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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
201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중략)…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예레미야 33장 3∼9절)

 우리는 자신의 명함을 간직하고 다니다가 누군가를 만나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 그 명함을 꺼내 내놓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는 일을 행하는 야훼 하나님이다”라고 하나님의 명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고, 사람들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직접 보시고, 일을 행하십니다. 대자연에 늘어진 나뭇잎사귀, 풀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알파요,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잠언 19장 21절은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야훼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5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반역하였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행했기에 갈대아인이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궁까지 헐어가며 성안에 있는 돌멩이, 진흙더미, 쇳덩어리들을 모두 모아 자신들의 힘으로 갈대아인을 물리치려고 했으나 어림없이 죽임을 당해 시체가 성에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악행으로 인해 그에 대한 보응을 받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이어 예레미야 33장 6절에서 9절에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는 그 성을 멸망시켰으나 또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성읍을 재건하여 세상이 이것을 보고 칭찬을 하고,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 매를 맞고 망한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번성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1.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스스로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에덴에서 쫓겨나고, 정죄를 받고, 저주를 받고,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와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자신의 죄를 큰 소리로 회개하는 것입니다(사 59:1∼2).

 죄를 가지고서는 하나님께 나와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여 용서를 받고,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면 그때 하나님이 우리의 외침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5절에서 6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야훼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고 했습니다. 또 시편 66편 8절에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저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분지 일을 바칩니다”라고 자랑하듯 자신의 기도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 14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의를 내세워 자랑을 잔뜩 하는 사람을 보고 의롭다 말하지 않으시고, 가슴을 치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이 세리를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의롭게 여기시고 그에게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임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은 죄인도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되고, 큰 죄인도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용서를 받고 응답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죄를 회개할 때 뜨거운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진정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를 받고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를 통해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급하게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급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원하지만은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 주시지 않는 것 같지만은 우리가 끝까지 기다리고 참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로 8절에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과부는 남편도 없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자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비유에 그 과부는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에게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억울함에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시옵소서”라고 외쳤지만 불의한 재판관은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며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가 매일 그 재판관을 찾아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주소서”라고 하며 인내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간청을 하니 이 재판관이 시끄러워서 못 견디고 결국은 그 과부의 원한을 갚아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내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지 않고 늘 하나님께 와서 간구하되 마음에 간절한 호소를 가지고 오래 인내하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놀라운 기적들을 말할 수 없이 행했던 엘리야조차도 기도할 때 인내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윌리엄 부스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 “거기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우리에게 응답을 가져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가물어 메마른 우리의 삶에 하늘에서 단비가 쏟아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기도하라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중언부언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언부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목회를 시작한 전도사 시절 성도들에게 “철야기도 하라. 새벽기도 하라”며 그들을 교회에 불러다놓고 기도를 함께 했는데, 정작 전도사인 나는 몇 마디 기도하면 다음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만히 보니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다른 교회 한 장로님이 우리 교회에 기도하러 왔는데 그분은 기도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갈 때까지 계속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분의 기도를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기도하는 그 분 뒤로 기어가 들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무슨 기도가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뿐입니까?”라고 묻자 그 장로님이 “전도사님 나는 6.25전쟁때 북한에서 자식들 데리고서 죽음의 고비를 겪고 남한에 내려와 지금은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겪은 모든 일을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귀찮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걸어온 길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저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어요.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고, 나쁜 일은 좋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하므로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시더니 또 꿇어 엎드려 계속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 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상당히 도움을 받아서 그 다음부터 기도할 것이 없으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무엇보다 뚜렷한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한 도전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 낫기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소설처럼 꾸며내어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고쳐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이 귀찮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기도하면 “야∼들었다. 들었다. 고쳐주겠다!”고 하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셨는지 아닌 지를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우리의 마음속에 확신이 확 다가옵니다. 그리고 평안이 다가옵니다. 마음이 불안하지도 아니하고, 밍밍하지도 아니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기쁨이 옵니다.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다가오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을 때는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확신이 오지 않고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슬픔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러면 계속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로 8절에는 늦은 밤 친구에게 찾아가 떡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늦은 밤, 떡을 구한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준 것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며 간청하는 친구의 간청을 견디지 못하여 떡을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서도 주님께서 중언부언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주 근사하게 웅변조의 기도를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성을 원하십니다. 말을 잘 못하더라도 짤막한 기도라도 진실성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부르짖게 되고,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믿고, 응답을 마음에 간직하고,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마귀가 뿌리를 내려서 뽑히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을 뿌리가 뽑히도록 힘을 다해 당기는 것입니다. 혼자서 당기는 것 보다 두 사람이 하면 더 좋고 세 사람이 하면 더 좋습니다. 믿음을 합치면 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인내를 가지고 당기면 병도 고침을 받고 문제도 해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이 고침 받고, 문제가 해결 되려면 인내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응답 받을 때까지 우리는 결코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시고자 응답을 늦추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냐, 아니면 간절함에 진실한 마음으로 필요해서 기도하는 것이냐’ 이것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1절로 2절에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했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다림에 응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정말 제물로 드리라 하시지 않을 것이다’ 생각했는지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룻길을 갔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피곤하시죠? 누우세요. 내가 안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아버지 팔다리를 주물러 주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녹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틀째 걸어가고, 또 삼일째 걸어 모리아 산에 도착해 산 위로 올라갔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우리에게는 양을 잡을 칼도 장작도 있는데 제사 드릴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보통 사람 같으면 털썩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래, 여기에 제물을 잡을 칼도 있고, 제물을 드릴 장작도 있고, 불도 있지만은 제물은 하나님이 예비하신다”라고 대답하고 둘이 힘을 합쳐서 제단을 만들고 장작을 펼쳐놓았습니다. 그 다음에 아들의 손에 있던 칼을 들고 아들 이삭을 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얘야. 제사를 드릴 제물은 너다. 하나님이 너를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이 말을 듣고 “아버지 미쳤나요?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갑니다”하고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장작위에 스스로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제물로 삼으라고 하셨으면 아버지가 그렇게 하셔야지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을 부릅뜨고 칼을 들고 이삭의 목을 향해 내리치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 아들 이삭을 죽이지 마라. 내가 네 아들조차 아끼지 않고 내게 내어놓는 것을 보니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지 않고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그 사랑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더욱 사랑하시고 그 이삭 아들을 크게 창대케 한 이유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같은 진실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시며, 항상 하나님을 향해서 기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또 아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가 되십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짊어져 주신 구주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보혜사 하나님이 되십니다. 보혜사는 우리와 항상 함께 있어 우리를 도와주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좋으신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기도를 할 때 지금 구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뜻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마 7:7∼11). 우리는 늘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며,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고, 성령님은 나를 돕는 자이시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생활보다 더 즐겁고 기쁜 일이 없습니다. 인생에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이 다가오지만, 날마다 나를 돕는 보혜사 성령이 지금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뜻을 좇아 우리 성도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우리 곁에 계신 성령님은 즉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 가운데 꿈을 꾸고, 꿈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때에 우리 속에 좋은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좋은 것 주기 원하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것을 믿고, 생명을 다하는 기도를 올려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알고 응답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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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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