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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으신 예수님
2016.05.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중략)… 야훼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장 7∼12절)


 참 하나님 되신 예수님은 죄 없이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형벌을 받았고, 온 몸의 피를 다 흘리시며, 6시간이나 고통 받으신 후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영혼이 육체를 떠나가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죄 덩어리가 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니 하나님이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가운데 하나님조차 고개를 돌리시자 그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또 3년 반 동안 데리고 다니며 진리를 가르쳤던 제자들도 모두 달아났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그를 알지 못한다”며 저주하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귀에는 “저 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고함치는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그들도 모두 돌아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깊은 외로움 속으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겪은 육체의 고통은 우리가 어떻게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이 가시로 왕관을 만들어서 막 누르면서 씌워 온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양손과 양발을 포개서 대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그 고통 가운데 계시면서 모든 것을 견뎌 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어 가실 때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뼈 속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사람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아버지가 원하시는 길을 걸었는데,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이 되어 버림을 받았으니 이것을 말로 다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때문에 지방에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마음이 흔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은 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 위에 올라가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내가 과연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산을 뒤덮었고 구약시대의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을 인도해낸 분이었고,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격려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사람이 되어 고통스러울 때 격려의 말을 원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격려의 한마디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잘했다’는 격려가 보통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시련 중에 있을 때는 큰 힘이 되어줍니다. 반면에 비관적인 말 한마디, 욕하는 말 한마디가 생명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의 격려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상에서 내려와서 곧장 예루살렘으로 와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끔 마음이 흔들릴 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도 흔들려 봤었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1. 나를 대신하사 형벌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내 탓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대신해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심이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도 갈보리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불평하다가 뱀에 물려 죽게 됐는데, 수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서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면서 죽어갈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아라. 쳐다보는 사람마다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구리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았고, 뱀에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니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자신을 상징한 것이라고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뱀, 사탄에게 물려서 온 인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지만 장대에 매달린 뱀을 쳐다보듯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쳐다보기만 하면 낫는다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는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고, 그 다음엔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죄’는 성품 그 자체, 생명 그 자체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동양 사람은 DNA가 동양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에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동양 사람이 서양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허물’은 죄인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죄인이 입고 먹고 마시는 것은 다 허물로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죄의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서고 앉는 곳에 죄의 열매인 허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피를 흘려서 죄를 사할 뿐 아니라 허물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결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5절에는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은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피인 것입니다. 영원이란 것은 영원한 미래도 되고, 영원한 과거도 됩니다. 영원한 보혈은 어느 곳에나 계시면서 언제나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여 오늘 내 영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정하게 해주시옵소서. 죄를 씻으시고 허물을 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때 양 날개를 가진 구주가 되셨습니다. 한쪽 날개는 죄를 사하시고, 또 한쪽 날개는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생결단하고 여러분을 병에서 건져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져서 매를 맞았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 질고를 지고 우리 슬픔을 당하였다고 했음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치료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몸이 찢겨져서 질병의 대가를 다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서 신앙을 만세반석 위에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부흥한 것은 두 날개를 가지고 비상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병자를 고치는 사역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와 치료가 함께 성도들에게 나타나서 교회가 일취월장하여 오늘날 이렇게 자라난 것입니다. 두 날개를 가지고 날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지역장, 구역장도 계시고 평신도도 계시는데 예수님을 전하라고 하면 그냥 입술로 죄 사함을 받는 전도만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다른 날개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병도 고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 날개를 잊지 마십시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말씀이 나오면 반드시 병 고침이 따라와야 합니다. 바늘이 가는데 실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용서하실 때 언제나 병이 치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예수님이 나의 저주를 담당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땅에서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겠다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 저주를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성경 갈라디아서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여러분의 저주를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여러분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이 나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니 나는 복덩어립니다”라고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수하시고 얼굴 닦기 전에 거울을 들여다보시고 “야, 너 복덩어리다. 아브라함의 복을 네가 받았다”라고 말하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입술에 말한 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복덩어리라고 자꾸 말하면 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시고 부활, 영생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죽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 동안 음부에 계시다가 죄와 허물을 다 청산하고 의로움을 회복했을 때 주님은 음부를 극복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대합실인 낙원으로 갑니다. 엄청나게 좋은 곳이지만 그건 대합실일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 가는 곳은 음부의 대합실입니다. 음부라는 것은 지옥에 떨어질 대합실입니다. 부자와 거지에 대한 이야기에도 보면 부잣집 대문 밖에서 얻어먹던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받듦을 얻어 낙원으로 들어가고 천국 대합실에 가고 부자는 죽어 그는 마귀에게 끌려서 음부에 내려갔습니다. 지옥의 대합실로 간 것입니다. 천국 대합실과 지옥 대합실은 서로 바라볼 수 있지만 가운데를 갈라놓아서 왔다갔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얼굴은 보아도 교제는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천국 대합실로 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죽음을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낙원 내 낙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완전히 끌어안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잘못된 생각


 우리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매일 잠자리에 들 때 갈보리 십자가를 쳐다봅니다. “하나님! 십자가에서 흐르는 피가 지금도 나의 영혼 속에 흐르고 있으니 내 영혼이 정결하게 하옵소서. 허물을 다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고 질병을 제하여 주시고 치료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아 저주와 고난을 받지 않게 하여 주시고 사망과 음부에서 건져내 부활 영생 천국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이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잠이 잘 옵니다. 여러분 오중복음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알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를 잘못하게 되면 큰 낭패를 당하고 맙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예수님은 보통 아기였습니다. 참 보잘 것 없는 상태로 자라온 것입니다. 그러고 아버지를 도와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삼십 세가 될 때까지 아무도 그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6장 3절에 보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라면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한국도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일을 하려고 하면 일도 안하는 사람들이 배척을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유명인사가 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죽임을 당할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위대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은 유대인으로 우리들과 성격이 같아서 일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로 태어나서 삼십 세가 되기 전까지 깃발을 날렸다면 십자가에 올라갈 시간도 없이 미리 죽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평범하고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모습으로 태어나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에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어난 배경이 별 볼일 없었고 가족들도 그를 위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분이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서른 살이 되어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난 다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삼년 반 동안 주님께서 사역을 마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정황을 확실히 살펴야 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6절에는 “그는 실로 나의 질고를 지고 나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나는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내 고난과 내 병을 예수님이 짊어지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예수님이 징계를 받아서 우리의 평안을 허락해 주었고, 채찍에 맞음으로 병에서 고침 받고 치료함을 입은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꼭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변화됐냐면 확실하게 죄의 용서를 받았고, 허물의 사함을 받았고, 병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받은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고통이 우리를 위해 받은 고통이요 나를 위해 받은 고통입니다. 그를 통해서 주신 오중복음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야훼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가 오늘 고난당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온갖 고통을 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슴 저미도록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이 담당케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은 우연히 다가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야훼께서 청산하기 위해서 그 아들에게 이 짐을 지우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짐을 그 아들에게 맡겼으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참 귀하게 여기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이사야 53장 7절로 9절을 통해 어떻게 여러분을 건지시는가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며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아버지가 보내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끌어안고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그 무덤이 악인과 같이 있었다는 것은 예수를 안 믿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들어갔으며 그 무덤이 주인이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이기 때문에 부잣집 무덤에 더부살이로 들어갔다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가 악인이 되어서 악한 사람들과 같이 섞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받은 것이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입니다. 첫 아담이 반역한 것을 가슴 아파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인류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기도>--------------------------------------------------------

 한없는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 아담으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를 믿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아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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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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