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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
2015.01.1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중략)…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장 12∼18절

 

 

‘하나님의 사람’ 우리는 십자가 통해
성령의 능력 소유했다는 믿음과 고백으로
새 옷 입고, 새 사람되어 축복의 인생 누려야


 전도서 1장 9절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만물은 일상적으로 되풀이 될 뿐이지 실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새 것’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의 헬라어가 사용되는데 시간적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네오스’라고 합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세월이 흘러가서 오늘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질적인 새로움, 완전히 속이 달라져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카이노스’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생활이란 ‘네오스’ 즉, 세월이 흘러가서 어린 사람이 나이 먹은 성인으로 변하여 자라는 것과 같은 시간적 변화의 새로움이 아닌 ‘카이노스’ 질적으로 새로워져 예수를 믿음으로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할 때 ‘카이노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가 질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고 교회 등록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모든 삶이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입게 되며, 그냥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버림받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화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고, 4차원의 영성으로 환경을 다스리고 변화시키고, 기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냥 보통사람으로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삶으로 누더기를 걸친 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부패와 부정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누더기가 되지 말아야 함에도 물질적 발전과 더불어 도덕적, 윤리적인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고만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가 되면 무엇합니까? 일본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해서 버리는 세월호와 같은 고철덩어리를 사와서 여객선을 운행하니 결국은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고, 애꿎은 수많은 생명들만 희생 당하고만 것입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바로 부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버리지 못해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고쳐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누더기를 기워 입듯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땜질하듯이 사회를 고쳐서는 새롭게 되지 않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듯 통째로 새로워져야 하는데, 그 비결은 예수님을 통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어서 그것이 우리 가정과 사회와 생활에 행해질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9∼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생각이 새로워지고, 꿈이 새로워지고, 믿음이 새로워지고, 말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것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근본적인 변화를 체험해야 됩니다. 애벌레가 이전보다 더 잘 기어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으며,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는 것과 같이 완전히 새롭게 되는 변화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더기를 기워 입듯 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을 통해 옛사람이 완전히 죽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했듯이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생각은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만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이 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이 이루어져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을 꿈꾸는 내적 상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 탁월하게 다른 부분입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 좀 나눠주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될 선한 행위이지 그 자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려있다’ 무덤에 들어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는 ‘내가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들어간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는 ‘내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해서 승천한다’라고 상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상하지 못하면 신앙이 발전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생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죽음에서 부활한 것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같이 죽고, 함께 부활 승천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늘 고백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성경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누더기 옷과 같은 모든 것을 대신 받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삶 그 자체가 탐욕에 젖은 누더기 옷인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모든 누더기를 예수님이 받아 입으셨던 것입니다. 자기의 의롭고 깨끗한 옷은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 우리의 누더기 옷을 대신 입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버림을 당했는데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처음 아담이 가지고 온 죄와 죽음을 다 지시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용서와 의와 거룩함을 얻고,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자기 생명을 내게 주시고 우리의 누더기 인생을 인계 받아가지고서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라는 누룩이 그 안에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은 가르쳐도 잘 안되는데, 반면 가르치지 않아도 죄는 짓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죄의 누룩이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탐욕에 젖은 누더기를 입고 태어납니다. 아담의 유전을 통해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며,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기 때문에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를 끌어안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로 말미암아 괴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적은 죄나 큰 죄나 할 것 없이 전부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못을 박아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낱낱이 다 청산했을 뿐 아니라 영원히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누더기, 허물의 누더기, 질병의 누더기, 저주의 누더기, 죽음과 음부의 누더기를 다 덮어쓰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때문에 다가온 죄악의 결과를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그것이 진짜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3.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누더기가 아닌 새옷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할 때 성령의 진정한 변화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7절에도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그 역사적인 사실을 뼛속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새옷은 무엇입니까? 오중복음의 옷입니다. 용서와 의의 옷을 받아 입고, 성결과 성령충만의 옷을 받고 입고, 치료와 건강의 옷을 받아 입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옷을 받아 입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그 옷을 받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중복음의 옷을 받아 입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고 입술로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운 옷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거룩한 옷을 입었다. 나는 치료의 옷을 입었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었다. 나는 부활 영생의 옷을 입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은 새 옷을 받아 입었기 때문이다”라고 입술로 고백하면 성령이 와서 “네가 말한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생활에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증거가 바로 삼중축복의 두루마기를 입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3∼5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은총과 축복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 생활에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 있더라도 “나는 독수리같이 새롭게 될 축복을 받았다. 나의 죄가 다 용서되었고, 의롭게 되었다. 나는 형통함을 입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계속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그 말은 에너지가 되어 환경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결국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말을 하지만 그 말이 나가서 에너지가 되어 우리에게 책임지도록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서 입술을 지키면 많은 불행과 슬픔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바르게 해야 되고, 꿈을 바르게 꿔야 되고, 바르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입술로 자꾸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주님께 다 맡겼다. 예수님께 다 맡겼으므로 무겁지 않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라고 고백할 때 말이 에너지가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와서 종교적인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와서 자유와 해방을 얻는 것입니다.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과 속박에서 해방되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떠나가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천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시고, 그 못 박힌 손을 내밀어 “내게 오라. 내가 너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주마”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의로운 옷, 거룩한 옷, 치료의 옷, 축복과 형통의 옷, 영생복락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더불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전인구원의 옷도 입혀주십니다. 우리는 그 옷을 생각하고, 그 옷을 입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옷이 내 옷이라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주님이 주시는 그 모든 옷들이 우리의 옷이 되는 것입니다.

 

 4.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새 옷을 입으라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이 당하신 고통이 나를 변화시키는구나”라고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 꿈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자기비하의 말이 아니라 “나는 주님 때문에 새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이 나와 같이 계시며, 저주는 다 물러갔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이 된 모습을 항상 바라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리고 믿음으로 산다고 입술로 고백하며 살아가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가 넘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축복은 없습니다. 아담의 유전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죄악은 예수님이 짊어지고 갈보리산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며 청산된 것입니다. 죄악은 끊어졌고, 허물도 다 벗어졌고, 질병도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도 내 것이고, 천국도 이미 내것이 되었음은 더 이상 말할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새 인생, 새 옷을 입는 축복된 인생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누더기 옷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가 준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리고 기근이 들어 죽게 되어 다 떨어진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버지가 그 아들의 냄새나는 목을 감싸고 환영을 하며 종들에게 말합니다. “냄새나고 구역질나는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철저히 십자가에서 대신 고통당하신 것입니다. 머리카락 하나만한 죄도 이미 예수님께서 다 청산해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극히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같이 계실 정도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절대로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일생 살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를 남긴 기적을 행하신 주님께서 희한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의식을 집행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그 앞에 나가서 구주로 모셔들이면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의 모든 죄와 질병을 다 책임지시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닙니다. 저주가 다 청산되었습니다. 이제는 새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속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카메라를 가지고 변화되고 축복받은 자기의 모습을 찍어 마음의 액자에 걸어놓고 매일 같이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또 확실히 믿고, 늘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담의 유전으로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누더기를 걸친 것과 같은 비참한 인생속에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주셔서 모든 더러움을 제하여 주시고, 구원과 자유와 축복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직 우리에게 주신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모든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는 놀라운 은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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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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