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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2020.06.07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태복음  14장 24~32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끝날 듯, 끝날 듯, 이 코로나가 끝나지 아니하고 확산이 지속되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특별히 소영업을 하시는 우리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학교가 제대로 수업이 안 돼서 어려움에 처해 있고 교회 가운데는 미자립교회, 개척교회들이 존립이 어려울 정도로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셔서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게 하여주옵소서.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우리가 영적으로 침체했고 나태했고 편안에 젖어서 주님을 향한 열심을 잃어버렸던 것 회개하고, 이번에 우리가 다시금 영적 재무장을 해서 교회에 영적인 부흥이 다가오고 사회의 모든 전반적인 부분에서 회복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북녘땅은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지금 굶어서 죽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 북한의 문도 열어주셔서 복음이 들어가게 하여주시고 복음이 먼저 들어가서 진정한 복음 안에서의 남북통일도 이루어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영적인 회복과 코로나-19의 종식과 우리 북한의 복음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또 어려운 미자립교회, 개척교회들 주님 도와주시도록 이 시간 또 영상을 통해서 예배드리는 온라인을 통해서 예배드리는 또 TV를 통해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가 임하도록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코로나-19로 인하여서 너무나 큰 어려움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하여 큰 고통 속에 빠져있습니다. 코로나-19의 재앙이 속히 지나가게 하여주시고 약이 개발되어서 코로나-19에 고통당하는 분들이 다 치료받고 회복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께서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는 저희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셔서 오직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잘 견뎌 고난이 변하여 축복으로 바뀌는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마태복음 14장 24절~32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소한 일에 흔들리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쉽게 상처받고 분을 내고 낙심하고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자꾸 시험에 들고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고난을 기회의 발판으로 삼고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묵상하여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풍랑을 만난 제자들

오늘 말씀을 보면 첫째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입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중에 어부가 여러 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풍랑쯤이야 하고 힘껏 노를 저었지만 오히려 풍랑은 더 거세지고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왜 제자들이 이 같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자기들끼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저들이 예수님 없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되었느냐.

성경의 그 앞의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로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를 다 합치면 이만 명이 넘는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이고 그 먹고 남은 것들을 모았을 때 열두바구니에 채우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이 기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9절~21절은 설명합니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그런데 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야, 저 예수가 우리를 이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줄 우리의 메시아다. 예수를 우리의 메시아로, 우리의 왕으로 모시자!” 군중들이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습니다. 이 설명은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6장 14절, 15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저들을 서둘러 다 돌려보내시고 제자들도 “너희도 저러한 군중과 휩쓸리지 말고 빨리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라.” 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홀로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3절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우리 같았더라면 “저희들 예수님 곁에 남겠습니다.” 하고 같이 산에 올라가서 같이 기도를 했어야 하는 게 옳습니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너희들 먼저 가라 그러니까 배를 냉큼 타고 건너간 것입니다.

배를 타서 저들이 신이 나서 “야, 봤지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떼어주면 또 나오고 떼어주면 또 나오고 떼어주면 또 나오고 그러니까 저들이 저렇게 흥분해서 열광해가지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그러지. 야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베드로 당신은 수제자이니 당신은 국무총리하시오, 너는 재정을 맡았으니 당신은 재무부장관하시오.”

서로 신이 나서 자기들이 장차 어떤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인가 그러한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늘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관심이 많았어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그전까지도 저들이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맨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부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은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예수님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때 풍랑이 다가온 것입니다. 왜 우리 인생에 고난의 풍랑이 다가옵니까. 내가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살아가느라 주님을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내 배의 선장이 되어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배를 저어가려고 하니까 고난의 풍랑이 거세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 내 삶의 주인이, 내 배의 선장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신데도 아직도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배의 선장이신데도 불구하고 내가 내 배의 선장이 되어서 내 스스로 배를 저어가려고 하니까 풍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올 때 풍랑을 바라보면 풍랑은 더욱 거세지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풍랑을 잠재울 수가 없습니다. 내 삶의 주인 되신 예수님만이 모든 고난의 풍랑을 잠재우실 수 있게 우리를 은혜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문제 해결자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 해결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풍랑이 다가올 때 우리 자신의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주님께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됩니다. 간절히 주님을 찾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 고난의 풍랑이 일어날 때 주님이 풍랑 위로 걸어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둘째로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14장 25절, 26절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밤 사경은 새벽 동트기 전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의 그 시간인데 가장 어두운 시간을 의미합니다. 절망의 가장 깊은 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어서 절망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 그 시간에 주님이 고난의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 예수님은 우리를 그냥 고난의 풍랑에 빠지게 내버려 두지 아니하십니다. 절망에 처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가장 고난의 깊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그 고통의 순간에 주님이 풍랑 위를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주님은 환난의 홍수위에 좌정하시는 주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아주 홍수처럼 막 밀어닥쳐 올 때 그 홍수위에 좌정하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시편 29편 10절입니다.

야훼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야훼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주님이 환난의 홍수에 좌정하셔서 모든 환난과 풍파를 잠재우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 마음에 넘치는 평안함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9편 11절에

야훼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야훼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시고 마음에 평안함도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풍랑 속에 힘겹게 노를 젓던 저들이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희끗희끗한 무엇이 오니까, “야 유령이다! 유령이다!” 소리를 쳤습니다. 14장 26절입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7절에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때때로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여 잘못된 길을 가다가 풍랑을 만납니다. 연약함을 가지고 실수하여 넘어집니다. 그런데 주님이 허물 많은 우리를 미워하고 내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사랑의 채찍을 때리시지만 사랑과 긍휼함의 마음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환난의 풍랑에 빠져 힘겹게 노를 저으며 온몸이 흠뻑 젖어서 절망 속에 잠겨들어갈 때 주님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할렐루야! 환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물 위로 걸어간 베드로

성경을 보면 그다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 위로 걸어간 베드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눕니다. 14장 28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이 베드로는 조금 성격이 급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올 수 있지만 본인은 물에 들어갔다가 당장 빠질 텐데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인류 최초로 물 위를 걸어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세요 29절에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말씀을 듣고 의지하면 우리도 고난의 풍랑 위를 걸어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꼭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우리도 고난의 풍랑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전진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고 한 걸음 두 걸음 옮겨가던 베드로가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갔던 그 믿음은 사라져버리고 인간적인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내가 물 위에 서 있네. 어휴 나 빠져 죽겠구나!’ 그 마음에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눈앞에 계신데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절망의 환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파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산다 하면서도 문제를 바라볼 때 절망합니다. 무슨 얘기를 내가 들으면 상처를 받고 주저앉습니다. 과거의 실패했던 경험의 생각이 나를 점령하면, 그냥 가만히 멀쩡히 있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예수님이 계신데도, 베드로는 물에 빠졌던 것입니다. 두려움에 붙잡히는 순간, 그는 물에 빠졌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0절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문제를 바라보면, 두려움이 들어오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문제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속에 스며드는 두려움을 물리치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음성 듣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사람들이 뭐라 하는 얘기에, 그 얘기에 영향을 받지 말고 여러분에게 상처를 가져다주는 그런 생각, 그 염려에 사로잡히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고난에 빠지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복음 14장 31절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물에 빠진 그를 주님이 붙잡아서 물에서 건져 올려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하면, 지금도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에 빠지고, 문제에 빠지고, 염려에 빠지고, 질병에 빠지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풍랑은 일고, 여전히 고난은 다가오는데, 여전히 주님은 풍랑 위를 걸어오시고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할렐루야!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바라보지 말고, 환경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서 1장 9절에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41장 10절의 축복의 말씀을 우리 다 같이 고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모든 어려움에서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14장 32절은 설명합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바람이 그치는지라!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배에 오르시기만 하면 모든 바람은 그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 순간, 고난의 풍랑이 그쳐버리고 잔잔한 호수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고난의 풍랑의 자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다시는 염려, 근심, 걱정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풍랑이 일고 있는 우리의 삶의 배에 예수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풍랑이 일고 있는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풍랑이 일고 있는 여러분의 사업장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예수님을 모셔 드리면, 그 순간, 풍랑은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살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이 나라가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건설되려면, 예수님이 대한민국이라는 배에 올라타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딱 배에 오르시는 순간, 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가 다 평정되고, 잠잠해지고 주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은 말씀합니다. 6-7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제가 위싱턴순복음교회를 섬기고 있던 어느 날 밤 8시가 넘었는데, 교회 집사님이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제 남편이 지금 죽어갑니다. 빨리 Fairfax Hospital 특히 거기 중환자실로 좀 와주세요. 이 Fairfax Hospital은 노던 버지니아에 있는 병원인데, 미국의 100대 병원 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가니 집사님과 미국인 사위, 딸, 가족이 다 와 있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그의 현재 그 남편 상태를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간경화로 죽어 가는데, 위 안에 구멍이 여덟 개 정도가 나서 피가 막 쏟아져 나오고 피가 지혈이 안 돼서 막 쏟아져 나오고 지금 거의 호흡하기도 힘들고, 의식은 이미 무의식 상태가 돼서 한 두세 시간을 못 버티겠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연락을 해서 장례 일정을 준비하십시오. 그래서 그 사위는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가지고, 이제 여러 가지 일정에 대해서 물어보고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병원에 도착해서 ICU 중환자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어가려는 저를 집사님이 딱 붙잡아요.

“목사님 목사님, 오실 때까지 제가 삼십 분 동안 간절히 중환자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네 남편을 내가 고쳐주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손을 얹으면 나을 거예요. 빨리 살려내세요.”

남편의 죽음이라고 하는 풍랑 앞에 이 여집사님은 풍랑 앞에 걸어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병원의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니까 정말 배가요. 남산처럼 배불러 올라왔는데, 그분이 남자가 또 키가 커요. 한 1미터 85~90쯤 되는데 그런 분이 배가 또 이만큼 남산처럼 부풀어 올랐으니 막 만삭된 부인의 배처럼 부풀어 올랐어요.

그리고 산소호흡기를 끼고 여러 호스로 연결되어 있고, 이미 의식은 없고 숨도 헉헉 이렇게 쉬고 있는데, 저는 보니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한두 시간 뒤로 곧 돌아가실 거 같은 모습이에요. 근데 집사님은 빨리 기도하라고 빨리 기도하라고 나을 거라고, 문제는 집사님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나는 못 들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성이 살아 있으니까 저는 눈에 보이니까 풍랑만 바라보고 있고, 집사님은 풍랑을 걸어오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기도하라고. 아, 그때 정말 식은땀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지요. 목사가 와서 믿음으로 이 피가 멈추고 배가 쏙 꺼지고, 회복되어 다시 건강하게 일하게 될지어다. 입술로 그렇게 고백을 했는데, 속에 한 편에서는 안 아프고 고통당하지 않고 잘 가시더라도 천국 가시는 길 잘 가시게 해달라고, 비밀입니다. 비밀.

아 그렇게 기도해 드리고 나왔는데, 뭐 그 여집사님은 울면서 아멘, 아멘하고 그런데 기도 끝나고 나올 때까지 그 상태가 그냥 그대로였어요. 그리고 집에 와서 밤에 쉬고 새벽예배 드리고 나서, 잠깐 사무실에 있는데 교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빨리 좀 오세요. 딸가닥.” 그때는 핸드폰이 없을 때니까. 아니 빨리 오라 그러고 전화를 끊어버리면 남편이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래서 급히 Fairfax Hospital로 가보니까 중환자실로 가 있는 게 아니라, 일반 병실로 가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날 밤에 피 여덟 군데에 나던 구멍이 피가 멈추고, 배가 푹 꺼지고, 그날 emergency room에 의사가 사망 진단서를 떼려고 대기하고 있다가 그걸 지켜보고 놀래가지고, So miracle! 놀라운 기적이라고 하면서 이 환자를 회복되는 것을 보고 일반 병실로 옮겨놨어요. 가니까 거기서 딱 앉아가지고 웃으시면서 저를 쳐다보시더라고요. 집사님이 남편 뵈기 전에. 할렐루야.

예수님 풍랑 위를 걸어오셔서 그 손을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두세 시간 안에 죽는다는 그분이 살아나서 멀쩡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이 되는 것을 제가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주님만이 우리 모든 고난을 잠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나 풍랑은 다가옵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은 풍랑이 다가올 때 주님을 바라보지 못해서 자꾸 사람을 바라보고 풍랑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또 풍랑에 더 깊이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연약함입니다. 풍랑이 다가올 때 주님께 딱 고정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그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고난의 풍랑을 만났어요. 빠져갈 때에 주님 붙잡고 놀라운 승리를 거둔 분이 지은 찬송인 찬송가 382장입니다. 이 찬송가를 부르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목사님 내외분이 목사님이 이 마틴 목사님이 작곡하시고 사모님이 작사하신 찬송인데요, 1904년도에 뉴욕주에 한 도시에 성경학교에 이분들이 찬양사역자들 교육하러 갔다가 주일날 저녁에 한 교회에 초청을 받아서 설교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모님이 막 열이 막 오르고 몸이 급속도로 아프다고 해서 병원을 갈 그런 상황이 되어서 교회에다가 전화를 걸어서

“제가 오늘 저녁 집회를 못하겠습니다. 집사람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야겠습니다.” 하고 전화 걸려고 하는데 9살 난 아들이 그 옆에 있다가 전화를 걸라고 하니까

“아빠 하나님께서 여기 설교하러 보내셨잖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텐데 왜 오늘 예배를 설교를 안 하고 병원을 가려고 그래?”

9살짜리는 풍랑 위에 오르신 예수님을 본 거예요. 그 아버지가 너무 감동을 받아가지고 아들 말에 충격을 받고 “그렇지, 너 엄마 옆에서 기도하고 있어.” 하고 말씀을 전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말씀을 전했겠습니까? 그래서 돌아와 보니 아내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손에다가 종이 한 장을 딱 쥐여줍니다. 그 종이를 보니까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찬송가 382장 (통:4329)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절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기도>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늘 극진히 사랑하셔서 고난의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데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풍랑을 바라보며 더 빠지며 낙심하며 상처받고 분노하고 아파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길을 지나가면서 너무 힘들어서 경제적으로 힘들고 가정도 문제도 갑자기 생겨나고 감당할 수 없는 시절 속에서 주님 바라보지 못하고 풍랑 속에 빠졌던 저를 다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풍랑을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풍랑 위를 걸어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시고 역사하여 주셔서 모든 어려움을 속히 극복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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