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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3. 권력욕이 부른 비참한 인생 - 사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역사책이다. 성경 한 구절은 한 개의  구절 이상의 의미와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구절들을 넓은 시야로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접근함으로써 성경 전체를 조금 더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복음가족신문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기록한 성경구절의 행간을 풀어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사건과 역사로 읽는 성경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하나님께 버림받고 실패한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삼상 20:31)

재물은 자식과 나눠도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권력욕은 인간의 욕구 중에 가장 강해 무덤에서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왕으로 지명을 받았을 때 숨기까지 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이 가졌던 권력을 지키고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 사울 왕이다. 불안하게 시작한 왕권을 지키기 위해 평생 안간힘을 썼던 사울,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이 사무엘상 20장 31절에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1) 왕정시대의 시작

사사시대가 끝나고 사울 왕을 기점으로 이스라엘은 철기 문명과 함께 왕정체제에 접어들었다. 철기문명은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었지만 그의 왕권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적인 결속력보다는 각 지파로서의 결속력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사사기 19~21장에서 보듯 이스라엘 민족은 레위인의 첩 사건으로 부족 간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문제가 된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기 위해 열한 지파에서 40만 명의 전사들이 동원되었고 미스바에 모였다(삿 20:2~3).
전쟁 첫날, 레위지파까지 동원된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에게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이날 2만 2000명이 죽었고(삿 20:21) 이튿날에도 1만 8000명이 죽는 대패를 맛보았다(삿 20:25). 수적인 열세였던 베냐민 지파의 대승과 이스라엘 열한 지파의 대패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전쟁에 나온 베냐민 지파의 수는 열한 지파 연합군의 어림잡아 20분의 1 수준인 2만 6000명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왼손잡이로 구성된 물맷돌 부대 700명이 있었다. 이들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 출신이었고 물매를 던지면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정확히 맞추는 사람들이었다(삿 20:15~16). 백병전과 같은 근거리 전투라면 모를까 거리를 두고 싸우는 전쟁이라면 베냐민 지파를 이길 확률은 현저히 낮아진다.
셋째 날 이스라엘 연합군은 전술에 변화를 줬고 전세가 역전돼 베냐민 자손 2만 5100명이 죽었다(삿 20:35). 이날 전쟁의 패배로 베냐민 지파는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그날의 전쟁 이후 많은 부상자들이 죽었고 600명 정도만 겨우 살아남아 광야로 도망가 넉달 동안 숨어 지내야 했다(삿 20:47).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집안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삼상 9:21). 전쟁 이후 베냐민 지파는 실제로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가장 작은 지파가 되었다. 이런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나온다는 것을 다른 지파들이 쉽게 수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불안한 왕권

사울이 왕위에 등극했을 때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었다. 성경은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삼상 10:27). 왕으로 등극했는데 예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때 사울은 어떤 반응도 없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불량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벨리야알'이다. 이 사람들은 동네에서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유력자'(삼상 10:26)로 표현된 사울을 따르는 사람들과 비교되는 큰 무리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바울은 이 단어를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을 일컫는 말로 '벨리알'이라고 쓰고 있다(고후6:15). 다시 말해 정치세력화 된 적지 않은 무리가 사울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사울왕의 정치적 불안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 때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그의 승리를 과시하고자 아말렉 왕을 살려서 데리고 왔고 전리품으로 양과 소를 끌고 왔다. 사울은 사무엘에게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때 사울은 자신을 버리고 백성 앞에서 돌아서서 떠나려는 사무엘을 급하게 붙잡았고 성경은 사무엘의 옷자락이 찢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삼상 15:27). 사울은 회개하겠다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야훼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 15:30).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 부었던 선지자로서의 의무를 다해 사울의 간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함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날 이후 죽는 날까지 사울을 위해 기도할 뿐 다시 그를 보지 않았다(삼상 15:35).

3) 권력에 대한 집착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사울은 그가 죽은 뒤에 권력을 요나단에 물려주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다윗이 있는 한 "너(요나단)와 네(요나단)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삼상 20:31)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작 요나단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 23:17).
요나단 자신뿐만 아니라 사울도 이미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그를 왕으로 삼으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고 있었다. 다윗을 죽일 기회를 엿보던 사울은 가족들이 다 모여 식사를 하는 '월삭'을 거사일로 잡았다. '월삭'은 고대 태음력을 기준으로 새로운 달의 시작이며 '초승달'을 가리킨다. 모든 처음 것은 하나님께 속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월삭에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고 가족들이 모여 공동식사를 했다(민 10:10; 28:11~15).
사울은 이 날 다윗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은 이미 사울의 사위였기 때문에 사위에게 권력을 넘겨줘도 사울의 노후에는 별 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울은 다윗을 굳이 죽이려고 했을까? 다윗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것은 이새의 집안 즉, 베냐민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왕권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파간의 전쟁 이후 존폐의 위기에 몰렸던 그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바람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권력에 대한 강한 욕구는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실패한 왕으로 기록되게 만들었다.

이상윤 목사(순복음홍콩신학교학장)

 

기사입력 : 2020.02.09. am 10:22 (편집)
이상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