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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겨 보는 3·1정신

8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라 불립니다. 1910년 이날,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병탄 당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종언을 고하는 치욕의 날이었습니다. 이후 35년간의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은 혹독했습니다. 청년들은 강제로 징집되어 전쟁의 총알받이가 됐고, 젊은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갔으며, 장년들은 노역장에 징용됐습니다. 일본어를 국어화 하는 정책으로 우리말과 글을 빼앗겼고, 창씨개명으로 조상 전래의 성과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급기야는 강제적인 신사참배를 통해 그들의 신을 섬길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사악한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의 생존권과 정체성이 백척간두에 놓였던 절체절명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난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어서 더욱 가슴 아픕니다. 조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망국의 낭떠러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민생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천주교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김훈의 소설 『흑산』에는 당시의 참상을 짐작케 하는 천주교인들의 처절한 기도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매 맞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집권층의 무능은 극에 달했고 국방과 외교는 가히 무인지경이 됐습니다. 자력으로 국가를 지켜낼 능력도 의지도 없었습니다. 청나라, 러시아, 일본 가운데 어느 나라의 힘을 빌려 국권을 보전할 것인가를 놓고 친청파, 친노파, 친일파로 나뉘어 정쟁을 거듭할 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일본군에게 신변위협을 느낀 국왕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1년을 머무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국력이 바닥난 채 외세에 기대어 버티던 왕조의 멸망은 어찌 보면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큽니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던 역사의 어둠을 뚫고 민족 부활의 빛이 되어 솟구쳐 오른 숭고한 자주독립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한반도 전역을 넘어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실로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한민족의 총궐기였습니다. 시위대의 "독립만세" 함성은 일제의 혹독한 압제 속에서도 민족의 기개가 꿋꿋이 살아있음을 만방에 알린 피 맺힌 절규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청사에 빛나는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교회가 해냈다는 사실입니다. 75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음에도 비폭력 평화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할 수 있었던 것도 '선으로 악을 이기려 했던' 기독교인들의 지도력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그 가운데 10명은 목사였습니다. 거사 날짜도 원래 3월 3일로 잡았다가 마침 그날이 고종황제의 장례일이어서 피하고, 바로 전날인 3월 2일은 주일이었기에 결국 토요일인 3월 1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이 이 땅에 전해진 지 30여 년,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개 3·1운동의 기조는 '투철한 자주독립정신', '거족적 대통합의 정신', '초극적인 관용의 정신'으로 요약됩니다. 3·1절 102주년을 맞은 지금, 선열들의 이 같은 고결한 정신을 거울삼아 오늘의 우리 모습을 비춰볼 때 한없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주독립의 관건은 외교와 안보입니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대양으로 진출하려는 '대륙세력'과 대륙을 향한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해양세력'의 충돌지대(shatter-belt)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의한 치욕적 국권 침탈 역시 전략적 요충지인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각축과 야합의 결과였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이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경쟁국으로 부상하게 됨에 따라 이 지역은 다시 한 번 강대국 간 세력 경쟁에 첨예한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익 우선의 슬기로운 실용외교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설익은 이념편향 외교로 인해 크고 작은 혼선과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1919년 3월 1일, 온 겨레는 독립의 대의 앞에 하나로 뭉쳤습니다. 일제의 패역함을 압도하는 도덕적 위엄과 단결된 힘으로 철옹성 같던 그들의 압제에 강력히 맞섰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계층, 세대, 지역, 이념에 따른 갈등과 분열은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불신과 증오가 만연한 비정한 '분노 사회'로 급속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모두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지도력 발휘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장벽은 높기만 합니다. 지도력은커녕 코로나19 상황에 편승한 교회에 대한 편견과 배척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진 실정입니다. 사방이 닫혀있는 환경에 처해 3·1운동의 주축이 되었던 신앙 선배들의 믿음을 되새겨 봅니다. 망국의 절망을 딛고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선진들의 신앙의 기개를 본받아야 할 때입니다. 피로 물들인 그날의 독립만세의 함성이, 이제 나라를 위한 우리들의 기도의 부르짖음으로 이어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진정 역사를 바로 세우는 주역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21.03.21. am 09:55 (편집)
김성동 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