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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아뢰라
2017.09.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장 6~7절)

 염려가 가득한 마음, 가시떨기, 엉겅퀴가 뒤덮은 세상살이 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마귀가 가져 질병을 뒤덮을 환경을 수 있는 만들어 주는 있습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푹 자고 나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다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펜스테이트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쌓인 채 잠이 들면, 더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잠이 깬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다음 날 스트레스가 더 증가하고, 그래서 또 다시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될 문제인 것입니다. 염려가 가득한 마음은 예수님께서 가시떨기에 휩싸인 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염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염려가 가득한 마음을 가시떨기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씨앗이 가시떨기에 떨어지면 열매를 못 맺는 것같이, 우리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던 조지 뮬러는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는 염려가 사라지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는 믿음이 끝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염려는 믿음과 반대되는 것으로 염려를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염려가 들어올 때마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항상 기도를 어떻게 하냐? 염려와 근심이 항상 다가오는 것이니까 염려와 근심이 다가오면 자다가 일어나다 먹다가 일하다가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받아서 농구선수가 볼 던지듯이 “하나님 여기 던집니다. 받아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며 시시각각으로 그렇게 마음에 오는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가시밭, 엉겅퀴 같은 고통을 극복하고 반대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9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넉넉히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대부분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고 오늘 하루를 불행하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장3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달에는 추석 연휴가 있는데, 연휴가 길어서 지금부터 여행 떠날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휴 때,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남녀 간에 어깨에 걸머지고, 또 잔잔한 짐은 손으로 끌고, 사람은 안보이고 짐만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등에는 큰 배낭을 지고, 손에는 가방을 들고, 짐이 어찌나 많은지 사람은 짐 속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죄악의 큰 배낭을 어깨에 걸머지고 염려, 근심, 불안, 낙심하는 가방을 손에 들고, 온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여행’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짐을 이기기 위한 하루도 빠짐없는 시편 23편을 묵상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 23편 1절~6절)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거기에서 우리가 세상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염려, 근심, 불안, 낙심 이런 것이 합쳐서 스트레스가 되는데 스트레스는 마음에 받지만 온 마음과 육체의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낙심과 같은 마음의 압박은 우리의 건강을 헤치는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인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심신의 건강의 60%가 스트레스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의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심령의 근심은 바로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뼈가 마르게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어느 날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마르다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0절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일을 하느라고 너무 마음이 분주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넘치는 은혜를 받고 있는데, 마르다는 대접하는 일에 바빠서 음식 한다고 부엌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마음이 분주해서 주님이 무슨 말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자기만 일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화가 나가지고서 ‘우리 동생도 좀 시켜주십시오. 나만 부려먹지 말고.’라며 투정을 합니다. 사실 동생이 부려먹은 적도 없지요. 자기가 스스로 대접을 넘치게 잘하려고 하다가 마음에 시험이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스에 걸리면 예수님이 방 안에 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도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르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하루 종일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소처럼 먹고 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함께 멍에를 나누자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멍에를 지고 힘겹게 밭을 갈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염려와 걱정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해도 안 옵니다.  주님은 짐을 맡아주시겠다고 하여도 맡기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맡길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로써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주님이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같은 교회는 예수님이 충만히 이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맡겨야 돼요. 기도해서 맡기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보혈로 씻고, 기도해서 짐을 맡기면 예수님이 우리 짐을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 위해서 엄청나게 예비해 놓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탄식을 합니다. 

 2.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예수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짐은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보통 생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랑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새끼소는 어미 소 멍에 안에 같이 들어가서 짐을 지고 나르거나 밭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멍에는 예수님의 목에 걸려있고, 그 밑에 우리를 들어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보면, “야, 예수님과 함께 공동으로 짐을 지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가보면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있지 자기 목에는 걸려있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면 여러분의 짐을 주님이 맡아주시는데 주님의 멍에 밑에 있는 여러분은 짐이 허리에 닿지도 않습니다. 그냥 구경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 마음에 불안, 초조, 절망이 사라지고 넘치는 평안이 다가오면 통과됐습니다.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세상 생각이 머리에 왔다 갔다 하고 불안하면 안됩니다. 기도는 집중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도할 때는 전화기를 끄고 집중적으로 그 기도 중심으로 하면 마음에 걱정이 빠져나가고 평안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평안이 다가오면 자기가 압니다. 통과되었다. 하나님께서 맡아주셨다. 기도해서 응답받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휴식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따뜻하고 유순하고 겸손하니 높은 사람만 주님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고통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도 예수님은 품안에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와 함께 멍에를 나누고 짐을 함께 짊어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으면 하나님이 도우러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하십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고 했으며,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맡긴다는데 어떻게 해서 맡기느냐? 기도로써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려면, 문제를 하나님께서 맡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잠 16장9절)이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계획해도 계획한대로 안되거든요. 하나님이 계획해서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 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걱정을 합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귀한 존재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두 세 사람 이상 힘을 합쳐 기도하면 듣겠다고 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 하나님은 그 기도의 힘을 이용해서 능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나올 때, 군대도 없고, 창검도 없고, 무장도 안 되었는데 장정들만 한 70만, 요사이 계산법으로 하면 한 300만 명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도로 포로로 잡힐 위기에 있을 때 모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이 애굽 군대는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300만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내어 보낸 것입니다.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은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우리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은 맡아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맡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말로 말하면 기도할 때 핸드폰 스위치는 꺼놓고 구할 것은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마음에 흐트러지지 말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냥 기도만 하면 안 됩니다. 기도와 간구를, 간구라는 것은 집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일단 기도하러 들어가면 다른 데는 다 대화를 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둘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기도를 포기하는 자는 전쟁에서 승리를 포기하는 군인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3.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91편 14절로 16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랑은 찰싹 달라붙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에게 찰싹 달라붙으니 내가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저는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적어서 내 책상 앞에 두고 들어오며 나가며 이것을 읽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큰 위로와 능력이 되는데 여러분들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의 말씀을 적어서 붙여놓고 들어오며 나오며 바라보십시오. 신앙에 도움이 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가서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누가 참신인가? 경쟁을 한 엘리야가 야훼의 불이 내려와서 자기가 내놓은 제물을 태운 뒤에, 거짓 선지자들을 다 잡아서 기손 시내에서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큰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자 그는 광야로 들어가서 나무 밑에 누워서 “하나님이여,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제 볼 일 다 보았습니다.”라며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스트레스를 받으면 좌절하고 맙니다. 이처럼 염려와 근심은 마음을 황무지가 되게 하고 신앙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을 물리쳐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면 하나님께서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제3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사람 아무것도 아닌데 꾀병한다고. 염려와 근심 속에 있어 다른 사람의 위로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염려와 근심이 붙잡힌 사람은 주야로 마귀의 공격을 받습니다. 마음에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육체의 병까지 들게 되고, 환경에 황무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염려와 근심인 것입니다.

 데이비드 니븐이라는 사람은 ‘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적어 놓았습니다. 동일본 여객철도는 초고속 열차로 유명한데 이 회사가 다니가와 산을 통과하는 열차 노선을 개설할 때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됐습니다.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야 하는데 터널에서 물이 솟구쳐 올라와서 꽁꽁 묶이고 더 이상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물을 터널 밖으로 빼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터널은 뚫어놓고, 물이 터널에 가득해서 완전히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정비공 한 사람이 하도 목이 말라서 터널에서 나오는 물을 한 컵 마셔보니까 기가 막히게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라 내가 이거 병에다가 담아가 팔아야 되겠다. 그래서 상사에게 가서 “이게 기가 차게 맛있습니다. 이게 팝시다. 우리.” 그래서 조사를 해보니까 수백 년 동안 눈이 그 산 위에 내려서 땅에서 들어간 눈의 물인데 광물질까지 녹아있어서 굉장한 양물이요. 그래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그 물을 팔아보니까 철도요금 받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래서 큰 환란이 정비공 한 사람의 생각이 비약적인 생각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물을 지금도 팔고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동굴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물이 안 나오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나오라, 나오라, 더욱 나오라.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라고 생각만 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다가오거든 문제만 생겼다고 말하지 말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을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무조건 문제라고 생각하면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꿀 때, 답이 보이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성령이 생각을 바꾸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스트레스 해결법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연구로써 대가인, 한스 셀리에 박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고별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나올 때, 온 학생과 교수들이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뛰어나오더니만 이 한스 박사님의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박사님, 우리가 스트레스 홍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한 가지만 말씀하고 가십시오.” 그러자 셀리에 박사는 그 학생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더니만 한마디 말을 했습니다. “어프리시에이션!” 그러고 나갔습니다. 여러분, 영어를 아는 사람은 어프리시에이션이라는 것은 고맙다는 말인 것입니다. 감사란 말인 것입니다. 스트레스 전문가가 제안한 스트레스 해소의 최고 비결은 감사라는 것입니다. 좋은 때는 좋아서 좋고, 안 좋을 때는 좋아질 것이니 좋고, 고통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니 좋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만사가 다 오케이 감사한 것입니다.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불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 저보고 감사하다는 말해주십시오.” 그저 그저 감사한 것이 해결방책인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 여러 번 했지만 천막교회 개척할 때 남대문에 장사를 하는 피난민 할아버지 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참석해서 제일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해요.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저렇게 많이 하냐 싶어서 가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하나님,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조금 있다가 다른 말 하는가 싶어서 또 가보면 또 계속해서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으구 깜짝 놀랍니다. “아니 무슨 기도가 늘 그저 그저 감사합니까?” 그러니까 저보고 “잔소리 해봤자 하나님이 시끄럽기만 하고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은 다 감사한 것 밖에 없어요. 북한에서 살 때,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감사하고, 피난 생활 속에 안 죽고 옮겨 온 것이 감사하고, 또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의 기운에 흠뻑 만취하면서 살 수 있으니 감사하고, 천막교회가 있어서 감사하고, 전도사님이 있어서 감사하고, 다 감사한 것 밖에 없지 않아요?” 내가 그 영감님 덕분에 굉장히 큰 기도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저도 그 때부터 시작해서 기도가 할 일이 없으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한스 셀리에 박사도 이제야 발견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길은 감사한 길밖에 없다. 제가 일찌감치 알았으면 하버드 대학 교수가 될 것인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릴 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염려와 근심, 초조와 절망, 두려움을 극복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없는 세상에는 살 수가 없습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연약한 인간이기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기에 철저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오니 늘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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