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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바라보라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장 2절)

성경을 보면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는 그들을 매일같이 선악과나무 밑에서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악과를 매일 쳐다보고 난 다음에 그것을 안 먹을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선악과에 마음이 끌려가서 그것을 따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매일같이 물이 넉넉하고 푸른 풀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꽉 들어찬 곳임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그곳의 세속적인 풍요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는 그 처자와 함께 소돔으로 가서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이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돈을 바라보고 권력을 바라보고 지위나 권세를 바라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는 세월이 흘러가면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히 12:2)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영원한 소망이 되시고 영원한 기쁨과 만족이 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귀와 공명은 권력은 바라보는 사람은 언젠가 절망하게 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결코 절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 예수를 바라보면 절망하지 않을 것일까요?


1. 죄 사함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죄 사함과 용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 죄가 다 드러나고 벌거벗은 수치를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한 원죄를 짊어지고 또 거기에 자기 의지로 수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러한 죄의 사슬을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루마니아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 나비 한 마리가 들어왔다가 갇혀서 못 나가고 팔락팔락 자꾸 창문에 부딪쳐요. 그래서 내가 나비를 인도해서 창문 밖으로 내보내 주려고 하는데 나비가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립니다. 내가 이끌어서 위로 갖다 놓으면 밑으로 나가버리고 또 올려 주면 옆으로 나가고 그래서 내가 “이 바보 녀석아, 너는 저 위에 열린 창문이 안 보이지만 나는 사람이니깐 보인다. 내가 너를 살려 주기로 이끌어 줄 텐데, 네 고집대로 하면 네 날개만 부서지고 네가 날아갈 수 있느냐?”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죄에 갇힌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자기 힘으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정결함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바라보게 될 때,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당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 든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예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면 십자가에 흐르는 그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삶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주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6.25때, 추운 겨울날 기차역에 갔는데 어느 병사 한 사람이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기차역에 쳐 놓은 철조망을 잡으니까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집니다. 그래도 술에 취해서 있으니까 아픈 것을 모르고 손으로 잡고 또 잡으니까 그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것을 보고 ‘술에 취하면 아픈 것도 모르고 도덕적인 감각도 잃어버리고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구나. 절대로 술에 빠져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어릴 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음란과 방탕과 퇴폐함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취해서 살아갑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국가도 부정과 부패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말세가 가까이 올수록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죄가 만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교회에 있고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이 세상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거룩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우리가 거룩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머리로만 예수 믿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것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 계셔서 주야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려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늘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매일매일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3. 치료함을 주시는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건강과 치료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로 다 병이 들었습니다. 영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가정과 사회와 전 세계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를 이 병에서 건져줄 수 있겠습니까?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 혼, 육을 치료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심같이 우리의 병도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대신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는 항상 치료의 역사가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4장 24절에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앓는 자, 각종 병든 자를 다 고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병에 걸렸든지 예수님께 나아오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특별히 주목해 볼 것은 예수님께서는 병 고침 받기를 소원하고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을 고쳐주셨지 주님이 병자를 찾아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죄인도 회개하고 나아오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지 주님께 나아오지 않는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병 낫기를 소원해서 주님께 나오는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들었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영적인 병, 마음의 병, 도덕적인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모든 병을 치료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은 아들이 밤에 자다가 갑자기 하늘나라에 가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나니 몇 달 동안 몸도 마음도 병이 들어서 시름시름 앓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분은 어릴 때 앓았던 폐결핵 때문에 평소에도 숨이 차서 잘 걷지도 못하는데 갑자기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서 심장에 합병증이 온 것입니다.

그 남편도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하니까 이분들이 그만 살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도 안 가고 집에 누워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보고 친정어머니가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가 보호자를 급히 불러서 하는 말이 심장에 합병증이 와서 위험한 상태라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술비가 5천만 원 드는데 수술을 한다 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낮았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그냥 일주일 먹을 약만 받아 나와서 “하나님, 수술비도 없고 치료할 돈도 없으니 이 약으로 치료해주세요. 아니면 그냥 아들이 있는 천국으로 가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 친정 어머님이 설득해서 21일 동안 작정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회에서 다녀와 잠을 자는데, 꿈속에 제가 나타나서 기도해주면서 신문 한 꾸러미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라는 뜻으로 알고 그때부터 우리 교회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3일 동안 전혀 힘이 들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원래 이분은 심장과 폐가 나빠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헉헉대고 평생 오르막길을 다니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어도 천식 환자처럼 숨쉬기 힘들어하던 사람인데, 3일 내내 전도를 하고 돌아다녔는데도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21일 작정기도를 마친 후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너무나 놀라면서 “수술하지 않아도 되니까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잘 믿고 살으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병들었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바라보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4. 형통한 삶을 주시는 예수님

고난을 당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생애 속에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길이 멸망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형통은 형통의 근원 되시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었을 때, 아담은 모든 생활에 완전히 형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은혜가 임하여서 만사에 형통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 던져버리고 인간의 힘으로 살고 인본주의로 살겠다고 할 때, 그때부터 형통의 길은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피땀을 흘려야 진땀을 흘려야 되고 고생과 눈물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형통한 왕이었는데 다윗은 고백하기를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야훼 하나님을 온전히 자기의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자기의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다윗의 생애 속에 형통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야훼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었으니 그 하나님의 양 무리들이 형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자는 양을 정성껏 돌아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양들을 데리고 푸른 풀밭을 찾아 나섭니다. 양들을 푸른 풀밭에 뉘어 놓고 풀을 뜯게 하고 난 다음에는 그는 양 무리들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습니다. 악한 짐승이 와서 양 무리들을 해 칠까봐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양들을 눈동자같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양 무리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우리로 안전하게 인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돌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예수님을 진실로 목자로 모셨으면 우리는 예수님께 절대 순종하고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며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형통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5.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 천국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유명한 의사 선생님을 도와서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배에 복수가 차서 마치 만삭된 부인과 같은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김해에서 이름 있는 가문의 의사였는데 재산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환자를 진찰한 다음,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병명은 간암입니다. 그런데 말기라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가산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할 것이 있으시면 유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합니다. “선생님, 전 재산을 모두 드릴 테니 일 년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십시오.” 의사 선생님이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제발 살려 달라.”고 계속 애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이 지금도 제 기억에 생생한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는 죽음이 다가오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을 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사냥꾼에게 쫓긴 타조가 다급하니까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서 사냥꾼이 눈에 안 보이니까 잡힐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으로 외면함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고 말합니다. 불신자에게 죽음은 인생의 끝을 의미합니다. 모든 삶의 종결이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불신자에게 죽음은 긍극적인 공포요, 슬픔이요, 절망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권세와 명예, 부귀와 영화 같은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바라보고 살다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멸망이 아니라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처절한 절망이지만 예수 믿을 믿음을 갖는 우리에게는 죽음이 시작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 집을 떠나면 우리는 그다음에 곧장 주 예수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죽음은 절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사는 크나큰 영화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이러므로 우리에게는 부활의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은 우리도 부활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고서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우리의 아버지께로 가자.”라고 하실 때,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당한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좌절감을 꿈에 본 듯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기도함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침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점심때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저녁에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자나 깨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자고 깨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모두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병 든 자는 아픈데 손을 얹고 여러분,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바라보십시다. 오늘 교회 와 있는 중에 아픈 자가, 집에 모여서 예배 보는 사람 중에 아픈 자가 아픈데 손을 얹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기도해드리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죄짐을 짊어지고 온몸이 찢어지도록 얻어맞고 피를 흘리고 죄를 청산하고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에게 와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 병이 사라지고 우리가 깨끗한 몸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병을 짊어진 그 몸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나를 바라보고 다 이룬 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 병이 나은 줄 알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주 예수여 아멘으로 받아들이오니 주님 치료함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원수, 마귀야! 너희들은 우리에게 붙어있을 자격이 없고 권리가 없다. 너희들은 다 나가야된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는 지옥으로 떨어져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 잡히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치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치료함을 받은 줄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못해도 믿음으로 병에서 고침 받을 줄을 알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우리에게 오신 것을 감사하옵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20.05.03. pm 14:1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