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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가르쳐 주는 교훈
2014.03.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1∼5절

고난은 원수가 아니라 좋은 일 위한 토대가 돼
어두운 장막에서 나와 하늘 바라보며 기도하면
복의 근원돼 번성케 되는 아브라함의 복을 얻어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한없는 복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평탄치는 못했습니다. 그는 불같은 시험을 통해 복을 받음과 동시에 믿음과 순종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과 순종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인생의 시련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성과 감각 그리고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장막에서 나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꿈을 주시고 망가진 인생의 화폭에 손을 대셔서 멋진 걸작품으로 완성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의 걸작품으로 만드셨지 형편없는 졸작품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교훈을 함께 깨닫기를 원합니다.

 

 1. 새 삶의 출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까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75세까지 자기 멋대로 산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신이 75년이나 머물렀던 둥지를 다 털어버리고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살고 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자신이 지시한 곳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은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 출발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아브라함과 같은 과정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첫 명령은 바로 ‘떠날 때는 떠나라!’는 것이며 그리고 ‘갈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떠나고 가는 것이 분명해야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복을 주셨습니다. 바로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되겠다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주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약속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시련과 고난도 허락하셨습니다. 떠나온 땅에서 완전히 손을 털고 오도록 만드시고 들어온 가나안 땅에 와서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연단하신 것입니다.

 

 2. 새 삶의 시련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올 때 많은 것을 챙겨서 가지고 데리고 이고 지고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것이 참 힘듭니다. 물론 75년 동안이나 살아온 고향산천을 완전히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떠나기는 했는데 떠나올 때 친척들과 종들을 데리고 그리고 모아놓은 재산도 나눠주고 오기가 아까워서 전부 꾸러미를 만들어 바리바리 걸머지고 고향산천을 떠났습니다.

 아마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천사장이 “하나님, 저 사람이 누굽니까?”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나의 명령을 따라 고향 친척 있는 곳을 떠나서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장은 “어? 안 그런 것 같은데요? 자세히 보니 온갖 일가친척들이 다 따라오고 조카도 따라오고 기르던 소와 양 온갖 짐승들도 다 이끌고 종들까지 모두 데리고 일대 군단이 걸어가는데요?”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내가 보기에도 그렇구나! 그러나 앞으로 시련과 연단을 톡톡히 당하고 나면 저런 것들은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 두고 봐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장 떠나 지시한 곳으로 가면 복이 마구 떨어질 줄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가나안에 왔는데 그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기근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이 전부 바짝 말랐습니다. 초목과 곤충이 다 타죽고 농사지을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을 따라온 친척들이 모두 불평으로 고함을 치고 종들도 야반도주를 하고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마음에 꾀를 내기를 ‘하나님이 하라는 데로만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저 적당히 믿어야지 100% 믿었다가는 신세 망치겠다. 지금 이런 기근이 가나안에는 왔어도 애굽 땅에는 물이 풍부하고 농사도 잘되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니 우리 애굽으로 살러 가자’하며 이제 하나님께서 지시도 하지 않은 곳으로 자기 마음대로 갑니다.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동안 사라와 같이 살았으나 자식은 없었습니다.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절세미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긴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인생에 별 재미는 없었으나 아름다운 자기 부인의 얼굴 쳐다보는 재미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미스코리아 정도는 아니어도 아마 마음에 감탄할 정도로 예뻤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 아내에게 “애굽으로 가면 당신은 이제 내 아내가 아닌 여동생 행세를 해주시오”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애굽에 도착하니 원래 새로운 사람이 오면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절단강산입니다. 아브라함의 예상대로 사람들마다 아브라함의 여동생을 구경한다고 떼를 지어서 모여오니 아브라함이 기가 턱 막힙니다. 설상가상으로 애굽의 바로까지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바로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고 그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어 바로의 궁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이 길만이 제가 살 길이라고 꾀를 내었는데 그 꾀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라고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야훼 하나님께서 바로와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고 다시 아브라함을 불러들여 아내 사라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날 때 함께 데리고 떠났던 조카 롯과도 결국에는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창세기 13장 7절로 12절은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야훼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았으면 괜찮았을 것인데 그는 자기의 계획과 지혜를 따라 꾀를 내어 애굽으로 내려갔고 조카 롯에게도 짐승들도 많이 나눠 주었고 자기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잘 살려다가 실패를 많이 했습니다. 성경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의 길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 나왔으면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물론 믿음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시련과 연단이라는 훈련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3. 장막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봄

 장막에 엎드려 땅만 바라보며 기도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 꿈을 품고 그리면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고집스러운 우리의 이성과 감각의 장막 그리고 인본주의와 물질주의의 장막에서 나와야 됩니다. 천막 밑에서 기도하면 천막과 흙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막에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면 수많은 별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의 부귀영화와 공명, 낭패와 실망을 생각하며 땅만 바라보고 기도하지 말고 천막에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성이라는 천막, 감각이라는 천막, 인본주의라는 천막, 물질주의적인 천막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거기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세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을 생각하라. 마음에 꿈을 가지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은 바로 성경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바라보고 읽으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별처럼 마음에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의 별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바라보고 기도하면 그 목표의 별은 이뤄집니다. 목표를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꿈을 꾸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진정한 원동력이요 힘은 바로 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허락하신 것도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동안 꿈이 없이 기도했습니다. 천막에 엎드려 불평해가면서 “내 아내는 지금 65세가 되고 나는 75세인데 아들을 낳지 못했으니 이제 모두 포기합니다. 이제 종들 중에 하나를 후사로 삼겠습니다”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브라함이 장막에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본 것이 그에게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15장 3절로 6절은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늘을 바라보고 꿈을 얻었고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0세 때에 아들 이삭을 얻은 것입니다. 

 바라봄과 믿음 바로 그 법칙을 통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꿈이 생길 때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꿈을 마음에 그리고 바라보고 있으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겨나면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며 날이 가고 달이 가면 결국 이뤄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전지전능하시고 영광스러운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이뤄지도록 역사하십니다.

 꿈은 이성과 감각을 초월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나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이성이 한계 짓는 불가능의 벽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꿈은 현실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마음에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 꿈이 믿음으로 변화되고 그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매우 분주하고 바빠지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기에 우리가 꿈꾸고 믿으면 그것을 이뤄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성과 감각을 초월한 꿈을 꾸기를 원하십니다.
 

 4.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요? 잘 살든 못 살든 누구에게나 마음에 삶에 대한 회의가 들어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을 깨닫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궁극적인 목표와 사랑을 깨달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부귀와 영화 그리고 공명을 다 가졌어도 하나님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편 1절에서 2절은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어떤 일이든 그 무엇을 소유하고 행해도 결국에는 헛된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비로소 삶의 목표와 살아갈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고 얻게 되는 지위나 명예나 물질과 같은 것들은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환영하고 모셔들이며 의지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고 훈련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한편으로는 복을 주시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시험과 환난을 반드시 주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르쳐주고 사랑을 가르쳐 주는데는 시련과 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시련과 연단을 위해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도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배운 것은 바로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의 시험을 순종과 사랑으로 통과하였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만한 순종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장 21절에서 23절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기록합니다. 아들을 내놓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 14절에서 15절은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시련을 준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 믿음과 순종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시련을 유익으로 플러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로 계산해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심은 아니십니다. 실제로 시련의 때를 조금만 참으면 시련은 분명히 끝이 납니다. 결국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을 믿고 더욱 하나님께 의지해서 견뎌내고 버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이 변하여 오히려 복이 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모든 것 즉 좋고 나쁜 것, 즐겁고 슬픈 것 모두 다 합력하여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나가면 고난과 시련조차도 모두다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 중간에 포기하면 그만큼 손해가 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유익을 이루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꿈도 주시고 믿음과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도 주시고 순종과 헌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는 결과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통해 평생 항상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생각을 닮는 그릇인데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하므로 마음에 언제나 하나님의 생각이 가득 차 있어야 됩니다. 그 생각이 바탕이 돼 우리는 꿈을 꾸고 그 다음에는 믿음을 얻고 그것을 감사와 찬양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이 다가와도 그 고난이 원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토대를 닦아 주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십시다. 믿읍시다. 감사의 기도를 늘 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자신을 늘 축복하십시다. 스스로 축복한 복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우리는 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이끌어 주십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고난이 올 때마다 그 고난을 통해 원망과 불평이 마음과 입술에서 넘쳐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시련과 연단을 통한 고난도 더 이상 우리에게는 원수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꿈을 얻고 믿음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성과 감각의 장막에서 나와 말씀의 하늘을 바라보고 약속의 별들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믿음과 고백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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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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