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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중략)… 야훼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중략)…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1~24절)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으셨고 특히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인간은 타락했고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정말 아담이 있는 곳을 모르셔서 그렇게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던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좋은 것을 지으신 하나님

창세기 1장 2절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의 시작을 보면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과 더불어 수면에 운행하심으로써 좋은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빛을 지으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고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뭍을 드러나게 하셔서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땅 위에 열매 맺는 수목을 나게 하시니 보시기에 좋았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또 하늘에 나는 새들과 물속에 사는 어류와 땅의 짐승들을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게 지으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짓기 전에는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고 각종 실과가 가득한 에덴동산에 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에덴동산을 거닐었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옷을 입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았고 하나님의 앞에서도 조금도 마음속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2. 죄로 인해 저주 받은 땅

그런데 그처럼 좋았던 아담과 하와의 삶에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원수 마귀가 와서 그들을 유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됐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지음을 받은 인간도 평생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로 만들어졌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영이 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영과 혼이 육이 다 죽음의 세력의 다스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났고 그들은 벌거벗은 자신들 모습을 발견하고 수치심과 공포가 그 마음을 꽉 들어차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아름다운 처소를 상실하고 죄악의 그늘, 질병과 가난과 저주의 그늘, 죽음과 멸망의 그늘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중생의 은혜

그런데 성경을 보면 좋으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자기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려고 했지만 해가 비치자 곧 말라 버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죄와 허물을 가릴 수가 없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윤리와 도덕이라는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려고 하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죄로 인한 수치를 가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짐승을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그들의 수치를 덮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수치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잠을 잘 때 내가 이불을 발길로 차서 걷어차 버리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올려 덮어주시면서 “감기 걸릴라.” 말씀하시며 토닥거려 주셨습니다.

또 여름철에 할머니가 빨래를 갤 때 내가 그 옆에서 배를 다 내놓고 잠을 잤어요. 그러면 할머니가 빨래를 개다 말고 홑이불을 가져와서 덮어 주었습니다. 그 사랑의 손길을 생각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있는 그대로 심판하셨다면 여기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허물을 덮어주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실 것에 대한 암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사망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2절에는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온 세상을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 혼, 육이 다 죽음의 세력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는데,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면 영과 혼과 육이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시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을 반역하여 지은 죄를 그 아들에게 전부 책임을 지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올라가셔서 인류를 대표한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속사람이 아버지께로부터 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때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찬송을 부르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되고 감사를 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열린 것입니다. 과거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3차원의 물질적인 세계밖에 몰랐는데 이제 우리가 물질세계를 초월해서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지만 우리 속사람이 누리는 성령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귀가 열리고 영적인 이해력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 살아나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역사인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우리의 아집을 죽이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도 우리 혼은 아주 고집이 셉니다. 우리 안에서 고집이 꽉 들어있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자기 고집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집을 죽이고 난 다음에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내게 고통과 시험이 다가옵니까?”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믿은 사람의 아집을 깨뜨려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데 편하게 죽습니까? 십자가에 매달려야 죽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급작스럽게, 어떠한 사람은 서서히, 아집이 깨뜨려지는 체험을 합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마음에 고통이 다가올 때 고집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한 사람들 중에서 아집이 깨어지지 않고서 사용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야곱은 그 아집이 깨어지는데 20여 년이 걸렸고 요셉이 깨어지는 데는 13년 동안 종살이, 감옥살이가 필요했으며 모세가 깨어지는 데는 40년의 광야 생활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그렇게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고생을 당해서 깨어지고 깨어진 사람, 그래서 아집이 죽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믿음과 순종으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지지 않은 사람을 절대로 축복하실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여러분의 아집이 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집이 죽어야 그 다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가 다가옵니다. 오늘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나는 살 소망이 없다. 이제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한가지다.’ 이와 같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까? 이때는 자기를 의지하는 인본주의가 죽을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본주의가 살아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집이 죽은 자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고 그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자기가 깨어져 죽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순종으로 부활하도록 하나님께 맡기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육체적인 죽음에서 부활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퍽 길어졌죠. 그러나 이팔청춘 젊은 남녀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그로써 종말이요, 그로써 처절한 절망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이 그 인생의 종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고 다시 부활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이 세상에 살아있을 동안에 육신적인 향락이나 실컷 누리고 죽자.” 그렇게 했을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올바르게 살고 절제하며 살고 고통을 감내하고 살았는데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환락을 쫓아 사는 사람들은 육으로 심고 사망으로 거두게 되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서 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영생의 부활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저는 이제 부활의 소망을 안고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셔서 우리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또, 우리의 아집을 깨뜨리고 우리 속에 참된 믿음과 순종을 부활시켜서 범사에 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모든 병을 치료하시고 강건케 하실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죽은 자를 재림의 날에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리셔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생명의 주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져서 여러분과 제가 항상 승리하며 살게 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은혜 속에 들어온 사람들이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영혼의 생명이요, 우리 마음의 생명이요, 우리 육체의 부활이요, 우리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여러분은 이제 절망 가운데 있는 옛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을 향해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시면 이와 같이 담대한 신앙고백을 하십시오.

“하나님, 저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저는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저는 치료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저는 새 사람입니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된 내 모습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날마다 입술로 시인함으로써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새 사람으로서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게 지으신 이 모든 세계를 통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함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잘못된 고집과 자아를 모두 깨뜨리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늘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9.06.09. pm 13:21 (입력)