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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향한 전진
2015.11.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중략)…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열왕기하 7장 3∼8절

좌절을 주는 인생의 끔찍한 현실 앞에서
희망 선택하여 포기하지 않고 전진하면
전능의 하나님 기적과 승리 이루어주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마음의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결코 낙심하지도 뒤로 물러가지도 않습니다. 아람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공격함으로,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이 포위당하고 먹을 것조차 없어 굶어죽는 사람도 비일비재하게 생겨났습니다. 열왕기하 6장 26절에서 29절을 보니 임금이 초췌한 몰골로 민심을 시찰하고자 성 위에 걸어가는데 한 여인이 뛰어나와서 왕 앞에 엎드려 “임금님, 우리 이웃 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임금님께서 해결해주십시오”라고 탄원합니다. 임금님이 “내가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내가 하나님이냐? 이 가뭄과 원수들의 포위한 가운데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타작마당에 곡식이 있느냐? 포도즙 틀에 포도주가 있느냐? 그러나 무슨 일이냐? 무엇이 답답하냐?”라고 하소연하듯 다시 묻자 그 여인이 하는 말이 “우리가 굶주림에 배가 너무 고파서 이웃집과 오늘은 내 집 자식을 삶아먹고, 내일은 저 집 아들을 삶아먹기로 약속을 하고 내 아들을 먼저 잡아서 삶아먹었습니다” 굶주림에 사람들의 정신이 그렇게 돌아버렸던 것입니다. 이어 하는 말이 “그리고 오늘 약속한대로 이웃집 자식을 삶아먹으려고 했는데 아이를 숨겨버리고 데리고 나오지 않습니다. 임금님 판단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임금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나라의 현실을 보며, 옷을 찢고 눈물 흘리며 탄식했습니다.

 

 1. 네 나병환자들의 선택

 나병에 걸리면 감각이 없어져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코가 허물어져 나가버려도, 손가락과 입술이 문드러져 나가버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스라엘에도 나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네 사람의 나병 환자 역시 너무 배가 고파 성에 들어와 보려고 했으나 성안의 굶주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명의 나병 환자들은 좌절하여 서로 의논을 합니다. “성내로 들어가면 그곳 역시 굶주림이 가득하고 더구나 우리는 문둥병 환자니 부정해서 사람들에게 나갈 수도 없는 처지에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 차라리 아람진영으로 가자. 거기는 적군이 창칼을 들고 있을지라도 먹을 것도 있다. 그들이 우리를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을 것이다”

 우리 인생이 절망으로 가득할지라도 언제나 희망의 길이 한 곳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희망이 없을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사람들은 환영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서 어디를 가도 의지할 수도 없을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엎드려 하늘을 쳐다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시한 소리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라고 하지만 해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 300만명이나 되는 동포들을 모세가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전진해 나가는데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또 뒤에는 노예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줄 수 없다고 생각한 애굽의 백만 대군이 창검을 다 가지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습니다. 동서사방 어디를 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할 곳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치고, “모세야,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나와서 죽이려고 하느냐? 봐라. 동서사방에 군인들이 우리를 둘러 진 쳤지만 우리는 군사 한 명도 없지 않느냐? 저 홍해를 어떻게 하느냐?”라고 탄식했습니다. 동서사방을 삼차원적으로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거기에서 희망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모세 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너희는 오늘 가만히 있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너희들이 본 애굽 사람은 오늘 이후에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홍해가에 나가 전부다 건너갈 준비를 하라. 홍해의 물이 갈라질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꿈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모세 혼자였으나 결국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옷에 물 한 방울 적시지도 아니하고 그곳을 건너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먼저 마음속에 꿈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 꿈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꿈을 심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또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이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주신 이후에 그 꿈을 하나님이 붙잡고 이루어 주셔서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여, 어디로 가야하고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데 소원 즉, 꿈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되는데 저의 과거를 돌아볼 때 제가 한 일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늘 꿈을 주셨습니다. 제일 처음 꿈을 받았을 때는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도할 때 하나님이 꿈을 주셔서 그 꿈이 마음속에 불타오르고, 그 꿈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꿈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의도에 오면 교통이 잘 정비되고, 고층건물들이 많아졌고, 도시가 화려하지만 제가 여기 여의도로 나올 때는 모래 뿐인 광야였습니다. 집 한 채도 없는 모래벌판에 삭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정부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저 섬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여의도로 나올 때 사람들마다 다 삼차원의 세계인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이제 조용기 망하려고 환장을 했다. 어떻게 저기로 나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도 서도 남도 북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매일 같이 제가 꿇어앉아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저의 가슴에 품은 꿈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또 대학을 설립하라고 하셨고, 그것도 꿈같은 소리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이니 기도하자 내 가슴에 있던 꿈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셨습니다. 기독교신문을 창간하라고 꿈을 주시고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이끄셨고, 그것 또한 이루어주셨습니다. 북한의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종합병원을 세우라는 꿈을 주셔서 꿈을 믿은 결과 현재 건물은 다 세웠지만 남북이 대화가 막히니 기계를 들여 운영을 해야 하는데 중지 된 상태이지만 남북의 대화가 곧 시작되면 모두 해결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행기를 준비해 타고 또 올라갈 것입니다. 그때 우리 성도 모두 같이 가기 원합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희망을 선택할 것이냐 절망을 선택할 것이냐? 절망을 선택하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선택하면 가장 비참한 존재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망이 있는 데를 향해서 전진해 나가자. 희망을 향해서 나가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엘리사의 예언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은 배고픔에 울고 가슴치고 야단입니다. 그러자 임금이 자신이 총애하는 장관 쯤 되는 사람에게 “엘리사가 지금도 살아 있으면 목을 쳐라. 하나님의 종이 있으면서도 아람군대를 물리치지 못하니 이런 일이 있느냐?”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장관이 일어나서 군인들을 데리고 엘리사의 목을 치기 위해서 엘리사가 있는 곳에 갔습니다. 그들은 절망주의적인 사람으로 절망을 이루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기 전에 엘리사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조금만 있으면 저 살인자의 자식, 임금이 내 목을 치기 위해서 군인들을 보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임금의 사자들이 “문을 열어라. 임금님이 엘리사의 목을 치라고 했다. 엘리사 이리나와 칼을 받아라”고 외치는 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이에 문을 열고 나간 엘리사가 예언의 말을 전합니다. “너희 임금에게 이야기 하라. 내일 이맘 때면 밀가루와 보리가 거름 값에 불과하게 팔릴 것이다. 태산같이 밀가루와 보리가 나타날 것이다. 내일을 기다려보고 목을 베든지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군사들을 이끌고 온 장관이 엘리사를 보고 비웃으면서, “하나님이 하늘의 창문을 열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땅만 쳐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엘리사가 그 장관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당신은 그 곡식더미를 눈으로 보기는 보아도 먹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 그들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3. 희망을 향한 행진
 
 그런데 그 밤에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병환자 네 사람이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에 희망을 향해서 행진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라고 하고 네 명이 걸어가는데 나병환자이고 더구나 굶었으니 기운도 없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한사람이 넘어지면 다 따라서 우르르 넘어집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아람 진영에서는 이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소리가 백만 대군이 습격해 들어와 공격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나병환자들의 행진하는 소리가 애굽의 전차군단을 이스라엘이 돈을 주고 사서 데려오는 것 같았고, 그들이 넘어지며 서로 격려해서 일으키는 소리가 백만 대군이 움직이는 소리 같았습니다. 네 사람의 나병환자가 움직이는 그것에 하나님께서 마이크를 달아놓으시니 이 나병환자들이 하는 말이 백 만, 천 만 군인들이 고함치는 소리로 들리게 되어서 아람 군대 중 하나가 ‘우리는 포위되었다. 이제 우리 다 죽는다. 모두 달아나자’라고 하자 전 군대가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공포란 전파력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 무서워 떠니까 그 공포심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아람군대가 일제히 다 도망을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밥이 다 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먹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고 국그릇도 그대로 두고 반찬도 그대로 두고 달아나기 시작하는데 아람군대가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도망을 쳤습니다. 이 나병 환자들이 군대 막사에 와보니까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에라 내일 죽을지라도 먹고 죽자’라고 하고 들어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먹고 금은보화도 자기들이 전부다 스스로 감추고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라고 할 때 그들 중에 하나가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했는데 임금님에게 가서 빨리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내일 쯤 되면 우리는 몽둥이에 맞아죽을 것이다. 빨리 가서 연락하자”라고 하자 그것을 옳게 여겨 그들이 성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아람군대가 자신들을 꾀어내는 수단으로 피했다고 생각하여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탐꾼을 보내어 실제 조사를 해보니 요단강 건너까지 군기가 다 흐트러져 있고 옷이 내버려져 있고 급히 달아나기 위해 내버린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굶주린 사마리아 백성들을 향해서 “적군의 포위 진지에 가니 모두 다 달아나고 없더라”고 승리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배가 고파 서로 나가려고 막 밀고 당기고 하는데 엘리사를 잡으러 갔던 왕이 의지하는 장관이 문간에 서서 군중을 정리 하려고 문을 막으니 배고픈 군중이 뭐가 보입니까? 장관이 멱살을 잡히고 밀려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그 많은 곡식을 눈으로 보고도 먹지는 못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특별히 보여주시는 것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위를 바라보고 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건강을 가진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고, 나병이 걸려서 사지백체가 썩어 문드러져가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속에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큰 소망은 큰 꿈이 되고 적은 소망은 적은 꿈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지만 꿈을 가지고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저는 목회할 때, 희한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천막교회 전도사 시절 하루는 눈 먼 아주머니가 아들과 딸을 붙잡고 거의 남루하기 짝이 없는 거지 몰골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애 둘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하니 살 길을 좀 열어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머니 여기는 살 길을 열어주는 곳이 아니고 천당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있는 천막교회입니다”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압니다. 내가 양식동냥을 하다가 사람들이 이 천막교회 가면 있는 것을 준다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하며 저보고 살 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줄것이 없고 있는 밥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어찌하다가 남편하고 사별을 했습니까?”하고 물으니 그 아주머니가 “사별한 것 아닙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눈을 볼 수 없어서 혼자서 사는 것보다 남자만 있으면 의지해서 살면 되겠다고 생각 되어서 누가 중신을 해주기에 그 남자와 살았는데 애를 둘 낳고 조금 살만하게 되니 다른 여자와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꼬락서니가 되었습니다. 나를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가 눈은 안보이고 아이들과 같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게 되니 천막교회에 찾아와서 자꾸 간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딱한 사정이 안쓰러워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예배에 참석하게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실로암 연못의 장님이 눈을 뜨게 된 이야기를 설교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예배 중에 혼자 “할렐루야, 전도사님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못보고 태어났으니 이제 나도 눈 뜨게 되겠는데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말은 못하고 뭐라 대답할 길이 없어서 “글쎄, 성경에 그렇게 된다고 기록해 놓았어요”라고 하고 예배를 빨리 마쳐버리고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다음날부터 철야기도 때도, 새벽기도 때도 와서 늘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 내 눈도 보여주시옵소서. 당신의 종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침을 땅에 뱉어 진흙으로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샘에 가서 씻으면 눈을 본다고 했는데 내 눈도 그렇게 해서 띄워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님 자꾸 그 기도만 하지 말고 다른 기도도 하십시오”라고 하자 아주머니가 “아니 이 눈만 뜨이면 내가 어떻게 해도 애들 둘을 먹이고 기르고 교육시키겠는데 눈이 안보이니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주님께서 꼭 해주실 줄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 오니까 그 아주머니가 깡충깡충 막 뛰어와 “전도사님! 엊저녁에 제가 꿈을 꾸었어요. 머리가 긴 어떤 청년이 내게 오더니만 내 눈에 여의도 진흙을 바르고 난 다음 한강수에 가서 씻어보라고 했습니다. 눈이 떠질 모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머니가 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꿈으로 표현된 것이다”라고 하자 아주머니가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꿈에 한강에 가서 눈을 씻으니까 눈이 보이는데 파란 하늘이 보이고 푸른 나무들이 보였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이 딸에게 하나님 은혜를 주셔서 진짜로 눈이 뜨이게 해 주십시오. 소망을 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그 부인이 “아멘” 하며 고개를 들더니만 나를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보냐?”고 하니 “보이는데요? 코도 보이고, 이마도 보이고, 천막도 보이고” 그 아주머니의 눈이 완전히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내 눈을 뜨게 한 하나님이면 무얼 못하겠습니까? 내 신랑이 나를 버리고 갔지만 내 이제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기도해서 신랑이 돌아오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해서 “그건 기도할만 하다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하더니만 그 신랑이 돌아왔습니다.

 이 여인이 그 처절한 절망 가운데도 희망을 가지고 나가니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땅에 희망이 없을 때 하늘을 쳐다보면 최후의 희망이 생깁니다. 죄인이 용서받아 의롭게 될 희망이, 거룩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충만을 받을 희망이, 채찍에 맞으므로 병이 나을 희망이,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희망이, 죽는 사람에게는 사망과 음부를 극복하고 부활 영생 천국을 얻는 희망이 있습니다. 또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고 새로운 생각을 얻을 희망이 있고, 꿈을 꿀 희망이 있고, 믿음으로 살 희망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저버린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안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부어주시고 난 다음 희망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이 자리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고, 지금도 새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그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희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갈보리 십자가가 있는 이상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원수가 아람군대처럼 둘러싸고, 네 사람의 나병환자처럼 처참한 지경에 있을지라도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을 쳐다보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

 절망의 순간에도 새 희망을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인생이 사방이 막혀 갈길을 몰라 헤매일 때 주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늘을 보게 하시고, 작은 희망의 선택을 놓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희망의 승리를 맛보는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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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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