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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3~27)

한 번 큰 소리로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이 부활절에 이 기쁜 날에 이 은혜의 날에 축복의 날에 요한복음 11장 말씀을 가지고 오늘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입니다. 한 번 제목을 따라 해주세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23절~27절을 본문으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이요, 축복의 사건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라고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 죽음을 맞이했다가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는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죽음과 부활에 대한 귀한 메시지를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설교말씀>

1. 과거가 된 나사로

먼저 과거가 된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예루살렘 남동쪽에 베다니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주님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겼던 가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이곳에 오시면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머무르시고 식사도 하시고 또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늘 마르다는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해서 음식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또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 듣는 일을 너무 사모해서 늘 앞자리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가장 역할을 담당하던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부모님처럼 의지하던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 목숨이 위독하게 되니까 제자들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빨리 베다니로 와서 지금 우리 오라버니가 위독하니 좀 예수님 병을 고쳐달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메시지를 받으시고도 이틀 동안 계신 곳에 더 머무르시다가 그다음에 베다니로 오셨는데 베다니에 와보니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과거 속의 나사로가 되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옵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가 세상을 떠나 장사를 지낸 지 사흘이 지나서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과거 속의 나사로가 되어서 어떠한 희망도 없는 그러한 부패하는 시체의 모습으로 남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 속에서 몸이 부패하고 있는 이 나사로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모르고 죄짓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인생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면 살아있다고 하나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죄와 절망 가운데 저주와 질병 가운데 문제 가운데 고통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과거의 죄를 짊어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아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더라면,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터인데.” 11장 21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는 지금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심을 알고 믿었지마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예수님이신 것을 그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터인데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내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원망 섞인 그러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말할 때 주님이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11장 23절,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지금의 예수님에 대한 그러한 믿음과 기대가 없이 먼 훗날 부활의 날이 다가오면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11장 25절, 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과거의 예수님이실 뿐 아니라 오늘의 예수님이 되시고 우리의 미래의 예수님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배 나온 분 가운데 혹시 방송을 통하여 또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하여 이 말씀을 듣는 분 가운데 죽은 나사로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분 안 계십니까? 죄와 절망 가운데 어디를 갈지 모르고 방향을 잃고 고통 가운데 살고 계신 분 안 계십니까? 살아계신 주님께 이 시간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죽은 나사로에서 예수를 믿고 살아난 나사로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현재의 나사로

둘째로 현재의 나사로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너무 슬퍼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마리아를 찾는다고 하니까 예수님께 나아가 울면서 이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11장 32절, 33절입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주님이 그 슬피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겼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덤으로 가십니다. 38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굴을 파서 그것을 무덤으로 삼고 그 안에 시신을 넣고 앞을 큰 돌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1장 3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놓으라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마르다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주님 죽은 지 나흘이 돼서 그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납니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죽은 지 나흘 돼서 시체가 썩어 썩는 냄새를 내는 나사로는 죄로 인해 죽은 우리 모든 인류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우리는 죄로 인해 썩는 냄새를 이웃에게 나타내며 살았습니다. 죄와 절망으로 썩어져 가는 냄새. 저주와 질병으로 썩어져 가는 냄새.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 늘 상처 입고 낙심하며 살았던 그러한 불신앙의 모습으로 썩어져 가는 냄새.
미움과 분노로 가득해서 그 미움과 분노의 냄새를 내며 또 내 마음속에 탐욕으로 가득한 그 탐욕의 냄새를 내며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살아왔던 것이 예수를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모르지만 죄로 인해 썩어져 가는 냄새를 이웃에게 풍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가운데 사는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저 부정적인 얘기를 퍼뜨리고 남을 물고 뜯고 끌어내리고 욕하고 저주하고 다투며 이렇게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 인생이 다시 살아나 우리의 삶 속에서 부패해가는 이 냄새를 멈추어 버리고 이제는 새 생명으로 변화되어서 새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아름다운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사람들만이 이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축복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아니합니다. 믿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다가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큰 절망 가운데로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주십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주여, 우리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명령하십니다. 돌을 옮겨놓아라. 그 말씀에 순종해서 저들이 돌을 옮겨 놓습니다. 11장 41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우리가 주님 앞에서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가로막힌 모든 돌을 굴려 버려야 됩니다. 불신앙의 돌을 굴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고집, 교만의 돌을 굴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의심의 돌을 굴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네, 아멘하고 순종할 때 주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무엇이 여러분과 주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까. 그 가로막고 있는 그것을 지금 이 시간 굴려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 쌓였다면 원망과 불평의 돌을 굴려 버려야 됩니다. 내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다면 부정적인 생각의 돌을 굴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또 내 스스로 나 자신에게 상처받은 것이 있어 상처의 돌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굴려 버려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시간 모든 돌들을 다 굴려 버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해서 돌을 굴려 버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돌이 굴려지고 나자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11장 41절, 42절입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주님이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를 들으심을 믿고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문제가 있고 절망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몸이 아프고 사업이 안 되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펼쳐져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모든 절망적인 환경의 돌이 굴러 버리고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기도를 드린 다음 주님 명령하십니다. 11장 43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 명령하십니다. 절망에 처한 너희들은 그 절망의 자리에서 나오라. 절망의 무덤에서 나오라. 슬픔의 무덤에서 나오라. 고통의 무덤에서 나오라.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에 죽음에 갇혔던 과거의 나사로가 죽음을 떨쳐버리고 과거의 문을 열어젖히고 주님 앞에 걸어 나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옛 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우리가 새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들일 때 과거의 나사로가 아니라 현재의 살아있는 나사로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에 처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 안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절망은 떠나갈지어다. 문제는 떠나갈지어다. 염려, 근심, 걱정은 떠나갈지어다. 내 몸을 괴롭히는 모든 질병도 떠나갈지어다. 주님의 기적이 임할지어다. 그때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미래로 나아가는 나사로

셋째로 우리는 미래로 향해 전진해 나아가는 나사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시니까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옵니다. 11장 44절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살아서 나오는데 우리 한국이 장례를 치를 때 보면 온몸을 알코올로 덮고 베로 감듯이 이 이스라엘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향료를 바르고 온몸을 베로 감는데 베를 감은 채로 뒤뚱뒤뚱거리면서 나옵니다. 주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다시 새 생명을 얻고 살아났는데도 수의를 칭칭 감고 있는 나사로처럼 여러 가지 수의가 그를 감고 있어서 뒤뚱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와 질병의 수의가 아직도 그를 감고 있습니다. 가난과 저주의 수의가 그를 아직도 감고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의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의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과거의 깊은 상처의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의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음란과 방탕, 탐욕의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중독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 수의가 그를 감고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어떤 사람은 예수님 믿고 나서도 분노조절이 안돼서 분노조절장애로 말미암아 그 분노조절장애로 칭칭 감고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혈기를 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2000년 전에 나흘이나 되어 썩었던, 그 썩어져 가던 나사로가 살아나서 걸어 나온 것 같이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새사람이 되었으면 이제 모든 것을 풀어버리고 자유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우리가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의 나사로에서 부활해서 오늘의 나사로로, 변화된 나사로로, 새롭게 된 나사로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펼쳐진 축복의 내일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칭칭 감고 있는 모든 수의를 풀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 모든 수의를 풀어 버려야 됩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무엇이 여러분을 묶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물질 문제가 칭칭 묶고 있어서 늘 물질의 문제로 고통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주님께서 그것을 풀어 놓아 주님께서 자유케 하여 주시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영육 간에 강건함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를 모든 포로 된 데에서 자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함을 넘치게 부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포로되었던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여 주셔서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어떤 수의를 감고 나왔든지 간에 다 풀어헤치고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생명의 영입니다. 치료의 영입니다. 부활의 영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영입니다. 그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여서 모든 결박에서 놓여남 받고 우리에게 펼쳐진 축복의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자유하게 되었다. 더 이상 어떤 결박이 나를 묶고 있지 못한다. 주님 나와 함께하신다. 내 앞에 놀라운 축복의 미래가 펼쳐지고 내 앞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할렐루야.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을 갖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절대 과거의 상처받고 고통스러웠던 그 죽었던 나사로를 바라보지 말고 썩어져 냄새나는 나사로를 바라보지 말고 또 예수를 믿고 나서도 칭칭 감고 있던 수의로 뒤뚱거리며 살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다 풀어헤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풀어 놓아 다니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문제가 변하여 응답으로, 축복으로, 기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1890년에 25세의 젊은 여성,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43년 동안 큰 사역을 배운 로제타 홀(1865~1951)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원합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의사로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43년 동안 의료선교, 또 맹인들을 위한 선교, 또 여성 교육 및 아동 교육에 일생을 바쳐 헌신했던 귀한 종입니다.

한국에 1890년에 들어와서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진료를 시작했는데 진료 시작한 지 며칠이 안 된 어느 날 화상으로 손가락 세 개가 붙은 16살 소녀가 왔습니다. 피부를 떼어서 이 붙은 손가락을 떼어놓고 피부를 이식을 해야 되는데 그때는 아직 그러한 치료를 해본 적이 없고 또 그러한 것을 한 일이 없어서 다들 두려워하여 쳐다보았을 때 이 선교사님은 자기의 피부를 떼어서 손가락을 뗀 다음 그곳에 이식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아가지고 와서 첫해 동안 돌본 환자가 2,000명이 넘습니다. 줄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1년 후에 윌리엄 제임스 홀이라고 하는 의료 선교사님 한 분이 또 들어왔습니다. 이분도 한국의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주의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서 왔는데 이 두 분이 만나 가지고 1892년 한국 최초로 서양식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정말 내외가 힘을 합하여 병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데 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1894년 청일 전쟁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병으로 신음할 때 저들을 위해서 그냥 밤잠 자지 못하고 열심히 진료하다가 남편이 장티푸스에 걸려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때 이 부인의 뱃속에는 일곱 달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아빠도 보지 못하고 그 임신 된 상태로 이제 미국에 가서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 남편 윌리암 홀이 이루지 못한 조선 사랑을 네가 이루어라”

그래서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른 다음 1897년 11월 달에 자기 남편이 묻힌 조선 땅으로 다시 그 사역을 이어가기 위해서 옵니다. 한국에 와서 열심히 사람들을 진료하고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딸 이디스가 이질이 걸려 죽고 맙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있던 아이라 남편에 대한 큰 위로를 받았던 딸인데 저 이쁜 아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 같으면 그만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딸을 지갑에 있던 2불 12센트를 종잣돈으로 해서 어린이 병원을 세웁니다.
한국 최초로 어린이 병원을 세우고 그리고 한국 최초로 점자를 만들어서 맹인 농아 학교를 세워서 특수 교육을 시작했으며 서울 경성 여자전문대학, 현재 고려대 의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대문부인병원, 현 이대부속병원이 되었고요. 인천 기독교 병원, 인천 간호보건대학 등을 설립했습니다. 남편의 부의금을 모아서 평양에 세운 기홀 병원은 지금 평양 의학대학병원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연약한 여성인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과 며느리를 다시 자기 뒤를 이어서 선교사로 섬기게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한참 6·25전쟁이 진행되던 1951년 4월 5일, 한국의 전쟁 소식을 안타까워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양화진에 자기 남편과 딸이 묻힌 그곳에 같이 묻혀있습니다. 양화진에 가면 여러분, 이 묘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젊은 날 잡지에 기고했던 글에 이와 같은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천국이라는 도시에 이르는 보도’를 닦는 데에 작은 벽돌 하나만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정말 고귀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전한 이 귀한 선교사의 사역을 우리가 이 부활의 날, 기억하면서 우리가 제2, 제3, 제4의 로제타 홀이 되어서 수많은 죽은 영혼을 살리고 예수의 사랑을 온 천하에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어야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세상에 태어나서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이와 같이 순교의 피를 흘린 수많은 선교사님들의 정성과 헌신이 녹아져 들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뿐인 인생 우리 남은 여생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아름답게, 귀하게, 위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338장(통364)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1절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되 죽었던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님 앞에서 부활한 새로운 모습으로, 모든 결박을 풀어 제치고 자유롭게 된 모습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며 나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기사입력 : 2021.04.04. am 08:4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