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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
2012.10.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1∼3절


모든 일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어
주님 정하신 때와 방법을 믿고 순종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면 창조적 역사 체험


 유다의 시드기야 왕 제 십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대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그 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기 조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를 것을 두려워해서 왕과 국민들에게 회개하라고 동분서주하며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참소해서 그는 감옥에 갇혀 버렸습니다. ‘하루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직전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실패의 홍수를 만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종종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함에 몸부림칩니다. 예레미야의 상황도 이와 같았습니다.

 예레미야 33장 1절에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을 때 그는 아직도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제 곧 성이 함락될 위기에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숭배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군대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결국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될 상황에 처하자 예레미야는 절망했습니다. 민족의 멸망을 눈앞에서 보고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좌절하고 포기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그 시간에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마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날의 태양 빛이 떠오르듯이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자신의 주권적인 섭리와 계획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고 장래의 희망찬 소망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예레미야를 위로하셨습니다. “너는 못해도 나는 한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다시 돌아오게 하고 망했을지라도 다시 재기하게 만들어 줄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내게 맡기라”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주권

 우리가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워야 될 것은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은 내 일이니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그저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이는 야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고 마실까?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것도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붙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돌려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십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은 하나님과 주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기를 원했던 욕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옳고 그름의 결정권을 오직 자신만이 행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좋다면 아담도 좋아야하고 하나님이 나쁘다면 아담도 나빠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아담과 하와가 믿고 순종하기를 원했지 자신과 주권을 동등하게 가지고 하나님과 경쟁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꾐을 받아 하나님과 동등되기를 원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주권을 나누기를 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전 우주에 주권자는 한분밖에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주인이요, 주권자인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지 하나님과 공동으로 이 세상을 운영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조건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순종과 믿음만 가지고 있지 자기 주권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무엇보다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자신의 자주권을 포기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나이 80세가 되어 양떼를 거느리고 산비탈을 지나가는데 가시넝쿨에 불이 확 붙었습니다. 사막에는 해가 비치기 때문에 종종 가시넝쿨에 불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시넝쿨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도 않고 타지도 않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가보니까 하나님께서 그 가시넝쿨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가시넝쿨일까요? 그것은 모세가 자기 인생이 가시넝쿨같이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시넝쿨에 하나님이 불꽃같이 나타난 것은 모세에게 ‘너는 스스로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너희 속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가시넝쿨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주권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신을 벗어 던지는 것은 내 권리를 양도한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신을 벗은 것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인생의 권리를 주님께 양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네 신을 벗고 네 삶의 주권을 내게 내어 맡겨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네 짐과 삶을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책임져 주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혹시 책임져 주지 않으셔서 망할까봐 걱정되십니까? 그러나 망해도 걱정할 것 없는 것은 하나님은 망한 자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주권이 있으니 염려마십시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특출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자인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원하셨을 때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장작위에 얹고 각을 떠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칼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여 하나님께서 도로 살려 놓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무소불능하므로 죽여 놓아도 살릴 것을 믿고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한 것입니다. 그 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자기 일생을 내어 맡긴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책임지고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하고 번창케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 주권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의 주인은 하나님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일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주님의 것입니다. 내 자신도 주님의 것이고 내가 맡은 일도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주님을 곧장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때와 방법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때를 거스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자세히 살펴야 됩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때는 다릅니다. 전도서 3장 1절로 8절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일에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때를 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때를 어떻게 분별합니까? 성령께 의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신 때를 따라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간절히 알기를 소원하고 바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를 앞서서 나가면 큰 실패를 하고 때를 늦게 따라가도 큰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를 알아서 그 때에 우리가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을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방법으로 계획을 세워서 일을 했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구약 시대에 아람왕의 군대 장군인 나아만은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여종을 잡아서 하녀로 삼았는데 그 여종이 선지자 엘리사에게 보이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허락을 받고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이스라엘 왕이 놀라서 옷을 찢고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집에 당당하게 찾아 왔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아람군대의 장관인데 융숭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종 하나가 나와서 하는 말이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시랍니다”하고 가버렸습니다. 이런 모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결국 분노한 나아만이 돌아서려는데 함께 동행한 종들이 “아무리 구정물이라도 나을 수만 있다면 들어가서 목욕해야 할 것 아닙니까?”라며 간곡히 요청을 했습니다. 그 종들의 말을 듣고 나아만이 마지못해 요단강에 가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여섯 번째 들어갔다 나와도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일곱 번째 들어갔다 일어나자 문둥병이 완전히 나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일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계획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기 때문에 끝까지 우리는 믿고 순종해야지 낙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알아야만 할 일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하시매 성령께서 말씀대로 창조를 이룬 것이 오늘날도 그와 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그때부터 섭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미하는 것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했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믿고 기도했으면 한달도 두달도 일년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아들을 달라고 기도해 응답받았지만 85세까지 10년을 기다려도 아들을 못받았습니다. 나중에는 100살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니까 하나님께서 결국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고 반드시 상을 주실 터이니까 마음에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4절로 26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야훼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야훼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를 낙심케 하지 않으십니다.

 1964년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 켈커타에 큰 고아원을 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모금된 돈이 굉장히 많은 가요? 어떻게 그렇게 큰 고아원을 세웁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자신이 가진 돈 3실링, 우리 돈으로 말하면 300원을 내놓고 “이것이 내가 가진 돈의 전부입니다”라고 하니까 기자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습니다. 농담하는 줄 알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현재 그것 밖에 없지만 그러나 예수님께 맡기면 어떤 기적도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믿었기 때문에 테레사 수녀는 3실링을 들고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작은 물질을 통해서 수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고아원을 짓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결과에 3실링으로 사랑의 선교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놀라운 결과를 얻고 전 세계의 호응을 받아서 그 3실링을 가지고서 130여 국에 600개의 고아원을 세웠던 것입니다. 돈 300원 정도로 시작하여 600개의 고아원을 세워 180개 국가에서 고아를 돌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이는 주님이시요,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변치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라는 주의 말씀은 오늘날도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늦게 응답된다고 생각되고 기다리기가 힘들어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묘하신 지혜로서 이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고 기다리십시다. 오늘도 부르짖고 내일도 부르짖고 오늘도 맡기고 내일도 맡기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발을 벗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권을 벗어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이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습니다. 주님께서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기도하고 주께 맡기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잠잠히 기다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동을 시키시려고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지으신 것입니다. 마음도 평안하고 삶도 평안하고 안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짐을 맡기십시오. 성경은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멍에를 걸머지고 우리에게 십자가 밑에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짐을 십자가에 다 맡기라. 짐은 내가 걸머지고 너는 그냥 따라만 오면 된다. 쉬고 즐기면서 따라오라. 행복하게 살면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시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하기를 원하시고 이 사랑과 행복을 만인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주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봉착할 때, 우리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 뜻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는 하나님의 때가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방법이 있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깨어진 마음과 믿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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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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