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기획특집
6.25 참전용사 차일석 원로장로(용산성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나를 지켜준 건 하나님의 손길"
미2사단 38연대 소속으로 중부전선 전투 참전
미국 선교사로부터 배운 영어로 국군과 미군간 통역 담당

6.25전쟁 당시 강원도 김화에서 철원 그리고 양구로 이어지는 중부전선은 고지탈환을 위한 남과 북의 최대 접전지였다. 밀려오는 적군을 막아내기 위해 국군 5사단은 유일하게 포를 갖고 있던 미 2사단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인 연합 작전을 펼쳐 인민군과 중공군을 초토화시켰다. 국군과 미군 사이의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역이 중요했는데 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미2사단 38연대 에드워드 로우니 연대장의 부관으로서 통역을 맡았던 차일석 원로장로(당시 20세)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에 입대하게 된 차일석 장로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미2사단으로 차출됐다. 미국 선교사로부터 배운 영어가 군 통역관으로 쓰임 받는 도구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는 차일석 장로는 치열했던 중부 전선 전투에 참전해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어야 했다. "국군이 적의 위치를 알려주면 미군에게 이를 정확히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포탄이 아군 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죠. 적의 진영에 6시간 동안 포를 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나무 하나 남아 있지 않더군요. 전쟁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차일석 장로는 통역 임무 외에도 미국 레인저 특수부대를 따라 최전방에서 두 차례 임무 수행을 한 적도 있었다. 목숨 건 임무 전에 미군 군목은 부대원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줬다.
 "최전방에 나서기 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군에서는 머리카락과 손톱 일부 그리고 신분증을 비닐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사진도 함께 넣었는데 아, 무섭더라구요. 그때 ''조국을 위해 싸웁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나 죽음으로부터 나를 지켜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군요."

 차일석 장로는 전장에서 찬송 ''나 어느 곳에 있든지''(찬송가 408장)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포연이 자욱한 사선의 현장에서 유일한 위로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구하는 찬송이었다. 참전을 마치고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차일석 장로는 뉴욕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세대 교수를 거쳐 서울시 부시장을 역임했다. 부시장 시절 차일석 장로는 한국전쟁 때 만난 에드워드 로우니 연대장과 17년 만에 재회하기도 했다. 미 대사관 초청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차 장로가 서울시의 부시장이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미군과 한국군의 첫 연합부대인 한미 1군단 초대 단장을 역임한 에드워드 로우니 장군은 아리랑을 즐겨 부를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고 100세를 넘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차일석 장로는 "전쟁은 정말 참혹한 비극"이며 "다시는 이 땅에 그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전쟁 없이 남북이 화해하면 좋은데 그건 인간의 힘으로는 안돼요.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남북 화해와 통일의 해법은 오직 ''기도''뿐이라고 강조한 차일석 장로는 영락교회를 출석하다가 권사인 어머니의 권유로 서대문에 있던 순복음교회와 연을 맺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좋아했던 차일석 장로는 서울시 부시장 시절 아무도 관심 없던 땅, 여의도 개발을 추진했고 우리 교회의 여의도 이전을 적극 추천하고 도왔던 인물이다. 이후 국민일보 서울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특별취재팀>

 

기사입력 : 2020.06.28. am 11:44 (편집)
특별취재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