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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가신 김성혜 총장의 발자취

◆ 배우고 도전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은 삶

김성혜 총장은 1942년 6월 10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아버지 김요한 목사와 어머니 최자실 목사의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51년 1·4후퇴 때 경남 진해로 피난 갔을 당시 아버지가 해군 장교였다. 아홉살이었던 김성혜 총장은 해군기지 군악대장의 부인에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14세에 성령체험을 한 김 총장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 최자실 목사가 다니던 서울 순복음신학교에서 여섯살 연상인 조용기 목사를 처음 만났다. 김 총장은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음대를 거쳐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교회 찬양대를 지휘하고 복음성가를 만드는 등 교회 음악 발전을 이끌어 왔다. 김성혜 총장은 생전에 작곡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하나님께서 멜로디를 들려주셔서 받아 적은 것이기에 하나님이 작곡자다. 나는 받아 쓴 사람일 뿐이다"라고 고백하곤 했다.

 1965년 3월 1일 김성혜 총장은 조용기 목사와 결혼해 희준, 민제, 승제 세 아들을 낳았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가운데도 재능을 살려 피아노 교습으로 생활비를 벌었으며 목회일정으로 바쁜 조용기 목사 내조에 최선을 다했다.
 김성혜 총장은 강남대학교 신학과 학사(1975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영문학 석사(1982년), 미국 맨해튼음대 대학원에서 석사(1995년)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베데스다 신학대학원을 졸업(2002년)한 뒤 오랄로버츠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2008년)를 받았다.
 2002년 목사 안수 후 김성혜 총장은 하나님께 새로운 소명을 받아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또한 2009년 캄보디아 국왕최고훈장, 2010년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감사패 등을 수여받았고 2014년 조선일보 선정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로 선정되기도 했다.
 

◆ 2002년 목사 안수 후 세계선교 열정

1998년 4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 국제성회를 기점으로 해외 선교 활동을 시작한 김성혜 총장은 영국, 노르웨이, 미국, 호주, 필리핀, 볼리비아,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2002년 61세에 미국 베데스다대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받고 순복음북미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목회자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2004년 8월 남미 에콰도르 과야킬 크리스천센터교회에서 열린 '목회자 사모 및 여교역자 초청 세미나'의 주강사로 초청돼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 위치한 반석교회에서 개최한 '2004 여성대회'에도 초청돼 여성 사역자의 역할과 믿음에 대해 말하며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011년 싱가포르 시티하베스트교회 콩히 목사의 추천으로 대만, 일본, 말레이시아 등을 다니면서 강연했고 2012년에는 노르웨이 안네 크리스티안슨의 초청을 받아 노르웨이 '지저스 우먼'대회에서 말씀을 증거했다. 2014년에는 미국 히스패닉계교회의 초청을 받아 보스턴과 워싱톤 D.C 지역 순회강연을 하는 등 2019년까지 끊임없이 세계만방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다.

 김성혜 총장은 "하나님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할 수 있다!"(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in God!)는 희망찬 설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배달부 역할을 하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꿈과 비전을 줬다.

◆ 피아니스트, 교육가, 자선가로 한 평생 헌신 

김성혜 총장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자 음악인이었다. 김성혜 총장은 30여 곡의 찬양을 작곡했는데 1974년 당시 33세에 '항상 기뻐하라'를 시작으로 '놀라운 주의 사랑' '주를 아는가'를 작곡하는 등 수 많은 명곡을 남겼다. 외국 찬양곡집과 음악 서적을 번역하고 성가합창곡집, 복음성가를 편저하며 한국 교회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조용기 목사 작사에 곡을 붙여 김성혜 총장이 작곡한 찬양도 많은데, 1980년에 나온 '얼마나 아프셨나'(찬송가 614장) 1983년에 나온 '내 평생 살아온 길'(찬송가 308장)은 21세기 찬송가에 수록되며 많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주님의 은혜를 전했다.  

 1990년대에도 '예수님 예수님' '밝은 아침해가 두둥실' 등 많은 곡을 작곡했다. 진취적인 신앙을 고취시키는 가사 내용과 군가를 연상시키는 힘찬 곡조가 결합된 순복음의 대표적인 찬송인 '주의 십자가의 깃발'은 1995년 작품이다. 2000년에는 '오 할렐루야'를 작곡했는데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성회 때 만든 곡이다. 2001년에는 '나 슬픔 고통당하여'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작곡했고, 2003년에는 '어둠이 세상을 덮고 있을 때'를 작곡했다.  
 2004년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를 발표했다. 이곡은 2003년 10월 CGI 대회에 설교를 하러 가던 중 기도원 성전 위에 있는 '네 입을 넓게 열라'는 성경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와 멜로디를 붙인 곡이다.
 2004년에는 싱가포르 부흥성회에 초청됐을 때 '이리로 오세요'라는 찬송을 지었다. 이 찬송은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부르기에 좋은 찬양이다.
 2005년에도 '승리의 주님' '큰 바다 파도가 치고' '야훼는 나의 목자' 등 많은 곡을 작곡했다. 김성혜 총장은 자신이 체험한 좋으신 하나님을 복음성가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면 응답해주신다는 본인의 체험을 담아 찬송을 만들었다.
   
◆ 노인복지원·고아원·장학재단 통해 나눔의 삶
 
김성혜 총장이 교육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72년이었다. 당시 31세였던 김성혜 총장은 순복음신학교에서 처음 교회음악 강의를 맡았다. 이후 김 총장은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대성고등공민학교 교장을, 1981년부터 1995년까지는 호서대학교 음악 교수, 예술대학장, 사회교육원장을 역임했다.  
 2001년 김성혜 총장이 부임한 이후 한세대학교는 교육부로부터 '디자인 특성화대학 선정(2005년),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인력양성대학 선정(2008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외국인교원 확보율 전국 1위(2013년)' 등 유수 기관으로부터 그 성과를 인정받는 쾌거를 이뤘다.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자선사업가로도 활동했던 김 총장은 1991년 '가나안의 집'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무의탁노인 6명을 돌보았고 수용인원이 한계에 이르러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근처에 새로운 부지를 구입해 1994년 '가나안노인복지원' 개원예배를 드렸다. 2년 뒤에는 경영이 어려워 존폐의 위기에 놓인 고아원 '영생애육원'을 인수하고 '가나안 우리집'으로 명칭을 바꿨다. 김 총장은 2013년 27년 된 고아원 건물을 허물고 고급 건물을 신축해 시설 명칭을 '그레이스빌'로 변경했다.  2008년에는 '성혜장학회'를 설립했다.
 김성혜 총장은 48년간 교육자로 학생들을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는데 헌신했으며 동시에 자선사업가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눔의 삶을 실천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미나·복순희·김주영·금지환 기자

 

기사입력 : 2021.02.21. am 10:53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