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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성도(베이스·여의도순복음교회)

''반항아에서 성악가로'' 눈부신 변신은 하나님 은혜

어머니 눈물의 기도가 나를 세워
독일 무대서 주역으로 10여 년간 활동
''별 헤는 밤'' 노래로 유명, 국내 무대 기대

전 세계적 팬데믹인 코로나19로 우리는 일상의 멈춤을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계도 온통 멈춤이다.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던 실력파 성악가 김대영 성도도 코로나19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지난 3월 모든 공연이 중단된 독일에서 잠시 귀국했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2부 베들레헴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8월에는 바이마르 국립극장에 사표를 내고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2006년 유학을 시작으로 14년을 독일에서 보낸 김대영 성도는 현지에서 모두 45개 작품 총 500여 회 공연에 참여했다. 그 중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작품 공연에 많이 참여했는데 두 대가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고 또 자신과도 제일 잘 맞았다고 했다.

해외 활동으로 바빴던 김대영 성도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곡 ''별 헤는 밤''을 부른 원곡자로 국내에서 유명하다. ''별 헤는 밤''은 팬텀싱어2에서 고우림이 불러 화제가 됐던 곡이다.

김대영 성도는 가수 배다혜와 한국 아티스트 시리즈 두 번째 싱글(위클래식) ''즐거운 편지''도 불러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인 화가 문학가 수필가 음악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해 탄생된 앨범에 수록된 곡 ''즐거운 편지''는 시인 황동규의 대표 시 중 하나다.

"독일 가곡도 좋지만 음악은 듣고 바로 이해할 때 가슴을 울리는 먹먹함이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대중과 소통을 위해 앨범 작업을 하게 됐고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을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김대영 성도가 유럽 오페라 무대의 주역이 되기까지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요셉이 연상된다. 물론 요셉은 반항아는 아니었지만.

그는 목회자의 아들로 울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사역지를 따라 이사를 하다 보니 초등학교는 5군데 중학교는 2군데 고등학교는 3군데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 성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지만 개척교회 목회자 가정이다 보니 음악을 공부할 형편이 못 됐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되면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다툼이 잦아졌다.

김대영 성도는 고2 때 학교를 그만두고 막노동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띠동갑인 동생에게 첫 월급으로 옷을 사주고 돌아서는 날 그의 눈에는 ''성악 학원'' 간판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무작정 들어가 "노래를 배우고 싶다. 하지만 학원비 낼 형편이 못 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원장은 "나도 개척 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그 마음 다 안다"며 무료 레슨을 승낙했다. 학교를 그만 뒀던 김대영 성도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예고에 입학했다. 고3 때는 전국 유명 콩쿠르를 휩쓸었고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수원 음대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독일에서 열린 콩쿠르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유학을 결정한 그는 뉘른베르크 음대를 졸업했다. 그동안 국내 슈베르트·음악춘추·난파음악·중앙음악 콩쿠르는 물론 해외 이탈리아 안셀모 콜차니·독일 쾰른 음악 콩쿠르 등에서도 입상했다.

김대영 성도에게 있어 삶의 전환점이 된 콩쿠르는 2008년 칠레에서 열린 ''닥터 루이시갈 국제컴피티션 콩쿠르''였다. 2위를 수상해 동양인으로는 처음 성악부문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이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됐다. 콩쿠르를 앞두고 칠레에 국제전화를 걸어온 아버지(울산 주광교회 김성렬 목사)는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줘 미안하다. 그 상처가 네 성장을 가로막은 거 같아 미안하다"고 울며 용서를 구했다. 뜻밖의 전화에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원망 미움 등을 떨칠 수 있었다. 그리고 2009년 아버지의 주례로 독일에서 함께 공부했던 자매와 결혼식을 올렸다.

김대영 성도는 역경을 딛고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4년)과 바이마르 국립극장(8년)에서 당당하게 주역배우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한창 방황하던 시절 어머니가 잠시 저를 부르셨어요. ''혼나겠구나'' 생각했는데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미안하다'' 하시는데 마음속에 깊이 박힌 분노가 사라지는 걸 느꼈어요." 그는 힘들 때면 어머니를 떠올렸고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찬양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를 불렀다.

"어머니의 기도가 자신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한 그는 방황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독일에서 가끔 한국에 올 때면 교도소에서 이야기 콘서트를 진행하고 성악에 소질이 있는 소년 수형자들을 가르쳤다.

국내 무대로 복귀한 그는 제주도에서 화가 이중섭이 남긴 유일한 시 ''소의 말''로 만든 노래를 녹음했다. 윤동주 시인의 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대표적 시 ''밤''으로 만든 노래도 제작해 곧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찬양 음반으로는 독일에서 제작해 2015년 발매된 ''어린양(독일어 Opferlamm)''이 있다.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


 

기사입력 : 2020.10.11. am 10:51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