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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한복음 11장 40절)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난 다음에, 예수께서 나의 생애 속에 행하시는 여러 가지 역사를 체험하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믿음만 있으면 기적이 나타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라는 마을에 오실 때, 자주 들리던 가정이 있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던 집인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갑자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 누이들이 온 힘을 다하여 돌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의사들을 불렀지만 의사들마다 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나가 버렸습니다.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신속히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자, 나사로가 병이 들었으니 빨리 와서 고쳐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출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근처에 도착하셨을 때, 마르다가 뛰어 나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줄을 나는 압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르다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미래로 연기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예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어도 지금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믿어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역사하신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 역사하실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셔서 지금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지금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르다 말고 마리아의 믿음은 어떻게 했을까요? 마리아는 집에 있다가 예수님이 동구 밖에 오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에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리아도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둘 다 울고 있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지금 바로 앞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니까 절망에 빠져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절망하고 낙심하여 울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하면서 말로써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장례식에 왔던 유대인들 중 어떤 사람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다.”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불신앙의 말을 들으시고 속으로 비통해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못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은 과거에는 하나님이고 미래에도 하나님이겠지만 지금은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도울 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매우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뻐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시신으로 무덤 안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니,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났고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나고 있으나 누가 봐도 절대절망의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마르다의 말은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께 기도하러 나오실 때, ‘이것은 절대절망의 상황이다, 너무 늦었다. 이제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예수님께 가지고 나오면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너무 늦었다, 불가능하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에 버티고 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여러분, 3차원의 세계에 속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4차원의 하나님이시라 눈에 안 보이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무덤은 단 한 번도 죽은 자를 토해낸 적이 없습니다.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삼키지만 그 삼킨 자를 토해낸 적이 없는 악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시자 죽음의 세력은 더 이상 나사로를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15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명령하시자, 나사로가 화닥닥 일어납니다.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위엄 있는 말씀에 놀라서 화닥닥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고는 수의를 입은 채, 수족이 묶인 그대로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도 보면 어떤 과부가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 죽어버렸습니다. 비통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행렬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동묘지로 가고 있는 장례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관속에 누워 있는 청년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어서 관 속에 누워 있던 청년이 즉시 살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죽은 자도 다시 살아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성도님 한 분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과다출혈로 인하여 병원에서는 살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신체 기능은 물론 의식도 없어서 곧 영안실로 옮겨질 상황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의사에게 말하기를 “남편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절대로 영안실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완강히 버텼던 것입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설령 살아나도 식물인간이 될 수밖에 없으니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 봐도 의사들이 다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성도님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아서 친척들과 교회 식구들이 조문을 하러 영안실로 갔다가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고 그 아내는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성도님이 나중에 간증하기를 그렇게 의식이 없이 누워 있은 지 3일째 되던 날 “내가 너를 살렸으니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었고 그 순간 깜짝 놀라서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의식을 되찾기는 했지만 음식물이 전혀 소화가 되지 않은 채 여러 증상이 있는데 병원에서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어요.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계속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19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퇴원 후에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먹어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고개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너무 아파서 늘 앞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그 교회에 가서 축복성회를 인도했는데 그때 이 분이 와서 저에게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진통제를 받으러 병원에 가다가 차를 후진하려고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아무런 통증도 없이 멀쩡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아가면 여러분의 죽은 가정이 살아나고 죽은 건강이 살아나고 죽은 사업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악과 더러움에 묶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죽음에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께서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남에게 빌려 줄지라도 빌리지 않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오라버니 나사로를 껴안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하늘에 사무쳤겠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기쁨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4차원의 믿음을 가져라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예수님이 아니요, 미래의 예수님이 아니요, 지금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해도, 내가 믿음으로 용기 있게 모험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우리는 모든 세상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보는 앞에서 불가능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셔야 됩니다. 우리의 불신앙의 무덤 문을 옮겨 놓으십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이 적다고 통곡할 필요가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행위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마르다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은 그가 돌을 옮겨놓는 행동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무덤 문의 돌을 옮겨 놓을 것이요, 믿음이 없으면 돌을 안 옮겨 놓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믿음은 3차원의 믿음이었습니다. 마르다는 3차원에 세계에 속했기 때문에 자기의 경험과 이성을 의지하여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마르다와 예수님의 대화를 보면 3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과 4차원 세계에 사는 사람의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3차원의 믿음을 가지면 마음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4차원의 믿음은 성경 말씀을 따라 성령에 의지하여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마음속에 저장하고 그 믿음을 따라 행함으로써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며, 11장 3절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도 주님이 주신 말씀을 의지하여 4차원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셔서 나에게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마음에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전능하신 그 능력을 불신임하면 예수님이 비통해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불신앙을 내어 버리고 말씀을 의지하여 4차원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나의 신앙 고백과 믿음의 실천 위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데 주님 스스로 나와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광야에 나갔을 때,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와 아이까지 기만 명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빌립에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직접 그냥 다 먹이시지 무엇 때문에 빌립보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신앙고백과 믿음에 따른 행동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여기는 광야요. 돈도 없고 떡 살 곳도 없으니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으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면서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아서 주님께 들고 왔던 것입니다. 안드레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에 따른 행동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행동’ 그것이 있어야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여러분께서 ‘그냥 교회 왔다 갔다 하면 주님께서 돌봐 주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오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의 말씀대로 여러분께서 담대하게 믿음을 실천하면 그 믿음의 실천을 통하여 주님께서 오늘날도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크고 작은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죄와 허물, 병과 저주와 사망과 죽음을 다 청산해버렸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은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보고 믿으면 죽지 않고 살 것이라 했는데 오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 성령이여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바라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 짐을 허물의 짐을 질타하시고 보혈로 씻어 주시고 나아가서 질병을 고쳐 주시옵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늘 풍성한 축복을 주시옵시고 영생을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마귀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임하여 성령의 생명이 넘처날지어다! 성령의 생명이 넘쳐나라! 생명의 성령이 넘쳐나라!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능력을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 기도할 때, 더욱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9.12.22. am 10:5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