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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병
2015.05.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중략)…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17∼26

 

죽음은 예외없이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지만
주께서 대속의 은혜와 천국의 권세 주셨기에
부활·영생의 새소망 갖고 승리의 삶 살아야

 

 우리는 죽음이란 병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한사람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예외 없이 나이가 많아서 죽고, 병들어서 죽고, 전쟁에 나가서 죽고, 여러 가지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됩니다. 모세는 덧없이 짧은 인생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며 시편 90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 90:3∼6) 이처럼 아침에 피어 저녁에 시드는 풀처럼 인생의 밤이 되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덧없이 짧은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죽음의 절망을 사색하며, 그 바탕 위에서 현실에 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모든 인생이 정신없이 살다가 정신없이 떠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2절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1. 큰 고통을 가져오는 죽음


 죽음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50년이 넘는 목회 생활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그 장례식을 참석해서 마지막 설교를 했지만 초상집에 갈 때 마다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특히 젊은 청춘들이나 어린아이들, 친한 주의 종들이 갑자기 떠나갈 때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죽음의 길은 전부 초행길이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오직 두려움만 그 마음에 가득할 뿐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에 대해서 야고보서 4장 13절∼14절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릴 인생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병든 몸이 되어 부자의 대문 앞에서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먹으며 연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추정해 보면 이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부잣집 대문에 병들어서 드러누워 있어도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반면 부자는 붉은색 옷에 흰옷을 입는 아주 호화로운 삶을 사는 큰 부자였나 봅니다. 그런데 호화로운 삶을 사는 부자도, 거지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2절∼24절에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거지는 죽어서 아브라함 품인 낙원에 들어갔으나 이 땅에서 호화로운 삶을 산 부자는 죽어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음부라고 하는 지옥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지옥에서 낙원을 바라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라함 아버지여, 내가 이 불꽃 가운데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사로를 시켜서 물 한방울을 찍어서 제 혀를 서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으나 아브라함은 그 기도를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여기에서 낙원과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음부는 일단 떨어지면 그곳에는 기도응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응답이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 죽고 난 다음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음부와 지옥은 이 세상에 추하고 더러운 것을 다 모아 놓은 곳이고, 타는 불꽃이 얼마나 뜨거운지 견딜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반면 낙원은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믿으면 가는 곳입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모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하셨듯이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과를 먹어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음부와 지옥으로 가게 되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그 하나가 우리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서 살게 되니 얼마나 큰 기쁨이요, 즐거움인지 모릅니다. 이 부자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버림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 거지 나사로는 거지로 처량한 삶을 살았지만 마음에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과 천국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쓰고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천국이 어떠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인 지도자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하는 질문이 “예수님,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고야 이런 기적을 행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영이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 영이 죽었기 때문에 그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영이 죽은 3차원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차원의 영적세계를 알 수 없었습니다. 3차원에 있는 우리에게 4차원의 세계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습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니고데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을 주시고, 원수 마귀에게 묶여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온갖 병을 다 고치시고, 인간생활에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 되시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며, 예수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능, 즉 4차원의 영성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면 우리의 영혼은 4차원의 세계에 속한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은 물질적인 3차원의 세계를 다스립니다. 그 예로써 마가복음 16장 17절∼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런 기적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직 거지같이 하나님의 권세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권세는 잘나서 얻는 것도, 남보다 공부를 많이 해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통해 4차원으로 거듭남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권세를 알고 나가서 당당하게 그 권세를 행사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천하에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속만 했을 뿐 아니라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거듭난 사람의 미래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셔서 사역할 동안에 죄를 사하시고, 허물을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저주를 제하시고, 가난을 제하시고 희망을 주셨으며,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영생복락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4.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육으로 죽었다가 육으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육으로 부활하여 4차원의 영성이 들어오면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게 됩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이 변화산상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대화를 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도 보이셨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그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게도 하셨습니다. 4차원의 세계는 죽음이 없고, 거리의 멀고 가까움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이 육신으로 죽으시고, 육신으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주님이 우리의 영혼을 데리고 낙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보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나와 같이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문득 이와 같은 사실을 잊고 마음에 섭섭함이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중에 믿음으로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너희 보혜사 아니냐. 나는 가되 나와 똑같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처럼 다른 보혜사도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혹여 생활 속에서 해방과 자유가 없이 속박과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른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면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을 3년반 동안 따라다닌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서 한평생을 주님과 함께 살게 되며, 다른 보혜사가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진리를 알고 담대하게 나가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우리의 삶속에서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오라버니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니 마르다는 “부활하는 그날 우리 오라버니가 살 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인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믿느냐”라고 다시 말씀하셨고, 그러자 마르다는 “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 구주이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동문서답이 이어졌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은 믿으나 육신의 나사로가 살아날 것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믿어지지 않으니 무덤에 와서 주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나사로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마르다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내가 나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똑같이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시련과 환난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을 때 “나를 믿으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믿어라!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도와주마”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맡긴다는 것 참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겨야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맡겨 놓고 난 다음에 돌봐 주시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다는 말은 맡긴다는 말하고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으로 33년을 사시며 우리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영생한다는 이 진리를 마음속에 믿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고 하신 주님께서 다른 예수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다가오지만 다시 만날 약속이 있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금방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님 재림 전에 죽은 자기 가족들이 천국에 갔을까 하는 확신이 없어 불안해하자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써서 다시 만날 소망에 대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14)고 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 같이 데리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 모두 살아 일어나서 부활의 몸을 얻습니다. 지금은 영으로 낙원에 가 있지만 부활해서 예수님을 영접할 때는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 그 다음에 살아남은 자가 변화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떤 마을에 꽃을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낡은 옷을 입고 혼자서 살면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손이 아주 뼈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늘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할머니에게 “할머니, 우리가 보기에는 좋아할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좋아서 늘 그렇게 웃습니까?”

 그러자 “나라고 슬픈 일이 없을 수 없죠.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주 안에서 구원받은 기쁨이 마음에 있는데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나는 말합니다. 예수님도 사흘 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하셨는데 사흘만 기다리자! 내게 어려움이 있을 때 사흘만 기다리자고 말하고 사흘이 지나면 문제가 다 달라지게 보인다. 사흘만 기다리자!” 하며 이겨 내셨답니다. 우리 역시 사흘만 기다리는 인내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사흘이 지나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절망으로 다가오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부활이 소망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사흘만 참으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소망이 있는 자들이며, 소망이 있으면 꿈이 생겨납니다. 꿈이 있으면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이 있으면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말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말하게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중생한 사람이요, 영이 살아난 사람이요, 그 영이 4차원의 세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나 원치 않으나, 알거나 모르거나 존재적으로 주어진 4차원의 권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입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신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흑암의 세계에서 해방과 자유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속박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명령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귀신아 물러가라! 질병은 사라져라! 저주는 물러가라! 실패는 사라져라!”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화상을 마음에 간직하며, 승리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병 앞에서 두려움과 걱정, 실패와 좌절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진정한 창조자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하늘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시며 새 소망을 주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 잃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손꼽아 기다리는 매일이 되게 하여 주시며, 주님 주신 권세로 천하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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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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