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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22. 요나의 예언과 니느웨 멸망-­I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 말씀 선포한 유일한 예언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욘 3:10~4:1)

요나는 전통적인 개념의 예언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았고(호 1:2~3), 이사야는 3년 동안 맨발과 벗은 몸으로 이스라엘을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사 20:2~3). 그러나 요나는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가 풍랑을 만났다. 니느웨가 멸망할 것을 선포했으나 재앙이 내리지 않자 하나님께 화를 내기도 했다(욘 4:1).

요나는 특별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유일한 예언자이며 바울의 선교가 시작되기 무려 800여 년 전에 선교 여행을 떠났던 구약시대에 활동한 선교사였다.


1. 요나와 앗시리아


여로보암 2세는 41년 동안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앗시리아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떠난 왕이었고 요나는 이 시기에 활동한 북왕국 예언자이다(왕하 14:23~25).

북왕국은 앗시리아에 의해 B.C. 722년에 멸망했는데 여로보암 2세의 재임 기간을 B.C. 793~753년으로 본다면 북왕국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기 30~50년 전에 요나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했다고 볼 수 있다.

여로보암 2세 때 앗시리아가 잠시 근동에서의 세력이 약해졌던 틈을 타 북왕국의 영토 일부를 회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앗시리아는 북왕국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예후 왕 때부터 조공을 바쳐야 했던 최대의 적군이었다. 북왕국은 결국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요나에게 앗시리아는 마치 구한말 우리나라를 서서히 침탈하다 결국 식민지화한 일제와 같았을 것이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말씀은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1) 욥바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욥바에서 배를 탔다(욘1:3). 욥바의 현재 지명은 텔아비브(Tel Aviv)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유엔의 허가를 받아 독립을 했을 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토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텔아비브를 수도로 정했다. 6일 전쟁으로 불리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되었고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나 아직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헌법상의 수도일 뿐 국제법상의 수도가 아니다.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 55㎞ 정도 떨어져 있는 고대 근동에서부터 발달해 온 역사적 장소이다. 성경에서도 욥바는 다양한 시대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욥바는 솔로몬의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고 특별히 성전 건축의 주재료가 된 백향목이 운송되어 오던 곳이다(대하 2:16).

솔로몬이 두로 왕 후람에게 받은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백향목을 옮기는 짐꾼만 7만 명에 이르렀고, 8만 명은 산에서 벌목을 했으며 3600명에게 일을 감독하게 했다(대하 2:18). 물론 이렇게 많은 백향목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만 쓰인 것은 아니다. 13년 동안 솔로몬 성을 건축할 때 들어간 재료도 포함되어 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스룹바벨의 제2성전이 건축될 때 다시 한 번 욥바 항구를 통해 운반되어 왔다(스 3:7). 그러나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신약시대에 욥바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닥친 박해를 피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행 8:1).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형성되었다.

하나는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이다. 안디옥교회는 초대 교회의 선교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욥바가 사마리아 지역과 함께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병에 걸려 죽었던 여(女)제자 다비다(도르가)를 살리기도 했다(행 9:36~40).

또한 베드로가 욥바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환상을 보고 사마리아 지역으로 내려가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성령을 받게 했다(행 10:6~45).  


 2) 다시스(Tarshish)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욘 1:2) 욥바에서 니느웨가 아닌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Tarshish)를 향하는 배를 탔다. 다시스는 지금의 스페인을 말하는데 유대 성서학자들은 스페인 남부 타르테소스(Tartessos)를 성경에서 말하는 다시스로 보고 있다. B.C. 700년 이전부터 아프리카 대륙과 근접해 있는 스페인 남부에는 켈트(Celtic), 이베로(Ibero) 등과 같은 다양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타르테소스는 스페인의 고대 원주민이 살던 지역들 중의 하나였지만 주석 은 동 철과 같은 광물이 풍부했고 고대 그리스와 페니키아인들과 관계 무역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최초로 배에 돛을 달아 항해를 한 것은 B.C. 3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으나 원시적인 모습이었고 요나의 시대만 해도 완전한 범선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풍력을 이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노예들이 노를 저어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시스는 그 당시 조선술과 항해술로 이스라엘에서 갈 수 있는 최장 거리의 상징이었다.

이사야 66장 19절, 시편 72편 10절에서 다시스는 특정 지명이 아니라 서쪽 끝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이기도 했다. 다시스와 이스라엘의 관계 무역은 솔로몬 왕 때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다. 열왕기상 10장 22절에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스와의 무역은 분열 왕국 시대에도 이어졌다. 여호사밧은 오빌의 금을 취하기 위해 다시스로 가는 배를 새롭게 만들어 출항했으나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한 사건도 있었다(왕상 22:48). 요나가 욥바에 정박해 있던 여러 배들 중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감)

 

기사입력 : 2020.10.18. am 10:55 (편집)
이상윤 목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