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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광혜원)


고종이 내린 이름 ‘광혜원’에서 ‘제중원’으로 명칭 변경
의료 선교 시작으로 한국 사회 개혁 이뤄낸 기독교 정신

올해는 한국선교 136주년이 되는 해이다. 알렌이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의료선교사로 파송돼 인천 제물포에 입국한 것이 1884년이다. 1885년 제물포 항으로 입국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보다 1년 앞서 조선에 상주하게 된 알렌이 이룬 최대 공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 설립과 한국 의료진 양성을 위한 의학교육 실시였다.
 알렌은 선교활동이 금지된 조선에서 주한미국공사관의 공의로 임명돼 활동하던 중 자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고종과 명성황후의 어의가 됐다. 그리고 병원 건립을 건의하면서 고종의 명을 받아 1885년 4월 재동(오늘날 헌법재판소 서북쪽)에 제중원을 개원했다. 처음 병원이 개설될 때 이름은 고종이 내린 광혜원이었다.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이다. 그러다가 ‘사람을 구제하는 집’을 의미하는 제중원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광혜원이라는 이름은 문서상으로만 기록됐다. 제중원은 재동에서 1887년 구리개(명동성당과 YWCA 부근으로 추정)로 이전됐다가 제중원 4대 원장이었던 에비슨 선교사 때 남대문 부근으로 옮겨져 의료선교를 후원했던 세브란스의 이름을 따 세브란스병원으로 개명됐다. 에비슨은 “세브란스병원은 국왕 폐하의 후의에 의해 1885년 알렌이 세운 왕립병원을 바로 승계한 것”이라며 제중원의 역사가 세브란스로 승계됐음을 밝힌 바 있다. 에비슨이 이룬 가장 큰 공적은 세브란스병원의 신축과 세브란스의학교의 획기적인 발전이다.

 오늘날 제중원이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의료 선교 외에도 의학교육 등 여러 분야에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 계층 간 차별 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픈 이들을 돌보았고 백정 박성춘의 아들인 박서양이 제중원의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박서양이 졸업 후 의료 봉사는 물론 독립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은 기독교 의료선교가 한국인들을 일깨워 사회 개혁을 이루는데 일조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안에는 의료 선교의 사명과 기독교 복음 전파라는 목표로 탄생한 제중원 초기 건축물이 실제 크기로 재현돼 있다. 연세대 백주년기념관과 학생회관 사이에 있는 제중원 뒤로는 최신식 의료 장비를 갖춘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사회 계급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도 생명을 치유하는 사명에 충실하고 있다. 제중원 초기 활동 모습과 선교사들의 업적은 제중원 바로 옆에 있는 백주년기념관 내 박물관 2층에 자세히 전시돼 있다. 전시실에는 에비슨 선교사의 수술 모습 사진, 알렌이 처방한 병원 진단서 원본, 알렌과 함께 제중원에서 활동했던 의료 선교사들의 소개, 재동 제중원 모습과 구리개로 이전한 제중원의 옛 사진, 최초의 면허의사인 제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 사진, 제중원 의학교과서 『신편셩리교과서』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들을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아울러 그들이 남긴 신앙 유산을 후대인 우리가 잘 계승해 다음 세대로 배턴을 넘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기사입력 : 2020.01.26. am 12:01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