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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놓은 싸움을 싸워라
2014.10.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야훼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중략)…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장 1∼9절


다가온 저주·가난·문제 하나님이 이미 해결하셔
이미 이겨 놓은 싸움 담대하게 내것으로 만들어야
오중복음 삼중축복은 십자가 통해 주신 위대한 선물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를 따라서 이스라엘 300만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의 일입니다. 가나안은 이미 이방민족으로 꽉 들어차 있었고, 쉽게 들어가서 빼앗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불러서 ‘이 땅을 이미 너와 네 백성에게 주었고 너희의 땅이니 되었으니 들어가서 점령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이겨 놓은 전쟁이니 가서 정복하고, 차지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인간은 원수 마귀에게 정복당해 죄와 허물의 종이 되었고, 병과 가난과 저주에 짓밟혔고,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모든 일에 영혼이 잘못됨 같이 범사도 잘못되어 몸은 병들고 형편없는 생활을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몸찢고 피 흘려 마귀 권세를 정복하신 후에 우리에게 “너희들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축복의 땅을 점령하라. 이미 내가 이겨 놓았고, 내가 다 이루어 놓았으니 들어가서 빼앗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 십자가를 통해 주신 영적 가나안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여 영적 가나안 땅을 마귀에게서 빼앗아 놓으셨고, 우리에게 이미 이겨놓은 전쟁에 나가 싸워 차지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가나안 땅을 점령하도록 해 놓았으니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침노해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의 것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15절에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병들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주님께 기도하면 ‘내가 다 이루어 놓았다. 너는 반드시 그것만 알고 들어가 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것처럼 영적인 가나안 땅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으로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2천년 전에 오셔서 우리의 죄와 불의와 추악을 다 청산해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이 진리를 깨달아 믿음으로 의의 선물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그렇게 헐값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나 결코 헐값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청산해 버리셨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믿고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행위도 없이 구원을 받으면 너무 값싼 구원이 아니냐?’라고 질문합니다. 또 ‘공짜로 구원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잘못된 이해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처럼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그 행위를 통해 열매를 맺게 함으로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게 나타나게 하십니다. 구원은 보혈의 공로를 통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행위는 구원받은 사람이 장차 주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 때 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 이겨놓으셨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죄는 이미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 청산해 놓으셨는데 그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믿지 않으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이땅을 의롭게 산 인생들이 지옥 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착하고 훌륭한 삶을 살았어도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가장 큰 불신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죄와 허물을 이미 이겨놓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병도 이미 이겨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의 문제를 이미 다 청산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영혼이 깨닫고 알 수 있도록 자꾸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입술의 고백을 통해 말씀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혼과 영과 및 골수와 관절을 쪼개는 능력으로 병을 쫓아내주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도 이겨놓으셨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하는 일마다 안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있을 때 주님은 “내가 다 이루어 놓았다”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가난을 대신 청산해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가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 받은 사람임을 늘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한 분이심에도 친히 가난하게 되어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청산해 버리셨습니다.(고후 8:9)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해지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부요함을 마음껏 누려야 하며,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음부도 이미 이겨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를 철폐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낙원을 예비해 놓으셨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그 낙원에 들어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는 우리는 죽어도 살고 주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셨으니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55∼58절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처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주를 섬기고 일하면 그것이 상급으로 나타나게 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 많은 상급과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다윗과 사울의 차이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블레셋 대장군인 골리앗의 도전을 받았을 때 사울왕은 인간의 관점에서 골리앗을 평가하고, 미리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니 골리앗은 대장군이요, 감당할 수가 없는 영웅호걸이었습니다. 그러니 싸우기도 전에 사울과 그 군대들은 가슴속에 자기들이 패배했다고 생각을 했고, 패배했다고 꿈꾸었고, 공포심을 가지고 뒤로 물러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8∼11절은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비교가 안됩니다. 거인에 어마어마한 무기들까지 지녀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패배자로서 마음이 위축되고 결국 뒤로 물러가고 만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군대와 싸워서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을 다윗은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들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다윗은 알고, 하나님이 승리주실 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미 골리앗 같은 육의 사람을 정복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만물을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지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아무리 골리앗이 위대한 장군이라도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다윗은 목동으로서 양무리를 돌볼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가면 그 입에서 빼앗아 찾아 왔고, 곰과 사자들이 덤벼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며 그 짐승의 수염을 잡아 주먹으로 쳐 죽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저 골리앗도 곰과 사자와 양들을 훔쳐갔던 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6∼37절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야훼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왕이요, 대장군이고 이스라엘 군대들은 다 백전용사들이었지만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군인도 아니고, 약 17살 정도 밖에 안되는 소년이었습니다. 3차원의 물질의 세계를 가지고 비교를 해보면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안되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육척이나 되고, 온몸을 완전히 놋으로 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17살 먹은 어린 다윗이 양치는 막대기를 들고 골리앗을 대적해서 나가겠다고 하니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골리앗은 자신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이스라엘을 이미 정복한 원수로 보고 단칼에 쳐 없애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윗은 반대였습니다. 그 마음속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다. 장군이든 아니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이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생각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나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 나는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라고 생각 하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사는 4차원적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의 세계 즉,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살면 창조적인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대적해 나갑니다. 그는 돌 다섯 개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물매를 손에 흔들면서 뛰어갑니다. 이런 다윗을 보며 골리앗은 우습고, 하찮게 여겼지만 다윗은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 물맷돌을 던지니 돌멩이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서 거대한 골리앗은 쓰러져 죽고, 이스라엘은 그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감각적으로나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전인구원을 얻은 우리, 승리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믿고, 입술로 승리를 고백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똑같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사울은 육의 사람으로 실패의 삶을 살았고, 다윗은 영의 사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예수님이 날 위해 죄와 허물을 청산하고, 날 위해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을 고치시고, 날 위해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날 위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셨다. 나는 오중복음을 받은 사람이요,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면 죄와 허물이 겁나지 않습니다. 병이 두렵지 않습니다. 가난과 저주가 무섭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다가올 때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정복해 버린 원수들이며,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 담대히 맞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주신 것을 알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죄도 두렵지 않습니다. 병도 두렵지 않습니다. 가난과 저주도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긴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에게 주신 승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를 해야 합니다. 몸이 아프고 괴로우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 너희 고통은 물러가라!’ 일을 하다가 일이 안되면 ‘저주는 물러가라! 저주는 예수님이 다 청산하셨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요한 사람이다’ 죽음이 다가오거든 ‘아직 100살 안되었으니 죽지 않는다. 때가 안 되었으니 미리 다가오지 마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당당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입술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있으니 그것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그 승리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면 흑암의 세력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38절은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울과 그 군대처럼 물러가서는 안되고, 다윗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선언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고 원수를 대적해서 나갈 때 우리에게 승리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고 꿈이 없고 기적을 믿지 않고 두려워 떨면 패배를 말하게 되고, 뒤로 물러가 필연코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승리가 내 것인 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만 볼 때 태어나면 바로 뛰어 다니는 동물들보다 못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위대한 것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꿈을 꾸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새가 공중에 나는 것을 보고 사람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비행기가 발명이 되었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돌면서 사람들이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통해서 위대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 꿈을 바라보고, 그 꿈을 믿고, 그 꿈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꿈이 우리를 이끌어가서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갖는 꿈에 의해서 우리의 미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유태영 박사는 “잉태한 사람이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아기를 낳는 것처럼 꿈도 기한이 차면 반드시 성취된다”고 말했습니다. 꿈이 없으면 기적을 믿을 수 없고 결국 주님께서 주신 승리를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뒤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를 이길 꿈을 꾸고 있어야 하고, 병이 깨끗이 낫는 꿈을 꾸고 있어야 하고, 하는 일에 성공하고 넉넉한 부자가 되어서 이웃과 나누는 꿈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자가 되도록 만드셨고, 우리가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만드셨지 지옥에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승리자들입니다. 스스로를 바라볼 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은 승리자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힘이 있는 우리 입술의 말을 통해 자신을 격려하고 이웃을 격려해야 합니다. 축복은 이미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그 축복은 우리의 것이 되었고, 더불어 그 축복을 나누며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좋으신 하나님! 우리 인생에 모든 싸움에서 승리 주심에 감사합니다. 모든 문제에서 자유함을 주시고, 승리를 꿈꾸고 차지하게 하신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며, 모든 이웃과 그 승리의 기쁨을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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