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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 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장 1~5절)


1.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인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보다 조금 낮은 존재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인간이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예로, 모든 동물들을 아담의 앞으로 지나가게 하셔서 아담이 그 동물들을 보고 부르는 것이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에는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도전하는 범죄와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형벌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았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아담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담이 대답하기를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숨어 있었던 이유는 죄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나무 사이에 숨었던 것입니다.


2. 지위와 권세를 잃어버린 인간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와 권세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에덴에서 쫓겨나서 저주와 엉겅퀴가 가득한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피땀을 흘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7~19)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죄와 허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질병과 삶의 저주, 그리고 죽음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면 모든 일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합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니 부부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부모 자식 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형제간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업상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아무리 치우고 또 치워도 가시와 엉겅퀴는 되살아나는 저주의 땅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절망인 것입니다. 또,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인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고 인류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간은 아담 이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인간의 지위와 권세를 유지하려고 제2의 선악과, 즉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높은 탑을 쌓으면서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받들어야 될 것인데 “야, 우리 다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물로써 죽게 못하게 만들자. 우리 도시를 건설하되 큰 탑을 세워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아무리 비를 내려도 우리는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동등하자.” 그런 생각으로 아주 무시무시한 반역을 또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문화를 혼돈하게 하심으로 위에서 “돌멩이를 올려라.”하는데 흙더미를 올리고 “흙을 올려라.”하는데 돌을 올리고, 서로 말이 안 통하니까 건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시도는 지리멸렬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자기가 힘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겠다고 여러 가지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도 없고 죽음 이후의 세계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자.” 이런 어리석은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막에서 사냥꾼에서 쫓긴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쳐박아 버리고 눈에 안 보이니까 사냥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한번은 저희 집에 일하는 일꾼하고 같이 산비탈 길을 가고 있는데 매 한 마리가 끊임없이 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이 “잠깐 있어라. 갔다 올 테니.”하고 뛰어 가길래, 제가 따라가 보니 장끼 한 마리가 겁이 나서 머리만 숙이면 안 보이는 줄 알고 머리를 수풀에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고쳐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꾼이 그 장끼를 산 그대로 붙잡아서 왔습니다. 이처럼 안 보이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죽음과 심판을 피하려 인간이 취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이후의 심판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회복된 인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죄 용서를 받고 죄 때문에 강등된 인간의 지위와 권세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으로 난 사람은 아무리 잘 먹여도 육이고 아무리 잘 입혀도 육이고 아무리 교육을 잘 시켜도 육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언제나 육에 속할 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외갓집에 갔다가 참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외갓집에서 계란을 품고 있는 암탉에게 오리 알을 안겨서 오리 새끼를 깠습니다. 오리 새끼가 처음에는 어미닭을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물가에 가자 오리 새끼들은 누가 가르쳐주기나 한 듯 일제히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새끼인 줄 알고 있는 어미 닭은 제 새끼가 물에 빠진 줄 알고 “꼬꼬댁! 꼬꼬댁!”하면서 안달을 하는데 오리새끼들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옛말에 “오리 새끼 물로 가고 꿩 새끼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리가 물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오리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꿩이 산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허탈한 것을 좇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는 것은 그들이 육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헤엄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물에 뛰어 들어가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낼 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이 죄악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광야에서 독사의 독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의 놋뱀을 바라보고 믿으면 살아났습니다. 그와 같이 “나도 너희를 대신해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높이 들려서 속죄제물이 될 터이니 나를 보고 믿는 자마다 거듭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면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옛사람이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죄 때문에 영이 죽었기 때문에 4차원의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3차원의 세계에 속해 있고 4차원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면 4차원에 속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임하여 우리가 4차원 성령의 그릇이 되면 인간 본래의 지위와 권세를 회복하고 3차원의 물질세계를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있을 때는 삶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서 사는 삶에는 문제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슬픔과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그 시간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실 일을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하겠다고 하니 될 턱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요,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요,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요, 근원적인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고 영이 죽었을 때, 인간의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범사에도 저주가 임했고 육체도 병들고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의 죄로 인한 삼대 재앙을 제하시고 우리에게 삼중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와 권세를 회복하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전 아담의 자손으로서 상속받은 삼대 재앙은 지나가 버렸고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축복을 받은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내 자신을 바라보고 내 자신이 새롭게 된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놓아 주시고 질병에서 대속해 주셨다.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진리를 가슴에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이 진리를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에 믿음을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여 넘어지고 타락하는 이유는 이러한 진리를 가슴속에 끌어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이러한 삼중축복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기록된 말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이 예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영혼이 잘됨 같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해 보세요. “예수님은 내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믿음을 절대로 놓치면 안 돼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고 참된 자기 모습을 거울 보듯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초라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환경을 다스리는 정복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 땅에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뭘 바랍니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감고 내 자신을 꿈꾸어 보는 것입니다. “조용기! 너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를 위해서 고난 당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 이렇게 꿈꾸고 믿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나의 환경과 운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입술의 고백이나 말을 통해서 여러분의 환경과 운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입술의 말에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입술의 말로써 여러분의 천지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는 세상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있으라고 했으니 있게 된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배후에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것이요, 건강도 다스리는 것이요, 생명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 그대로 두면 역사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를 통해서 일하느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공중에 떠다니면서 일할 것이라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생각에 담아놓고 말씀을 통하여 꿈을 꾸고 말씀을 통해서 믿고 말씀을 통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 그대로 두어서는 아무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생각에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여러분 생각 속에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다.’ 늘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내 모습을 꿈꿔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직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상상할 때가 늘 있습니다. 늘 일어날 것을 상상하지요. 눈 감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잠자리에 들어가서 잠이 안 올 때,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을 상상하면 잠이 잘 와요. 그러므로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내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 속에 이것을 채워 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으니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말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시도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말씀을 내 입술에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으므로, “나는 영혼이 잘된다. 범사에 잘된다. 나는 건강하다.” 입술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안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중생하고 성령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원래 인간에게 주신 지위와 권세를 회복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그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태양입니다. 우리의 태양이신 하나님께는 빛은 비춰서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는 말은 빛을 비춰서 그 빛 속에서 아버지를 봅니다.

빛은 어두움을 삼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 앞에 마귀는 도망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빛이 있으면 열이 있습니다. 따뜻한 열기가 있는 것입니다. 열기가 있으면 얼음은 다 녹아버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속에서 빛이 나오고 아버지와 빛 속에서 성령의 따뜻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빛으로 비추고 성령을 보내서 따뜻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빛으로 만드시고 열로 만드셔서 성령의 따뜻한 불같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니 마음속에 빛과 열로 채워주시옵소서. 그리고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 마귀, 원수 병마, 원수 근심 걱정, 모두 다 떠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9.10.13. pm 13:3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