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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얍복 나루에서
2021.01.24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창세기 32장 22절~25절)


할렐루야.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렇게 헨델의 할렐루야를 줌으로 해서 합창을 했는데 오늘 나사렛 성가대가 귀한 찬양을 줌으로 함께한 것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다시 한번요. 정말 마음을 믿음으로 합해서,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성은 믿음의 고백이 그 클라이맥스입니다.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고백이 긍정적인 삶을 만듭니다. 올해로 102세가 되신 김형석 교수님하고 1시간 30분 말씀을 나눠보니까 그 내용이 우리 조용기 목사님 말씀하고 똑같아요.

긍정적인 고백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젊게 한다. 할렐루야. 날마다 긍정적인 고백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지금 1년째 왔는데 주님 속히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되어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예배가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구정 지나서 20%, 한 5월쯤 지나서 50%,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100% 함께 모여서 우리가 예배드릴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내외분을 위해서 매일 기도할 때마다 빠짐없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 충만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우리 조용기 원로목사님 내외분에게 건강이 임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 받기 위해서 주여 삼창하고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82장(통43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며 또 많은 성도는 비대면으로, 온라인으로, 또 각기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성령으로 운행하여 주옵소서. 그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곳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치료와 회복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내외분에게 건강과 회복의 축복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복음성가 :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설교말씀>

오늘은 창세기 32장 22절~25절 말씀 가지고 “절망의 얍복 나루에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큰소리로 한 번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얍복 나루에서” “절망의 얍복 나루에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한, 두 번,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기회를 잘 포착해서 하나님 앞에 위대하게 쓰임 받는 인물로 변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불리는 야곱은 아주 교활하고 탐욕이 많고 이기주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야곱이라는 이름이 원래 태어날 때 그 형, 에서의 뒤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에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그런 뜻이 있는데, ‘약탈자다, 속이는 자다, 훼방하는 자다’ 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교활하기도 하고 이기주의적이기도 했지만, 영적인 축복을 받는데는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근면하게 열심히 일하고 성취욕이 강한 그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받을 장자권의 축복을 아버지를 속이고 대신 받은 다음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연단 과정을 겪으면서 영적으로 그가 성숙하게 되고 그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그의 삶이 사기꾼, 이 약탈자에서 하나님이 주도하고 다스린다는 이스라엘로 바뀌게 된 이 놀라운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

먼저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눕니다. 야곱이 장자권의 축복을 대신 받은 다음 형을 피해서 도망하여 외삼촌이 있는 저 하란 지역의 밧단 아람으로 건너가서 약 20년을 삽니다. 저 거리가 약 700km가 넘으니까 서울, 부산 거리의 약 2배가 됩니다.

그곳으로 가서 20년간 열심히 외삼촌의 양 떼를 돌보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어서 가축을 몰고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의 형 에서는 20년 전에 자기 동생이 자기의 장자권의 축복을 대신 받은 그때로부터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과 원한이 가득차서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죽여버리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7장 41절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20년이 지나갔어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동생 야곱이 20년 만에 돌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래, 이제야 내가 원한을 갚을 때가 왔구나.” 400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그를 치러옵니다. 창세기 36장 2절은 설명합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은 자기가 큰 위험에 빠지게 되니까 두려워 떨며 어떻게 하면 내가 빠져나갈까. 자기 혼자 살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떼를 두 떼로 나눠서 먼저 가족들을 앞서 보내고 에서가 가족 떼와 가족을 치면 자기는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2장 7절, 8절입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그 두려움 속에서 야곱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32장 11절입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분노조절장애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미움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니까 격한 행동으로 나옵니다.


불을 지르기도 하고 아기를 아파트 위에서 던지기도 하고 그래서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히면 이성이 마비되어가지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고 이런 끔찍한, 상상할 수 없는 이러한 잘못된 일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미움과 분노를 이 시간 제거해야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속의 미움과 분노가 내 판단을 흐리게 하고 내 건강한 영혼을 파괴시켜서 내 삶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형 에서는 20년간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쌓였다가 동생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동생을 치러 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시간 주님의 십자가 밑에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를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특별히 믿는 성도들끼리 마음속에 가졌던 어떤 상처, 갈등, 아픔, 미움, 분노를 다 내려놓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 간에 친척 간에 가까웠던 사람들 간에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 1서 4장 26절에 사도 요한이 간곡히 권면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여기서 형제라고 하는 것은 믿는 형제자매들,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미움을 갖고 삽니다. 원한을 갖고 삽니다. 상처를 안고 삽니다.

부모님이 나를 갖다 이렇게 내동댕이쳐서 내 인생이 망가졌다고 부모님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물며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남편을 잘못 만나 갖고, 내가 아내를 잘못 만나 갖고, 내가 자식을 잘못 만나 갖고, 내가 친구를 잘못 만나 갖고, 내가 직장 상사를 잘못 만나 갖고, 내가 학교 선생을 잘못 만나 갖고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것이 내 마음의 미움이 되고 분노가 돼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여러분 삶에 오히려 문제와 절망과 고통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미움과 분노는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여,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 도와주셔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2. 밤을 맞은 야곱

둘째로 밤을 맞은 야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합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 도달하여서 밤을 맞이합니다. 얍복강을 지나야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는 형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 많은 예물을 먼저 앞서 보냅니다. 창세기 32장 13절~16절입니다.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많은 가축을 예물로 보내는데 다 간격을 둬 띄엄띄엄 보냅니다. 그러면서 이 예물을 받으면 형의 마음이 누그러질까 봐 그 예물을 보내면서 종들에게 말합니다. 동생이 형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그래라, 선물이라고 그래라. 다 보내고 난 다음 자기 두 아내 두 여종 열한 아들까지 다 보냅니다. 32장 22절, 23절입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모두를 다 보내고 깊은 밤에 야곱 홀로 남았습니다. 그 외로운 밤, 두려움에 둘러싸인 그 밤,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밤을 그는 맞이한 것입니다. 누구나 이렇게 인생의 밤을 맞이합니다. 때때로 인생의 밤이 다가올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남은 다 잠이 들었는데 혼자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눈물로 밤을 새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고 나 혼자 내동댕이쳐 있는 것 같은 절망의 밤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절망의 밤을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괴로움이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러나 그때가 우리에게는 주님을 만날 기회요, 밤이 지나고 나서 기적이, 새벽이 밝아올 그 축복을 맞이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길이 열리는 순간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아시아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서 유럽으로 건너가는데 그 첫 번째 도착지가 빌립보입니다.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낸 다음 그 주인으로부터 누명을 쓰고 두들겨 맞고 감옥에 던져집니다.


로마 시민권자인 그가 정식 재판도 받지 아니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던져진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었을 것입니다. 내가 누군줄 알고 나를 함부로 하고 나를 때리고, 두고 보자. 두고 보자. 미움과 원한으로 가득 찼을 그 밤에 바울과 실라는 일반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밤을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 절망의 밤에, 고통의 밤에, 외로운 밤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절망의 밤은 기적의 새벽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 26절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절망의 밤에 저들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저들의 찬양과 감사를 들으신 것입니다. 저들이 주님께 부르짖을 때 그 절망의 옥터를 흔드시고 닫혔던 문을 열어 제끼시고 손과 발에 묶였던 모든 것을 풀어놓아 자유케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절망을, 문제를 만나서 고통의 밤에 갇혔다고 할지라도, 괴로움의 문제의 현실에 갇혔다고 할지라도, 그 절망의 밤에 절망의 감옥에서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의 감옥을 흔드시고 닫혔던 문을 다 열어제껴 주시고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결박을 풀어서 자유케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뒤에 다가올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너무 힘들고 어렵고 하루하루 살기도 어렵다고 말하지마는 그 고난을 뛰어넘고 나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의 내일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매달린 야곱

셋째로 하나님께 매달린 야곱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그 밤에 어디선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평생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 순간 야곱은 알았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자가 왔구나,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붙잡고 매달려서 본인을 살려달라고 몸부림칩니다. 새벽이 가도록 놓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우두둑’ 소리가 나며 그의 허벅지 관절이 어그러졌을 때 그는 내 인생은 이제 여기서 끝나는구나. 더 붙잡고 매달립니다. 창세기 32장 24절, 25절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자, 이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튼튼한 두 다리로 에서가 와서 가족을 치면 자기는 뒤로 돌아 줄행랑칠 거였는데 허벅지 관절이 와드득 부서졌으니 이제는 평생 저는 장애인이 돼서 도망가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인간으로서 의지할 데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나를 살려주시고 나에게 복을 주셔서 형 에서로부터 나를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26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절, 28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사기꾼,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해라. 지금까지 너 야곱이 네 삶의 주인이 되어가지고 모든 사람과 싸워 이기고 주도권을 쥐고 살았지마는 심지어는 하나님과 겨루어서도 하나님을 이기려고 했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너를 다스리고 내가 너의 일생을 책임져줄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스라엘이라 하라. 할렐루야.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지요. 그런데 여기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는 표현은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하도 매달려 갖고 붙잡고 안 놓으니까 하나님이 져주시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절망에 처했습니까. 주님이 응답해주시니까 붙잡고 놓으면 안 됩니다. 기도의 끈을 놓으면 안 됩니다.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은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요즘 학부모 얘기를 들으면 고민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조금 성숙이 빠른 6학년쯤, 아니면 중학교가 들어가면 홱 가닥 바뀐데요, 걷잡을 수 없이 아이가 폭발적으로 되고 대들고, 소리 지르고 집에만 들어오면 문 걸어 잠그고 부모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답니다.


부모가 때려주면 집 나가고. 목사님, 그렇게 착하던 애가 갑자기 저렇게 달라졌어요. 귀신 들렸나 봐요. 귀신 들린 게 아니라 그게 사춘기라는 시간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요, 그때 어머니가 아이를 때리고 소리 지르고 하지 않고 붙잡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어, 어느 날 애가 온순한 양처럼 되어버렸어요. 할렐루야.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늘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주의적이었던 그 야곱이 바싹 깨어져서 한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인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것이 그의 복입니다. 창세기 32장 31절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장애인 인생이 되고 난 다음 이제는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주님께 다 맡기고 형이 자기를 죽이러 오는데도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다리를 절며 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저 멀리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동생을 치려고 오는데 저 멀리서 누가 절뚝절뚝 절며 오는데 가만보니 자기 동생입니다. 밤새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했으니 머리는 흐트러지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범벅이 되고 초췌한 모습으로 절룩절룩 오는데 그 모습을 보는 그 순간 그 마음속에 20년 동안 쌓였던 미움, 원한, 분노가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침에 눈 녹듯이 싹 사라져버리고 ‘아이고 내 동생이 어떻게 저렇게 되었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형이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고 돼 있습니다. 창세기 33장 3절, 4절입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우리 모두가 야곱인 것입니다. 자아가 강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이 옆에서 죽든 넘어지든 관심도 없지만 누가 나에게 한마디 하면 발끈하고 대들고 싸우는 그런 야곱입니다.

얼마나 교만하고 탐욕스럽고 나는 100개 갖고 있으면서도 옆에 한 사람 하나 가진 것 못마땅해하고 남이 못 되는 건 눈 하나 깜짝 안 하다가도 내게 손해가 하나 나면 펄쩍펄쩍 뛰는 그러한 야곱입니다.


오늘 그러한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깨지길 바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그러한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믿고 난 후에도 야곱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서 이 사람하고도 다투고 저 사람하고도 다투고 끊임없이 소리 지르고 집에 가면 둘러 엎고 이렇게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더 이상 구부러진 인생을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깨어지고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깨어지고 부서져서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같은 인생에서 이스라엘 같은 인생으로 변화된 고재봉이라고 하는 사형수가 있습니다. 제 나이 때가 되는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에 강원도 인제 남면 어론리의 전방 3군단 소속 현역 이득주 중령 가족 6명을 도끼로 다 살해한 그러한 끔찍한 사건을 벌인 사람이 고재봉입니다. 모든 신문마다 대서특필했습니다. 도끼로 온 가족을 몰살한 사람.


그는 군대 가서 공관병이라고 해서 장교 관사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그런 사병이었는데 이 박중령이라고 하는 사람이 좀 고약했던 모양입니다. 고재봉을 머슴처럼 부렸습니다. 추운 겨울에 장작을 패게 하고 물을 길어오게 하고 먹을 것도 안 줘서 배가 고프게 하고 그가 배가 고프니까 부엌을 기웃기웃거리다가 어느 날 먹을 것을 들고나오다가 가정부에게 들켰어요. 가정부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니까 가정부가 쪼르르 가서 일렀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안에서 그동안에 없어진 것들 다 이 사람이 가져갔다고 뒤집어 씌워가지고 두들겨 패고 감옥에 들어가서 7개월을 살았습니다. 7개월 동안 내가 나가면 싹 죽여버리겠다. 밤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원한의 밤을 지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와가지고 그다음 술 먹고 밤에 들어가서 도끼로 방구석, 구석 구조를 잘 아니까 여섯 명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와가지고 도망갔는데 다음 날 뉴스에 나온 거 보니까 자기가 죽인 사람은 박 중령 가족이 아니라, 박 중령 가족은 얼마 전에 다른 곳으로 전근 가고 새로 부임해온 이득주 중령이라고 하는 사람의 가족이 몰살을 당한 것입니다. 그 집의 가정부까지 6명이 다 죽었습니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얼마나 포악한지 감옥에 갔는데 아무도 근처에 안 갑니다. 도끼로 6명을 쳐서 죽이고 왔다니까 다들 고재봉의 근처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장이 잘 있나 하고 보러왔는데 손가락으로 팍 찔러가지고 안경이 깨지고 눈이 다치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막무가내입니다.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왜 사람을 죽였냐니까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국선 집사님이라고 대한성서공회에서 성경을 갖고 전도하는 분이 있었는데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가서 전도해라, 전도해라. “어휴 내가 어떻게 사형수를 살인마를 어떻게 만납니까.” 전도해라. 전도해라.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신약 성경을 가지고 가서 면회 신청을 합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이 와서 면회를 한다니까 고재봉이 나왔습니다. 나오니까 너무 놀랐데요, 그분을 보고. 그냥 덜덜 속으로 떨면서 신약성경을 주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주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그러고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나왔답니다.


그런데 성령이 감동을 해가지고 고재봉이 그날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던 것 멈추고 다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재판에 임해서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항소하라니까 에이, 나 같은 사람 빨리 죽어야 된다고 나 항소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이 고재봉이 사형 언도를 받아들이고 그 안국선 집사님이 다음에 가서 다시 만나서 이제 면회를 하니까 전에 성경을 준 것 읽어봤냐고 그러니까 6번을 읽었다고. 성경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 구약성경을 다시 집어넣어 주니까 신, 구약성경을 읽는데 읽다가 성령이 임해가지고 대성통곡하고 회개하고 입에서 방언이 터져 나오고 크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가지고 그 살인마 고재봉이 완전히 천사처럼 변화되어서 온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지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자네 나 같은 인생을 살면 안 돼, 예수님 믿고 새사람 되어서 구원받고 잘 살다가 천국 가야지.” 그 감옥 안에 2,000명이 있는데 죽기 전까지 1,800명을 전도했어요. 할렐루야.


군부대 뒤에서 총살형을 당해 죽게 되는데 죽기 전에 마지막 할 말이 없습니까. 하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을 고재봉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 할 말이 있는가. 검찰관님 제가 환히 웃을 때 총을 당겨주세요. 제가 늘 감옥에서 부르던 찬송을 부르던 가운데 내가 환히 웃을 테니까 총을 쏘세요. 그리고 찬송가 279장을 부릅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런데 총을 당기려고 하니까 총을 당길 수가 없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가지고 그런데 후렴에 들어가서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면서 환히 웃었습니다. 탕! 총을 쌌어요. 그가 찬송을 부르던 가운데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총살한 그 모든 형수도 사형을 집행한 간부들도, 헌병들도, 지켜보던 간수들도 다 울고 그 사형집행장이 은혜의 장소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살아생전 면회 오던 사람에게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일찍이 예수를 믿었더라면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진작 이 성경책을 보았더라면 아마 내 인생도 변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미움과 분노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고재봉인 것입니다. 미움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분노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자존심 다 내던져 버리고 미움, 분노 다 내던져 버리고 마음에 필요 없이 붙잡고 있던 상처의 흔적들 다 내던져버리고 주님 안에서 변화된 이스라엘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가, 여러분의 그곳이 얍복강 나루터가 되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279장(통337) : 인애하신 구세주여>

[1절]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다 야곱처럼 고집이 세고 자아가 강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 이 순간이 얍복 나루터의 자리가 되고 얍복 나루터의 시간이 되어서 내가 깨어지고 변화되어 이스라엘로 바뀌어지는 그러한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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