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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담긴 보배
2014.02.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린도후서 4장 11∼12절

 

질그릇인 우리 안에 담겨진 참된 보배 예수님
고난과 위기에도 전인구원의 꿈과 소망 품고
믿음으로 바라보면 응답과 기적을 체험케 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보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돼 사람으로 태어나 33년 동안 이 세상에 사시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고 우리의 모든 죄와 질고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셔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로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 대신 의, 허물 대신 거룩함, 질병 대신에 치료와 건강,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지옥 대신에 천국이라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면 항상 은혜가 넘치게 되고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여 우리의 모든 인생이 아름답게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질그릇이요 우리 안에 담겨있는 보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1.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8절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사방에서 압력을 당해도 질그릇인 우리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든지 바라봄의 법칙에 따라 그 대상이 우리의 삶속에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보배인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아야 됩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볼 때 자기도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파도와 바람을 바라볼 때는 물 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력이 죄와 허물의 압력도, 질병과 고통의 압력, 저주와 가난의 압력, 죽음과 절망의 압력 등 모든 압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힘차게 예수님을 바라봐야 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8절로 9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18편 8절로 11절은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생각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께 드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꽉 붙들어 요동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꿈을 통해 우리를 안아주시며 믿음을 통해 우리와 같이 있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 우리의 삶에 함께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꿈 그리고 믿음과 입술의 고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도 반드시 우리의 생각과 함께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꿈이 있어야 성령이 역사합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생각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꿈을 이뤄주시고 그 다음에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말씀을 통해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기 원하시며 친히 우리를 둘러 진쳐주셔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께서 들어와 계시므로 우리는 절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와 복으로 우리를 둘러 진치고 계십니다. 원수가 아무리 우리를 욱여싸고 있어도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를 둘러 진쳐 지켜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보배인 예수님께서 함께 거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답답한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하며 삶의 수고로운 짐과 문제 때문에 괴로움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고 구하면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 용기와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모든 면에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자로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승리자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시편 27편 1절은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과 구원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김치 담가먹는 배추나 무 등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채소들은 엽록소라는 물질을 통해 햇빛을 받아 산소동화작용을 통해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이 양분을 통해 식물들이 자라고 그것들을 또 동물들이 먹고 그것을 우리가 잡아서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육신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빛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빛은 육체적인 양식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완전한 빛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요 생명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먹고 마시면 우리의 인생이 빛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시편 91편 1절로 2절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요새요 전능자이신 야훼를 바라보고 그렇게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둘러쳐오는 원수를 피하는 유일하게 완전한 피난처이며 또한 적군이 둘러 진을 쳐도 문제가 없는 요새입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입술로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입술로 고백하면 놀랍고 강력한 능력이 우리로부터 나와서 우리의 주위를 둘러 진을 치게 됩니다.

 또한 요한복음 16장 33절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게시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 항상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말씀이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만듭니다. 우리가 아주 속이 답답할 때 오히려 더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고 해결되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고백하면 그 답답한 일들이 모두 다 해결됩니다. 이렇게 믿고 고백하면 우리는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절대로 낙심치 않습니다. 

 

 3.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핍박과 왕따를 당해 친구도 없고 사귀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참 친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절대로 적막하게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중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요사이에는 학교에서 우리 믿는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친구들의 그룹과 어울리거나 들어가지 않으면 소외당하고 구박을 당합니다. 특히 아직도 저 바다건너 중동에 가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슬람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아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36년 동안 일본의 치하에 있으면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핍박을 당했고 6.25 전쟁 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총살도 당하고 핍박도 당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제일 좋은 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고통당하면서 순교하여 믿음을 지킨 결과로 우리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위기와 풍파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나라를 버리지 않고 붙잡아서 주셔서 이제 아시아는 물론이요 세계에서 이름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박해를 당해도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사랑해주시는지 그 사랑이 그 어떤 악한 세력들도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고 늘 외롭지 않게 예수님께서 친구로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앉으나 일어서나 들어오나 나가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7장 9절로 10절은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보며 속으로 독을 품고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미워했습니다. 우리도 혹시 주변의 친구나 이웃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참나! 말도 안돼. 꿈꾸는 소리하고 있네” 그렇게 말하면 그건 욕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이니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꿈이 우리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꿈을 가지고 있으니 종으로 팔려도 감옥에 갇혔어도 결국 바로 왕에게 불려가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꿈은 우리의 길을 다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아무리 사람에게 박해를 당해도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돌봐주십니다.

 요셉을 보고 형제들이 ‘우리가 저 놈을 죽여서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하며 꿈꾸는 사람을 죽여 버리면 꿈이 이뤄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이미 그의 꿈이 그 사람을 죽지 않도록 길을 예비해 놓습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백성은 형통하게 되고 죽음의 길을 피하게 되어 잘살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전인구원의 꿈을 가져야 됩니다.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 형통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하고 바라보고 믿고 그려보면 그 꿈이 우리를 형통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절대로 마음을 빈 마음으로 방치하면 안됩니다. 긍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을 채우고 그 마음 한가운데 우리의 꿈을 그려두고 바라보며 언제나 꿈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아니하는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꿈을 주기 원하시며 우리가 늘 꿈꾸기를 원하십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그것은 ‘때려 눕혀 파멸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보배로운 예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딱 버티고 계시므로 아무리 우리를 때려눕혀도 죽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2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했으니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면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으심을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절에서 12절은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죽을 힘을 다해 일하면 부활의 능력이 우리 속에 가득하게 넘쳐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거꾸러져도 멸망하지 않게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이요 우리의 피난처시며 의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버티고 계시므로 우리는 욱여싸이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습니다. 또한 어떤 원수가 핍박해 와도 도리어 그것이 복이 되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여 우리가 망하지 않게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온전히 긍정적인 것들만이 우리를 붙들며 부정적인 것은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살고 육체로 살지 말아야 됩니다.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생각과 꿈을 통해 살고 믿음과 입술의 고백을 통해 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는 마음을 통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적 감각과 탐욕을 통해 살고 의심과 불안을 통해 살고 절망과 낙심을 통해 살면 3차원의 세계에서 사는 것으로 도둑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엉망진창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날마다 기도하면서 늘 마음으로 살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4차원의 영성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4차원의 영성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 생각과 꿈을 통해 나타나시고 믿음과 말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확실히 알고 십자가 구원의 승리를 바라보고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믿고 승리를 외치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과 삶에 넘쳐나 우리의 생각과 꿈, 믿음과 말을 통해 4차원의 영성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테러와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땅인 아프카니스탄에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 이시온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곳은 밤낮으로 테러가 일어나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아침에 선교하러 나가면 저녁에 살아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그 두려움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선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구한말에 감리교 선교사로서 26세 때 조선에 들어온 루비 캔드릭(R. Kendrick)이라는 여성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9개월 만에 질병에 걸려 순교했지만 그녀가 남긴 일기장에는 “내게 일 천개의 심장이 있다면 나는 그 심장을 하나하나를 터뜨려서 조선을 위해 죽겠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시온 선교사는 그 글을 읽고 성령으로 감동돼 “너도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그와 같이 죽거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천개의 심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고 지금도 아프카니스탄에 들어가 살며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 책에 적힌 시 한편을 읽어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땅을 보면 내일이 없어 보이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이 땅을 보면 눈물만 보이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미소가 생깁니다. 이 땅을 보면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살아야 할 힘이 생깁니다”

 우리에게는 바라볼 수 있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든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든지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얻은 믿음으로 바라보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것이 이뤄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면 그 바라봄의 응답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우리에게 소망과 믿음을 주시고 기적과 복을 주십니다. 그것을 받아 삶의 고통으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전하고 나눠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마음에 참된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을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함을 믿습니다.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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