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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맞추고 출근하는 사람이 더 긍정적이다
2016.03.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야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시편 2편 12절)

 외국잡지에서 부부간의 입맞춤 효과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삶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성공적이고 오래 살려면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남편이나 아내에게 입을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독일의 의학박사 및 심리학자들과 보험회사 심리연구원들이 함께 연구하여 얻은 결과이고 더불어 하나님 말씀이 그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아더 자보’는 매일 아침 배우자와 입맞춤하는 사람일수록 질병으로 결근하는 확률이 적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배우자의 입맞춤을 받으며 출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교통사고도 덜 나고 매월 수입이 20∼30%가 더 많고,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침마다 배우자의 키스를 받고 출근하는 사람일수록 하루의 시작을 더욱 긍정적으로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갖게 되어 얻어지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에 플러스 요인이 되어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켜 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입맞춤도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입 맞춘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오늘 읽은 시편 2편 12절은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야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입 맞추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화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시고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아담의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을 가진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황혼 이혼율이 점점 더 늘어나는 현실에 우리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2015년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2014년 서울시민 중 약 6만 5000명이 결혼했고, 약 2만 쌍이 이혼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혼한 사람들 중에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황혼 이혼이 32%나 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가정 내 아동학대 문제까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우리가 대단히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를 통해 큰 아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하셨으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아름다워야 할 가정생활이 깨어지게 하였고, 그를 통해 고통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 희망이 없는 땅


 아담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광야와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이 땅에 형벌이 임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뱀과 원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4절에서 15절에 “야훼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뱀으로 불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뱀은 지금 우리가 보는 뱀과는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고 난 다음에 점점 천해진 것이 오늘날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이 된 것입니다. 뱀은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도록 한 결과, 저주를 받아서 본 형상을 잃어버리고 처참하게 저주 받은 짐승이 되고만 것입니다.

 또한 범죄함으로 하와는 출산의 고통을 통해 자식을 낳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와는 어찌할 수 없이 그 죄의 대가로 크게 수고하고 고통스럽게 아기를 낳고 키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7절에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땅이 역시 아담이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아 심히 수고하여야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가시와 엉겅퀴가 땅에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도 “네가 흙이니 고생하며 살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무서운 수고와 고통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로 이들에게 이른 것입니다.


 2. 희망을 찾아서


 이런 고생스러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어느 곳을 가나 좌절과 절망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저주받은 곳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욥기 5장 7절에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불을 때면 상승기류에 의해서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사람들은 고생 속에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전도서 2장 22절에서 23절에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삶은 유한하고, 삶에는 고생과 수고가 반드시 따르고, 수고하여도 그 모든 것은 헛됨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로마서 15장 12절에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21절에도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 죄인이 죄인 취급을 받지 않고 용서 받아 의인 취급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거룩한 삶을 얻게 되고, 질병으로 죽게 된 사람이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인해서 치료받고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대신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저주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희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어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죽음 저 건너편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통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험하고 고통스러운 세상 가운데 있을 지라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안 된다.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가고, 그 하나님이 좋은 것 주실 것을 기대하고 믿고 살아가면 실제로 좋은 일이 우리에게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을 말하라


 저는 십자가를 보고 희망을 말하라고 늘 나의 후배들에게 말합니다. 제가 신학대학에 가서 강연할 때 늘 신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목회자가 되라. 협박, 공갈을 하는 목회자가 되지 마라”고 전합니다. “우리가 쌀을 주고, 집을 주고,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이 세상에 소망은 오직 십자가에 있다고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의 저주를 끌어안고 못 박히셨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병을 청산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사라지고, 병이 사라지고, 저주가 사라지고, 전인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했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이 세상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가지고 온 모든 사망과 흑암을 주님이 다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 우리를 구원할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우리에게도 살 길이 있다”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긍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없다면 기도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반면 꿈이 있는 개인과 백성은 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가지기 위해서 마음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생각이 좋은 것을 끌어오게 됩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에서 28절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고 했습니다. 열두 해를 피를 흘리고 재산을 다 탕진하고 꿈도 희망도 다 잃어버린 그녀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그 마음속에 좋은 생각들 즉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예수님 가시는 길에 뛰어들어 옷자락에 손을 대고 즉시로 나았던 것입니다.

 긍정적인 꿈은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부정적이고 좌절되고 절망적이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에서 8절에도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 정탐을 위해 보냈는데 열 사람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았습니다. ‘가나안은 황폐하고, 성을 보니 너무 높고, 그 백성들은 장사들이고, 자기들은 메뚜기 같고 그 사람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보니 어떠한 땅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어떤 성곽도 성냥갑 같고, 거기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이스라엘의 밥이다.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밥상을 차려 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열두 사람이 똑같은 곳에서 출발하여 똑같이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오는데, 열 사람은 ‘못한다, 죽는다, 할 수 없다’ 고 했지만 두 사람은 ‘할 수 있다, 들어간다, 다 우리 밥이다’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것입니다. 그 결과로 열 사람의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다 죽고, 그 자손들이 40년 광야에서 방황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긍정적인 생각은 꿈을 꾸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먼저 우리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언젠가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교회 마당에 온갖 꽃들이 활짝 피어 있고, 나비들이 많이 날아와서 이곳저곳에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말씀하기를 “조 목사님 오신다고 제가 꽃나무를 갖다 심었지 나비는 오라고 청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꽃나무를 심으니 나비가 날아왔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나비가 꽃을 따라 역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꿈을 심은 사람 꿈을 따라 가슴속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꿈이 있으면 반드시 성령이 따라와서 역사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에 꿈이 있으면 성령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십니다. 꿈은 아름다운 꽃입니다. 꿈을 많이 피워놓으면 성령이 와서 그 꿈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시편 146편 5절에서 7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훼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야훼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은 삶에 힘이 됩니다. 희망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요, 긍정적인 꿈을 낳기 때문에 희망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도 힘을 주게 됩니다. 하버드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희망의 힘’이라는 책을 통해, 희망은 실제로 병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30년 동안 환자들을 치료했는데, 희망을 가지면 우리 몸에서 엔돌핀과 엔케팔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되어 질병을 치료하게 된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즉 희망을 토대로 믿음과 기대를 갖는 사람이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항상 희망을 바라보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입술로 말하는 말에는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최근 신문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칼럼을 읽어 보았는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비타민이나 항우울제 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미운 마음을 치료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심리치료와 약물치료와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칭찬과 긍정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여주겠다(시 50:23)’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하나님도 찬양 받으시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하물며 칭찬받는 것 안 좋아할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잠언 16장 24절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긍정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우종민’ 교수는 말의 영향에 대해 “인간의 뇌는 현실과 언어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짜증난다는 말을 반복하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뇌로 전달되어 뇌가 ‘짜증나는데 왜 멀쩡한 척 하고 있느냐’ 하면서 온몸에 불쾌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뿌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버릇은 그야말로 버릇으로 출발하지만 버릇이 거듭되면 몸과 마음에 굳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미국 전 국무위원이었던 ‘존 가드너(John W. Gardner)’ 박사는 “리더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는 희망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또 나폴레옹 역시 “리더란 희망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희망이 지도력을 발휘하기에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한참 어려움을 당할 때, 한번 멋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문이 안 열렸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밖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그곳에서 목이 쉬도록 고함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이 들자 그제서야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 예수님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엘리베이터 안에 턱하고 서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어떻게 해서 들어오셨습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내가 누구냐? 내가 길이요. 내가 가는 곳에 길이 막히는 것 보았느냐? 나를 안아라”고 하시길래 제가 주님을 끌어안으니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그 꿈을 꾸고 예수님이 길이니 어려울 때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으면 길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죄도, 어떠한 허물도 예수님을 통해서 청산됩니다. 어떠한 병도, 죽음도 예수님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어떠한 저주와 절망도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고 하신 주님 안에서 모두 해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 맞추고, 화목하고, 따라가면 언제나 우리 앞에 좋은 일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 더 오늘부터는 집에 가시거든 남편은 아내에게 키스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키스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마음에 신뢰를 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가정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좋으신 하나님! 우리의 주님으로 인해 긍정적이고, 희망찬 삶이 되게 하여주시고, 주님주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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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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