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3. ‘소망상’- 성은숙
  • 제목: 영원의 시간에 계신 엄마께 엄마가 오랜 세월 살았던 이곳에서 나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햇빛을 받아요. 엄마가 심은 은행나무를 만나고, 엄마의 손길이 닿은 화단의 꽃들을 만나고, 엄마의 오랜 친구였던 난 화분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기억해요. 엄마 계실 땐 늘 버리라고 참견했던 베란다의 항아리들도 엄마의 마음과 손길이 오래 닿았던 유산이라 화석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네요. 이렇게 남겨진 것들이 많은데 정작 엄마는 다른 세상에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4월은 엄마가 세상에 오신 계절, 등을 밝힌 듯 환하게 핀 봄꽃들만큼이나 내 가슴엔 그리움과 회한이 가득 차올라요. ‘좀 더 다정한 딸이 될걸, 좀 더 많은 시간을 엄마와 보낼걸.’ 때늦은 후회만 가득한 이 봄은 엄마 보듯 반가우면서도 마음 아린 날들입니다. 눈부신 꽃그늘 아래에서 분분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엄마의 편지일까, 생각해요. 가슴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엄마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이 혹시 엄마일까, 생각해요. 길 잃은 아이처럼 어디로 갈지,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해요. 엄마, 삶은 무엇일까요, 죽음은 또 무엇일까요. 청년기에 누군가를 향해, 어쩌면 나 자신을 향해 뜨겁게 질문했던 것들을 엄마 떠나신 후, 다시 질문하고 있어요. 엄마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이제 그 답을 얻으셨겠지요. 그것만이 단절의 황망함과 이별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생명이 밝고 분주한 낮의 시간이라면 죽음은 조용히 불을 끄고 안식을 얻는 시간 같아요. 그 안식의 시간에 우리에겐 미지의 또 다른 세상이 주어질 거라 믿으며 담대하게 길을 떠나는 것이겠지요. 생명을 주신 분이 그분의 신실하심대로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셨을 테니까요. 120년 전, 이 땅에 왔던 선교사 로제타 홀은 말했죠. “우리가 인내의 걸음으로 피곤한 삶의 샌들을 풀고 쉴 곳에 이른다면, 우리 삶의 모든 고난과 의문을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시고 인도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한 번뿐인 삶이 귀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척박한 땅에서 헌신하며 생명을 바친 선교사님들을 생각할 때, 저는 우리들의 ‘어머니’로 일생을 헌신하신 엄마를 떠올리곤 해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명들을 낳고 돌보며 키워낸 당신의 시간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것인지요. 당신은 어쩌면 삶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작게만 여겨지는 자화상에 우울했을 시간도 있었겠지요. 어린 생명들을 품에 안고 책임 때문에 중압감을 느낄 때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도 어느 날 엄마의 일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어요. “자식은 낳을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죽을힘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사실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 엄마, 당신이 계셔서 우리는 고난도 고난인 줄 몰랐고, 가난도 가난인 줄 모르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앞서가신 그 비밀의 시간 또한 엄마가 우리 앞에 꽃등처럼 환하게 켜두신 빛을 따라 걸어갈 거예요. 갈수록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도, 영원의 시간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을 거라 믿어요. “엄마 사랑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엄마였고, 한 생애를 아름답게 살아내신 분입니다.”
  • 2026.08.02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2. ‘소망상’- 이동엽
  • 제목 : 하늘에 머무는 사랑, 가슴에 흐르는 기억 어느덧 창밖의 계절이 몇 번이 바뀌었지만,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제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문득 길을 걷다가 스치는 바람에서 두 분의 향기를 느끼고, 무심히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의 구름 속에서 인자하게 웃으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곤 합니다. 세상은 평온하게 흘러가는데, 제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전하지 못한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어린 시절, 제게 주셨던 사랑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크고 단단한 울타리였습니다. 부족함 없이 채워주려 애쓰셨던 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과, 고단한 하루 끝에 언제나 따뜻한 온기로 저를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큰 사랑을 먹고 자라 어느덧 제가 부모의 자리에 서 보니, 두 분이 저를 위해 감내하셨을 희생과 인내의 무게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삶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별 앞에 저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이라고 미루었던 효도의 기회들은 이제 가슴 저린 회한이 되어 남았습니다. 가장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녀 루다의 성장을 볼 때입니다. 루다의 맑은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을 보며, 두 분이 곁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토록 귀하게 여기시던 손녀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쏟아주셨을까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아이가 자라며 묻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에 저는 두 분이 제게 주셨던 그 지극한 사랑을 대신 담아 들려주곤 합니다. 비록 손을 잡을 수는 없어도, 아이의 성장 곁에 두 분의 축복이 늘 함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비록 두 분은 이제 이 땅 위에 계시지 않지만, 저의 삶은 여전히 두 분이 남겨주신 유산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시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는 모두 두 분이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 덕분입니다. 제가 이 생의 소임을 다하고 다시 두 분을 만나는 그날까지, 제게 주셨던 그 과분한 사랑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 속에서도 늘 두 분을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깊이 존경합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의 평온한 안식처에서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저희를 지켜봐 주세요. 두 분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두 분을 그리워하며, 아들 동엽 올림
  • 2026.07.21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1-‘사랑상’ 수상자 - 홍성현
  • 제목: 믿음의 씨앗을 심고 떠난 천사 같던 엄마에게 얼마 전 무심코 휴대폰을 보다 몰랐던 음성 메모를 발견했어요. [2025년 5월 22일, 엄마와의 통화]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9일 전이었고 엄마의 음성이 기록된 가장 마지막 날짜였어요. 어떤 대화가 녹음되었을지 기대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우연히 기록된 엄마와의 추억을 기대했지만 녹음된 대화는 제 예상과는 정반대였어요. 병원 일정을 확인하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고 짧은 통화는 그렇게 끊어졌어요. 항상 착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마지않던 엄마였는데 마지막 기록은 저의 짜증이었네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당시 통화를 끊고 나서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음이 아파옵니다. 3년 가까운 투병 생활.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당연히 다시 건강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엄마도, 가족들도 모두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 이후 작아진 암세포에 기뻐하다가도 다시 커진 암세포에 실망하기를 반복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상상할 수 없는 통증을 홀로 견딜 때 항상 들리던 찬송가 소리와 목사님의 설교 소리에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을 없애주시지 않을까, 암이 왜 계속 퍼지는 것일까 하고요. 온몸에 암이 퍼져 진통제도 듣지 않고, 고통 때문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호스피스 병원에 가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모습이라 생각하셨는지, 그 고통을 집에서 오롯이 견디셨어요. 어쩌면 엄마는 우리에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에서 목사님은 엄마를 기억하며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 곁에 믿음의 씨앗을 심고 떠나셨다고 말씀하셨죠. 엄마가 전도한 아주머니 한 분께서 먼발치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엄마, 엄마가 심은 믿음의 씨앗은 그 아주머니 한 분만이 아니었어요. “너도 믿음의 사람을 만나 함께 교회를 갔으면 좋겠다”라는 엄마의 기도대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엄마의 임종을 함께 지킬 수 있었고,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찬양으로 극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저 또한 하나님이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도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셨어요. 이 음성 녹음을 지울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이 녹음을 들으니 엄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제 곧 엄마가 떠나신 지 1년이 되어가네요. 문득문득 너무 보고 싶지만, 그래도 웃으며 엄마를 추억하고 있어요. 천사 같은 우리 엄마, 저희 잘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떠나가시며 미소 지으며 하셨던 그 말씀처럼요. “잘 살아.” 이 말처럼 잘 살게요. 보고 싶습니다. -아들 성현
  • 2026.07.09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10-‘화평상’ 강지구
  •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손자가 할아버지 5주기 추모의 글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강태원 목사님은 저의 친할아버지이십니다. 할아버지의 하나뿐인 손자인 제가, 그리움 가득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이 글을 씁니다. 할아버지께서 소천하셨을 때 저는 8살의 어린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할아버지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은 제 마음속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의 손길입니다. 작은 저를 안아 주시고, 손을 꼭 잡아 주시던 그 따뜻한 손길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해주시고, 굵고 든든한 목소리로 찬양을 불러 주시던 그 모습 다정하고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예배 시간에 단상 위에서 힘차게 설교하시던 목사님으로서의 모습도 기억합니다. “강지구, 두 손 들고 아멘!”, “큰 소리로 아멘!” 주일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저를 불러 주시던 그 순간들.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던 저에게, 할아버지의 강한 목소리는 다시 예배에 집중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병환으로 목소리가 작아지셨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강건하게 설교하시던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기억이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아빠가 보여주시는 영상 속에서, 허리에 복대를 차신 채로도 저와 장난을 치며 웃어 주시던 모습. 아프신 몸으로도 저를 기쁘게 해주시고, 제가 좋아할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따뜻한 눈빛.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도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이 글을 쓰며, 5년 전의 일이지만 마치 어제처럼 생생한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할아버지의 다정함, 믿음 위에 선 강건함, 그리고 손자에 대한 크나큰 사랑.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귀한 시간 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빠를 통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주님 안에서 큰 일꾼이 되기를 바라시며 언제나 축복 기도를 해 주셨다고요. 할아버지께서 작사, 작곡하신 찬양‘나의 하나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찬양을 마음에 품고, 저도 주님 안에서 큰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할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저를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아멘.
  • 2025.11.05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9-‘화평상’ 이환기 
  • 제목 :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종철아. 내가 우리 곁에 와준 그날부터 우리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짧았지만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웠고 진정한 가족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네 이름 이종철을 새기며, 그리움과 사랑으로 너를 품을게. 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고, 그리움은 매일매일 나를 괴롭혀, 하지만 너의 기억을 간직하며, 너의 사랑을 잊지 않고, 너의 삶을 기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아들아 너를 잊지 않을게. 이제는 손을 잡아줄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지만. 너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아들아,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늘 환한 웃음으로 평안하기를 바란다. 엄마 아빠는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평안히 쉬어라, 우리 사랑하는 아들 종철아. 나중에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때까지 엄마 아빠 이곳에서 잘 살다가 너 만나러 갈 거야 우리 그날을 기약하자. 지금 이 순간도 그립고 보고 싶은 종철이에게...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을 당신 품으로 보내 드립니다. 짧은 세상 살 동안 흘린 웃음과 눈물, 그간 나눈 사랑과 꿈들을 당신께서 모두 기억해 주시고 그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주소서. 이별의 아픔 속에 남겨진 우리에게도 위로를 내려 주시며 눈물 대신 감사와 사랑으로 그를 기억하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곳에서는 고통도, 슬픔도 없이 영원한 평화와 기쁨 가운데 머물게 하소서. 종철이를 보내는 우리의 사랑과 그리움을 받아 주시고 남은 저희 가족들 에게도 견딜 힘과 희망을 허락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0.21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8-‘화평상’ 오수자
  • 제목 : 봄비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립니다. 창밖의 벚꽃이 이제 겨우 만개 되었는데 그 위에 비가 내리니 꽃잎이 떨어질세라, 아플세라, 내 마음에 아프게 봄비가 내려옵니다. 바람도 어제는 매우 강하게 불어서, 자꾸만 벚꽃잎이 날아갈까 봐 안타깝습니다. 1년 전 2024년 1월 30일 소천하신 사랑하는 남편의 그때를 생각하며 꽃들도 내 곁을 떠날까 봐 마음이 매우 안쓰럽습니다. 당신은 항상 제 곁에 오래 계셔주실 것만 같아서 의지하고 놓지 않으려고 애타게 기도했던 것처럼, 벚꽃잎이 봄비로 말미암아 내 곁을 떠날까 봐 자꾸 창밖을 내다보며 기도합니다. 꽃들아! 사랑한다.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평안함과 잔잔한 기쁨을 선물로 준 나의 꽃들에게 가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재작년 늦가을 당신께서 소천하시기 전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버리면서 마지막 잎새 한두 개만 나무에 붙어있을 때, ‘우리네 인생들도 마지막으로 남은 잎새처럼 결국은 모두 사라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마지막 생명이 한 개 남은 잎사귀처럼 날아가 버릴까 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던, 그래서 더 애타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아쉬움보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열매인 우리 삼 남매 희원, 현정, 희정과 그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당신. 한평생 변함없이 너무나도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0여 년간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시는 당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천국 열차 타시고 평안한 얼굴로 영생복락 안식처인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가셔서 평안히 쉬시고, 땅에 있는 당신의 가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성껏 날마다 기도드려 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지난 세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이었음을 무한 감사드리며 만날 날을 기대하며 감사와 찬송과 모든 영광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바칩니다. “여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 2025.10.09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7-‘화평상’ 김남도  
  • 제목 : “별”이 된 망자 하늘을 우러러 “별”을 보며 망자를 그린다. 어느덧 하늘나라의 “별”이 된 지 햇수로 3년째 기도원에서 예배 후에 널 찾아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로 발길을 옮긴다. 어둠 속에 십자가 전광판의 불빛만이 캄캄함을 밝히고 주변의 적막함에 이내 발길을 멈춘다. 희미한 불빛의 봉안당 건물 안쪽을 들여다 보며 목 놓아 망자를 불러본다. 허나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너의 이름을 부르자면 어느새 아비의 눈가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힌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별”을 본다. 저 수많은 “별” 중에 망자의 “별”은 어디인가? “희”야 이승에서 못다 이룬 너의 “꿈”은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으니 그곳에서 영생하며 꼭꼭 이루도록 주님께 기도한다. 주여! “별”이 된 망자를 주님께서 영원토록 어루만져 주시옵고 영생의 “별”로 지켜 주시옵소서. 2025. 3. 22. 망자를 그리며 시쓴이 아버지 남도
  • 2025.09.23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6-‘믿음상’ 임혜선
  • 제목 : 그리운 아버지 다시 봄이어요. 4월 말 이맘때 기억하시나요?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는 맑고 달콤해요. 울 아버지는 봄을 좋아하셨나요? 아버진 깊은 겨울에 태어나셨고 한여름에 돌아가셨지만 봄은 누구나 좋아하는 계절 아니겠어요? 아버지께 마지막 편지를 썼던 게 코로나가 한창이던 22년 봄이었지요. 3년이나 지난 이 계절에 편지를 쓰려니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울컥함이 몰려오네요. 아버지. 그간 가족들 소식부터 간단히 전하자면 22년 여름에 독일에 나갔던 경환이가 해외근무를 마치고 지난 2월 중순 귀국하여 집에 들어왔어요. 2년 반 동안 혼자서 외롭게 생활했지만 국가에 충성을 다한 아들이어요. 아직 장가들 색시를 구하진 못했지만 믿음 안에서 평생의 반려자가 구해지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기뻐하실 그런 손주 며느리 말이어요.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 품에서 자란 우리 아들, 편집이야 기획이야 바쁜 방송일로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오는 저 대신 경환을 업고서 새벽이 되도록 등에 업고 달래며 재우신 우리 아버지. 그 어떤 이유로도 포기하지 않았던 새벽예배조차 한동안 못 가셨죠. 손주 업고 달래다 지쳐 새벽예배 시간 되니 아버지도 너무 피곤하셨던지라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게 정색하며 이 어려움을 토로하셨을 때 저 정말 괴로웠지요. 하지만 경환은 늘 아버지께 최고의 기쁨이 되지 않았나요? 아버지께서 제일 사랑하시고 또 예뻐하신 손자, 막내딸의 첫아들인 경환. 그 은혜를 잘 아는지라 여전히 경환이는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귀국 후엔 여의도순복음교회 금요철야예배에 혼자 가곤 하네요. 기특하죠. 아버지도 천국에서 아들 배우자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아버지, 저희 집안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자가 2명이나 배출될 것을 아셨나요? 뒤늦게 말씀 사역자가 된 아버지의 막내 사위 말고도 아버지가 늘 감탄하셨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녀 승현이가 지금 저 멀리 프린스턴에서 신학 공부한 지 이제 만 2년이 되어가요. 아버지.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장학금을 받고 떠난 길이긴 한데 뒤늦게 전공을 바꾼 딸의 인생 여정이 정말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있는 것이란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승현이가 영리하고 반듯하지만 좀 예민한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인지 아니면 뒤늦은 유학 생활의 어려움인지 날마다 기도 요청이 카톡에 넘쳐나고 있어요. 같은 신대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히브리어 조교 하랴, 대학 인근 교회에서 대학생들 돌보는 사역하랴, 본인의 공부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저의 딸 승현이가 부디 영성이 넘치는 바른 학자이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설교자로 세워지게 기도해 주세요. 참 승현 역시 귀한 배우자를 만나야만 해요. 아버지, 천국에서 이 기도 놓치시면 안 돼요. 꼭꼭. 아버지. 근데 저는 퇴직한 지 어언 3년째 접어들고 있어요. 그 사이 무슨 일을 했냐고 물으신다면? 아버지 기준으론 크게 드릴 말씀이 없네요. 울 아버지 실망하시겠어요. 근데 아버지 있죠. 왜 제게 어렸을 때부터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 되어라”라고 하셨어요? 제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말한 아버지들은 거의 없던 데요. 더구나 그 시절의 딸에게. 저는 결국 아버지 말을 잘 따른 충성스러운 딸이었나 봐요. 엄마와 아내로서 역할보다는 오랜 시간 프로그램 제작을 저의 가장 큰 일로 여기며 늘 깨어있는 프로듀서로서의 부담을 제 삶에서 더 크게 안고 살았지요. 사실 이젠 애들이 다 자랐지만 공부며 운동이며 먹을 것이며 제때 아이들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엄마로서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어요. 그런 부작용이 나이 먹어서 나타나더라고요. 애들이 제게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이미 때는 늦었지만 안타까운 면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어요. 제가 좀 더 지혜로웠어야 했는데 많이 어리석었어요. 하지만 이젠 저와 아이들의 그 연약함도 부족함도 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아버지를 원망하기는커녕 평생 200% 저를 믿고 자랑스러워하신 아버지 덕에 저는 이렇게 당당한 평생을 살았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전히 고마운 아버지이셔요. 그래도 아버지 저에 관한 기쁜 소식 전할 것 하나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날 아버지가 절 데리고 가신 전주 경원동의 ‘보리수 다방’ 기억나시나요? 그때 아름다운 한복을 입었던 우아한 다방 마담을 처음 보았고 또 계란 노른자가 띄워진 쌍화차도 처음 맛보았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저를 그곳에 데려가셨던 것은 아마도 그 다방에서 열린 누군가의 유화 전시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당시엔 미술 전시회도 흔치 않았던 지라 아버진 저를 기꺼이 그곳에 데려가셔서 딸에게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하셨던 것 같아요. 자라면서 또 일하면서 제가 어떤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도 큰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아버지의 그 열린 마음 아니었을까요? 아버지, 그래서요 제가 작년 가을 인사동에서 ‘그리운 나의 풍경들’이란 제목으로 작은 그림전을 열었어요. 놀라셨죠? 퇴직 후 누드 크로키며 어반스케치 잠깐 배우고 익힌 것이 토대가 되었어요. 근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제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행복하다, 위로를 받았다는 점이어요. 그냥 수채화 물감으로 편안하게 그린 그림들인데 뜻밖의 반응이었고 진심을 담아 얘기들을 해 주었어요. 언니들 가족은 물론 여러 친지들 그리고 인사동 길을 지나던 낯선 이들까지 들러서 격려를 해 주시니 저도 퇴직 후 뜻밖의 위로를 받았지 뭐예요. 아버지, 이것도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의 방향인 것 같아요. 교회 안에서 제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도 있지만 교회 밖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움으로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버지가 제게 늘 강조하셨던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길 같아요. 저 사실은 오른쪽 눈을 백내장 수술하여 짝눈이 되었지만 천국에서 아버지 재회할 그날까지 아름다운 그림도 많이 그리고 또 귀한 글도 남기어 아버지가 제게 늘 기대하셨던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그런 딸로 끝까지 살아내고 싶어요. 아버지, 천국은 늘 봄인가요? 아니면 봄여름 가을 겨울이 함께 하나요? 그리운 울 아버지 내 맘속에 늘 살아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3년 만에 쓰는 편지 덕에 어제오늘은 아버지를 깊게 묵상하였네요. 아버지 내년에도 또 편지 쓸게요. 아, 참 내년엔 엄마에게 쓸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이만.. 엄마에게도 꼭 편지 보여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막내 혜선 올림
  • 2025.09.09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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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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