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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공정할 수 있을까?

취업은 어렵고 집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 젊은이들은 ‘공정(公正)’을 말한다. 공정이란 ‘공평하고 올바르다’는 의미이다.

박규숙 시인의 시 「지독하게 편애하기」의 한 부분이다.

“어떻게 똑같이 사랑하란 말인가? / 받은 상처가 다르고 / 살아온 날들이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 각각 따로 불러 / 서로 모르게 편애해야 한다. / 자기만 사랑받는 줄 알게끔 / 노련하고, 은밀하게, / 하나하나 / 지독하게 편애해야 한다.”

공평하게 사랑하기 위하여 지독하게 편애해야 한다는 시인의 생각이야말로 정의에 가깝지 않을까. 공평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처한 형편, 그러니까 살아온 날들과 받은 상처를 알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온전한 공평에 이를 수 있으며 비로소 공정해진다. 그러고 보면 온전한 공정은 사람의 일이 아니다.

자신이 받을 유산을 들고 집을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하는 아버지를 보며 첫째 아들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네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야말로 온전히 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니 누구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만 우리 인생은 비로소 공정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기사입력 : 2021.07.18. am 09:1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