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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 I. 오순절 신학 프롤로그(Prologue)

한 사건(event)이 사회와 나라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일으키는 종교적, 사회적 운동(movement)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성(continuity)과 확장성(extensibility)이 있어야 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행 2)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 그리스-로마의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탄생과 바울의 선교를 중심으로 한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다. 기독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종교, 사회, 정치, 문화와 거센 충돌과 갈등을 겪었지만 소아시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됐다.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337)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의 공식 종교 가운데 하나로 공인되었다.

이후 380년 데오도시우스 1세(Flavius Theodosius, 347~395)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수많은 박해와 탄압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 오순절 신학의 필요성

20세기 오순절운동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새로운 변화와 영적 갱신을 불러왔다. 초기 오순절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20세기 오순절 운동 또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시작되었으며 교회의 부흥과 선교, 영적 갱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이전에도 시대를 달리하며 영적 갱신 운동은 이어져 왔다. 존 웨슬리를 중심으로 한 성결 운동(Holiness movement)과 무디(D.L. Moody, 1837~1899)를 중심으로 한 부흥 운동은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이 일어났고 전 세계적 교회의 성장과 영적 갱신으로 발전됐다.

1800년대까지 오순절 기독교인은 전무했다. 하지만 1900년대에 이르러 98만1000명으로 늘어났고, 2008년에는 6억165만2000명, 2025년에는 7억9829만9000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증가세는 다른 기독교 그룹들과 비교에서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특별히 아프리카와 남미와 아시아에서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7만7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91%에 해당하는 7만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미에서 증가하고 있다.[David Barrett, “Missiometrics 2008: Reality Checks for Christian World Communions”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32, No. 1 (January 2008), p27~30. ]

20세기 초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오순절운동은 과거의 영적 갱신 운동과는 다른 신학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오순절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은사를 동반한 성령 체험이라는 것이다. 초기 오순절운동이 신비주의나 비성경적인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던 것은 성령의 은사적 체험에 대해 신학적인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신학의 방법(Methodology)과 신학화(Theologization)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서로 분리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신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변론하고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신학자는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헬라와 유대교 사상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바울의 모습은 사도행전과 그의 서신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 특별히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논쟁을 벌인 것을 기록하고 있다(행 17:16~18). 성경을 기록한 바울을 신학자의 그룹에 넣는 것이 과하다면,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를 가장 먼저 교회사에 등장한 조직신학자로 볼 수 있다(앤터니 티슬턴, 『조직신학』, p30). 이후 교부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으로 변호하고 증명하기 위한 변증서(apologia)를 지었다.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신학은 세부화 되고 다양해졌다. 현대 신학을 크게 조직신학, 역사신학, 성서신학, 실천신학, 선교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합리성이다. 신학의 분야와 주제가 다르다고 해도 기독교의 진리에 관한 일관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한 합리적 논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신학으로 설 수 없다. 오순절 신학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신학 용어 중에 ‘신학화’(Theologization)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 또는 영적인 운동이 신학으로 정립되는 과정을 말한다. 오순절 신학은 운동에서 신학으로 발전하는 신학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순절 신학의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는 어떻게 성령의 역동적인 체험을 사변적인 변증이 요구되는 신학으로 증명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합리성을 놓쳐서도 안 된다.

판넨베르크는 성령의 체험과 신학의 사변적 기능이 충돌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은 듯하다. 일부 오순절주의자들 조차 성령 체험을 신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신학적 논증과 성령의 작용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있다고 이해한다. 특별히 바울은 성령을 신뢰함과 동시에 성령 체험에 대한 사색과 논증을 심도 있게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Wolfhart Pannenberg, Basic Questions in Theology Vol 3 (London: SCM, 1978), p35.]

3. 교부 신학(Patristic Theology)과 오순절 신학(Pentecostal Theology)

기독교 신학의 주된 관심과 쟁점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 기독교 신학은 시대마다 부각된 신학적인 논쟁과 변론을 통해 더욱 체계화되고 세분화 되었으며 학문적인 깊이를 더하며 발전해 왔다. 초대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가장 큰 위협을 주었던 것은 영지주의(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학적으로 교부들의 가장 큰 적이었지만 동시에 교부신학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영지주의는 유대교와 이방 종교가 혼합된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고 헬라 철학, 유대교, 기독교의 사상과 신앙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했다(윌리스터 워커, 『세계기독교회사』, p62). 영지주의가 추구했던 것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은 ‘영적인 지식’ 또는 영적인 경험을 통한 지혜였다. 교부 시대에 넓은 지역에서 여러 종교와 혼합되어 있었던 영지주의는 고대 근동의 철학과 종교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많은 기독교인을 현혹시킬만한 논쟁의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 등과 같은 교부들은 영지주의자를 일찍부터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난 이교도로 취급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인 사고와 종교 혼합주의 사상을 섞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교부들은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 사상에 맞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변증에 힘을 기울였다. 교부들은 영적인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며 물질세계와 인간의 육체에 대해 경시하고 있었던 영지주의자들과 피할 수 없는 신학적 논쟁에 직면했었다. 이로 인해 교부들의 신학적인 관심은 자연스럽게 온전한 인간이며 온전한 신인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되었고 이는 조직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독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을 마무리 짓고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니케아 공의회(325)를 기점으로 영지주의의 세력은 점차 위축되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313)한 후 영지주의와 관련된 수많은 문헌은 불타거나 파괴되었으며 많은 영지주의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기사입력 : 2021.09.05. am 11:05 (입력)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