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기획특집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23. 요나의 예언과 니느웨 멸망-Ⅱ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욘 3:10 ~ 4:1)


거짓과 포악이 가득한 '피의 성'니느웨

1. 니느웨의 발굴

앗시리아는 B.C.960~B.C.612년 사이 짧은 기간 내에 제국을 이루고 근동의 패권을 쥐었다. 앗시리아의 정복 사업은 끊임없이 이어져 앗시리아의 왕들은 더 넓은 영토와 새로운 땅을 점령해 나갔다. 앗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느웨(니네베, 지금의 이라크 모술)는 북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로부터 약 885㎞ 정도 떨어져 있는 티그리스강 동쪽에 있다.

인구는 60만 명 정도였다. 그 당시 한 도시에 60만 명이 살았다는 것은 대도시 중에서도 대도시에 속한다. 서양인들은 로마 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로마의 문명에 맞먹는 문명이 동양에 있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앗시리아와 바벨론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성경의 기록 외에 다른 사료를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느웨의 발굴이 이루어진 19세기 이전까지 앗시리아는 단순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나라 정도로 취급되었다. 성경 속에만 존재하는 신화적인 도시였던 니느웨는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에 의해 역사 속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1845년 10월 영국인 레이어드에 의해 니느웨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석공들과 사환 몇몇의 일꾼들을 데리고 길이 약 549m 너비 274m 높이 19m의 거대한 님루드 구릉을 삽과 곡괭이로 파기 시작했다. 일꾼들은 레이어드가 노다지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부들은 레이어드가 석고 조각이나 깨진 벽돌 조각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하지 못했다.

한 달여가 지난 11월 28일 흙더미 사이로 니느웨의 성벽 일부에서 말과 사람들의 역동적인 부조가 모습을 드러내자 레이어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대한 흙더미에 파묻혀 있던 니느웨의 성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큰 홍수를 비롯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으로 인해 흙더미에 묻혀 있던 앗시리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1) 니느웨와 앗시리아의 기원

니느웨는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나안 땅을 갈 때 니느웨 근처를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나는 1000년의 시간이 지나 니느웨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니느웨의 기원은 노아의 후손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손자 니므롯(Nimrod)은 지금의 니느웨(Nineveh)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니느웨라는 말이 노아의 증손 니므롯의 이름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보다는 앗시리아 인들이 섬기던 수호신 니나(Nina)에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가하다. 앗시리아라는 이름도 '아시리아'라는 신의 이름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니느웨와 앗시리아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델타 지역에서 발원됐으나 대부분의 생활양식과 문명은 시날 땅에 거주하던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앗시리아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는 문명을 이룩했다. 세계 최초의 동물원과 식물원, 수렵장을 만들어 놓았고 정복한 땅을 자국의 행정 구역 단위로 포함시키는 등 제국의 형태를 갖춘 최초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의 왕들을 대부분 살려 놓고 속국의 왕으로 앗시리아에 충성하면 봉신으로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정복사업과 전쟁 장면들을 성벽 원주 경계비 점포판 등에 새겨 넣었다(아놀드 C. 브랙만  『니네베 발굴기』 p.12~14).  


2) 니느웨 성의 규모와 사회상

요나 3장 11절은 니느웨 성읍의 크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성읍 주위를 도는 데만 3일이 걸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아시아 초원 위에 세워진 니느웨 성은 높이가 60m나 되고 1500개의 망루로 요새화 되어 있었다. 성벽은 바벨론의 성들처럼 수레 3대가 동시에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이였으며 15개의 성문과 30채가 넘는 사원이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니느웨는 문란한 도시였다. 여인들은 귀족일지라도 왕족의 손님들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었고 신전 매춘부들이 공공연하게 매음 행위를 했다. 왕들 중 대부분은 야비하고 잔인했으며 탐욕스럽고 성도착증에 빠진 폭군들이 많았다(아놀드 C. 브랙만 『니네베 발굴기』 p.13).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당대 최고의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점령하려던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다. 왕들은 폭력적이었고 백성들은 음란과 쾌락에 빠져 있었다(나 3:1~4). 요나는 이런 니느웨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요나가 기대했던 것은 니느웨 성 사람들의 회개나 하나님의 용서가 아닌 징벌이었다. 이 징벌이 이루어지지 않자 하나님께 화를 냈다.


2. 니느웨의 멸망 : 하나님 말씀의 성취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는 요나만이 아니었다.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구체적으로 여러 장에 걸쳐 예언했다. 나훔은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고 불렀으며 거짓과 포악이 가득했으며 탈취가 떠나지 않았던 도시로 묘사하고 있다(나 3:1).

니느웨는 요나의 선포와 회개로 하나님의 심판을 잠시 피할 수 있었지만 약 100년 뒤 나훔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멸망했다(나 3:1~19). 니느웨는 실제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추었다. 니느웨가 멸망한 후 200여 년이 지나 크세노폰(Xenophon)이 그리스 원정대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 유명한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


크세노폰이 이끄는 그리스 원정대가 니느웨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많은 구릉지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었던 구릉지 밑에 니느웨 폐허가 누워있을 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못했을 것이다. 앗시리아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으며 B.C.612년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이 니느웨를 함락시켰다.

유대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 민족에게 선포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북이스라엘 최대의 적이었던 앗시리아의 수도까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는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에 도착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가 멸망하는 것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즐기려 했다. 그러나 니느웨에 대한 멸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나는 이것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또한 요나보다 후대의 선지자였던 나훔에게 주신 말씀대로 일점일획도 틀림 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 학감)

☞이전편 :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2. 요나의 예언과 니느웨 멸망-­I

 

기사입력 : 2020.11.15. am 09:27 (편집)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