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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
2020.12.13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장 10절~13절)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면 그 고백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이렇게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예배드리는 그 모든 곳에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오늘 특별히 기도할 때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내외분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귀한 사명 잘 감당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예배드리는 모든 처소에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여서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고 기쁨과 감사가 회복되고 찬양이 회복되는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 382장(통:43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절]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전 세계 어디서든지 예배드리는 처소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쳐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기쁨과 축복과 치료와 회복이 임하게 하여 주셔서 기뻐뛰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시고 응답받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배드리는 곳마다 성령의 불이 떨어지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복음성가 :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설교말씀>

오늘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건강이 많이 회복돼서 지금 모든 면에서 건실히 좋아지셨습니다. 목사님 뵙고 기도해드리고 왔는데 참 기뻐하고 목사님 모습에 아주 힘이 넘쳐나서 목사님의 건강의 안부를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오늘은 전도서 3장 10절~13절 말씀 가지고 “하나님의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한 번 제목을 큰소리로 따라 해 주십시오.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때”

범사에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정한 때에, 내 뜻대로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사람 솔로몬은 그가 말년에 기록한 전도서에서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전도서 3장 1절~4절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8절에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씨앗을 뿌릴 때가 있고 곡식을 거둘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 각자에게 하나님의 때가 예비돼 있어서 그때에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데 언제 내가 그 하나님의 때를 맞이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마는 매일, 매시간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우리 모두가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 인생의 고난

먼저 인생의 고난의 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인생에는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전도서 3장 10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고난을 허락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가 그 고난을 통과할 때는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들고 아프지만은 그러나 고난의 결과는 축복이요, 은혜요,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고난 당할 때 우리가 낙심하면 안 됩니다. 고난 이후에 다가올 그 축복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 전진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갈 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의인으로 불렸던 욥이 있습니다. 욥은 어느 날 전혀 생각지도 못한 큰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하여 그가 회개하고 믿음이 한 단계 더 성숙한 그러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의 열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7남 3녀 열 자녀가 태풍이 불어서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 죽고 전 재산이 다 사라져버리고 건강도 잃고 아내와 가까웠던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그러한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그는 그 고난을 통과하며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 은혜를 체험한 다음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욥기 42장 5절, 6절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이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나는 죄짓지 않고 모든 사람 보기에 가장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더 큰 문제인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죄와 허물로 가득한 문제투성이의 인간들인데 나는 죄가 없으니까 나는 의롭다하는 이 영적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의 영적 교만을 보게 됩니다. 친구들이 와서 “너 죄지었지, 너 죄지었지.” “아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친구들과 맞서 그가 계속 논쟁을 벌였지마는, 그 논쟁이 다 의미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다음, 주님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영적인 교만을 회개했을 때 그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말년에 갑절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고난을 잘 참고 극복하면 반드시,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고 나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을 깨뜨려 회개하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좋은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3절~4절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는 이유는 환난 가운데, 고난 가운데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게 될 때 우리 인격이 단련되어지게 되고 인격이 단련되어지면 우리의 꿈과 소망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도구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고 늘 급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다투게 되고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가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인내를 배우면 우리의 인격이 다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가 난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때는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를 헐뜯으면 분노합니다. 더 큰 소리를 내고 다툽니다. 자기의 숨었던 성격이 다 나와서 그 성격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책을 읽어보니까 늘 집에서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가 자기 부인을 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쌓여진 분노가 다시 대를 이어서 그 가정에 대물림한 것입니다. 이러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하면 귀신이 쫓겨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곳곳에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입니다. 이로 말미암아서 내가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나의 모습이 지금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고 많은 것이 모자르지만은 연단을 통하여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변화되어서 순금 같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게 될 것이라. 할렐루야.


고난 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곧 새벽이 밝아오는 것처럼 긴, 긴 겨울이 지나면 희망의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가 고난의 때를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축복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고난 중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몸에 깊은 병이 들어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슬픔의, 고통의 괴로움이 다가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잘 참고 견디고 우리가 연단되어지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반드시 좋은 일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2.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


둘째로 주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체험케 해주십니다. 전도서 3장 11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와서 헝클어놓고 더럽혀서 그렇지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어지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변하여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가운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땅을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장차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될 것인데 이 땅에서의 고난은 잠깐이요, 천국에서의 축복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 영원 속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면서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믿고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반드시 주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다 외워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해야 됩니다. 있는 자리에서 다 같이 이 말씀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좋았던 일, 나빴던 일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모세를 기억합니다.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이집트 역사를 보면 그 공주가 나중에 그 애굽의 왕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공주의 아들로 자랐으니까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습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자랐기 때문에 최고의 지식의 교육을 다 받았고 권력자였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자기의 의식이 들어올 때부터 해준 말이 너는 히브리 사람이다. 히브리 사람이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야 된다. 애굽에서 해방해야 된다. 해방시켜야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40살이 되었을 때 이제는 내가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본인이 나가서 자기가 스스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그리고 살인자가 되어 그는 광야로 도망하는 그러한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닌데, 내가, 내가 해보겠다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서가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앙생활은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내 지식, 내 꾀를 가지고 무엇이 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용기 원로 목사님, 최자실 목사님 62년 전에 저 대조동 천막을 치고 다섯 명으로 출발한 교회가 어떻게 목사님 50년 성역에 78만 명이 되고 지금 62년이 지난 이후로 독립한 교회까지 다 합쳐서 88만이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참여하니까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우리가 쓰임 받기만 하면 위대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 쫓겨 나가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서 정말 척박한 환경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40년을 보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외로움입니다. 외로움. 아무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 없고 혼자 외롭게 지낼 때 그 외로움의 밤이 얼마나 나에게 긴 밤인지 모릅니다.

밤새 눈물을 흘려도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없고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특별히 병 중에 병상에 오래 누워있으면 그 고통이 심한 것입니다. 외로움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한 달이 아니고 일 년이 아니고 십 년이 아니고 사십 년입니다. 눈을 뜨면 메- 메- 우는 양들밖에 보이지 않고 40년 동안 이 고독의 광야에서, 외로움의 광야에서 모세는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개어졌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백발이 성성한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인생의 모든 꿈과 희망이 다 사라지고 백발이 성성하여서 기력이 쇠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위대한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모세의 때는 40살이었지만 하나님의 때는 모세가 80세였던 그때가 하나님의 때였던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붙잡고 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내 사업이 실패했고 내 아들이 직장도 얻지 못하고 몇 년씩 쉬고 있고 내가 문제가 다 꼬이고 안 되고 있어도 주님의 때에 단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30절 말씀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4절에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40년이 차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40년을 딱 채우고 나서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나는 못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 가라.” 그런데 가라고 주님이 명령하시니까 “내가 누구길래 거기를 갑니까.” 40년 전하고 완전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여러분 신앙생활은 바로 이것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가, 내가”가 아닙니다. 주님이, 주님이 하십니다. 로 바뀌는 것이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모습이고 성숙한 모습입니다. 내가, 내가 앞서서 일을 할 때는 실수가 많고 부딪히는 것 많고 상처가 많고 괴로움이 많지만, 주님이, 주님이, 주님이. 주님께 맡기면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인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80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를 부르셔서 120세까지 그를 건강하게 하시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신명기 34장 10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120세까지 눈이 침침해지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여지지 아니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그 놀라운 역사를 감당한 모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쓰실 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17살에 애굽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주인에게 눈에 들어서 가정 총무까지 올라갔는데 주인 마나님이 또 모함을 해서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기간이 모두 합쳐서 13년입니다. 13년 동안 노예로, 죄수로 말할 수 없는 연단과 고난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갇힌 감옥은 일반 좀도둑이 들어가는 감옥이 아니라 바로 왕의 신하 가운데 잘못한 사람들, 관원들을 집어넣는 요즘 말하면 공직자만 집어넣는 감옥이고 그 감옥의 관리를 누가하느냐. 이 시위 대장, 요즘 말하면 경호처장. 이 사람이 담당하는 감옥입니다.


그러니까 그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왕이 아는 사람이고 왕이 풀어줘야만 나올 수 있는 감옥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바로 왕을 본 적도 없고 아는 적도 없습니다. 노예로 끌려왔다가 그곳에 들어갔으니 그곳에서 평생 갇혀있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무기징역입니다. 무기징역을 받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누명을 쓰고 재판도 받지 않고 그냥 감옥에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거기서 관원들의 꿈을 해몽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가 30살이 되었을 때, 13년 만에 그가 죄수에서 하루아침에 신분 상승을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창세기 41장 38절, 39절은 말씀합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2절, 43절에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할렐루야. 가장 낮은 신분인 죄수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바로 왕 바로 아래의 총리가 되어서 당시 최대의 강대국인 애굽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시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렇게 위대한 사람으로 요셉을 세우셨는데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여 복 받은 인생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 순간, 순간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가면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

그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셋째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느냐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2절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남은 여생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착한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를 보내는 장소는 감옥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결론 부분에 말합니다. 4장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가 기뻐할 때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기쁨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하게 되면 그 기쁨을 갖고 나가서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함과 사랑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겨울은 코로나19로 인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춥고 떨리고 배고픈 그러한 겨울이 될 것입니다. 긴긴 겨울이 될 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고통 당하는 우리 이웃들을 돌봐야 합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

서울역 쪽방촌에 가보니까 한 평 반짜리에 한 분이 사시는데 그러한 그 쪽방촌에 750세대가 있습니다. 다 화장실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1.5평짜리에 혼자 겨울을 지내셔야 하는데 제대로 난방도 되지 않아서 그냥 전기담요 덥고 지내야 하는 그러한 독거노인들이 있습니다. 저희 교인이 두 분이나 거기에 계시더라구요.


자유를 찾아서 탈북해온 3만 5천 명 탈북자 새터민들. 한국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절망 가운데 헤매고 있습니다. 대부분 예수 믿고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받아주지 않으니까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다시 신앙 없는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분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도로 북한으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1천만이 잘못해서 그와 같은 문제와 아픔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통일, 통일한다고 하면서 자유를 찾아온 사람조차 품어주지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얘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200만 외국인 노동자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중에 불법 체류자가 되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그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하기 때문에 병원에도 못 간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한국에 태어났는데, 아무것도 흔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해도 가영주권이라도 줘서 여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좀 살 수 있게끔 해주고 교육이라도 받게끔 해주자. 몸에 장애를 가진 분들, 또 병으로 누워있는 분들, 소년, 소녀 가장들. 고개만 돌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 13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흩어져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왜 한국 사회가 코로나19를 맞아서 교회를 이렇게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사랑을 실천하고 많은 사람들을 섬겼더라면 오히려 사회가 우리를 보호해줬을 텐데 우리끼리 여기가 좋사오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며 우리끼리 우리의 사랑을 나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끼리, 끼리, 자기들밖에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교회가 그렇게 뭇매를 맞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교회가 일어나서 흩어진 교회가 되어서 사회 곳곳으로 들어가서 사랑으로 섬겨야 됩니다. 문제 있는 사람,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섬겨야 됩니다.

그래서 이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고 변화시켜서 제2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전도할 때이고 지금이야말로 부흥할 때이고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이 새로워질 때인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제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다투고 미워하고 물고 뜯으면 안 됩니다. 시편 34편 14절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로마서 12장 17절, 18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은 사랑과 용서, 기쁨 평안, 치료와 회복이 넘쳐나는 그러한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9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주일날이었는데 블루밍톤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던 윤원준 형제를 백인 우월주의자가 총을 난사해서 죽였습니다. 벤자민 스미스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 기록을 보니까 그 청년을 쏴 죽이고 본인은 자살했어요.


윤원준 형제는 다른 주에서 학부를 마치고 이곳에 대학원을 와서 인디애나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던 그러한 착한 청년이었고 믿음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학교와 지역사회가 슬퍼했고 인종우월주의자는 문제가 있다고 심각한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윤원준 형제가 희생당한 지 며칠이 지나 7월 12일 미국 전역에는 추모 예배의 광경이 방영되었습니다. 저 모습인데요. 그런데 이 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부분에 사촌 형인 박성호 목사님이 나와서 가족 대표 인사를 합니다. 그 사랑의 메시지가 온 미국을 감동시켰습니다.


“나는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형제를 죽인 Benjamin Smith를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랑하는 사촌동생의 꿈을 빼앗아가고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이 메시지가 온 미국을 감동시켰습니다. 어느 한 목사님이 <치유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칼럼을 썼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이 보여준 용서의 모습은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근본적인 욕망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 희망과 치유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장례식 때 들어왔던 기금을 모아서 장학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장학 기금을 만들어서 지금도 인디애나 대학에서는 “Won Joon Yoon Memorial Fund”가 있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움과 분노로 가득해 있습니까. 분노를 참지 못해서 불을 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이러한 끔찍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우리가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들끼리만 서로 우리들의 잔치를 가지다 보니 사회가 이렇게 피폐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시 일어나야 됩니다. 예수의 사랑을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성탄을 맞아서 우리 모두가 용서와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물고 뜯고 미워하고 다투지 말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이제는 사랑으로 하나되고 화목하고 용서하며 우리 모두가 손에 손잡고 거룩한 믿음의 행진, 사랑의 실천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우리의 거룩한 꿈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 이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일꾼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 세상에 실천하는 그 길은 희생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거룩한 꿈을 갖고 이제는 우리를 통하여 우리 한국의 미래가 바뀌어지고 우리를 통하여 한국의 모든 갈등과 장벽이 무너지고 우리를 통하여 모든 다툼과 고통과 상처와 괴로움이 사라지고 주님의 치료와 회복이 풍성하게 임할 것을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와 같은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90장(통:542)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 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 되리라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그 갖은 고난을 당하시고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두 손 가득 못이 박혀 피 흘리며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용서하셨는데 마지막 주님께서 용서의 본을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무엇이 잘나서 아직도 분노에 가득해서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다투고 욕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는 그러한 모습인지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혼자 잘나서 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남을 비판하고 알게 모르게 짓밟았던 그러한 영적 교만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는 사랑받아야 하고 저 사람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사람을 편을 갈랐던 것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예수님은 사랑, 용서, 희생, 섬김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그 반대의 삶을 살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 마음 가운데 거룩한 꿈을 가지고 내 자신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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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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