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힐링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
  •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음에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창세기 15장의 아브람처럼 조바심을 내며 묻곤 한다. “주 야훼여,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에게 짐승들을 준비하고 반으로 쪼개어 놓으라 명하셨다. 이는 고대 근동의 ‘피의 계약’이자 어길 시 쪼개진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저주의 계약’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함께 그 피로 물든 길을 걸어가야 하는 계약의 주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행위와 노력이 하나님의 약속을 결정지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깊은 잠에 빠뜨리신 후 타오르는 횃불의 형상으로 홀로 그 ‘피의 길’을 지나가셨다. 내게 성경 속 이 장면은 깊은 충격이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하나님께 아브람은 조건부 계약 파트너가 아닌 그저 사랑받아야 할 ‘언약의 대상’이었다. 목숨 걸고 약속을 지켜내야 하는 주체는 아브람의 어떠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인 것이다. 인간이 약속을 깨뜨릴지라도 그 저주와 대가를 친히 짊어지시겠다는, 홀로 이루어내시겠다는 단독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나의 신앙은 어떠했던가. 내 행위와 열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 근심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횃불 언약 앞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의 성장은 더 많은 대가를 치러내는 것이 아니다. 창세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며 그분의 신실한 약속을 온전히 믿고 안식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삶.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자녀의 모습이다. 염미솔(오플로 대표)
  • 2026.08.14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
  •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10년 뒤 내가 살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예로 10년 뒤 나는 서울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다. 하나뿐인 아이는 분명한 자기 꿈을 가졌으면 좋겠고 남편과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이길 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그래도 잘 살았구나’ 하며 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사는 것처럼 계속 살아간다고 했을 때 10년 뒤 이 꿈이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전원주택을 마련하려면 경제적으로 더 성실히 일해야 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선 예수님을 대하듯 서로를 존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를 위해선 기도로 양육하며 교육에도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주변의 이웃들도 더 세심히 챙겨야 할 것이다. 결국 지금보다 나는 더 달라져야 하고 매사에 더 노력해야 하며 시간을 더 귀하게 사용해야만 한다. 성인기에도 성장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사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을 가치 있게 가꾸기 위해서는 나이를 먹어서도 끊임없는 배움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니 바쁜 일상 가운데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꼭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있지만 지금 내뿜고 있는 이 치열한 열심이 진정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지 반드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년 뒤 다가올 아름다운 결실을 소망하며 오늘이라는 올바른 사랑과 성실의 씨앗을 심어가기를 원한다. 염미솔(오플로 대표)
  • 2026.07.17

    ‘우리’라는 은혜
  •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선택적 고립’을 현명함으로 여겨왔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피로감을 원천 차단한 채, 나만의 안전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안주했던 것이다. 하지만 삶은 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됐다. 그들은 성경 속 말씀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대가로 바라지 않고, 그저 주는 행위 자체를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처음에는 그런 호의가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다. 무언가를 받으면 반드시 그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세상의 공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그들의 삶에는 애초에 그런 세상적인 계산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가 없는 사랑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면서 내 마음의 단단한 빗장이 아주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 따뜻한 온기에 기대어 다시 펼쳐 든 성경 말씀에서 주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홀로 고립된 존재로 부르시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서로 연결되어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며 사랑을 나누는 통로로 우리를 지으셨는데, 나는 그동안 개인주의라는 그럴듯한 핑계 뒤에 숨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관계의 풍요로움을 스스로 거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의 편안함만을 좇던 삶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좁고 잘못된 삶이었는지 깊이 회개하게 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받기 싫어서 자신만의 섬에 갇혀 있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내가 쌓은 벽을 허물고 흘러오는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조건 없이 흘려보내는 것.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관계의 성장을 함께 누려보기를 소망한다. 염미솔(오플로 대표)
  • 2026.06.19

    실패의 문 앞에서
  • 하나하나의 문이 닫히고 비로소 하나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문을 닫는 용기를 내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플리크’라는 성인 교육 플랫폼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사업적 손실보다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는 괴로움이었다. 성공만을 좇아 달릴 때는 몰랐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지 아니면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오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현실을 직시하는 일은 쓰라렸다. 내 열심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 했던 시간들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성장을 ‘확장’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 안에서의 성장은 때로 ‘폐장’에서 시작된다. 돌이켜보니 문을 닫았던 그 시간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더 큰 그릇으로 나를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내 계획이 무너진 자리에서야 하나님의 계획이 선명해졌고 나의 전략이 멈춘 곳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됐다. 베드로가 빈 배를 통해 비로소 주님을 만났던 것처럼, 나 역시 빈손을 직시했을 때 진정한 성장의 동력을 얻었다. 지금 혹시 닫히지 않는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가?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낡은 문고리를 잡고 버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문을 닫아야 하나님이 문을 여신다.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믿고 꽉 쥔 손을 펼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견고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염미솔(오플로 대표)
  • 2026.05.15

    가장 찬란한 봄
  • 겨우내 주 3일은 집 앞 호수공원을 뛰곤 했다. 울창한 나무와 풀들로 둘러싸인 둘레길이건만 추위에 바짝 말라버린 나뭇가지들은 잎사귀 한 장 남기지 않고 생기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만큼 장작처럼 말라 있던 나무들이 저마다 찬란한 봄을 터뜨리는 계절이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순이 돋아나고 연한 초록의 기운을 뽐내며 ‘나 여기 살아 있었노라’ 말하는 그런 계절 말이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 스스로 줄기 속의 수분을 비워낸다고 한다.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매서운 추위에 세포가 얼어 죽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생기를 잃고 바짝 말라가는 과정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비움’의 시간인 것이다. 때때로 우리의 삶 역시 바짝 마른 나무처럼 곤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나의 의와 고집을 비워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새롭게 채워 다시 살게 하신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겨울나무의 인내가 봄을 불러오듯 우리의 인내 역시 결코 헛된 기다림이 아니다. 가장 찬란한 봄을 터뜨리기 위해 주님 안에서 가장 고요한 인내의 시간을 갖는 것, 그 인내의 끝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새순이 반드시 돋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6.04.17

    나의 열심으로 이루리라
  • 세상에서의 성장과 하나님 안에서의 성장에는 완전한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의 성장이 열심, 열정, 오기, 전략, 계획과 같은 태도와 연결된다면 하나님 안에서의 성장은 나의 힘을 모두 빼고 꽉 쥔 손을 펼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가난은 불편을 넘어선 불행이었다. 매사에 열심을 동력 삼아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내 평생의 기도 제목이었던 ‘가난을 벗어난 삶’이 어느덧 찾아왔다. 가난을 벗어나고 보니 다시는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나를 덮쳤고, 일이 잘될 때도 안 될 때도 스스로를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혹사시켰다. 그래서 모든 성과와 열매가 내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내 열심으로 지킬 수 있는 것들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내가 주 안에서 ‘고아’처럼 살고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서도 막상 아버지의 틈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욥처럼 내 안의 무기력을 모두 경험하고 나서야 ‘힘을 빼는 것의 축복’을 알게 됐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리”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상상해 본다. 주가 나로 바다 위를 걷게 하실 때 나는 그 첫발을 어떻게 디뎌야 할까?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걷다 물 위에서 넘어진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상황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분명 몸이 굳으며 순간 온몸에 힘을 주었을 거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하나님 안에서 힘을 빼는 것이었다. 내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 그렇게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하나님의 열심을 기대하는 것 말이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6.03.13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 26살 무렵 독립을 했다. 혼자 살림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나름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연애의 시작과 함께 나의 이 생각이 와장창 무너졌다. 결혼 이후 줄곧 1인 사업가로 일을 했다. 가정을 이루고 혼자 하는 일에 크고 작은 성과를 이루며 이만하면 꽤나 성숙한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직이 세워지고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생각은 다시 또 무너졌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관계의 성숙함 안에서 비로소 이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가치관이 맞지 않거나 본질의 기준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인간관계의 기준을 다시금 정립하곤 했다. 혼자만의 성장과 달리 관계 안에서의 성장은 상대방의 티눈 대신 내 안에 들보를 계속 들여다 봐야하는 진짜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 3:13~14). 예수님 안에서 관계의 성장은 결국 예수의 마음으로 상대를 품는 것에 있었음에도 언제나 난 유치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내 삶에 너무너무 미운 사람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내 마음을 다독였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했을 때 이 관계속에도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예수님 안에서 좀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6.02.13

    유난한 하루들입니다 
  • 유난스럽게 보내는 연말이 어느 순간 유별나다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나이 한살 더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도 소란스러운지! 인생의 시간표 안에선 12월 31일도, 1월 1일도 그저 흘러가는 하루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세상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겠노라 역으로 유난을 떨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구영신’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콕!하고 박혔다.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이한다.’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매해 첫날과 마지막 날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일 년에 한 번씩 우리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함 안에 새사람이 될 기회를 주시고자 한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과거의 실수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성공의 경험에 취해 하나님을 소홀하지 않도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작하는 첫날을 주심이 감사였다. 2026년 하나님의 은혜가 심겨진 새해가 다시 밝았다. 주님이 허락하신 이 은혜에 유난을 떨어보자 다짐한다. ‘하나님 저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다시 해볼게요. 다시 걸어볼게요. 그리고 다시 사랑할게요.’ 특별할 것 없다고 느꼈던 하루하루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담겨있었다. 그러니 2026년 나는 유난스럽게 그 은혜를 누리며 살고 싶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6.01.16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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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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