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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이 행하는 표적
2016.04.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마가복음 16장 17∼20절)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고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을 증거하는 물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됩니다. 물 침례란 우리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물 무덤에 들어가 과거를 청산해 버리고, 물에서 올라올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께 참여했다고 보여주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한 집안에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 슬하에서 자녀는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은 권세를 마음껏 사용을 하며,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1.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데, 제일 먼저 귀신을 쫓아내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즘 같은 21세기에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면 미신 같은 소리를 한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웃음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 세계를 다니며 귀신을 쫓아내고 있으니 사람들이 저보고 “무식한 사람, 웃기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간 내내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난 다음에 성령충만 하시자마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죄 용서함 받는 것과 병 고침 받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옛날 시골집 천장을 쳐다보면 천장에 거미줄이 사방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싹 쓸어버립니다. “이제는 거미줄이 없어졌다!”하고 시원해하는데 한 이틀 자고 나면 또 거미줄이 꽉 쳐 있습니다. 거미줄은 거미가 파리나 곤충 같은 것을 잡아 먹기 위해서 쳐 놓은 덫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들이 그것을 없애버려도 거미는 여전히 또 다시 거미줄을 치는 것입니다. 그 거미줄을 진짜로 없애버리려면 거미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사람 속에 들어와서 억압하여 병들게 만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병드는 것은 마귀가 와서 올라타서 짓누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이 처음에는 ‘오브세션(obsession)’이라고 강박관념을 주며 따라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오프레션(oppression)’이라고 압박을 주어 올라타고 누릅니다. 그 다음엔 ‘디프레션(depression)’이라고 우울증을 가져와 마음이 낙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포세션(possession)’이라고 우리를 소유해 완전히 귀신의 노예가 되어서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여러 단계를 통해서 귀신은 우리를 점령해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웃기는 소리도 아니고, 종교적인 의식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을 더 잘 살기 위해서는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2장 22절에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고 했습니다. 귀신이 사람을 장님이 되게 하고, 벙어리 되게 하고, 병자가 되게 했는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버리니 눈도 보이고, 입이 열려서 말도 하고, 건강하게 된 것입니다. 또 거라사 땅에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데 30절에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고 했습니다. 군대 귀신이 들렸으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희한한 일입니다. 그는 온 전신에 만 가지 고통을 다 당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 군대 귀신을 한 마디로 쫓아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귀신은 육신에 고통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에 풍랑을 일으켜 괴롭히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22절에서 24절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고 했습니다. 이 바람과 물결을 일으킨 배후는 귀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에 귀신이 들어오면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서 뒤집어지고, 사업에 귀신이 붙으면 사업이 뒤엎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되고 사람의 지혜가 탁월하지만 귀신을 보지 못하니 쫓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가정에도, 생활에도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거든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에 귀신은 물러가라. 우리 사업을 훼방하는 귀신은 물러가라!”하며 모든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능력과 힘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1절에서 2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그냥 쫓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며 나가기 때문에 저항하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귀신이 2000마리가 오든 4000마리가 오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명하면 그 권세 있는 외침을 통해 귀신은 떠나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세력을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능력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의 권세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면 귀신을 파죽지세로 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권세를 주셨기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사용해서 귀신을 쫓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 육신의 질병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집안에 풍파가 일 때 그 바람을 잠잠케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새 방언을 말하며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주 열정적으로 주님께 간구하면 성령을 받는데, 성령을 받을 때 방언을 말하면 자기도 성령 받은 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성령 받은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다른 친구들은 다 방언을 말하는데, 저는 방언을 하지 못해서 자격지심이 들어 영어를 하면서 방언을 하는 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거짓말을 하니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나중에는 영어기도도 안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삼각산 꼭대기에 성령을 받으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날까 두려워 돌멩이를 잔뜩 쌓아놓고 양 손에 돌을 들고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들고 있던 돌멩이 때문인지 정신을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녘이 다 되어 지치고 피곤한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에라, 마지막으로 범에 물려갈지라도 돌멩이를 던져 놓고 기도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을 다 던져놓고 그냥 고함을 치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혀가 돌아가서 내가 모르는 말이 입에서 나왔습니다. 방언이 터졌습니다. ‘나도 이제 성령 받았구나’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손으로 입을 가려도 자꾸 방언이 나옵니다. 버스에서 차장에게 돈을 주면서 잔돈 바꿔달라는 것도 “라라라라”하는 방언이 나왔습니다. 학교 기숙사에 뛰어 들어가면서 “라라라” 큰 소리로 방언을 말하고 들어가니까 친구들이 모여와서 “야, 너 굉장한 은혜 받았구나”하며 기뻐했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저는 이렇게 방언체험을 했습니다.

 이 방언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친히 기도를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 또 문제를 당했을 때 성령이 미리 알고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28장 11절에서 13절에도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야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냥 기도만 하지 말고 방언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기쁘고 상쾌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상쾌하지 않다면 하나님을 거역하기 때문이고, 불복종함으로 그 생활 속에는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 가운데서 방언을 통해 기도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가장 괴롭고 어려운 순간이 다가올 때 방언 기도를 많이 합니다. 문제 앞에서 방언기도를 계속하면 희한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응답의 확신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대만 성회에 참석했을 때, 성회위원장이었던 목사님이 제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상하이에서 신학생으로 공부할 때 중국이 공산화가 되었답니다. 공산당이 신학교를 접수해서 문을 닫는다고 통보하기에 신학생들이 전부 다 함께 강단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 중국 교회가 다 무너지고 신학교가 문을 닫고 복음의 길이 막히니 어떻게 합니까?”라고 안타까워 하며 전학년이 모여 기도하는데 그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방언을 말했다고 합니다. 누가 방언을 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일시에 방언이 터져 말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에 믿음이 굳건해져서 그 다음날 공산당 간부가 와서 신학교 문을 닫아버리자 이들은 전부 고향으로 내려가서 지하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전교생이 방언을 하고 믿음의 증거가 뚜렷하니 공산당이 교회를 접수하고 난 다음에도 가정교회를 세우고 활발하게 자라서 오늘날 같이 국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제게 간증을 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모스크바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한  기사가 전 세계에 크게 보도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큰 소리로 “모스크바에 사는 소련 백성 여러분, 여러분 예수님을 안 믿으면 멸망합니다”라고 하자 통역자가 통역을 안 하고 가만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생각하기에 ‘아 이거 통역했다가 비밀경찰에 잡혀가서 혹독히 고문당할까 싶어서 통역을 안하는구나’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통역을 안 하면 내가 한번 영어로 더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소련 성도 여러분, 소련 시민 여러분, 열심히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여러분 다 지옥 갑니다”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아멘!” 하고 박수를 치더랍니다. 그 순간에도 통역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통역자에게 “아니 당신 왜 두번이나 통역을 안 하냐”고 하자 “왜 내가 통역을 안 해요?”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안 믿으면 소련 사람들 지옥 간다고 말하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했지 않았냐”고 말하자 통역자가 “아니, 왜 그런 것을 내게 묻습니까? 목사님이 소련말로 그 말을 했기 때문에 소련 말을 내가 통역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목사님이 두 번이나 소련 말로 말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들었으니까 박수를 치고 아멘을 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소련어로 말을 하게 하시고, 이것을 들은 사람들이 놀라며 은혜 받았던 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하실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 받고 새 방언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이 획기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뱀을 집어 올리며


 바울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서 섬에 겨우 피난했습니다. 날이 많이 추워 불을 피워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있는데 나무를 한 줌 쥐어서 불속에 집어넣자 나무속에 있던 독사가 바울의 손에 달려 올라와 손을 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보고 “아 저 사람은 살인자구나. 배가 파선 되어 섬으로 구조됐음에도 모닥불에서 나온 뱀에 물려서 죽으니 저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울이 자신의 손을 물은 뱀으로 인해 독이 퍼져 쓰러져 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다시 “아 저 사람 살인자가 아니라 성자구나”라고 하며 놀란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믿으면 주님이 지켜 주시기에 뱀에 물려도 안 죽을 터이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장난으로 뱀에게 물리고 돌아다니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독이란 먹고, 마시면 죽지 않습니까? 제가 브라질에서 집회를 할 때 약 120만 명이 공군 비행장에 모였는데 아침을 조금 먹고 오후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길을 막고 있으므로 식사를 하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모여 있고, 빨리 집회를 시작해야 했기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헬리콥터로 시내에 들어가서 김밥을 좀 만들어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헬리콥터 외에는 사람을 뚫고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에 교포 김 변호사라는 분이 헬리콥터로 가져온 김밥을 자신이 가로채서 먹어버렸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을 달래며 설교를 시작 하는데 뒤에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누군가 그 김밥에 독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되는데 다시 헬리콥터를 부를 수도 없고, 병원으로 갈 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하다 말고 잠시 기다리게 하고 그분에게 손을 얹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저를 대신해 독이든 김밥을 먹었습니다. 안 죽고 살도록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김밥을 먹은 것이 아주 미웠는데 독이 든 김밥을 대신 먹어주어서 무사히 설교하게 만들어 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때 기도를 통해 그 변호사가 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이라는 것은 먹는 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독은 마음의 분인데, 마음에 분을 내면 이것이 굉장한 독이 되는 것입니다. 분을 내는 것은 마치 독약을 매일 조금씩 먹는 것과 같다고 미국의 듀크대학 교수 ‘레드포드 윌리엄스’가 말을 했습니다. 또 최근 어떤 연구에 의하면 심하게 화를 내고 난 직후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무려 8배나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청난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노 지수가 올라갈수록 자살을 할 생각 위험이 15%정도 높아진다고한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분노라는 독에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속히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분노라는 독을 제하여 주는 해독제가 되는 것입니다.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는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병 고치는 종교입니다. 죄 사함의 종교일 뿐 아니라 병 고치는 종교로서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들과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면 죄인들과 환자들로 둘러싸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나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병 낫습니다”라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완전한 복음전도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대부분을 병 고치는데 보냈습니다. 예수님 계신 곳에 병자가 그냥 돌아간 적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병자라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는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손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믿음으로 손을 얹어 안수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올바른 교회는 죄인들이 꽉 들어차야 되고, 환자들이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죄와 병은 마귀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 모든 죄와 병을 청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는 죄와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다가온 마귀가 주는 죄와 병은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따르는 표적의 증거를 허락해 주셨기에 이 모든 것을 담대히 선포하며 기적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 속에서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들을 통해 자녀로서의 복된 삶을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흑암의 권세를 끊어 버리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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