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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와의 싸움
2012.10.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17∼20절

악한 세상에서 마귀와의 싸움은 피할수 없어
믿음의 선한 싸움은 인내의 싸움 같아
끝까지 인내하고 기도하면 승리의 축복얻어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비장한 마음의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마귀하고 싸워 패배한 사람은 마귀에게 훼방 당하고 압박을 당해 침울하게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를 이기게 되면 우리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진실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소유하여 성령충만해져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에서는 마귀와의 싸움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우리는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총으로 마귀를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 구약 시대에서 배울 사건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모습은 오늘의 선민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자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엄청나게 강한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고 진에 들어와서 쉬고 이레째는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 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 큰 소리로 외치면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있는지, 강하고 담대하게 입으로 시인하는지 이런 것들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14절로 16절에 보면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렇게 백성들이 외칠 때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아주 견고해서 섣불리 공격해 도저히 점령할 수가 없는 성입니다. 여리고성을 발굴한 1930년대 존 가스탕 일행과 1950년대 케드린 케니언 일행의 설명에 의하면, 여리고 성은 지형적으로 가파른 바위산 위에 지어 놓아서 기어 올라가지도 못합니다. 성벽은 이중벽으로 아주 견고했습니다. 외벽 두께가 1.8미터이고 내벽 두께가 무려 4∼5미터나 되었고, 성벽 높이도 9미터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이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으로 여리고성의 백성들은 힘을 합쳐 단단히 방어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믿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무장과 능력으로는 승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엿새 동안 돌고 이레째는 일곱 바퀴 돌고 고함을 치면 무너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만이 유일한 무기인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을 믿을 수 있으면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면 승리를 외칠수가 있고 어떠한 대적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4장 23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자는 성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일단 믿었고 믿었으면 실천해야지, 중간에 가서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시험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단호하게 의지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6일 동안 아무런 환경적인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는 자들의 반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이들을 이끌고 나간 여호수아의 결단도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침내 여호수아 6장 20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마귀와의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 돌기와 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여리고성처럼 처음에는 꿈쩍도 안하는 것입니다. 버티고 서서 딱 노려보고 대결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에 주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할 때 여리고성 돌기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돌았다고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하셨으니 쫓겨나갈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큰 승리를 얻게 만들어 주십니다.

 

 2. 다니엘의 기도

 우리가 마귀와 대적할 때 다니엘의 21일 기도를 기억해야 됩니다. 바사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지도자인 다니엘이 훗날에 자기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알기 위해서 21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21일 동안 기도를 하고 기다려도 응답 없어 아주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런데 21일째 되는 날에 천사가 와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며 “네가 기도하는 첫날에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보내 주셨으나 내가 응답을 갖고 내려오는데 공중에 권세잡은 마귀들로 인해 21일 동안 대치해 있어서 그것을 뚫고 내려올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이미 허락해 주셨는데 내가 그 적군들을 뚫고 내려올 수 없을 때 군장 미가엘이 내려와서 나를 도와주매 내가 적군을 뚫고 내려와서 너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한 열흘 기도하고 낙심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더라면 응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다니엘 10장 10절로 12절에 보면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당장 응답이 안온다고 낙심하면 안될 것은 하나님은 당장 응답하셔도 마귀가 결사적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도록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의 응답을 막을 때 우리가 낙심해서 뒤로 물러나면 마귀는 결국 응답이 오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미가엘 천사와 같은 더 강하고 능력있는 응원군을 보내서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과 목표를 두고 기도하다가 응답이 속히 오지 않으면 쉽게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낙심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대부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지만, 응답이 되지 않아 낙심을 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지배자인 마귀는 이미 실제적인 권한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다 이루어서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를 실제적으로 잡아 놓을 고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와 그들의 후손인 우리를 잡은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예수님이 갚아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을 조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겨버리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법적으로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마귀에게 묶여 더 이상 끌려 다닐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마귀가 쫓겨남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셔서 우리 인간들의 타락의 빚을 다 청산해서 마귀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은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라는 것은 마귀의 통치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권세를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버리고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의 세력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 뜻을 잘 깨달아 알면 믿음으로 말씀에 서서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해야 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온전히 알아야 우리가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고는 곧장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영혼의 구원과 육신의 자유를 회복하는 복음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복음이 증거되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이 나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정상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자살과 불행으로 이끄는 우울증은 대부분이 귀신의 억압에 영향을 받아 생기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나는 못한다. 나는 못산다. 나는 안된다’라는 엄청난 좌절과 절망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이러한 진리를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 진리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십자가에서 모두 이기시고 죄악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해방시키고 마귀를 무력화 했으므로 우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다는 놀라운 복음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능력은 마귀가 가지고 있지만 권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는 능력이 있지만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권세를 가진 대통령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아무런 무기도 없고 능력도 없어 보이지만 말한마디로 원수 귀신을 쫓아내고 발길로 차고 짓밟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3절에는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더 이상 귀신에게 묶여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18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누구인가요? 바로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고 실천 하면은 그대로 주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마귀와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이러한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도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또한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부인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이루게 해줄 것을 믿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싸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실제 이루어진 모습이 믿음이요 보지 못하는 것이 증거입니다.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믿음이 있으면 이미 나타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믿으면 이 믿음이 실상이요 증거가 되므로 그대로 반드시 승리하고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온전한 실상의 본질이 바로 믿음이요 증거가 바로 믿음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본질인 믿음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시간이 지나고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도 낙심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험은 인내의 시험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눈으로 보아서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보지 않고 믿으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지 않고 믿으면 그것이 보이는 것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로 12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인내의 싸움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 즉시 눈에 보이거자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낙심하면 패배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죄를 이깁니다. 믿음이 있으면 불의를 이깁니다. 믿음이 있으면 병을 이깁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저주를 이깁니다. 믿음이 있으면 죽음도 이깁니다. 악한 사탄과 마귀까지도 물론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기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보이지 않는 믿음은 인내로써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믿음을 보여다오!”하시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저는 기다리고 인내합니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저는 인내합니다”라고 고백해야 됩니다. 우리의 인내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옳도다! 너의 말이 옳다”고 말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실체는 인내입니다. 믿음은 인내가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한번 믿었으면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부여잡고 한번 믿었으면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변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은 인내에 있습니다. 싸움이 오래가고 소망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이제 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적진이 무너질 순간입니다. “아이구 이제는 더 못 참겠다! 이제 더 이상은 못견디겠다! 포기해야 되겠다”라는 말이 나올 법한 그때가 바로 이길 때입니다. 그때가 성이 무너질 때고, 그때가 병이 떠나갈 때고, 그때가 문제가 해결될 때고, 그때가 하나님 기적이 나타날 때입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 “이제 못 견디겠다”고 할 때 그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 순간까지 견디고 인내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오늘날도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마귀는 찾아와서 우리를 훼방하고 억압하고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낙심하고 탄식케 만드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싸우는 싸움은 바로 믿음의 싸움이요 그 방법은 기도와 인내입니다. 기도하고 인내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해서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다 누리고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주시므로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희생되었다는 증거를 보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를 통하여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내고 승리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묶어 놓을 수 있는 권세가 없습니다. 마귀는 이미 패배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받아 기쁘고 즐겁게 사용하여 마귀를 이기고 성령 충만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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