니다. 손가락이 다 곪아 터져 썩어가는데도 의사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을 치료해 주고,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평생 한 번도 병원에 가보지도 못한 분들 가서 진료해 주고, 의사가 이들 부부밖에 없었기 때문에 소아과부터 산부인과까지 모든 분야를 다 진료했는데, 그들이 은퇴할 때까지 이 귀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또 거기 학교를 세워 가지고, 기숙사를 겸한 학교를 세워서 유아원부터 12학년까지 약 900명의 학생을 돌보았습니다. 변함없는 이들의 헌신이 한국에 와서 그와 같은 사역을 했던 스크랜턴 선교사의 모습과 똑같다 해서 스크랜턴 선교대상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스크랜턴 선교사님. 조선 땅에 병든 사람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듣고 1885년 한국에 와서 병든 자들을 돌보고 학교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스크랜턴 선교사의 3대 신앙의 정신은

“소외된 자를 돌보고,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헌신하며,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연합이었다”

130년 전에 교단, 교파 나누지 말고 하나가 되어서 사랑으로 섬기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 130여 년 전에 했던 그 얘기를 귀 기울여야 됩니다. 우리가 지금 소외된 자를 돌보고 있는지, 정말 그들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다 바쳐 헌신하는 그러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이렇게 교파가 나눠지고, 지역감정으로 나누고, 나누고 나누고, 이 나눈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초월해서 한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모든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지역감정을 허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예수님 안에서 그 장벽을 허물어야 됩니다.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장벽을 허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권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갖지 못한 사람이나 주님 안에서 다 똑같이 존경받는 인격자인 것을 잊지 말고 주의 사랑으로 저들을 섬겨서, 십자가의 길을 가서 하나님 앞에 큰 복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61장(통519)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리석어서 늘 세상적으로, 세상적인 것에 목표를 두고 나 자신만 잘 되기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주시고,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 위해서 가장 낮아진 모습으로 상처입은 사람,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당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 또 우리 이웃들, 문제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는 그 사회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서 나가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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