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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2016.08.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 19장 30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며, 너와 네 자손에게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창 13:14∼17).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먼저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선포하신 이 말씀을 우리는 믿으며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1. 다 이루었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첫 번째 의미는 죄의 값을 다 청산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예수님이 거룩한 피를 흘리셨는데, 그 피 흘림이 없이는 인류의 죄는 사하여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1절로 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속죄를 하고, 하나님 존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제 예수님의 피가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속죄피로 드려졌기 때문에 영원히 죄를 용서하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하시고 피를 흘리시는데,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의의 선물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롭다는 말의 내용은 깊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이 의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의로운 행동을 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혈의 능력으로 영원히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예수 믿는 사람은 죄로 단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최대의 종교건축물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면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거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돌계단을 기어 올라가는데, 소위 신들이 사는 땅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그런 수행을 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모든 종교는 인간의 고행이나 선행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하늘까지 올라가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와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을 믿고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셉 프린스라는 사람은 ‘잊혀진 은혜’라는 책에서 은혜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법 아래에선 최고의 인간조차 실패하지만, 은혜 아래에선 최악의 인간도 구원받을 수가 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구원받은 것은 바로 구원을 은혜로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2. 다 이루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깨달아야 될 ‘다 이루었다’라는 두 번째 의미는, 허물을 다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물이란 나쁜 행위나 습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로 허물을 다 씻어서 나쁜 행위나 습관을 성화시켜 성령을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써 우리가 속죄함을 받을 때, 죄와 허물로부터 속죄함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는 전달되어온 죄 그것을 죄라고 말하고, 허물은 행실이 비뚤어지고 고약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에베소서 2장 1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허물이라는 것은 옛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제함받고 거룩하게 되면 성령님을 모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라는 세 번째 뜻은 예수님께서 죄와 더불어 병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3분의 2가 병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지금은 교회에서 병을 고친다는 것이 무식하고 덜 된 사람처럼 보여서, 교회가 병 고치는 사역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느 곳을 가든지 죄 사함을 주시고, 병 고침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병 고침의 은혜를 많이 봤고, 또 많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틀 전 일본에 선교를 갔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굉장히 몸살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몸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2부 예배 때 우리 당회장 이영훈 목사가 설교 마치고 난 다음 “병든 사람들은 다 일어나서 아픈 데 손을 얹으라”고 해서 내가 아픈 데 손을 얹었습니다. 기도를 따라하고 “아멘”하고 나니깐 몸이 화끈하고, 몸살기가 다 사라져서 지금 여러분 앞에 힘 있게 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해주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나 같은 사람이 기도한다고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을 끌어당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 줄을 타고 오셔서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아하셔서, 그 기도를 따라서 기적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을 통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에도 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의 빚을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청산한 병을 처리하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은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성전 뜰에 들어와서 아픈 환자를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로 13절을 보면 당시의 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그리고 누가복음 13장 14절로 17절에는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하시는 일을 보면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종교의식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우리가 종교의 노예가 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4. 다 이루었다


 네 번째로 우리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될 것은 가난과 저주를 다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가난해졌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부요함을 받았습니다. 천지를 다 지으신 하나님이 왜 가난할까요? 우리에게 부요함을 주셔서 가난하게 되지 않기를 원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마음속에 ‘부요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가난하다. 우리는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지 않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요하다”라고 생각하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세계로 우리들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자꾸만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부요하지 않다”라고 하면 그와 같은 형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5.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다섯 번째 의미는 죽고 장사 지낸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과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는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과 생명은 예수님이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부활과 생명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우리의 생명이 일체가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신 것은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다 청산하고, 부활과 영생을 주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에 일생을 바치신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처음 중국 선교를 할 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너무 무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면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네 안에 계시므로 너를 의지하지 말고 네 안에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살아라’ 그날부터 그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내 속에 예수님이 나의 생명을 살아주신다’라고 믿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굉장한 기도의 힘이 생겨나고, 믿음이 생기고, 활력이 생기고,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꿈꾸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믿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고, 부활의 사람, 영생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산다고 따르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하시고 영혼이 떠나시자, 하나님의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분리시킨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졌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면 성전에 휘장이 있는데, 우리는 그 휘장 바깥에 서서 제사를 드리지 안에는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 그 휘장을 넘어서 안에 들어가면 법궤가 있고, 진설병이 있고, 촛대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시자 휘장이 찢어져, 이제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 앞에 다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속죄와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대제사장과 제물이 되시고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빚쟁이로 태어납니다. 아담이,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의 빚을 상속받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빚 독촉이 얼마나 무서운지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문풍지 소리만 나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서 숨을 몰아쉽니다.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쓸 때가 많습니다. 내가 빚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아느냐 하면, 지금 서 있는 이 교회를 지을 때 엄청난 빚 독촉의 고통을 당해 보았기 때문에 빚 독촉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철골 밑에 제가 꿇어앉아서 “하나님 이 철골이 내 머리 위에 떨어져서 합법적으로 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갈 테니깐 자살을 할 수 없는데, 이 빚을 어떻게 합니까? 매일같이 협박, 공갈을 당하고, 법원에 불려가고… 하나님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때 하나님 이 대답을 안 하셨는데, 지나고 보니 지금의 모습처럼 만드시기 위해 당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죄악의 빚을 청산해 주었다고 생각할 때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인간으로서는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님 통해서 갚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죄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은 모두가 죄의 빚쟁이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남의 빚을 대신 갚아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이 태어나신 예수님만 죄의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값을 다 지불했다. 다 갚았다” 그렇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의 값을 청산하시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을 방문하고 거기서 집회를 한 적이 있는데, 마사이족 교회에 제일 잘 산다는 집사님 댁으로 초청을 받아서 갔습니다. 저만 간 것이 아니라 같이 마사이족 전도에 따라갔던 장로님들도 여러 명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마사이족은 우리와 달리 소똥을 가지고 삽니다. 소를 신성시합니다. 집도 소똥으로 지었습니다. 방바닥, 벽도 다 소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갈 때 장로님들 모시고 마사이족 집사님 집에 갔는데, 소똥으로 지어져서 천장도, 벽도 전부 똥으로 만들어 질퍽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우리를 대접한다고 화로에 소똥으로 불을 피우고 냄비를 얹어 끓인 커피를 큰 냄비에 부어가지고서 저에게 참 맛이 좋다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은 경험이 있었던지 마시는 채 하고서 전부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 저는 순진하게 그걸 다 받아 마시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난 다음에 호텔로 돌아오는데 뱃속에서 전쟁이 일어나 굉장한 고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소똥커피를 먹는 것도 그렇게 절단강산인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 인생의 죄악의 똥물을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 마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의 똥물,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죄악을 주님께서 다 마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똥물이 아니라 지옥에라도 내려가려고 하신 것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인류의 모든 더러운 죄가 담긴 잔을 다 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여섯 시간 못 박히고 난 다음에,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을 주님이 다 이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요, 거룩한 사람이요, 질병을 이긴 사람이요, 부요한 사람이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해서 늘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와도 겁나지 않는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십자가를 늘 바라보고 새사람 된 내가 의로운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이고 축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주장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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