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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6.25 참전용사 인터뷰

김용진 연로장로(남구로성전)

쏟아지는 총알 밭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김용진 연로장로는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압록강에서 평양까지 후퇴한 급박한 상황에 17세 소년병으로 입대했다. 기초 군사 훈련도 건너 뛸 정도로 다급했던 때라 입대하자마자 소총 한 자루와 담요 한 장을 보급 받고 곧장 전투에 투입됐다. 사격하는 방법도 전장에서 배우고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을 오가며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김용진 장로는 동부전선에서의 전투를 회상하며 "소나무가 울창했던 산에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알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전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소총과 포탄에 의해 떨어져나간 소나무 이파리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며 "동부전선 전투에서 포탄 파편이 다리에 박힌 것도 모르고 복귀해서 다리에 흐르는 피를 보고 부상당한 것을 알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전투에 참여한 김 장로는 두렵고 힘들 때마다 어릴 적 교회에서 기도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하나님 오늘도 이곳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김 장로는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멈춘 뒤 1954년 7월 3년 8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중사로 전역했다. 김 장로는 "청년들이 미워해야할 것은 공산주의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북한 동포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며 "다음 세대가 북한 동포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나아간다면 통일은 물론 경제 대국을 이뤄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옥선 집사(종로중구대교구)

두 번 다시 6.25와 같은 비극이 없길 기도

박옥선 집사는 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 회장을 맡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1951년 4월 17세 여고생이었던 박 집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뜻을 품고 입대했다. 전쟁 중 간호장교로서 박 집사는 전투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했고 휴전 후에는 중앙보훈병원에서 간호과장으로 월남전 부상 군인들을 돌보며 18년 간 군생활을 마치고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후에도 전쟁 부상으로 육체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6.25참전 용사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동행했다. "7년 전 ''행복으로의 초대''에 난 저의 기사를 보고 60년 전에 자신을 치료해 준 간호장교가 맞는다며 저를 찾는 분이 나타났어요. 당시 박종은 중위님은 총에 맞아 얼굴의 반이 함몰되는 부상을 입으셨는데 지금도 살아계셔서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약품도 부족하던 전쟁 통에 모태신앙인 박옥선 집사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나님만이 이들을 고치고 살리실 수 있다며 기도했다.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큰 부상을 입은 분들을 치료하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그때 기적이 정말 많이 일어났어요. 그게 제 간증이죠." 박 집사는 지금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매일 무릎 꿇고 기도한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6시에는 아침 일찍 유공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문을 연다. "6.25전쟁 70주년이라고 해서 아직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에요. 나라에 평화가 있기를 서로 사랑하기를 매일 기도해요. 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 돼요. 전쟁은 살상 강탈 파괴죠. 두 번 다시 6.25와 같은 비극이 없길 기도합니다."


임순영 집사(구로대교구)

전쟁의 아픔 기억해 복음통일 되길 바라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임순영 집사는 군 시절을 회상하며 전우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6.25전쟁으로 많은 전우가 희생했는데 그때 통일을 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임 집사는 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다 떨어진 군화와 군복을 입고 군 생활을 했던 젊은 청년들의 희생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며 올바른 역사의식을 후손들이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88세인 그는 1953년 21세에 군에 입대해 52개월 동안 군복무를 했다. 군에 입대한 임 집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 전방에 배치되기 위해 살벌한 훈련을 감내했다.
 훈련 중에는 전쟁의 경과를 알 수 없어서 몰랐는데 훈련을 마치고 나서야 휴전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전투부대가 아닌 그는 1201 건설공병단 소속으로 복무하며 국가 재건을 도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참혹함을 본 그는 한국에서 전쟁이 결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임순영 집사는 30년 전 아내 정정엽 권사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15년 동안 정성으로 돌봐왔는데 아내는 지난 4월 85세 나이로 소천했다.
 임 집사는 지구역장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긴 아내 덕분에 신앙을 갖게 되었고 1남 2녀의 자녀들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의 가정을 이뤄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순영 집사는 "우리 모두가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하지만 이 땅에 있을 때는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게 사명인 것 같다. 총이 아닌 복음으로 통일되기를 항상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최우병 집사(마포1대교구)

전쟁나자 자원입대, 3년간 전쟁 겪으며 나라 구해

   
올해 90세인 최우병 성도는 1950년 전쟁 소식을 듣고 바로 군에 자원 입대했다. 19세의 어린 나이지만 3.1운동 서울 독립단장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지원한 것이다.   이공계 학생이었던 최 성도는 1102 야전전투공병단에서 통신을 맡는 특과병이 되어 나라를 위해 싸웠다. 공병단은 전방에 투입돼 끊어진 다리를 잇고 길을 만드는 일이 주 업무였다. 전방을 지원하는 만큼 치열했던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다.   "많은 전우를 잃었고 끔찍한 장면들을 많이 봤어요. 인민군들은 마을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고 여자들을 겁탈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죽였죠. 나쁜 짓을 한 후에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죽여버리고 그 자리를 떠났어요." 전쟁의 참혹한 참상이었다.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수류탄 파편이 눈썹 위로 튀어 큰 부상을 입기도 했고 폭격을 맞아 강으로 떨어져 죽을 뻔했던 기억도 있다. 그는 나라를 위해 무조건 싸우겠다고 다짐했고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전을 앞둔 무렵 양구에서 일어난 전투가 가장 기억나요. 중공군, 한국군, 유엔군, 인민군이 모두 치열하게 싸웠던 전투였죠. 인민군들이 새까맣게 몰려왔고 중공군은 인해전술을 펼쳤죠.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웠어요."
 최우병 성도는 1953년 7월 전쟁이 멈춘 후 1년 반 동안 육군 본부 통신감실에서 근무하다 1등 중사로 제대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쟁의 아픔을 잘 몰라요.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는지 바로 알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힘겹게 찾아낸 자유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모두 힘써야 합니다."

 

기사입력 : 2020.06.21. am 10:4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