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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자
2017.01.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1~5절 )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가지고 주님 바라보고
꿈을 품고 나아가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2017년이라는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한국 속담처럼, 모든 일에는 시작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출발이 좋아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2017년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고 출발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여러분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마음가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1. 새해, 새 생각으로 출발하자


 새해에는 새 생각으로 출발해야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 말고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품어야 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이 바로 생명의 근원인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가장 중요한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습관입니다. 생각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교육의 선구자 호레이스 만은 습관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습관은 밧줄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습관이란 밧줄을 짜고 있다. 이렇게 짜인 습관은 절대로 파손되지 않는다” 매일 긍정적이고 믿음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키운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생각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 생각은 저절로 부정적인 곳으로 넘어가서, 악으로 점령되고 말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에는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세상 그대로 내버려놓으면 좋은 것으로 가득찰 것 같이 생각되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은 가만 내버려 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쁜 것들로 점령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의 생각은 항상 악하고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5절 말씀을 보듯이 우리는 생각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칼 힐티는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한 만큼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고, 한 달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며, 4%만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40%가 절대 안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며, 4%만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걱정이 있습니까? 96%의 걱정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로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일이라고 학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생각 속에 온·오프 스위치가 있어서 걱정의 전원을 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런 스위치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될까요? 걱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고 하나님께 맡기면 걱정이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하나님께 믿고 맡겨도 자꾸만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합니다. 그것을 맡기고 돌아오지 않는 정도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나면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또 치워내면 돌아오고, 이렇게 기도가 부족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확실히 맡긴다는 것은, 맡기고 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기도가 들어가고 문제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런 확실한 평안을 올때가지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34편 10절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고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 생각 말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우리 마음의 생각을 채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생각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생각을 좋으신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으면 모두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젠 끝장이다’라는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대속의 은혜에 맡기면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나아와 십자가에 용서와 의의 은혜를 구하면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 것 없이 허락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씻어주시옵소서”라고 하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주 예수님이 머리를 끄떡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아오는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반쪽 믿음을 가진 사람이나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나 다 같이 용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어가던 강도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 주님 나라에 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확실히 인정하고 믿었기 때문에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십자가에서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 못 들은척하지 않고 천국까지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갈보리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용서와 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청결함과 성령 충만도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거룩한 은혜와 축복이 십자가를 통해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롭게 될 뿐 아니라 신앙이 깨끗하게 되고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도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통해서 치료와 건강의 생각이 넘쳐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치료와 건강의 생각은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 말씀을 외움으로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가득히 차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형통의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밑에 가면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된 생각을 가득하게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십자가 통하지 않고 나가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이솝 우화를 보면 토끼와 거북이가 산꼭대기에 깃발을 꽂아놓고 ‘누가 먼저 그 깃발을 차지하는가?’ 경쟁을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발 빠른 토끼가 거북이와의 시합에서 졌습니다. 토끼가 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토끼가 거북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거북이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교만해져서 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북이가 이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북이는 토끼를 바라보지 않고 목표를 바라보고 계속 전진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 거북이가 토끼를 바라보았다면 도중에 낙심해서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오직 목표를 바라보고 묵묵히 걸었고 마침내 승리를 얻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이 평안을 얻으려면 평안을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가야지, 옆집에 사는 김씨, 건넛집에 사는 정씨, 저 아래채에 사는 박씨… 그들이 나보다 얼마나 더 잘 사는가 등 그들의 삶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낙심하고 좌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경주도 토끼와 거북이 경주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교만해져서 우쭐대다가 실패를 하게 됩니다.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주눅이 들어 포기하고 맙니다. 인생에는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이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로 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분명한 꿈을 가슴에 품자


 분명한 꿈이나 환상을 가슴에 품고 열화와 같은 목표물을 향해서 걸어가야 합니다. 요셉처럼 꿈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6절로 7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감추지 아니하고 형들에게 자랑했습니다. 꿈을 품은 인생은 보화가 됩니다. 똑같은 계란이지만 병아리로 부화되는 계란이 있는가 하면 프라이팬으로 올라가는 계란이 있습니다. 어떤 계란은 프라이팬으로 오지 않고 나중에 식탁에 올라가겠지만 값이 나갑니다.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계란은 부화가 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명을 품은 유정란은 병아리로 부화되고, 생명이 없는 무정란 그냥 프라이팬으로 올라가 반찬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꿈은 우리 인생을 부화시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꿈을 품으면 그 사람은 보화가 되는 사람으로 그 꿈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부화할 수 없는 계란과 같습니다.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속에 활화산 같은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미래가 창창합니다.
 힐튼 호텔의 창시자 콘래드 힐튼은 벨맨이었습니다. 콘래드 힐튼은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지혜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한 가지가 남들과 달랐습니다. 꿈이 있으면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가 장차 호텔 사장이 된다는 꿈을 벽에다가 기록해서 붙이고, 자기의 포켓 수첩에도 적었고, 공책에도 적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그 꿈을 믿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워낙 못났고, 돈도 없었고, 교육도 못 받았기 때문에 그가 호텔 사장이 된다고 하면 모두 다 비웃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서 가마니를 깔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마니 열두 장, 그 다음에는 가마니 위에 다 떨어진 천막을 쳤습니다. 그때 당시 제가 제일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이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가마니 까는 천막교회 곁에 미국 선교사들이 집을 짓고 살았는데, 크리스마스 때는 저를 파티에 초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You are invited”라고 말하면 “Yes,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라고 인사했습니다. 빵을 얻어먹겠다고 절을 수십 번 하고, 가서 빵을 같이 먹었는데, 그때 반드시 그들이 묻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너 뭐한다고 천막을 치고, 북을 치고 야단이냐?” 그러면 저는 교회를 개척할 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선교사들이 “야, 이 사람아, 사람도 없는데 여기 와서 어떻게 북을 친다고 사람이 모여 오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오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입은 벌릴 줄 압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교회,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울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들이 얼마나 박수를 치면서 웃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나에게 미국 어린아이들이 타던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자전거라고 미국 자동차였습니다. 선교사님은 그 자전거를 주면서 “이것 가지고서 사람을 모아서 천막을 채우는데 쓰도록 해보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그 자전거를 내 안방에다 놓고 그 밑에 이불을 깔고 잤습니다. 왜냐하면 동네 깡패들이 자전거를 훔쳐갈까 몰라서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자나 깨나 교회,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바라보았습니다. 꿈이 발전의 선구자이기 때문에, 꿈이 있으면 성취가 되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꿈은 요셉처럼 가슴에 품고 그것을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계란도 한 가지 아닙니까? 병아리로 부화되는 계란이 있는가 하면, 프라이팬으로 올라가는 계란이 있는데,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생명을 품은 유정란은 병아리로 부화되고, 생명이 없는 무정란 그냥 프라이팬으로 올라가 반찬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꿈은 우리의 인생을 부화시키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그럭저럭 살다가 끝나고 맙니다. 꿈을 품은 인생은 꿈이 부화되어 마침내 훨훨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꿈을 꿀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도하면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해, 한 아기 엄마가 저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아기가 청력에 큰 문제가 있어서 기도를 받으려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받은 후 다시 검사를 했는데, 정상 판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반나절 금식하며 40일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40일 새벽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께서 그 성도님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이 분은 아기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아기 엄마에게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공무원으로 일하라는 꿈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도는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기도를 하니 하나님이 7급 공무원이라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아기 엄마는 매일 시편 103편 3절로 5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믿음과 입술의 고백을 통해 삶에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십시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이 바로 그 말 아닙니까?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지난날의 일이라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해 살게 해주신 은혜를 고맙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난 한 해 동안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새해를 환영해 드려야 될 것입니다. ‘절대 긍정을 취하고, 부정적인 원망을 내 마음에 밀어내자’고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서 열 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 열 정탐꾼은 가서 정탐하고 돌아와서 “절대 우리 못 간다. 보기에는 우리가 메뚜기 같이 연약하게 보이더라. 들어가면 다 잡힌다”라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모세에게 반항하고 고함을 치고 모세를 죽이겠다고 고함을 쳤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일어나서 “아니다. 그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이요, 우리 밥이다. 우리는 들어가서 취할 수가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돌멩이를 들고 그 두 사람을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 똑같은 것을 봤는데 보고가 다릅니까? 열 사람은 자기들을 보고 자기들과 자꾸 비교하니까 점점 절망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보고할 때 하나님과 비교해서 보고하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준 밥입니다. 올라가서 밥상 차려놓은 것 먹읍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고 인생을 봐야지, 자기를 보고 인생을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보고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까?”라고 물으셨을 때,  1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본 빌립이 늘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니 조금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사기는요? 주님이 계신데, 주님이 말씀 한 마디만 하시면 오케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빌립아,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까?”라고 물으시자 빌립은 자기를 보고 “우리가 어떻게 먹이느냐? 못 먹입니다”라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한국이 어려운 시련 속을 지나고 있습니다. 신문 읽고 방송을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현재 우리 자신을 보고 계산을 했기 때문에 “한국이 경제적인 파탄에 이른다. 큰 일이 난다”고 말합니다. 어제도 한 사람이 저에게 하는 말이 “목사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정말 다른 나라로 도망을 안가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괜찮고말고요. 어떻게 그렇습니까? 우리나라가 어떠한 나라라고 그런 말을 합니까? 우리나라에 예수 믿는 사람이 모든 종교인 중에 제일 많은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약 900만 명 가까운 크리스천들이 있는데,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예수님이 같이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기도회를 열어 “주님이시여 보시옵소서. 당신의 백성들이 무너집니다. 당신의 교회가 죽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은 이시니 가만히 있지 마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자기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해도, 자기를 바라보면 불가능이 천지에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못하실 일이 어디 있습니까?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민수기 13장 32절로 33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 정탐꾼들은 자기들이 메뚜기 같은 신세라고 탄식하고 돌아다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민수기 14장 6절로 8절에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어보십시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열 두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그들이 본 것은 같았지만 말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이 달랐던 것은 바라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열 명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메뚜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갈보리산 십자가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데, 여러분이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무엇이 변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가 사라집니다. 병이 사라집니다. 저주가 사라집니다. 죽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은혜와 축복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우리가 죄와 허물을 보면 죄와 허물의 노예가 되고, 병을 보면 병의 노예가 되고, 가난과 저주를 바라보면 가난과 저주의 노예가 되고,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고 이 세상에는 절망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절망적이지만,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창조적인 입술의 고백을 하자


 우리는 창조적 입술을 사용해서 고백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4차원의 영성을 공부하는 사람은 땅이 3차원 세계라는 것을 압니다. 물질적인 것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은 그 위에 운행했습니다. 차원이 높기 때문입니다. 3차원의 세계 위에 4차원의 성령이 운행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운행하시고 그 다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창조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나면 성령과 같이 운행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운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없는 것을 있게 하고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이 성령과 함께 운행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님은 생각을 통해서 함께 해주시고, 꿈과 환상을 통해서 함께 해주시고, 믿음을 통하여 함께 하시고, 신앙고백을 통해서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무슨 생각이든지 영적으로 생각해보자구나. 세상 사람들은 나하고 같이 일도 못하고 영적인 것은 전혀 모르니까, 너는 영생을 얻었으니 같이 이야기 해보자”라고 하시면 우리는 “아멘”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좋다고 박수를 치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있는 것을 있게 말하시고, 멋진 일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6절로 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믿고, 강하고 굳세게 입으로 시인하여 중생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날로 변화를 얻고, 신앙이 성장하여 것이 우리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지 않습니까? 바람 소리는 들리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4차원의 영성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4차원의 영이 바람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꿈을 꾸라고 말씀하십니다. 꿈을 꿔서 바라보고, 감사하고 있으면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통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형편없는 불광동 가마떼기 교회가 여의도에 서 있는 세계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말씀 따라해 주십시오.
 “성령이 내 속에 계십니다. 내 영이 내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령과 동행하고 함께 일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새해 새 날 새 꿈을 허락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생각을 미래와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자신과 환경을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전능하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2017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4차원의 영성을 통해 희망차게 걷겠습니다. 성령님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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