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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태복음 12장 17~21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고 있어서 이번 주일부터 우리 교회의 서울 전역의 136개 기도처를 열어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교구버스가 운영될 때까지 136개 기도처를 함께 열어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만큼 본 교회의 성전에 오지 못하시는 분들은 집 근처에 있는 기도처를 확인하시고 그곳에 가셔서 예배를 드리시면 되겠습니다.

주일, 수요일, 금요일 교구버스가 동원되는 공예배에는 모든 기도처를 다 열겠습니다. 지금 상태로 언제 이 코로나-19가 종식될지 모르기 때문에 기도처를 다 오픈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기도처에 나오셔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훨씬 더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방역지침을 잘 지켜서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더욱 우리가 힘을 모아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북한은 뭐 터뜨리고 여러 가지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데 우리가 기도할 것은 주님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나누어 다투지 않게 하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주셔서 우리 한국이 코로나-19를 속히 극복하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며 북녘땅에 복음이 증거되어서 남북이 복음 통일을 이루는 날이 속히 다가오게 하여주옵소서.

경제가 안정되게 하시고 정치가 안정되게 하시고 사회적인 모든 불안정적인 요소가 사라지게 하여주옵소서. 다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412장 (통:469)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리고 기도를 잃어버리고 감사를 잃어버렸던 저희들의 모습입니다.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철저히 우리가 회개하고 반성하며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여주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펼쳐지게 하여주셔서 이 어려운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둠을 밝히고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북녘땅에 복음의 문이 열려 복음이 들어가 복음을 통한 남북통일의 놀라운 역사가 속히 다가올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마태복음 12장 17절~21절 말씀 가지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이 땅에 구세주로, 치료자로,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3분의 2가 병을 고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 앞에 몰려왔고 예수님은 저들을 긍휼히 보시고 일일이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8장 16절입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2장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예수님은 치료자가 되어 주셔서 주님께 나온 모든 병자를 다 고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우리의 병을 고쳐주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를 고치신 후에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메시야의 모습과 사역을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9절, 20절입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여기 보니까 메시아가 와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고 저들을 사랑으로 보살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상한 갈대는 누구인가?

첫째로 상한 갈대는 과연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사야 42장 2절과 3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장은 유다 왕국이 멸망해서 바벨론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을 향해 선포해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남왕국 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상한 갈대, 꺾여진 갈대, 찢기고 짓밟힌 갈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체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꿈도 없고 버려진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을 돌봐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하는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큰소리치고 사람을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와 겸손의 모습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품으시고 치료하시고 돌보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갈대는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오페라 노래에도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다 그런 노래가 있는데 여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갈대입니다. 그 연약한 갈대가 상처 입은 갈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희망도, 꿈도, 방향도, 목적도 잃어버린 절망에 처한 상한 갈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상한 갈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심령이 상한 갈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릴 때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상한 갈대가 되어 있습니다.

충격적인 뉴스들이 보도되어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아홉 살 난 딸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고 불로 지지고 어떻게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또 엊그제는 세 살 난 아이가 운다고 때려죽인 부모도 있습니다. 충격입니다.

그 사람이 아마 자라날 때 그런 학대를 받고 자랐는지 모릅니다. 심령이 상한 갈대가 되어서 그것을 자기 자식들에게 복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아처럼 외롭게 자란 사람들, 가족 관계에 늘 불화가 있었던 사람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던 사람들, 계속 따돌림당해서 힘들게 자랐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다 심령이 상한 갈대입니다.

심령이 깊이 상한 갈대가 되어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늘 소외된 채 숨어지내려고 하는 사람, 반대로 늘 사람들과 부딪히고 가는 곳마다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 다 심령이 상한 갈대들인 것입니다.

육신이 상한 갈대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날 때부터 몸이 약해서 늘 병원에 왔다갔다 하고 약을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사람도 있고 큰 사고를 당해 몸에 장애가 와서 육신의 고통을 당하며 상한 갈대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말기 암으로 판단을 받아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암과 싸움을 하는 고통 중에 있는 상한 갈대들도 있습니다.

또 요즘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환경적으로 상한 갈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잘 다니던 직장이 하루아침에 회사가 망해서 모든 회사원들이 다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조그만한 음식점, 가게를 운영하다가 손님이 없으니까 수입이 없고 임대료를 내지 못해서 그래서 문을 닫아야 되는 그런 작은 가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업을 경영하던 분이 사업을 경영하다가 갑자기 부도가 나서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된 그러한 상한 갈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모두가 다 예외 없이 상한 갈대들입니다. 왜? 죄로 인해서, 우리의 허물로 인해서 상하고 지치고 깨어진 인생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한 갈대 같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으로 보살피고 힘을 합해도 부족한데 오히려 서로를 무시하고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치료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기쁨과 평안함을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한 갈대를 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상한 갈대를 꺾는 사람들

둘째로 상한 갈대를 꺾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상한 갈대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그 상한 갈대마저 꺾어버리는 그 같이 마음에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실제로 보면 상한 갈대인데 자기도 죄와 허물투성이인데 스스로 의로워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남의 문제만 발견되면 달려들어서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단적으로 누구를 공격하고 매도하는 그러한 것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됩니다. 남을 짓밟고 상처주는 일을 전혀 눈 하나 깜짝하지 아니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했던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이 간음하던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끌고 왔습니다. 모두가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와서 “예수님, 모세의 율법을 보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실제로 그것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돌로 쳐서 심판을 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같이 곤경에 빠뜨리려고 끌고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이 “율법대로 해라.” 그래서 돌을 던지게 한다면 “당신은 위선자요, 지금까지 늘 사랑하라고 설교해놓고선 어떻게 돌로 쳐 죽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예수님에게 오히려 돌을 던질 것입니다.

돌을 던지지 말라고 그러면 당신이 율법을 어겼으니 당신이 돌을 맞아야 한다고, 그래도 예수님께 돌을 던질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잠시 침묵하시며 땅에다가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6절, 7절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무어라고 쓰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중에 천국 가서 우리가 여쭤봐야 할 일인데, 누구는 해석하기를 “십계명을 쓰셨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기 있는 사람들의 죄를 낱낱이 쓰셨다”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간에 예수님께서 무언가를 쓰시고 난 다음에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상한 갈대를 꺾으려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그 갈대를 꺾어라” 주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돌을 들고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쓴 글을 지켜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하나, 둘 손에 손에 들었던 돌들을 다 내려놓고 자리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요한복음 8장 9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남에게 비난의 돌을 던지기 쉽지만, 그 던지는 돌이 결국 자기에게 다시 비난의 돌로 던져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절 2절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 모두가 손에 손에 돌을 들고 돌을 던진다면, 이 돌을 피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서로가 던지는 돌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모두가 다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너도 나도 다 상한 갈대들인데, 왜 우리가 스스로 의로워서, 상한 갈대를 꺾는 일에 나서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까? 만약 교회 내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주님 몸 된 교회가 크게 상처를 받게 되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상처 입은 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병원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몰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을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돌을 던져도, 우리는 돌에 맞을지언정 같이 돌을 던지면 안 됩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남에 대한 험담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험담은 질투심을 먹고 자랍니다. 시기, 질투, 열등의식이 험담을 쏟아내게 하고 사탄의 숨결이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14장 30절입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시기, 질투, 험담을 우리 모습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사울 왕은 민족의 영웅이 되었던 다윗을 얼마나 시기했던지, 죽이려고 군사를 불려서 몇 년을 쫓아 다녔어요. 악한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심판과 형벌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은 세워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로 12절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궁극적으로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편 6절입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의인의 삶을 살아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셋째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자를 고치셨지만, 자기를 정죄하고 비판하려고 돌을 들고 온 바리새인, 제사장들과 소리 높여 다투고 싸우지 아니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9절입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주님은 상한 갈대를 절대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주님은 오히려 상한 갈대를 치료하고, 회복시키고, 살리셨습니다. 죽음 앞에 놓인 이 여인을 살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 11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신 그 말씀에 돌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범죄 했을 때,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문제는 반복적인 죄에 있습니다. 습관적인 죄에 있습니다. 죄를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기 때문에 그는 결국 멸망의 길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도박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 끊어내고 나와야 하는데,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서 폐가망신하게 되는 그러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할렐루야.

예수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상한 갈대와 같은 상처 입은 자들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려서 아주 험한 인생을 살았던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고쳐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니까 한 평생 주님을 잘 섬기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도, 예수님이 붙잡혀 가실 때 가야바의 길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그 마음에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서, 옛날 자기의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저 멀리 갈릴리 바다에 가서 그물을 던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 밤에 아무리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져도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깊은 절망에 빠진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물을 던질 때 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이신 걸 알았습니다. ‘예수님이시구나.’ 그래서 육지로 배를 길어 오는데, 베드로는 물에 풍덩 먼저 뛰어 들어가 헤엄쳐서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주님은 그가 이미 물에 빠져서 온몸이 젖어서 덜덜 떨며 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베드로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느라 배가 고팠을 베드로와 제자들을 먹이셨습니다. 단 한마디도 주님이 베드로를 꾸짖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야 너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래 내가 붙잡혔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부인해? 마지막 세 번째는 저주하고 부인하면서 나를 부인했지!”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셨습니다. 용서 그 자체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 앞에 그 모닥불을 태우며, 상처 입은 베드로가 치료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옛사람이 거기서 무너지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새로운 은혜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이 어떤 상처를 입고 주님 앞에 나왔다 할지라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따듯한 음식을 마련하고 우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딱 하나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점을 들춰내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꾸짖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딱 한 말씀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완전히 거기서 엎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받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권능의 종이 되어서, 주님 영광의 복음 증거 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한 것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우리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18편 1절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나의 생명보다 귀하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제 내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 비판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기 원합니다. 상처 입고 피곤하고 힘들고 지친 이웃을 사랑하고 오히려 섬겨 사랑하기 원하오니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사랑의 사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릴 때 상도동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이원근 장로님이 밤만 되시면 자루를 갖고 와서 쌀을 담으시고 재봉틀로 그 입구를 드르륵 봉하셨어요. 그리고 그 쌀자루를 짊어지고 나가십니다. 한참 후에 돌아오셔서 또 다른 쌀을 짊어지고 나가시고 매일 밤 하시는 일이 쌀자루를 지고 나가시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6.25후에 굉장히 어려워서 제가 살고 있던 그곳 저쪽 뒤편으로 야산이 있었는데 야산에 굴을 파고 그 안에 가마니를 깔고 입구도 문이 없이 가마니 하나를 걸쳐놓은 그곳에 살고 있는 분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이 없는 그러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밤에 몰래 가서 그 쌀자루를 그 토굴 앞에 내려놓고 이 집 앞에 내려놓고 오십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나가서 새벽기도 하시고 집에 들어오시는데 한 일주일 열흘 지나고 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쌀자루 빈 자루를 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옵니다. 할아버님이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시면

“에이~ 이 동네 장로님 말고 이 같은 일을 하실 분이 누가 있습니까?,”

그럼 할아버님이 빙긋이 웃으시며 그 자루를 도로 달라고 해서 들어가셔서 쌀독에서 쌀을 또 가득 채워서 주시면 열심히 메고 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늘 할아버님을 퍼주길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렇게 퍼주셔도 그 쌀독은 늘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어릴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이 그와 같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용서입니다. 화해입니다. 하모니입니다. 하나님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하나 되면 이 사랑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짧은 인생길 살아가는 동안 상한 갈대 같은 저희를 주님 사랑하셔서 꺾이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싸매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상한 갈대인 저희들이 어리석어서 스스로 의로워서 상한 갈대 같은 이웃들을 상처주고 꺾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오늘 이후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주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20.06.21. am 08:3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