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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마음의 상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장 1절)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사용합니다. 이웃 간에 친척 간에 친구 간에 동업자 간에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또 크게는 나라 사랑, 자연 사랑, 동식물 사랑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에는 겉사랑과 속사랑이 있습니다. 겉 사랑은 겉 사람의 사랑으로서 속이는 사랑입니다. 배후에 사특한 목적을 이루려는 속임수를 지닌 형식적인 사랑입니다. 하지만 속사랑은 속사람의 사랑입니다. 묵묵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진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속사랑에는 4차원의 영성이 있습니다.

1. 겉사람의 사랑과 속사람의 사랑

겉 사람의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서 진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흉내 낸 것입니다. 평소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써 먹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랑입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런 사랑은 사랑의 풍선을 띄우고 군중들 앞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다가도 조금만 고난이나 불이익이 다가오면 펑 터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게 희생이 따릅니다.

인간들 중에 제일 참되고 진실한 사랑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1.4 후퇴 때 있었던 일인데 이것은 그 후에 없을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승리를 거두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UN군이 압록강에서 후퇴하여 현재의 휴전선으로 후퇴할 때, 미군 부대가 시골 마을의 적은 다리 위를 건너고 있는데 다리 밑에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전쟁에는 항상 죽고 상하는 자들이 있고 부모 잃은 아이들도 많기 때문에 군인들은 “부모 잃은 아이가 우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병사가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눈 속에 아이의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얼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피난을 가다가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고 추위와 싸우다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에게 입히고 아이를 끌어안은 채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병사가 언 땅을 파서 그 어머니를 묻고 갓난아이를 자기 아들로 입양해서 정성껏 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저도 그런 사랑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살았는데 석탄을 실은 기차가 지나가면 피난민들이 석탄차 위에 올라가서 석탄을 훔쳐 끌어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군인들이 와서 총을 쏘고 석탄을 훔치는 사람들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10살쯤 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석탄을 끌어 내리고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헌병이 뛰어 오는 것을 보고 화차위에 있던 아들이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큰 석탄 덩어리 하나가 화차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화차 밑에 기어 들어갔는데 그때 그만 기차가 덜컹하고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이 “저 어째! 저 어째!”하고 고함을 치고 있는데 그 순간 아버지가 화차 밑에 뛰어 들어가서 아들을 밀어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미처 나오지 못하고 기차가 그 위를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죽어 가면서도 아들을 보고 빨리 피하라고 손을 흔드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맹목적인 것입니다. 일단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다 계산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계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아들조차도 아버지를 향해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통곡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아들 예수님도 여러분과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으니 그 사랑이란 측량할 수 없이 큰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38절로 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하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은혜를 주시고 예수님은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니 우리를 멸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2.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한 젊은 주부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님은 난산으로 많은 고생 끝에 첫 딸을 낳았는데 아기의 손가락 두 개가 두 마디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나? 내 딸에게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내리시다니 하나님도 너무하시다.”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아무리 원망해 봤자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까 그 다음 공격의 화살의 방향을 내게 돌리고 원망이 가득한 편지를 조용기 목사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자매님은 대학생인데 그와 비슷한 편지를 저에게 보냈습니다. 이 자매님은 방학 동안 친구들과 여행을 갔는데 이쑤시개로 장난을 하다가 그만 자기 눈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의사가 처치를 잘못하는 바람에 한쪽 눈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자매님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내 눈을 고쳐 주지 않느냐?”고 원망하며 저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인생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 5:7)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3. 고난을 이기는 사랑

그러면, 고난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하면 그 고난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4차원을 활용하고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랑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의 생명을 화복 제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은 어떠한가요? 에베소서 3장 18절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은가? 믿음이란 사랑을 따라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높고 높은 하늘을 지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니 예수님의 사랑은 하늘 보좌같이 높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어서 음부에까지 내려갔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약속하셨으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은 온 지구를 품에 안고 있으니 그 넓이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사랑이 높고 깊고 넓고 길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랑해주시니 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믿게 되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으면 내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마음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복음 12장 6절에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숫자조차 아시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를 날마다 지키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때 나타나는 내적인 변화는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면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필요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마음에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귀한 존재로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이 생기기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아, 나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구나.’ 그런 자화상이 삶의 의미를 확실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가 필요한 존재로구나.’ 생각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도 남편의 사랑을 받을 때 부인이 어려운 가정생활을 해도 그 고통이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무시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가난하고 고생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남편도 마찬가지에요. 아내와 자식들에게 멸시당하고 천대 당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살아갈 힘이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사랑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늘 우리와 함께하시니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고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힘을 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물질을 드려도 아깝지 않고 시간을 드려도 아깝지 않고 어떤 희생을 해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니 모든 일에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을 해도 그 고생에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으면 고생이 고생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성회를 이틀 동안 인도하고 그저께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어제도 일정이 바빴어요. 그런데도 오늘 안 피곤해 보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일을 하니까 고생이 고생같이 느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일본에서 성회를 했을 때 몸살이 나서 굉장히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바로 미국으로 갔는데 이틀 동안 밤새도록 아픈데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어요. 밥도 먹을 수가 없어서 우황청심환을 세통이나 잘라서 물에 타서 마시고 겨우 설교를 했습니다.

평신도 같으면 아프다는 말이라도 하겠는데 목사가 되어서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끙끙 앓아가면서 ‘이러다가 죽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날 정도로 아픈데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푹 쉬라고 붙잡는 것을 주일을 비우면 안 된다고 그 길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죽으려고 그렇게 하느냐? 왜 그렇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내가 마음에 느끼기 때문에 아무리 앓고 아무리 고생을 해도 그 일에 보람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보람이 있으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 남선교회, 여선교회 회원들이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일을 하고 이렇게 주일에 또 와서 새벽부터 봉사하는 것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월급도 안 받고 다리가 아픈데도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변함없이 나와서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어떠한 고생도 이기게 합니다. 사랑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때 나타나는 내적인 변화는 마음속에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이 바로 소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지게 해 주실 것이라고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돌아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LA에서 우리 교민을 위한 성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폭동이 일어나서 우리 교민들이 재산을 잃고 큰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성회를 준비하고 저를 초청했는데 그곳에 성령의 은혜가 크게 임하여 다 같이 즐거워하고 춤을 추며 하나님 앞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남자 성도 한 분이 와서 제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 주님은 정말 살아 계십니다. 우리 집에 갑자기 나방이 생겼는데 아무리 약을 아무리 뿌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음식에도 들어가고 온 집안에 나방이 돌아다니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서 제가 집사람에게 말했어요.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우리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래서 둘이 앉아서 나방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는데 하루는 집사람이 저를 쿡쿡 찌르면서 ‘여보, 이것 좀 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그래서 제가 눈을 떠서 보니까 나방이 한 줄로 서서 앞으로 갓! 하고 서로 모이더니 집 밖으로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진짜로 살아계시네요.” 그렇게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소박한 간증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돌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에 지극히 적은 일로부터 시작해서 지극히 큰일까지 예수님은 우리 모든 문제의 해답과 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미국의 한 도시에서 경찰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달려가는데 무슨 일인가 알아 봤더니, 6살쯤 된 아이가 트랙터를 몰고 있다는 것을 신고가 접수된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이 출동했는데 트랙터를 멈추게 하고 보니 아이가 운전한 게 아니라 아빠가 아들을 어깨 위에 태우고 운전했던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어깨 위에 앉은 아이 때문에 아빠가 가려져서 마치 아이가 운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생의 핸들을 내가 잡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예수 권세 앞에 모든 마귀는 물러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써 우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우리를 만져주시고 우리를 고쳐 주옵소서. 항상 멀리 가지 마시고 가까이 계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 것을 알게 해 주옵소서. 우리의 질병뿐 아니라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여러 무거운 집들까지도 하나님께 맡기 오니 맡아 주시고 주장해 주옵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9.09.08. pm 17:0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