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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주신 생명과 인본주의적 모형
2017.08.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9-10절

 우리의 삶의 주변에는 많은 나무와 풀들이 있습니다. 그런 화초를 본떠서 인간이 만든 인조 화초도 있습니다. 그것들을 멀리서 보면 다 똑같이 보여요. 그러나 실제로 자연적인 나무와 풀을 손으로 만져보면 생명을 느낍니다. 사람이 만든 화초는 굉장히 아름답고 실물과 같아 보이지만 직접 만져보면 생명이 없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우리들은 사람의 생명이 달라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분위기가 다르고, 생명의 질이 달라요. 예수님의 생명과는 이 세상 사람의 생명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생명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에 ‘비오스’나 ‘프쉬케’는 육신의 생명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프쉬케’는 죽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기록할 때는 ‘조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통 죽을 때 죽는 육신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프쉬케’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은 ‘조에’ 생명이라 그럽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말한 영생의 생명은 ‘조에’ 생명인 것입니다. 

1.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예수님은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 속에 성령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장 20절~2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1서 5장 12절)

 생명이란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어떠한 종교나 의식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세계를 영원히 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사시는 구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 예수님이 바로 영생을 갖고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목마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부에 목이 마르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목이 마르고, 타인의 인정에 목이 마르고,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목마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희들이 세상에서 보는 물은 마셔도 곧 목마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목마르지 않고 그 뱃속에서 영원히 솟아오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은 다 다르지만 그것을 목말라하는 이유는 행복을 가져오기 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시고 난 다음에 행복이 가슴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무리 마셔도 계속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목말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속에는 영이 거하는 자리가 있는데,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었기에 영적인 생명은 죽었고 육체의 생명 프쉬케의 생명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거기가 텅 비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본래는 영입니다. 육체가 아니고 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영이 죽어서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이 죽은 사람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세상의 칭찬 등으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데, 아무리 그런 것을 가져도 참 자기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제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참된 자아는 죽었습니다. 참된 당신은 죽었어요. 당신의 겉사람이 살아 있지만 속사람은 죽어 있기 때문에 그 허무한 감정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슴 속에는 만족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영이 죽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세계를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3절~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고 영혼이 살아난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우리 안에 참된 기쁨과 만족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탄광촌을 방문을 했습니다. 석탄 캐는 탄광촌에 가서 예배를 인도 했는데, 예배를 인도하고 나니까 탄광 광부 한 사람이 ‘목사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 하나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공짜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그 탄광부를 보고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오늘 갱도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까?’ ‘예,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데 돈을 얼마나 줍니까?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탄광 갱도에서 지하에 내려갔다가 땅 위에 올라왔다 엘리베이터에 얼마를 냅니까?’, ‘아니 우리 돈 안 내요. 회사에서 다 설비를 해서 엘리베이터를 운영을 하기 때문에 돈 안 내고 탑니다.’, ‘아 이렇게 거대한 시설을 하는데 돈을 안 내고 공짜로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 내가 참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요, 여기는 돈 안 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돈을 쓰신 비용이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그 엘리베이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 엘리베이터요, 하나님께선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서 인간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비용을 많이 들였습니까? 사람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 돈 안내고 엘리베이터 타는 것처럼 아무 비용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단추만 누르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것은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는 공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없이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사랑,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받는데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을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종교들은 다 대가를 지불해야 구원받는다고 말을 합니다. 행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신앙은 행위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지만, 그 죄를 대신 탕감해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과거의 죄도 용서 받고, 지금의 죄도 용서 받고, 장차의 죄도 용서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가 용서 받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생명인 성령이 들어와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해서 그 대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오셔서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변화와 새로운 창조적인 생명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2.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장 5절)고 그랬어요. 포도나무가 열매를 가지를 통해서 맺습니다. 땅의 영양분을 다 빨아올려서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주는 분은 성령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여러분은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써 하나님의 성령이 그 가지를 가진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이런 열매를 우리 힘으로 맺어집니까? 아무리 결심을 해도 맺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영혼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이 자연적으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같은 성격이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열매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화를 만드는 것처럼 가짜를 만들어서 밀어 넣으면 들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태복음 7장 15절~18절)

 나무가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못 맺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연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나야 예수님의 성품이 속에 들어와서 좋은 열매인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난 다음에 인간적인 노력을 아무리해도 인간적인 노력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장 21절)

 예수님은 율법에서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여 정해진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죽음으로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그러지 않고 예수 믿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예수님은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안에서 죄 지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청산하여 죽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보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면 헛되이 죽은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6장 15절) 유대인들은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또 할례를 받으면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느냐? 예수 믿는 것은 헛된 수고인 것입니다. 폐이론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는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은 전혀 우리 구원에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로 신앙생활에 너무나 놀라운 것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이 과거의 죄도, 현재의 죄도, 미래의 지을 잘못된 죄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다 청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평생의 죄악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또 그 보혈로 우리를 정결하게 해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셨고, 그 십자가에 보혈을 통해서 우리 마음과 육체의 질병을 다 청산해 버렸어요. 억센 믿음으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은 것 여러분이 더 이룰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가를 지불해 놓은 것 여러분은 수용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인간의 저주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난 다음에 이 땅은 저주를 받아서 인간의 삶이 가시와 엉겅퀴 속에 고생을 하고 살아갔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에 매달려서 저주를 청산한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다.’함과 같이 예수님이 저주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인류를 대신해서 주님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저주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주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아브라함처럼 축복 속에 살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영생복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은 절망을 청산해버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저주와 음부를 청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늘 생각을 하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많이 받고 있는 이유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품고 다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오중복음을 통해서 절망을 청산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믿음으로 삶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기뻐함과 동시에 오중복음을 통하여서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한 것을 잊지 말아야 돼요.

 나는 한번 어느 나라인지 그것은 세월이 오래 돼서 잊어버렸는데, 부흥회를 갔는데 이 교회와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막 교회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생각에 ‘이 교회는 희한한 의식이 있구나. 예배 보다가 뛰고 싶으면 마음대로 뛰는구나’ 그래서 내가 설교하다가 말고 본 교회 목사를 보고 뒤에 앉아있는데 “목사님, 저 사람 왜 저리 뛰어 다닙니까?” 목사님이 “나도 몰라요. 저 사람 20년 동안 우리 교회 나온 사람인데 왜 저리 뛰어 다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고 “예배 중에 좀 중지 하십시오. 왜 그렇게 뛰어 다닙니까?”, “몰라요. 나 왜 뛰어 다니는지.” 알고 보니까 20년 동안 휠체어에 타고 있던 앉은뱅이에요. 갑자기 하나님 성령께서 가슴을 뜨겁게 어루만져주시더니 귀에 대고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니 그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뛰었는데, 왜 뛰었냐고 하니 ‘내가 다 이루었다. 의자에서 나와서 뛰어라.’ 그러니 자기도 왜 뛰었는지 모르게 뛰었고, 목사님은 20년 동안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예배를 보던 사람이 뛰니깐 왜 뛰는지도 모르고, 저는 처음 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증거 했으니깐 왜 뛰는지 모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사망의 권세를 다 청산 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오중복음이 여러분 마음속에 얼마나 신앙을 분명하게 하는지 몰라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용서 받았다, 성령 받았다, 긍휼 얻었다, 물질적인 축복 받았다, 영생을 얻었다, 그런 희망을 주님께서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못 믿는 존재가 되지 말고 이 십자가에 여러분을 비교해서 희망을 꼭 잡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을 놓치지 말고 여러분이 희망에 붙잡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희망찬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언제나 분명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이 있으니 꿈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찬 꿈을 꾸고 담대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니깐 사람들이 보기에 놀라운 삶을 사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 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0절)

 예수님의 십자가를 여러분이 걸머지고 있으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오중복음의 희망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 희망의 결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충만하게 얻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종교적이고 형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희망찬 인생을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 긍정적인 말을 자기 자신보고 늘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낙심되면 내가 낙심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다 이루어 주시므로 희망차다고, 소망차다고, 슬프면 주님이 계시므로 기쁘다고, 자기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님이 다 이루었으므로 여러분 믿음 이외에는 더 할 일이 없습니다. 생명을 믿음으로 얻은 우리는ㄹ한없이 감사해야 될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희망을 갖고 기도를 계속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면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함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하나님이 생명을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것으로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으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여러분은 이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살아나서 영 속에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하여 계시므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은혜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해지실 수가 있어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혼이 살았으니 충만한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기뻐하시고,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죄로 말미암아 영이 죽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살려 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교제하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열매를 풍성이 맺는 성도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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