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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2020.05.17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누가복음 2장 43~45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창립 62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1958년 대조동 산기슭에서 천막 교회로 시작한 우리 교회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62년을 이렇게 계속 부흥 성장할 수 있게 된 은혜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조용기 목사님, 최자실 목사님을 통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해주시고 50년 동안 귀한 교회를 섬겨 주셔서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되었고 부족한 종이 뒤를 이어서 지금 12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너무나 감사할 것이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니까 모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62년을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5명으로 출발하여 50년 만에 78만 성도를 이루게 하시고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세워주셔서 영광 받으심을 감사드립니다. 62년을 하루같이,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을 늘 감사하게 하시고 늘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겨 주님 오실 그날까지 더 귀한 사역 이루어 나가는 우리 교회, 우리 모든 성도, 재직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영상을 통해 함께 예배드리는 예배 처소에도 주님 놀라운 은혜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지난주 설교에 이어서 오늘 누가복음 2장 43절에서 45절 말씀 가지고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주가 1부였다면 오늘은 2부입니다. 설교 제목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이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하나의 소원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 잘 믿고 주 안에서 복된 인생을 사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의 정의를 물을 때 교회 안 빠지고 열심히 나와서 예배 잘 드리고 헌금 잘하고 성경 잘 읽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답변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이 같은 것들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아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아니하시면 헛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가 많은 일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2주년을 맞이합니다. 1958년 5월 18일 대조동 깨밭에서 시작된, 천막으로 시작된 우리 교회가 62주년을 주님과 동행해왔습니다. 1963년에는 교회가 부흥하여서 서대문으로 옮겨와서 순복음중앙교회 시대를 열었고, 만 명이 넘어서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니까 1973년 다시 여의도로 옮겨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시대를 열어 교회가 차고 넘쳐나니까 다시 확장해서 1983년 오늘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60여 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1.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첫째로 언제나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장 43절~44절은 말씀합니다.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본인들이 나사렛에서 와서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가는데 그 거리가 약 130km입니다. 예루살렘부터 나사렛이 130km라고 하면 서울과 대전 거리가 140km 정도가 되니까 서울, 대전 거리보다 조금 못 미치는 거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긴 순례길에 종종 강도들이 나타나서 순례객들의 물품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부분 큰 무리를 지어 순례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의 부모가 유월절 절기를 마치고 수많은 무리와 섞여 나사렛으로 내려갑니다.

예수의 부모는 당연히 아이 예수가 그 무리 속에 섞여 있는 줄 알고 그리 생각하고 그냥 길을 내려간 것입니다. 성경 말씀 보니까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말씀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으니까 당연히 거기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홀로 예루살렘에 남겨놓고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긴긴 하룻길을 내려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위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생각과 자기 방식대로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섬기면서 주님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이 예수님이 같이 있는 줄로 착각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서 자기 착각 속에,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교회 잘 다니고 교회 봉사하고 있으니까 주님이 함께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사람들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니까 "야, 내가 정말 교회 봉사 잘하고 인정받고 있구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삶에 별문제 없고 잘 되니까 "아, 모든 것이 주님이 함께해서 잘되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것에 대해서 너무나 관심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물질이 많아지고 세상 권세를 얻게 되고 명예, 인기가 올라가면 그것이 주님이 함께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는 그러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박수갈채를 받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고 하루 길이나 내려가면서도 '거기 계시겠거니' 생각했던 예수님의 부모나 내가 지금 잘나간다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겠지' 하고 막 자기 인생길을 가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주님 없이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홀로 인생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여러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착각을 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나서 우리는 주님과 딱 붙어서 주님과 동행하며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우리의 인생을 걸어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님과 나와의 교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늘 떨어져 있지 않고 딱 붙어 있어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언제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였습니다. 늘 함께했습니다. 늘 동행했습니다. 아가서 2장 10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예수님의 부모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24시간 예수님에게 눈을 떼면 안 되는데 본인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라고 예수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먼 길을 내려가 버린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에 어디에 계십니까? 24시간 예수님께 딱 신호를 고정하고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이 NIV 성경을 보니까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자 그랬습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모든 초점이 예수님께 맞춰져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에게 맞춰져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인기, 명예, 권세, 여러분이 가진 소유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이미 예수님 없이 세상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예수의 부모와 다름없는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를 섬기면서 약 9년 가까이 섬겼는데요. 매우 충격적인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1년에 몇 차례 부흥회를 했는데 근데 어느 목사님이 오셔서 굉장히 큰 은혜를 주셨어요. 근데 설교 마치고 다 눈을 감으라고 하고 여기 와있는 사람 가운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 예수님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 손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강대상에서 다른 사람은 다 고개 숙이고 눈 감고 있는데 누가 새사람이 왔는가 딱 눈을 떠보니 교회 창립멤버였어요. 장로 직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손을 들고 있는 거예요.

엄청나게 교회 봉사도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분인데 저는 크게 충격을 받으면서 그분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 창립 이후 10년 넘게 교회를 다니며 온갖 봉사를 다 하면서도 단 한 번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너무나 큰 은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본인이 손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고 왔다, 갔다 열심히 교회를 섬긴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예수님 없이, 구원의 확신도 없이 자기 열심 갖고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자기 열심 갖고 교회를 봉사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이러한 사람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예배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없어졌다면 그래서 내가 습관적으로 교회 와서 구경꾼으로 앉아있다면 이미 예수님은 안 계신 것입니다. 혼자 자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사라졌다면 똑같은 현상입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사라졌다면, 말씀을 들어도, 찬송을 불러도, 성가대의 그 은혜로운 찬양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이미 나는 그저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교회에 와 앉아있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사라지고 이상하게 마음이 뒤틀려서 교회에 대해서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남의 약점만 들어 헤쳐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예수님 없이 자기 길을 멀리 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매 순간 우리의 예배가 감사와 감격의 은혜의 체험의 예배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신앙에서 실질적으로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알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10년, 20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다면 그는 오늘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처럼 예수님 없이도 그냥 먼 길을 가면서도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자신을 돌이켜 자신을 살펴보며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가야 합니다. 2장 45절입니다.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2. 예수님께 불평하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예수님께 불평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의 부모는 예수를 잃어버린 다음 어디서 잃어버린지조차도 몰랐어요. 예루살렘에 계신 걸 알았더라면 단박 뛰어 올라가면 하루 전에 찾았겠지요. 어디에 계신지 생각도 못 하니까 이 사람에게 묻고, 저 사람에게 묻고 물어서 성경은 사흘 후, 예수님을 잃어버린지 사흘이나 지나서 예수님을 찾았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없이 예수님 없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내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어디서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성전에 가보니 예수님이 율법 선생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46절~48절입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본인들이 잘못해서 예수님을 잃어버려놓고 예수님을 만나서 오히려 예수님께 불만 섞인 이야기를 합니다.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는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는가? 천만의 말씀. 본인들이 예수님을 내버리고 간 것이지 예수님이 본인들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꾸로 예수님한테 와서 불평한 것입니다. 컴플레인 한 거예요. 예수님은 지금 율법 선생들과 함께 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예의에 어긋나게 그 대화를 방해하고 선생님들 앞에서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예수님을 너무나 귀하게 여겨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아이가 있는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깊이 꿰뚫고 있는가? 감동을 받고 있는 선생님들 앞에서 감히 부모가 예수님을 꾸짖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사람이 교회 섬기다가 누가 뭐라고 그러면 비난을 받거나 내게 좀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어찌하여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분노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참 믿음 좋다, 저 사람 참 충성한다, 헌신한다. 교회 일에 막 앞장서서 일하다가도 반대 의견에 부딪히고 본인의 의사가 꺾이면, 본인을 인정하지 않으면 분노하고 교회에 대해서 원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뭐가 예수님의 부모와 다를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예수님께 나아와서 불평하면서 어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냐고 말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원망 불평하기 전에 왜 이런 일이 내게 생겼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원망 불평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내가 먼 길을 주님 보시기에 갔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어서 내 길을 갔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우리에게 생긴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인데도 불구하고 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첫째도 내 탓이고 둘째도 내 탓이고 마지막도 내 탓인 것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입니다.

주님 일을 하면서 교회 다니면서 어떤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은 절대 안 됩니다. 더욱이 교회 제직이 되고 난 이후에 원망과 불평하며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교회 부흥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마귀가 역사하는 기회만 주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열가지 재앙을 통과하고 홍해를 건너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갑니다. 열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에 왔을 때 가나안 땅으로 돌아보고 와서 보고를 하는데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긍정적인 보고를 하는데 모든 백성이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밤새 통곡하며 모세를 원망합니다. 민수기 14장 1절, 2절입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심히 이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26절, 27절입니다.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 불평을 했는데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그 원망 불평은 나에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교회의 지도자에 대해서 원망 불평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우리 주님에게 원망 불평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우리가 사랑하고 붙잡고 기도하고 헌신해야지, 원망 불평하고 돌을 들어 던지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도 아닙니다.

결국 출애굽한 2백만 명, 그 가운데 20세 넘은 장정이 60만인데 그중에 여호수아, 갈렙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모든 사람은 20세 넘은 장정들은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민수기 14장 30절입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원망과 불평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돌 동안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또 돌다가 그곳에서 다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은 끊임없는 원망과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빠르면 열흘, 천천히 가도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원망과 불평으로 40년 동안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또 돌았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후에 우리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나와서 끊임없이 그 원망과 불평을 통하여 나의 삶이 광야 길로 변하여 광야를 맴돌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와 찬양이 넘쳐나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할 때 그 것이 바른 것이고 감사할 때 주님이 기뻐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4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원망과 불평, 부정적인 생각을 내버리고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백은 단 하나뿐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여기서 무익한 종이란 것은 무가치한 종이란 말입니다. 무가치한 종. 나같이 무가치한 종이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되었으니 주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우리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같이 무가치하고 못난 사람을 택하여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시고 특별히 제직으로 세워주시고 안수집사, 권사, 장로로 세워주셔서 주님을 섬기게 하시니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격 속에서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고 있는가?

세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고 있는가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루살렘에서 나사렛으로 돌아온 이후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욱 사랑스러워가셨습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된 다음에는 이제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자,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는 자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자가 될 때 우리의 인생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우리 모두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 앞에 칭찬받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가 손에 손에 돌을 들고 남에게 비판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주고 치료해주고 회복시켜주고 위대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설 때 이와 같은 칭찬을 다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평생 주님과 동행하며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 앞에 놀라운 그 은혜와 사랑을 상처 입은 이웃들에게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무디 부흥사의 동역자인 R. A. 토레이 박사의 손자인 루벤 아처 토레이 신부, 한국 이름으로는 대천덕 신부님입니다. 이 대천덕 신부가 한국에 와서 성공회 신학교 학장으로 있었는데 주님이 '내가 너를 소외된 사람을 섬기라고 보냈는데 왜 여기 와서 학교에서 학장을 하고 있느냐?'

그래서 그 학장 자리를 내려놓고 강원도 저 태백시 하삼2리로 들어갑니다. 그 당시 그곳은 걸어서 삼 일길 들어가는 거리였습니다. 제가 77년도 이곳에 갔을 때도 하루에 기차가 딱 한 번밖에 없어요. 그 기차를 놓치면 중간에서 하룻밤 쉬고 다음 날 올라가야 합니다. 중간에 기차에서 내려서 갈아타는 버스가 한 번밖에 없는데, 그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한평생 섬기셨습니다.

제가 77년도 7월에 그곳에서 지낸 일주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분 사람 중에 가장 예수님을 닮았던 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모든 구호품은 다 시골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본인은 딱 신부복 한 벌과 작업복 한 벌만 있어요. 그리고 겸손으로 섬기셨습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회를 합니다. 아침, 낮, 저녁 세 번 기도회를 하는데, 그 기도 시간 후반부 삼십 분은 계속 남을 위한 중보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키가 거의 한 190cm 가까이 되는 큰 분이신데 구부정하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앉아서 기도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 뒤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그 양말에 크게 구멍이 하나 났더라고요. 보니까 전부 자기 것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 나눠주고 본인은 구멍 난 양말을 기워서 신으시는데, 아마 그날 구멍이 났는지 구멍이 뚫려있는 그 양말을 신고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데 제가 뒤에서 그 구멍 난 양말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정말 주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가?' '낮고 천한 사람을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내가 만에 하나라도 닮은 모습이 있는가? 그것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여러분의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이 남게 되길 바랍니다. 이 사랑의 감동이 여러분 주위의 소외되고 병들고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은혜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216장 이와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사를 읽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찬송가 216장 (통:356) : 성자의 귀한 몸>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과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 다 아낌없이 주셨는데 우리는 인간의 탐욕으로 더 가지려고만 하고 더 높아지려고만 하고 내 이름을 나타내려고 하고 나의 영역을 넓히려고만 하고 내 시간과 노력 나의 재능을 허비했던 것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나의 남은 삶이 나의 여생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시고, 우리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흔적만 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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