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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2015.09.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중략)…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 37장 1∼10절

 

말은 창조물 가운데 사람에게만 주신 복
변화와 창조, 치료와 평안 누릴 수 있어
항상 긍정적이며, 생명을 주는 말 사용해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 중에 가장 위대한 모습은 하나님처럼 말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음을 받는 즉시 하나님과 대화를 한 것은 말은 인간이 만물 중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을 잘못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버렸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로마서 10장 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6000가지 이상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이 중에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무려 250개나 됩니다. 그런데 언어가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지고, 여러 가지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가 하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1. 말씀이신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이 그렇게 위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말씀이고 말씀이 나다. 말씀과 나는 동일하다”고 하셨습니다.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이기에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만물이 말씀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2. 바벨탑과 언어의 혼잡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가 관영하게 되자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하고 모든 인류를 홍수로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수의 그 비극을 지나서 노아의 여덟 식구를 시작으로 이 땅에 다시 인류가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농사가 안되던 땅도 홍수가 한번 그 땅을 엎고 지나가면 굉장히 비옥한 땅으로 바뀌게 되듯이 노아의 후손들은 홍수 이후 비옥한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잘 되었던지 노아는 포도 농사를 지어 많은 포도 열매를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나서 포도열매를 진하게 짜서 마셨습니다. 그러나 발효된 포도 원액을 짜 마신 후 노아는 취해 발가벗고 드러누워 버리게 되었고, 노아의 아들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둘째 아들인 함이 아버지가 발가벗고 누운 것을 보고 그냥 옷을 갖다 덮어 주었으면 될 것인데 밖에 나와서 “아버지가 발가벗었다. 오너라. 아버지 발가벗은 모습을 구경하자”고 하면서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첫째와 셋째 아들인 셈과 야벳은 “아버지가 취하여 발가벗었으니 우리가 그것을 흉볼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지켜줘야겠다”라고 하고 아버지 옷을 들고 뒷걸음질해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주었습니다. 노아가 나중에 깨어나서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아들들에게 복을 줄 때,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어 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하였으나 함은 셈의 종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9장 24절에서 27절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야훼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노아의 후손으로 번성하게 된 사람들이 시날 땅으로 모여 들었고 곡식이 잘되고, 먹을 양식이 풍부해지니 또다시 하나님을 반역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받들어야 하는데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되니 그들이 모여 “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물로 죽이게 못하게 만들자. 우리 도시를 건설하되 큰 탑을 세워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리 큰 비를 내려도 우리는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자”라고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반역을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벽돌을 굽고 역청으로 시멘트를 삼아서 탑을 쌓아 올라가는데 굉장한 규모로서 탑을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시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 하나님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고 하자 “이놈들을 지상에 흩어버리자”라고 하시고 삼위일체 되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해 바벨탑을 건설하던 사람들을 흩어버리셨던 것입니다. 언어가 혼잡하게 되자 위에서는 “돌멩이 올려라”하는데 흙더미를 올리고, “시멘트를 올리라”하는데 돌멩이를 올리는 등 말이 안통하고 서로 사인이 맞지 않으니 건축을 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서로 각자의 길로 흩어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안됩니다. 바벨탑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말을 어지럽게 하셨기 때문에 탑을 쌓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실 때 말이 동일하게 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창세기 11장 6절에서 9절을 보면 “야훼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야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고 했습니다. 말이 다르면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언어가 혼잡하게 되고, 혼잡하게 되니 서로 통하지 않고,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마음에 오해가 생겨도 오해를 풀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10절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말이 같아야 되고, 사상이 같아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예수 믿고 성령 받고, 방언도 하고, 기사와 이적도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그 면에서 마음이 일치가 되고 말이 일치가 됩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한번 오고 난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고, 십자가를 통해서 병이 낫고, 그 다음 가난이 사라지고 부요하게 되고, 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함께 재림할 것을 믿는 것으로 모든 말이 다 일치가 되니 한번 오면 안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큰 교회가 된 것은 교회에 오면 말이 같아지고, 생각이 같아져서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 태어나서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교육을 받아 가정을 이루어도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 남편과 아내가 같은 말을 하지 않고 다른 말은 하면 그 다음엔 주먹이 오가고 문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배우자가 기초적인 한국말을 하지 못하면 입국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도 한국말을 몰라서 입국이 불허가 된 외국인 배우자가 1000명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말을 못하면 한국에 들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렇게 법을 바꾼 이유는 부부라도 서로 말이 안 통하니 가정 폭력이 빈번하고, 또 이혼하는 사례가 한해 1만 건이 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영이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지 않고 막혀서 소통이 안 되니 육신에 질병이 다가오고, 환경에 저주가 다가오고, 죽음과 멸망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3. 변화와 창조를 가져오는 말

 창조적인 말은 변화와 창조를 가져오는 원료가 되는 것입니다. 말의 힘을 보여주는 두 가지 실험이 있습니다.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으로써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 책에는 물과 관련된 놀라운 실험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물에게 말을 들려주고, 글씨를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어떻게 반응 하는가를 실험 해보았습니다. 한 컵의 물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주고, 다른 컵의 물에는 “짜증나네”라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얼려 얼음이 되도록 하여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들려준 물은 아름다운 육각수의 결정체를 이루었습니다. 반면 “짜증나네”라는 말을 들려준 물의 결정체는 산산조각이 나서 형편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70%가 물로 되어 있는 물주머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말을 할 때, 우리의 몸속에 있는 물들이 좋은 말을 듣지 않으면 박살이 나 몸에 병이 생기고, 세포가 이지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말을 하고 서로 긍정적이 되면 병이 낫고, 치료가 일어나게 됩니다. 긍정적인 말을 통해 우리 몸에 있는 물이 치료가 되고 좋게 배열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한 방송사에서 말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막 지은 밥을 두 군데 담아서 한 달 동안 한 쪽의 밥그릇은 보면서 “고맙습니다, 사랑해, 감사합니다”와 같은 좋은 말을 하고, 다른 한쪽에 있는 밥그릇은 보면서 “짜증나, 미워, 보기 싫어”와 같은 듣기 싫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비교해 보았더니 “고맙습니다. 사랑해. 감사합니다”와 같은 좋은 말을 들은 밥은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나고, 뽀얗게 하얀 색깔을 띠고 있었으나 반면, “짜증나, 미워, 보기 싫어”같은 듣기 싫은 말을 들은 밥은 악취가 나고, 시커멓게 썩은 곰팡이가 가득 했습니다.

 이처럼 말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있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24절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말을 하면 꿀 송이 같이 영혼이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잠언 15장 4절에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마음을 상하게 하는 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질적인 양약이나 한약을 먹지 않아도 우리는 늘 하나님이 주신 천국 약을 먹는데 천국 약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인 것입니다.

 말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3장 9절에서 10절에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했고, 잠언 6장 2절에는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말을 하고 지나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를 얽어매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와 해방을 주기도 하는 등 우리의 삶에 굉장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또 잠언 18장 20절에서 21절에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배가 부르게 되기도 하고, 굶주리게도 하고, 잘 살게도, 못살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에 굉장히 조심을 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4. 치료와 평안을 가져오는 말

 말로써 치료와 건강을 받고, 말로써 환경에 평안과 번영을 가져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할 때,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게 해야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말을 한 것이 귀에 들리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일들이, 잘못된 말을 하면 일들이 잘못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긍정적 단어를 사용하는 일들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말이 우리의 성공, 실패를 가늠하는 일인 것을 사람들이 이제 깨닫고 말의 사용에 있어서 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이 더 좋다고 하니 광고 문구에도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씁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한강변 산책길에 있는 간판에 ‘낚시 금지’라고 썼지만 이제는 그 말 대신 ‘물고기 안전지대’라고 쓴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사람들이 그전 보다 더 낚시를 하지 않아 그 문구가 물고기를 지켜주는 효과를 내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식당에서는 ‘흡연 금지’라는 말 대신에 ‘100세 이상 흡연 가능’이라고 사람들이 긍정적인 말을 썼습니다. 참 재미있고 기발한 생각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더 따르기 때문입니다.

 말을 분석하면 이혼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버드대학교 하버드협상연구소에서 특별한 실험을 했는데, 신혼부부의 말을 분석하여 그들이 이혼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실험은 간단했습니다. 신혼부부들에게 최근에 함께 겪었던 갈등에 대해 몇 분간 얘기해 달라고 한 후 그들의 대화를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서로 간에 오고 가는 말을 단 30초만 분석해도 결혼생활을 지속할지, 이혼할지 90퍼센트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지속한 부부의 경우는 비방의 말과 인정의 말이 1대 5였습니다. 즉 비방하는 말을 1번 했다면, 인정하는 말은 5번 했고, 그런 경우는 결혼생활이 실제로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혼이 예측된 부부들은 인정하는 말을 1번 했다면, 비방 하는 말은 5번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런 부부는 이혼할 확률이 더욱 높았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말을 할지라도 상대를 인정하는 것을 5번 하고 비난하는 것을 1번 하는 가정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정은 1번하고 비난은 5번 하면 그 가정은 무너진다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능하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말을 많이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농사의 명인 미야카와 씨는 벼가 모판에서 싹을 낼 때, 매일매일 논에 가서 “쑥쑥 크게 자라야 한다. 잘 자라야 한다”라고 정성어린 말을 해주면 보통 100알이 열리는 이삭에서 400알을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말의 힘을 우리가 믿고 나가면 말이 우리에게 굉장한 도움을 줄 수가 있음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빌립보서 4장 13절에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혼자말로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은 일이 잘못 될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을 하면 그 말이 실제로 삶속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혼잣말도 큰 효과가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혼잣말도 사고의 한 부분으로 자기 자신과 혼자 대화를 하면서도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힘내. 해보자. 할 수 있어” 이렇게 혼잣말로 자기 자신을 응원하면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면 그것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기 이름을 넣어서 “조용기,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효과를 옛날부터 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하고 산책을 한다든지 운동을 하러가서 내가 따라가지 못할 지경이 되면 “조용기, 너는 힘이 있어. 하나님 성령께서 너와 같이 한다! 너는 피곤치 않다. 조용기, 너는 튼튼하다!”라고 고백하면 자기가 자기보고 말하는데도 굉장한 효과가 있어서 실제로 피곤하지 않습니다. 운동 경기를 볼 때 우리 대표선수가 나가면 우리가 응원을 많이 해주지 않습니까? 그 응원을 들은 선수들이 큰 힘을 내어 좋은 경기를 펼칩니다. 우리가 자신을 응원 하지 않으면 누가 응원을 합니까? 스스로 매일 응원을 하기 바랍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나는 병들지 않는다. 나는 음식도 잘 먹는다. 사업이 잘 된다. 좋은 일이 내게 일어난다!”라고 자기가 자기를 응원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는 잘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오래 산다”라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자기 자신에게 소리 내어 들려주어야 합니다.

 흥망성쇠가 말에 달려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서 11절에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로부터 그것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혀로부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 선한 말을 자기에게 말하고, 이웃에게 말하면 그 말이 큰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생명을 주는 말을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말을 통해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허락하신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인생에도 혀의 말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하시고, 긍정적인 말을 통하여 생명을 나누며,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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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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