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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

성공이 아니야, 섬김이야


# 1
예전 광주광역시 양림동 선교사 묘역을 들렀을 때 묘역이 앞마당처럼 포근했다. 유진 벨, 윌슨, 오웬 등 호남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펼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의 이름을 담은 묘비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었고 그 묘비들을 돌다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Elisabeth Johanna Shepping, 서서평.’ 그녀의 묘비 앞에는 이미 여러 개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 무렵 그녀의 이름을 건 영화 한 편이 극장에 걸려 있었다.
 쉐핑은 서른 두 살이던 1912년 조선에 왔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슬픈 땅으로 온 그녀는 이 아픈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선교사가 된 유일한 이유였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조선에서 간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을 만들었고 여성 지도자를 키우는 이일성경학교를 설립했다. 한센 병 환자들을 비롯한 행려병자들과 길거리에 넘쳐나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웃으로 살았다. 풍토병을 앓으면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보살피고 거두느라 결국 54세에 영양실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지막 남은 시신까지 기증하고 사람들에게 “천국에서 만납시다” 인사한 뒤 빈손으로 떠났다. 1934년이었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지역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누구보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들은 가난한 양림천의 거지들과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아 조선의 첫 신여성이고자 했던 성경학교의 제자들이었다. 그녀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그리고 귀한 존재임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을 하늘처럼 받듦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제자가 된 셈이었다.

# 2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다시 그녀의 시간에 마음을 둘 수 있어 좋았다.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는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녀를 떠올리면 무엇보다 먼저 떠오를 만큼 유명한 구절인데도 우리는 서서평 선교사를 떠올리면 성공이 아닌 섬김에다 방점을 찍었고 ‘성공’이란 단어를 까맣게 망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성공’이라는 달콤한 유혹이 가끔은 혼자 남은 그녀의 방을 찾아와 쿡쿡 충동질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여 자고 일어날 때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의 글귀를 읽으며 자신을 다독였을 것이다.
 그러니 한센병 환우를 돌보고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아이를 위해 자신의 것을 떼어 주고 슬프고 고달픈 세월을 살아가는 조선 여인네들의 편이 되어준 그녀의 위대한 ‘섬김’은 어쩌면 그런 수많은 유혹들과의 싸움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성녀’로 불린 그녀이지만 성공이라는 욕망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르지 않음에도 나와 다르게 살고자 한 사람, 그래서 처음부터 성녀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호남의 성녀’가 된 사람….
 영화는 미혼모의 가정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 채 외롭게 자란 어린 쉐핑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가여운 아이로 태어나 모질고 가혹한 ‘나쁜 엄마’를 경험한 그녀였다. 어쩌면 슬픈 나라 조선의 백성들을 가난과 탄압으로 내몰던 사납고 암울한 기운이 그녀의 ‘나쁜 엄마’와도 닮았던 것일까? 유독 조선에서 그녀의 시간은 엄마처럼 세밀하고 따뜻했다. 그녀의 눈은 조선의 바람과 바다와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세밀하게 관찰하였고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거기서부터 싹이 텄다. 그녀의 모든 부정적인 환경은 긍정과 감사로 열매 맺었다. 서서평은 결국 사랑과 섬김으로써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감사한 셈이었다.

# 3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긍정이라고 믿는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이 아들을 죽인 빨갱이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에게 닥친 부정적 상황을 극복했듯이 말이다. 실제로 모든 사랑의 공통점은 부정적 감정을 이겨낸 긍정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향해 침 뱉고 조롱하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분노와 증오의 감정조차 사랑과 자비의 언어로 녹여낸 분이 예수님이었다.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예수님이었으니까, 손양원 목사님이었으니까, 그녀는 성녀였으니까…. 나는 사람이니까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스스로 변론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말해버리는 그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선택이 무엇이었는가 묻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고자 스스로 쳐서 복종시키는 노력을 용기 있게 감행해야 한다. ‘쉐핑’을 내려놓고 ‘서서평’으로 살아간 그녀처럼 날마다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성공이 아니야, 섬김이야’라고.

 

기사입력 : 2020.02.02. am 10:0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