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기획특집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26. 초대교회의 삼위일체적 침례가 완성되기까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정치·문화·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는 침례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

'오순절'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 절기로 보면 칠칠절, 맥추절, 초실절에 해당하지만 오순절이라는 단어는 복음서를 지나 사도행전 2장에 처음 등장한다(행 2:1).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된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예식인 침례도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많은 기독교인이 "정말?"이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기독교 신앙과 전통에 없어서는 안 될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성령의 강림이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이루어졌기에 오순절이라는 말이 복음서엔 등장하지 않고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순절과는 조금 다르게 침례는 예수님 이전에 이미 쿰란공동체에 의해 행해지고 있었다. 이렇듯 구약성경에는 없고 신약성경에만 나오는 단어와 전통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중간기에 형성된 것이다.

지금은 모든 교회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삼위일체적 침례를 행하고 있지만, 1세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침례가 공존하기도 했다. 첫째는 유대교 전통을 이어받은 쿰란공동체의 침례, 둘째는 원시 기독교 형태의 침례, 셋째는 지금과 같은 삼위일체적 침례이다.  

1. 쿰란공동체와 요한의 침례

마태복음 3장 13~17절은 예수님과 침례 요한의 첫 대면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 날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던 요한은 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께 침례를 베풀어야 하는 그의 숙명이자 사명을 다할 날이 온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감히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 수 없었다(마 3:13~14).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받으신 침례는 어떤 침례였을까? 지금과 같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였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1) 침례의 기원

종교적 행위에 대단히 보수적인 유대인이 구약성경에 없는 침례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고 그 기원은 어딘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요한의 침례를 포로기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번제를 드릴 수가 없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가지를 만족해야만 했다. 첫째, 제물이다. 율법은 모든 제사에 쓰일 제물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번제를 드리려면 흠 없는 1년 된 송아지, 양, 염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포로의 신분으로 주인에게 번제로 쓸 제물을 요구할 수 없었다. 둘째, 제사장이 필요했다. 제물이 있다고 해도 그 제물을 사사로이 드릴 수는 없다. 반드시 제사장에 의해 번제가 드려져야 했다. 셋째, 제단이 필요하다. 제물과 제사장이 있다고 해도 번제를 아무 곳에서나 드릴 수 없었다. 꼭 하나님께서 지정한 곳에서 드려야 했다.

이런 이유로 포로기에 번제를 포함한 희생 제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번제의 목적인 죄 사함을 위해 대신 한 것이 율법서에 기록된 몸을 씻는 정결 예식이다(레 14:1~8). 이 정결 예식은 단순히 몸만 씻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와 옷까지 빨아야 하는 의식이었다(레 14:8).

죄를 씻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던 시대에 이 정결 의식이 희생 제사를 대신했고 이런 전통은 쿰란공동체를 중심으로 포로기 이후에도 계속 지켜지고 있었다.


2) 요한의 침례

성경은 요한의 침례를 '죄 사함의 침례'(막 1:4; 눅 3:3)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뜰(이방인의 뜰)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는 사건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돈을 바꿔 주거나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번제에 쓰일 제물을 팔아 돈을 버는 장사치들이 있게 된 것은(마 21:12; 막 11:15; 눅 19:45; 요 2:13~16)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교 전체에 물든 종교적 타락과 무관하지 않다.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1년에 최소한 세 번씩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가야 했다. 이때 번제에 쓸 짐승들까지 데리고 가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간혹 번제로 합당하지 않은 제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로 인해 합리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것은 번제에 쓸 제물을 제사장들이 지정하는 가축업자가 납품을 하고 백성들은 돈만 가지고 와서 사게 하는 편리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게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사장들과 가축 납품업자들 사이에 뇌물이 오가고 제사장들은 제물로 쓰기엔 하자가 있는 짐승도 성전 뜰에서 산 것은 눈 감아 주었다. 또한 20세 이상 성인 남자는 1년에 반 세겔씩 성전세를 낼 의무가 있었는데(출 30:13~16), 이것을 꼭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화폐로 내야했다. 그 당시 화폐 발행이 중앙집권적이지 못해서 네다섯 가지 지방 화폐가 존재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전을 해야 했고 여기서 생기는 환전수수료로 막대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게 됐다.

이 돈의 일부는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에게 상납 되는 구조가 생겨났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금전적인 이득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종교적 타락을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일반 백성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적인 갈급함으로 요단강에서 '죄 사함의 침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베풀던 침례는 초대교회에서 완성된 삼위일체적 침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쉽게 말해서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 때 "성부와 성자인 예수 당신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푸노라"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침례 요한의 침례는 율법의 정결 예식에 따라 쿰란공동체가 행하던 누구의 이름도 거명되지 않았던, 번제의 기능을 대신하는 '죄 사함의 침례'였다.


2. 원시 기독교의 침례: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침례"


침례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는 공식적인 의식이다. 지금은 교단마다 침례에 대한 다른 형식, 절차, 기준이 있다.

형식으로 보면 크게 침례와 약식세례로 나눌 수 있고 절차와 기준으로 보면 어떤 교단은 유아세례(유아는 물에 완전히 잠겼다 나오는 침례가 아닌 물을 머리에 뿌리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유아침례보다 유아세례가 맞는 표현이다)를 인정하지만 다른 교단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일정한 나이가 돼야 침례의 자격을 준다.

유아세례가 없는 교단은 헌아식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신앙고백 없이 부모님의 결단과 믿음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성년이 됐을 때 입교식을 거쳐 정식 교회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막 생겨난 사도적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사도적 교회는 지금과 같은 교회의 체계나 조직을 갖추기 전이었기에 사도들이 교회의 행정, 재정, 말씀 선포 등 교회의 모든 일을 다 했다.

사도적 교회는 사도행전 6장에서 집사 제도가 생기면서 제도화된 교회로 점차 바뀌었고(행 6:1~6)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행 6:4). 이 시기에 침례의 의미도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됐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침례 요한의 침례는 번제를 대신하는 '죄 사함의 침례'였기에 어떤 이름도 부여되지 않았고 번제가 반복적으로 행해졌던 것처럼 침례 또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유대교적 정결 예식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새로운 침례를 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푸는 것이다. 사마리아 성도들은 유대 전승에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행 8:16), 베드로는 고넬료 가정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었다(행 10:48).

침례는 단순히 죄 사함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는 예식이었으며 또한 구원을 확증하는 평생에 한 번 일회성 침례로 바뀌게 되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이전편: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5.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와 하나님의 산

☞다음편: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7. 초대교회의 삼위일체적 침례가 완성되기까지 - II

 

기사입력 : 2021.03.07. am 10:29 (편집)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