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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기나무 인생
2026.10.18 / 출애굽기 3장 1~5절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장 1~5절)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17세기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인생은 무엇이냐? 생각하는 존재인 내가 생각을 통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렇게 철학자가 위대한 발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알게 될 때 그 인생이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죄 가운데 살았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새사람이 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답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에게 친아들처럼 대우 받으며 자랐지만, 그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인 것을 알게 되고 난 다음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 노예 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할 사명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히니까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겠다.” 

그래서 나가서 애굽인을 쳐 죽여서 모래에 묻었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그는 살인자, 도망자가 되어서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나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긴 알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고 “내가 하겠다.”라고 해서 결국 애굽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의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가 매일 바라보는 것은 양떼고, 광야의 먼지 속에 나이가 들어 어느새 80세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인생은 쓸쓸하게 광야에서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하는 그때, 그의 꿈도 목표도 다 사라지고, 이제는 내게 죽을 날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절대 절망이 없습니다. 절망의 끝은 희망입니다. 왜?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불붙은 떨기나무


모세가 어느 날 양을 몰고 호렙산 근처로 갔을 때 불붙은 가시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근데 멀리서 보니까 불이 붙기는 붙었는데 나무가 타질 않아요. 연기가 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장 2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야훼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3장 3절, 4절입니다.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80세 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피곤하고 지친 인생, 모든 인간의 희망의 불이 꺼져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인생을 주님이 다시 찾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다가와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그 절망의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절망에 처한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시몬 베드로는 병으로 누워 있는 장모님을 돌보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습니다. 어부에 그는 매일 같이 갈릴리 호수에 나가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서 그 잡은 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장모님에게 필요한 약도 짓고 집에 필요한 생필품으로 바꿔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져도 한 마리 고기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점점 근심만 쌓여갔습니다. “아이고, 한 마리 고기도 못 잡고 집에 들어가면 나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는 내 아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장모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동이 텄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너무나 물이 맑아서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고기들이 다 숨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오늘은 빈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배를 호숫가에 대고 그물을 싣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빈 배 인생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갑자기 자기가 전혀 모르는 한 분이 찾아와서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잠깐 배를 띄워라.” 

어차피 고기 한 마리도 못 잡고 지금 집에 들어가 봐야 자기를 반길 사람도 없고 그래서 배를 띄웠는데 호숫가에 이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이 많이 모여 왔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가? 그때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말씀을 전할 때 베드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마치고 난 다음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장 4절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합니다. 누가복음 5장 5절, 6절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예수님은 절망에 처한 빈 배 인생 시몬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그 빈 배의 인생을 차고 넘치는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빈 배의 인생에 대해서 절망하고 낙심할 때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고 빈 배 같은 우리 인생을 은혜로 가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2012년 제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헬리콥터 비행기로 한 네다섯 시간 떨어진 투루카나라는 곳에 가서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 기공식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그 투루카나의 낮 평균 온도가 50도입니다. 얼마나 태양이 강렬하게 뜨거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온 광야에 날카로운 가시 떨기들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시가 길고 날카로운지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찔리면 그냥 깊이 상처를 주는 그러한 가시들을 보았습니다. 그 가시 떨기를 보면서 “저 가시 떨기들이 우리의 인생의 모습과도 같다.”라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라나면서 우리는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자녀로부터 알게 모르게 크고 깊은 상처를 받아 그들이 다 내 삶에 가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시 없는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 사는 가운데 모든 문제가 그 가시를 갖고 서로 찌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인 것입니다. 

술주정뱅이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집에만 들어오면 주먹으로 부인을 때리고 아이들을 때려서 아이들이 도망치거나 숨기 바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평생 그 마음에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들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서 자라나면서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합니다. 

특히 아버지쯤 된 남자들을 보면 마음에 증오심이 생겨서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고통과 아픔을 이겨보려고 결혼했는데, 결혼한 후에도 감정이 격해지면 그 가시로 자꾸 배우자를 찌르고 괴롭히다 결국 가정이 깨어지는 이런 아픔 가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라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가시가 되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또 부모님이 너무 잘 나가는 분들이 있어요. 고위 공직자가 되어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맨날 뭐 밖에 일이 많으셔서 제대로 부모님을 뵐 시간이 없고, 군에 장성이 되어서 별을 달면 하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일일이 매년 이사 다닐 수가 없어 갖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보니까 외로움의 가시가 자라납니다. 

또 부모님이 두 분이 다 잘 나가는 의사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밖에서 잘 나가고 바쁜데 물질로는 부족함이 없고 필요한 용돈은 다 주지만 실제로 부모님과 대화할 시간이 없습니다. 

자라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대화하고 같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외로움이라는 가시 점점 그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가시가 자라는 것입니다. 

이 가시가 자라서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의 가시가 되고, 외로움의 가시가 자라나서 우울증이 되고, 우울증이 자라나서 편집증이 되고 히키코모리가 되고 사이코패스가 되고 이러한 문제와 아픔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가시들이 자란 사람들이 그냥 세상으로 나가서 엇나가는 삶을 삽니다. 젊은 사람들이 술에 만취 되고 도박하고 온갖 문제에 빠지는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이 가시의 문제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가시를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은 가시 떨기를 본 것처럼 우리에게 불이 붙어야 합니다. 사랑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용서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치료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이 불이 붙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변하는 것입니다. 

 

2.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3장 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망과 고통 가운데 처해있는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시 돋친 인생을 살았지만 주님은 사랑으로 오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덮어주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고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와 허물의 짐을 벗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3장 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은 우리의 삶의 행위를 말합니다. 우리가 신을 신고 밖에 다니다 보면 먼지가 많이 묻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집에 들어와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까 좀 나은 데, 외국 사람들은 신을 신고 그냥 안방까지 들어가고 침대까지 가니까 먼지가 온 집안을 뒤덮습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이 죄의 때가 묻어서 죄와 허물이 많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모세가 신을 벗은 것처럼 이 죄와 허물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 나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우리의 죄를, 허물을 고백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 앞에 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무거운 짐을 지었든지 주님 앞에 다 나와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함과 자유함을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개인의 짐, 가정의 짐, 생활의 짐, 육신의 질병의 짐, 이 모든 무거운 짐, 주님 앞에 내려놔야 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빈 배 인생으로 있다가 예수를 만난 다음 고기를 가득 잡은 그 베드로는 그 순간 자기의 죄인의 모습을 바라보고 주 앞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누가복음 5장 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자기의 죄를 주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를 주님께서 부르시고 위대한 사도로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죄 앞에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거룩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베드로는 그 절망에서 주님을 만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3.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모세는 80세에 그 희망이 다 꺼져 갔을 때 그 불붙은 떨기가시나무 앞에서 그가 포기한 꿈을 다시 회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불을 받아서, 성령의 불을 받아서 변화되어 그 늙어서 모든 희망을 포기했던 그가 사명을 받은 후에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120세가 되도록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이렇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 앞에 철저히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불이 덮이니까 120세가 될 때까지 눈이 침침해지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여지지 아니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습니까?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고 하는 가시 돋친 모세의 1기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40세까지입니다. 아니면 외롭게 광야에서 자신과 씨름하면서 그 가시덤불 속에서 고통하며 살고 있는 모세의 2기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불을 받아 하나님에게 완전히 붙들려서 쓰임 받고 있는 모세의 3기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불을 받아 모세의 3기 인생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는 한때 자존심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자존심의 가시가 하늘을 찌르듯이 그 삶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자기 인간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인 그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고 난 다음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삶 속에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 불붙은 가시 떨기나무에 아주 깊은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않은 것처럼 여러분 성령의 불을 받으면 가시가 가려질 뿐, 가시는 그대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언제 가시가 나타나느냐 불이 꺼지면 가시가 나타나 찌르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불이 꺼지니까 가시가 다시 살아나서 남편을 찌르고 자식을 찌르고 이웃을 찌릅니다. 불이 꺼져서 그렇습니다. 
“주여, 이 시간 나에게 다시 성령의 불이 임해서 나에 있는 모든 가시를 덮어버리고, 이제는 사랑과 용서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일꾼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러분의 힘으로, 스스로 이 가시를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서 이 가시가 덮어져야 합니다. 절대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불을 꺼뜨리는 순간 가시가 되어 찌르는 것입니다. 불이 꺼지니까 부모한테 대들고 부모와 싸우고 불이 꺼지니까 친구하고도 원수가 되고 왜? 가시가 나와서 찌르니까.

 김익두 목사님은 깡패로 가시 돋친 삶을 살다가 불을 받아, 위대한 주의 종이 되었는데 1874년 황해도 안악군의 한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그 집은 유학자 집안이라 아버님이 “외동아들인 너는 가서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해라.” 그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6년간 공부 끝에 과거시험을 치렀으나 낙방했습니다.

아버님이 그것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얼마 있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전 재산을 정리해 “이젠 나가서 돈이나 벌어야 되겠다.” 근데 친구한테 속아서 전 재산을 날립니다. 완전히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밤낮 술 먹고 주먹질하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안악골의 호랑이’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경찰을 불렀는데, 그는 경찰에게 칼을 들고 대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그의 옆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난폭했습니다. 

장터에 가서 장터를 들어 엎고 필요한 것을 다 뺏어가고 그런데 어느 날 장터에서 한 서양 여인이 뭘 주는 걸 받아 갖고 왔는데 그분이 선교사입니다. 선교사님이 전도지를 줬는데 집에 와서 전도지를 읽어보니까 베드로전서 1장 24절, 25절에 적혀 있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세세토록’이라는 말이, 그 단어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인가? ‘세세토록’이라는 말의 의미가 뭔가?” 그래서 그 말씀에 붙들려 고민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이 교회 나가보라고 교회 나가면 답을 얻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 지역에 있는 안악교회에 그가 나가게 됐는데 그날 스왈른 선교사님이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통곡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해 7월에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을 100번이나 읽었어요. 이분이 공부하는 분이기 때문에 신약 성경을 100번 읽고 3일 동안 금식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불이 임했는지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김익두야 김익두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가시 떨기 인생에 성령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는 한없이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스왈른 선교사의 요청으로 재령 지역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해서 신천지역에 가서 교회도 세우고,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고 난 후에 북한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많은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1919년 달성군 현풍읍내 현풍교회에서 박수진이라고 하는 청년이 사고로 아래턱이 떨어져 음식을 먹을 때 다 쏟아지니까 옆에서 누가 떠먹여 주고 오랫동안 고통하고 있는 이 청년을 보고 너무 불쌍해서 그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할 때 떨어졌던 턱이 붙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뛰어다니면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온 동네방네 다니며 자기가 고침 받은 사실을 전했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가 나았습니다. 곱사등 소녀가 등이 펴지고 또 맹인이 눈을 뜨는 등 당시 동아일보에서 1920년 58호에 ‘김익두의 이적’하고 그 신유의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50여 곳의 교회를 세웠고, 설교 횟수만 2만8000번, 결신자 2만8000명, 치료받은 병자만 1만여 명 이상이 넘었고, 그의 설교 듣고 변화되어서 목사 된 분이 200명이 넘는데, 그중에 이성봉, 주기철, 김재준 목사같이 한국 교회사에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목사님들이 나왔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63세 노인인데도 그가 일본 경찰에 붙들려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고 목사직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8·15해방 후에 계속 목회를 하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났는데 성도들이 피난을 가자고 말했지만 “나에게 죽음이 찾아왔다면 내 손으로 지은 이 예배당에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말하면서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가 교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중에 철수하던 인민군이 들어와서 목사님과 성도 다섯 명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북한으로 올라갔는데 그날이 1950년 10월 14일입니다. 가시 돋친 깡패 같은 그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태까지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가시 떨기 같은 여러분 인생을 하나님 부르시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여러분을 덮어줬으니, 이제는 “주여 주님이 나를 부르신 곳 어디든지 가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합니다.” 주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24장(통 360) 예수 나를 오라하네(1, 4절)> 

1절 예수 나를 오라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4절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보시고
크신 영광 보여 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후렴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가시 떨기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찾아 부르시고 주님의 사랑의 불로, 은혜의 불로, 성령의 불로 덮으셔서, 사명 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셔서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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