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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고 값진 말

내년 3월 제21대 대통령선거일까지 아직 7개월 이상 남아 있지만 여야의 후보 경선은 이미 가열되고 있습니다. 벌써 각 후보 진영 간의 가짜뉴스, 흑색선전, 인신공격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은 “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이념, 세대, 지역, 계층 간의 분열과 반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부정적 말과 글이 주도하는 우리 사회의 언어사용 실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입니다. 5000만 국민을 자유, 민주, 번영의 항구로 인도해야 할 중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력 결집과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후보자들은 자중자애해야 합니다. 막중한 대임을 감당할만한 자질과 품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언행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말부터 절제해야 할 것입니다.

때마침 광복의 달 8월! 지도자의 언어품격과 관련해 사표(師表)가 될 한 분을 떠올립니다.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1878~1938) 선생입니다. 그는 국권 회복과 민족 부흥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위대한 애국지사였습니다. 겨레의 양심을 일깨운 사상가였으며 원대한 안목을 지닌 시대의 선각자요 교육자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을 사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더불어 안창호 선생은 ‘대웅변가’였습니다. 진심 어린 그의 열변은 민족사의 암흑기를 당해 좌절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큰 용기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일례로 ‘3·1운동’의 지도자 남강 이승훈 선생은 1897년 20세 청년 안창호의 ‘평양성 쾌재정 연설’에 감화를 받아 민족운동에 투신할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그의 탁월한 웅변력은 고결한 인격에서 비롯된 ‘언행일치의 삶’이 원천이 되었습니다.

전 서울대 총장 장이욱 박사는 오랜 기간 비서실장 격으로 선생을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그는 저서 『도산의 인격과 생애』를 통해 도산이 감동적인 스피치를 할 수 있었던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충분한 사전 준비,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해 경청하는 인내력과 아량, 평범하고 독창적인 단어 사용’과 함께 저자가 강조한 것은 ‘해야 할 말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는 해야 할 말이 논리정연하게 우렁찬 음성을 타고 도도히 울려 나올 때 청중은 모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합니다. 자연스럽게 “신념의 말, 성실의 말, 간곡한 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김형석의 100세 일기’에서 17세 때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강연을 들었던 경험을 밝힌 바 있습니다. 도산이 교수님의 고향 평남 송산리 교회를 방문해 강연과 설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김형석 교수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산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 사랑과 인재 교육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사랑을 애국정신으로 보답하자는 간곡한 호소였다. 도산은 웅변가였다고 하지만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더 컸다. 웅변이기보다는 기도하는 열정이었다.”

이처럼 진심을 쏟았기에 도산의 말은 듣는 이들에게 전율 같은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평전』에서 이태복 님은 선생의 생애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망해 버린 나라를 되찾아 복된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침식을 잊고 만주, 시베리아, 중국, 미국, 멕시코, 쿠바, 필리핀을 돌아다니며 동포들과 고난을 함께하며 독립의 길로 나가고자 했던 지칠 줄 모르는 인간….”

이런 삶을 살아 낸 도산이었기에 그의 ‘나라사랑’ 메시지에는 위엄이 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 결벽에 가까운 청교도적 삶을 살았던 선생이었으므로 ‘정직이 곧 애국’이라며 “우리는 죽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절절한 호소는 천금의 무게를 지닐 수 있었습니다. 친애와 동정을 실천하는 ‘온유한 사람’ ‘화평의 사람’이었기에 “너도 사랑을 공부하고 나도 사랑을 공부하자. 그래서 2000만이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는 도산의 외침은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사랑의 나라, 미소의 나라’로 만들자며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이 새 민족의 모습이 되게 하자”는 도산의 웅변은 모두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말’은 두 가지 종류로 대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을 헐뜯고 폄하하는 말, 진실을 왜곡하고 상처를 주는 말, 미움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말들은 ‘죽은 말’입니다. 반면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 격려와 치료의 말, 따뜻한 마음을 담은 감사의 고백은 ‘산 말’이라 하겠습니다.

도산은 “민족문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포부를 말하고, 또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을 찾아 여행하는 것”으로 일생의 많은 부분을 보냈습니다. 그 노고의 결과 나라 잃고 낙담했던 동포들이 깨어나고 살아났습니다. “진실을 삶의 지팡이 삼고, 사랑을 생활화하고, 조국에 성심을 다해 봉사했던” 선생의 신실한 메시지는 바로 생동력을 지닌 ‘산 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코로나19의 위기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많이 아쉬운 때입니다. 그런 메시지를 당당히 전해줄 수 있는 도산 선생님 같은 지도자가 못내 그립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21.08.22. am 08:55 (입력)
김성동 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